소설리스트

도비검무-63화 (63/184)

063화 빨리 석실 문을 열어라.

청운도 묘묘보허의 신법을 전개해 그의 뒤를 따랐다.

석가명의 신법이 제법 뛰어나기는 했으나, 아직 어떤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신법으로 판단하기에는 그의 무공 수위가 아직 절정의 경지에도 한참 모자라는 것 같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일 다경쯤 달리자, 멀리 만불사의 일주문이 눈에 들어왔다.

청운과 석가명은 일부러 일주문을 피해 오른쪽 송림이 우거진 곳을 우회해서 만불사로 들어갔다.

청운과 석가명은 한눈에 만불사의 전경이 조망되는 고목의 가지 위에 새처럼 올라섰다.

만불사 대웅전 바로 앞에는 사방 십여 장이나 되는 널따란 연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높이는 약 삼 척 정도 되어 보였다.

연단을 빙 둘러서 꽂아 놓은 황금색 깃발들이 밤바람에 장강의 물결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수십 개에 달하는 석등이란 석등에는 모두 유등이 밝혀져 있었다.

연단 바로 앞과 양옆에는 행사를 위해 따로 준비한 것 같은 세 개의 커다란 주물 활로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또한 검은색 무복을 입은 수십 명의 흑의 무사들이 연단을 중심으로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사주경계를 하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도 그들의 눈빛이 형형한 것으로 보아 그들의 무공이 꽤 강한 것 같았다.

한동안 만불사의 전각을 세심하게 둘러보던 청운이 석가명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공자, 내가 주변을 한 번 탐색해 보고 오겠으니 가능하면 섣불리 움직이지 마시고 상황을 주시하면서 기회를 기다리십시오. 틀림없이 좋은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석가명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자마자 청운은 묘묘보허의 경신술을 전개해 야음을 틈탄 한 마리 비조처럼 신형을 솟구쳤다.

청운은 쏜살처럼 순식간에 대웅전 지붕을 훌쩍 넘어갔다.

번개처럼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청운의 신형에서는 파공음 하나도 일지 않았다.

신기막측한 청운의 신법을 바라보던 석가명의 눈에서 연신 놀라움과 감탄의 빛이 흘러나왔다.

청운은 대웅전 뒤에 있는 전각의 지붕에 마치 밤안개가 수면에 내리듯 소리 없이 날아 내렸다.

청운은 안력과 청력을 최대한 돋우어 주변의 상황을 살피면서 자그마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서쪽 맨 끝의 전각에서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청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리가 들린 전각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 전각 주변에는 십여 명의 흑의 무사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두런거리는 말소리의 진원지는 전각 안 지하 같았다.

청운은 다시 청력을 최대한 돋우었다.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리고 희미한 여인의 신음 같은 것도 들려왔다.

“천관신녀님, 곧 자시가 다 되어갑니다. 준비에 한 치의 차질이 있어서도 아니 됩니다. 서둘러주십시오.”

“제천사자님, 아무 걱정 마십시오. 마향수는 방금 마시게 했고 이제 몸단장과 화장만 하면 모든 준비가 끝납니다. 몸단장과 화장은 일각이면 다 끝납니다. 그러면 바로 제천대에 세우기만 하면 됩니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게 혈화제천님의 소관이지요.”

청운은 더 이상 듣고 말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묘묘보허의 보법을 전개해 곧바로 전각 아래로 연기처럼 날아 내리며 십여 명에 이르는 경비 무사들의 혈도를 모조리 짚어 버렸다.

경비 무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썩은 짚단처럼 자신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픽픽 쓰러지고 말았다.

갑자기 온몸을 꼼짝하지 못하게 된 경비 무사들이 청운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침묵을 고함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순간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천천히 전각의 문을 가만히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청운의 등을 멀뚱히 바라보는 것이 유일했다.

청운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장면은 널찍한 마룻바닥 한곳에 반쯤 들어 올라간 나무판자와 시커먼 구멍이었다.

그 구멍은 지하로 통하는 계단 입구 같았다.

그곳에서 누군가 두런거리는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청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계단을 내려갔다.

이삼 장 아래의 계단을 내려간 청운이 지하에서 가장 먼저 접한 것은 지독한 냄새였다.

사람의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역한 냄새였다.

청운은 즉시 치우전륜공을 운용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곧바로 역한 냄새의 영향이 사라졌다.

이미 청운의 치우전륜공 경지는 걸어가면서도 운기조식이 가능한 수준에 닿아 있었다.

십여 장 앞에서 환하게 타오르는 유등이 보였다.

몇 사람의 그림자가 불빛에 어른거렸다.

그 그림자의 주인은 흑의를 입은 세 명의 사내와 궁장을 한 두 명의 여자였다.

그들이 있는 쪽은 너무 밝고 청운이 있는 쪽은 너무 어두워 그들은 아직도 청운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청운이 몇 걸음 더 걸어가자 그제야 청운의 기척을 느낀 흑의 무사 하나가 소리를 쳤다.

“누구냐. 이곳은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는 곳이 아니다. 즉시 나가라.”

청운이 들은 체 만 체 그 소리를 무시하며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흑의인이 자신의 검을 빼 들고 청운 쪽을 바라보았다.

