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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50화 (50/184)

050화 다른 세상에서 불러낸 백색의 악령 같은

그 굵기 또한 거의 서너 척이 되어 보이는 백색의 길쭉한 몸뚱이는 보는 사람에게 마치 비현실 같은 몽환적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섬뜩하고 사이하고 요사하고 으스스한 저 하얀색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홀리고도 남을 것 같았다.

마치 백야의 환각을 보는 것 같은 붉은 눈빛은 마주치는 사람의 생기를 모조리 빨아버릴 것 같았다.

한 마디로 백무기는 사이한 주술로 다른 세상에서 불러낸 백색의 악령 같았다.

대파산의 선하령계곡에서 맞닥뜨린 적곤이 그 크기와 위압감에서 압도적 공포를 불러일으켰다면.

백무기는 적곤보다 크기가 훨씬 적은 편이었지만 아무 색도 없는 백색이 주는 요사함과 사이함은 더 강렬했다.

적곤이 당장에 세상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지옥의 화구 같다면, 백무기는 세상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얼려 버릴 냉기의 눈 같았다.

청운은 백무기를 처리하는 일을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동굴로 되돌아왔다.

사라영빙 선배의 예측이 정확하다면 천빙열화과는 이제 한 달 남짓이면 완전히 익는다.

반드시 천빙열화과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이곳을 벗어날 힘을 조금이라도 더 키울 수 있다.

사라영빙 노선배의 말대로 깊이를 측정할 수도 없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살아나려면 무위가 높을수록 생존 확률도 높아진다.

물론 그 시도 또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그대로 얼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편이 더 낫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포기를 해도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보고 난 후에나 비로소 해야 한다.

절망과 체념은 언제나 가장 나중에 해야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청운은 동굴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서 어떻게 백무기를 처치할까 골몰하다 설핏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청운은 은빛 갑옷을 입은 신장이 되어 백무기와 적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청운은 자기 몸의 서너 배가 넘는 커다란 은빛 방천극을 들고서 백무기의 허연 혀를 베어 내고는 뒤돌아서 적곤의 머리를 후려치고 있었다.

백무기와 적곤은 신장이 된 청운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그냥 거대한 짐승일 뿐이었다.

청운은 자신이 처치한 백무기와 적곤의 사체를 양발로 짓밟고 서서 하늘을 향해 앙천대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 * *

청운은 빙천열화과가 자라고 있는 연못의 바닥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의 몇 배나 되는 큼직한 얼음덩어리를 허공섭물로 거의 십여 장 높이로 끌어올린 청운은 있는 힘을 다해 백무기가 똬리를 틀고 있는 연못의 중심을 향해 내던졌다.

바위는 커다란 물보라가 일으키며 수면의 사면을 강타했다.

바로 그 순간 청운이 던진 바위가 일으키는 물보라와는 전혀 다른 하얀 물기둥이 바닥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 어마어마한 하얀 물기둥은 청운을 향해 물로 만든 창처럼 쏘아져 왔다.

청운도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하얀 물체를 향해 무영검으로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를 줄기줄기 발출했다.

카―카―까―까―까―앙.

거대한 하얀 물창와 자황색의 검기가 충돌하자 귀청을 찢는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연이어 거꾸로 뒤집힌 연못의 수면이 사방을 뒤덮었다.

청운은 깜짝 놀랐다.

백무기의 피부는 거의 강철과 같았다.

무영검을 쥔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저릿저릿한 통증이 전해졌다.

하마터면 무영검을 놓칠 뻔했다.

청운은 다시 한 번 무영검을 꽉 움켜쥐었다.

청운은 정신을 더 바짝 차려야 한다고 자신을 다잡았다.

청운의 일격에 비록 큰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백무기 역시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백무기는 한낱 인간의 공격에 자신이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것 같았다.

백무기는 얼음의 분노 같은 허연 혀를 거의 이 장이나 날름거리며 요사하고 사이한 눈으로 청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분노한 백무기였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짐승은 짐승일 뿐이었다.

