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화 나는 더 이상 검을 잡지 않을 것이네.
청운은 자신의 검을 가슴 앞에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그것은 본격적인 대결에 앞서 상대에게 예를 표하는 예전초식이었다.
청운이 예전초식을 취하자 육검자도 자신의 태청검을 뽑아 검을 수평으로 한 번 크게 그었다.
청운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무영검에 치우전륜공의 진기를 주입했다.
무영검이 우~웅 하는 청아한 검명을 장내에 토해냈다.
무영검에서 뻗어 나온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이장이나 일렁거렸다.
두 사람의 비무를 빙 둘러싼 채 바라보고 있던 화산파의 제자들이 그 광경을 보고는 입을 딱 벌린 채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그 탄성에 추임새를 맞추듯 육검자의 태청검에서도 파르스름한 검기가 거의 이 장이나 뻗어 나왔다.
청운이 먼저 초식을 전개했다.
청운의 무영검이 쏜살같이 육검자를 향해 쏘아졌다.
쾌—타—절—변—회 초식이 서로 연환되어 육검자의 전신 요혈을 짓쳐 갔다.
바로 그때 육검자의 일성이 연화봉을 뒤흔들었다.
“태—청—극—섬.”
육검자의 태청검에서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 파르스름한 검기와 청운의 무영검에서 발출된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그러자, 대낮의 연화봉 아래 공터에서 때 아닌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거렸다.
청운과 육검자의 검기가 허공에서 충돌하자, 그 파동에 휩쓸린 주변의 땅거죽이 불곰의 껍질처럼 벗겨지고 대문짝만 한 바위들이 허공에 치솟아 올랐다.
두 고수의 비무를 관전하던 화산파의 제자들은 뒤로 몇 장이나 더 물러나야 했다.
청운과 육검자는 단 일 초식의 교환으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았다.
불꽃 튀기는 서로의 검기를 허공에서 한 번 교환한 두 사람은 다시 땅에 내려섰다.
청운과 육검자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듯이 마주 응시했다.
두 사람이 뿜어내는 무형지기에 의해 둘 사이에 있던 대기가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렸다.
이번에도 먼저 공세를 취한 쪽은 청운이었다.
청운은 쾌—타—절—변—회—접—척의 일곱 초식을 하나로 연환해 육검자를 향해 퍼부었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강맹한 자황색의 검기가 청운의 무영검에서 줄기줄기 쏟아졌다.
무영검에서 뿜어져 나온 번개 같은 검기가 전광석화처럼 육검자의 전신으로 폭사하는 바로 그 순간 육검자의 입에서 또다시 연화봉을 뒤흔드는 일성이 터져 나왔다.
“태—극—극—환.”
또다시 두 사람이 발출한 검기가 서로가 마주 선 정중앙에서 격돌했다.
장내는 두 사람이 발출한 검기의 파장으로 인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최초의 격돌로 땅에 나뒹굴던 바윗덩어리들이 아까보다 더 높이 허공으로 치솟고 파였던 땅거죽이 더 깊이 파였다.
심지어 이십 여장이나 떨어져 있는 옥연지의 물도 마치 용오름처럼 이십여 장이나 치솟았다가 후드득 떨어졌다.
그 때문에 둘의 대결을 멀찌감치 구경하던 관전자들은 난데없이 물벼락을 뒤집어썼다.
두 차례의 격돌 후, 장내에 내려선 두 사람의 몰골은 가관이었다.
머리카락은 미친 사람의 그것처럼 헝클어지고 옷은 누더기나 다름없이 갈가리 찢기어졌다.
둘 중 누구도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한 것 같았다.
그때 청운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육검자가 청운에게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초식일세. 이번은 앞의 두 번과는 많이 다를 것이네. 이 초식에 나는 내 모든 힘을 쏟아부을 것이네. 마지막 초식의 이름은 태—청—무—극이라 하네.”
청운은 육검자의 마지막 초식이라는 말에 긴장을 더 바짝 조였다.
청운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멸환’을 사용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고 결심했다.
함부로 펼쳐선 안 되는 초식인 줄은 청운 자신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멸환 말고 육검자의 마지막 초식인 태—청—무—극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두 번의 초식 교환으로 그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청운은 ‘멸환’을 펼치기 위해 치우천륜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무영검에 진기를 주입하자 무영검이 아까보다 훨씬 더 요동을 쳤다.
마치 무영검이 청운이 어떤 초식을 펼칠지 미리 아는 것 같았다.
청운이 무영검을 가슴 앞에 들어 올리자 무영검에서 아까보다 훨씬 더 강렬한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줄기줄기 쏟아져 나왔다.
바로 그 순간 육검자의 입에서 다시 연화봉을 뒤흔드는 일갈이 터져 나왔다.
“태——청—무—극.”
덩달아 청운의 입에서도 일성이 내뱉어졌다.
“멸—환.”
두 사람의 검기가 또다시 서로의 정중앙에서 격돌했다.
조금 전의 맞닥뜨림으로 허공에 치솟아 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졌던 바위들은 아예 자갈이 되어 허공에 흩뿌려졌다.
거죽이 벗겨진 땅은 마치 화약이 터진 듯 일 장 깊이로 움푹 파였다.
옥연지의 물이란 물은 모두 허공으로 치솟아 사방에 안개로 흩뿌려졌다.
두 사람의 검기에 의해 허공으로 치솟았던 모든 것들이 가라앉자 비로소 장내의 상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청운이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난 것에 비해 육검자는 대여섯 걸음이나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신형마저 세차게 떨고 있었다.