나머지 두 흑의인들도 재빨리 검을 빼 들고는 바짝 긴장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을 향해 어둠의 얼굴처럼 묵묵히 다가오는 청운을 노려보았다.

갑자기 왼쪽에 있는 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웬 놈이냐. 소속을 밝혀라. 이곳은 혈화제천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밀실이다.”

그들과 일 장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청운은 멈추어 섰다.

그리고 처음부터 겁박하듯 반말 투로 말했다.

“초서서 낭자는 어디 있느냐. 빨리 말해라, 네 대답에 네 목숨이 달렸다.”

청운의 말을 들은 흑의인들의 안색이 돌연 화석처럼 굳어졌다.

가운데 있는 자가 말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여기가 어떤 곳이라고 감히 겁대가리 없이 기어들어 왔느냐. 기어들어 오길. 오늘 여기가 네 무덤 자리다.”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도 늘 상대의 정체를 먼저 물어본다.

그가 선인이 건 악인이든지 간에 사람의 궁금증은 다 똑같은 것 같았다.

청운에게 방금 말을 한 자가 앞으로 한 발 더 나서며 재차 청운의 신분을 물었다.

“이름을 밝혀라. 혹시 아느냐. 갑자기 내가 한없이 너그러워져 네 무덤에 비석이라도 세워 줄지.”

사내는 자신의 검을 앞으로 쭉 내뻗으며 빈정거렸다.

청운은 마치 빙굴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냉기를 가득 머금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는 강청운이다. 초서서 낭자가 어디에 있는지 빨리 말해라.”

청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흑의인들은 대경실색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두어 발짝씩 물러났다.

곧이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금세 그들의 태도가 공손하게 돌변했다.

심지어 말을 높이기까지 했다.

“서… 설… 마. 무위검 강 소협이신가요. 그런데 강 소협께서 이 만불사에 웬일로 오셨습니까.”

청운이 다시 한 번 단호한 목소리로 사내들을 다그쳤다.

“지금 당장 초서서 낭자를 내 눈앞에 대령 시켜라. 셋을 세겠다. 하—나, 두 울, 세—에.”

청운이 셋을 다 세기도 전에 흑의인들이 청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바로 그 순간 번쩍하는 한 줄기 섬광이 지하 석실을 순간적으로 밝혔다 사라졌다.

곧이어 망치에 돌이 깨지는 듯한 단말마의 비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 비명은 석실의 문을 넘어가지 못했다.

청운이 이미 치우전륜공으로 석실의 음파가 멀리 퍼지는 걸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사내들의 몰골은 참혹했다.

석실 바닥에 회초리에 맞은 개구리처럼 널브러진 흑의인의 몸에는 이미 왼팔이 몸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흑의인들은 그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눈으로 자신의 왼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피가 철철 흐르는 자신의 팔을 지혈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한쪽 옆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두 여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는 한 손으로 자신의 쩍 벌린 입을 가리고 있었다.

청운이 다시 한 번 빙굴에서 나오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 번 더 묻겠다. 초서서 낭자는 어디에 있느냐. 이번에도 똑바로 대답하지 않는다면 목이 몸에서 분리될 것이다.”

청운의 거듭된 겁박에 사색이 된 흑의인 하나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인년 인월 인일 인시의 사주를 타고 나서 오늘 희생공양에 바쳐질 제물로 선택되었습니다. 아마 지금쯤 대웅전에서 혈화제천님이 제조한 묘약을 먹으려고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아니면 이미 묘약을 먹었을 수도 있습니다.”

청운이 재차 물었다.

“그 묘약은 어떤 약인가”

그자가 다시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약이 어떤 것인지는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그 약을 먹은 사람이 혈화제천님의 혈화음장을 접하면 갑자기 몸속에서부터 불길이 확 솟아오릅니다. 제의가 끝나면 희한하게도 혈화제천님의 신통력은 더 강해집니다.”

청운은 그들의 악독한 짓거리에 자신의 몸속 깊은 곳에서 치솟는 분노로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르 떨었다.

혈화제천은 제의를 핑계로 처녀들의 음기를 흡수해 어떤 사악한 무공을 익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혈화제천의 장력과 접했을 때 몸에 불길이 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 그 약은 여인의 순음지기를 순간적으로 최대한 격발시키는 용도로 쓰이는 것 같았다.

제물로 선택된 여인이 그 약을 복용해 순음지기가 최대한 격발 되는 순간을 노려 혈화제천은 음기를 흡취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무공 증진을 위해 무고한 사람의 소중한 생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다니 악마가 따로 없다고 청운은 진절머리를 쳤다.

그것도 신성한 종교라는 외피를 쓰고서, 인간이 어떻게 그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돌연 청운의 심연처럼 깊은 눈 속에서 불같은 분노가 용암처럼 이글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청운은 억지로 분노를 억누르며 재차 그 흑의인에게 물었다.

“그럼 저 뒤 석실에 갇혀 있는 여인들은 누구냐.”

사색이 된 흑의인이 아랫도리를 벌벌 떨며 대답했다.

“그녀들은 오늘 제천 의식 때 연단에서 수발을 들 여인들입니다.”

청운이 엉덩방아를 찧은 채 한쪽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여인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빨리 석실 문을 열어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