청운이 앞가슴과 옆구리에 살짝 검상을 입은 반면, 육검자는 앞가슴과 오른쪽 다리에 마치 번개가 스치고 간 듯 청운의 검기에 옷이 타버렸고,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입가에 한 줄기 붉은 동아줄 같은 핏줄기가 앞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누가 이기고 진 것인지 승패는 명확했다.
육검자는 청운을 한참 동안 지그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소협이 이겼네. 소협은 자격이 충분하네. 나는 이제 여한이 없네. 내 생전에 내가 그토록 꿈꾸던 검을 직접 봤으니 나는 더 이상 검을 잡지 않을 것이네.”
“…….”
“그리고 손속에 사정을 두어서 고맙게 생각하네. 소협은 자신의 검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되네. 그럼 화산을 잘 내려가시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육검자는 비틀거리며 연화봉 왼편으로 사라졌다.
청운이 그의 등 뒤에 대고 포권을 취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진인님, 저도 이 대결을 평생의 영광으로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강녕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청운이 예를 거두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두 사람의 비무를 관전했던 화산의 제자들 전부가 입을 딱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개 중에 몇몇 어린 제자들은 자신들이 신처럼 믿었던 사숙조의 패배에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 * *
청운이 몸을 돌려 하산하려고 할 때 누군가 청운을 불러 세웠다.
그는 육척의 큰 키에 상당한 미남형의 중년인이었다.
나이는 거의 사십 대 중반으로 보였고, 자색의 장삼을 입고 있었다.
반백의 머리는 뒤로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그의 등에는 덩치에 걸맞은 커다란 도가 매어져 있었다.
그가 청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강 소협, 나는 팽추도라고 하네. 오늘 우연히 화산 장문인을 뵈러 왔다가 소협의 무위를 보았네. 나와 잠깐 이야기할 수 있겠나.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네.”
처운도 몇 번 들어본 이름이었다.
팽추도는 현 하북팽가 가주의 바로 아래 동생으로 가전 무공인 혼원도법과 혼원벽력장을 십이성 대성해서 강호에서 혼원벽력도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었다.
그의 무공 수위는 가주인 팽추흔을 오히려 능가한다고 했다.
그는 성정이 호방하고 직선적이어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리고 성정이 다소 급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타인과 자주 마찰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었다.
청운은 팽추도가 왜 자신을 보자고 하는지 의아했다.
일단 그가 무슨 얘기를 할지 들어보기로 했다.
그것이 강호의 예의이기도 했다.
팽추도가 청운의 팔소매를 슬쩍 잡아당긴 후 옥연지 쪽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청운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가 옥연지를 감싸고 있는 널찍한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청운도 그의 바로 옆에 앉았다.
팽추도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한동안 청운을 바라보았다.
그가 짧은 숨을 두어 번 내뱉고는 천천히 말했다.
“소협, 장 장문인의 말로는 이번 태청일검 선배와의 대결이 天과 관련된 문제 때문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
청운은 팽추도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다소 의아하기는 했다.
하지만, 청운은 그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대답했다.
강호의 소문으로는 그가 나름 광명정대하다고 알려졌기에 청운도 이런저런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자신의 속내를 그에게 솔직히 털어놓기로 마음을 먹었다,
“에, 그렇습니다. 대협. 태청일검께서 天의 실체에 대해 커다란 오해를 하고 계시기에 무례함을 무릅쓰고 제가 감히 한 수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일전이었습니다.”
팽추도는 고개를 들어 한동안 공허한 눈빛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두어 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드디어 어떤 결심을 했는지 그가 마침내 운을 뗐다.
“소협, 내 좁은 소견으로도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닌 것 같네. 우리 하북팽가는 중원의 다른 세가와 달리 그 기반을 농사에 두고 있다네. 그래서 우리 팽가는 농기구 제작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네.”
“…….”
“지금껏 우리 팽가가 관리하는 공방이 두 곳 있었다네. 중원에서 제법 알아주는 공방이라네. 그 두 공방에서는 우리 팽씨세가가 쓸 무기도 가끔 제작하지만 주로 농번기를 대비해 농기구를 생산한다네.”
팽추도는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작년 가을에 표국 연합이라는 곳에서 자신들 거래에 필요한 대량의 무기 제작을 팽씨 공방에 의뢰했다네. 그리고 자신들과의 독점적인 거래를 제안했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큰 이문을 보장할 수 있다고 장담을 했네.”
‘아…….’
“나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단칼에 불가하다고 거절했네. 나는 그들에게 우리 세가의 바탕이 농사라고 자세히 설명했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무기보다 좋은 농기구를 많이 생산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네. 내 생각에 표국 연합이라는 자들은 중원 상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흑상 같았네.”
팽추도는 ‘흑상’이라는 단어로 그들을 표현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하룻밤 새에 두 공방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네. 공방의 식솔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네. 나는 너무나 분기탱천해서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파헤치려고 했네.”
“……!”
“나는 그 배후가 설사 황궁이라도 반드시 응징하기로 작심을 했네. 그런데 사건 현장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지만 나는 단 하나의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네. 막대한 자금을 제시하면서 개방과 쾌활림에도 의뢰했지만, 사건의 배후에 관해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네.”
“아…….”
“그런데 오늘 장 장문인과 차담을 나누다 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뭔가 번쩍하고 뇌리를 때리는 것이 있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