참을성이 인간보다 훨씬 못했다.

백무기는 마치 개구리가 파리를 낚아채듯 하얀 혀를 길게 뻗어 청운을 휩쓸어 왔다.

마치 채찍을 휘두르듯 청운의 전신을 휘감아 왔다.

백무기의 혀는 마치 대기를 한층, 한층 도려내듯 회전하며 날아드는 연검 같았다.

청운은 금방이라도 자신을 꿰뚫을 것 같은 백무기의 혀를 무영검으로 간신히 쳐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백무기는 얼음 기둥 같은 꼬리로 허공에 떠 있는 청운을 후려쳐 왔다.

청운은 묘묘보허 신법의 묘용을 최대한 발휘했다.

청운은 백무기의 혀와 꼬리에 휩쓸릴 듯 휩쓸릴 듯하면서 간발의 차이로 백무기의 공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백무기의 꼬리에서 이는 세찬 후폭풍에 청운은 불안하기 그지없이 신형을 휘청거렸다.

청운은 백무기의 거센 공세에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퇴는 청운의 작전이기도 했다.

청운은 백무기의 공격에 밀리는 척하면서 백무기를 연못의 중심에서 땅 가까이 유인하고 있었다.

번번이 자신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 버리는 인간에게 화가 날 대로 난 백무기는 아예 연못에서 땅으로 풀쩍 기어 나왔다.

청운이 노리고 노리던 순간이었다.

청운은 백무기가 땅으로 올라오자마자 묘묘보허를 최대한 전개해 백무기를 훌쩍 타고 넘어 백무기가 연못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연못 앞에 우뚝 버티고 섰다.

청운에게 희롱 당한 백무기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는지 허연 혀를 쉬이익, 쉬이익거리며 청운을 후려쳐 왔다.

탱탱한 가죽 주머니에서 거센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백무기가 청운을 덮쳐 왔다.

하지만 백무기는 물속에 있을 때와는 확연한 속도의 차이가 났다.

청운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백무기의 화등잔만 한 눈을 향해 천산의 암전에서 산 비도를 연속으로 날렸다.

눈을 향해 빛처럼 빠른 속도로 은빛의 비도가 날아들자 위기를 느낀 백무기가 눈을 감았다.

바로 그 순간 청운은 최대한의 진기를 주입한 무영검으로 백무기의 왼쪽 눈을 찔렀다.

까―까―까―깡.

백무기는 눈꺼풀마저 철판 같았다.

회심의 일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청운이 아차, 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곧바로 백무기의 하얀 꼬리가 청운의 몸을 후려쳤다.

백무기의 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통으로 맞지 않고 살짝 비껴가는 꼬리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청운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십여 장이 날아가 얼음벽에 그대로 처박히고 말았다.

너무 큰 충격에 청운은 무영검마저 놓쳐 버렸다.

바로 그 순간 백무기의 은빛 채찍 같은 혀가 청운의 몸을 도려낼 듯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짓쳐 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무슨 짓이라도 해야만 한다는 심정으로 청운은 자신의 바로 눈앞에 떨어진 비도 세 자루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백무기의 허연 얼음 동굴 같은 입속을 향해 던졌다.

하지만 백무기가 머리를 한 번 크게 휘젓자 비도는 마치 철벽에 부닥친 것처럼 도로 튕겨져 나왔다.

더 이상 던질 것마저 없어진 청운은 품에서 떨어진 삼공적을 주워 던졌다.

그 순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청운을 한입에 집어삼킬 듯이 고개를 쳐들고 달려들던 백무기가 입을 벌린 자세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거의 다섯 척이나 되는 백무기의 거대한 이빨은 마치 수백 년을 담금질한 은빛 창 같았다.

저 이빨에 씹히면 한순간에 자신의 몸이 산적처럼 꿰뚫릴 것 같은 공포감을 청운은 느꼈다.

그 짧은 찰나에 청운의 눈에 사라영빙 노 선배가 말했던 백무기의 턱밑 일 보 아래 유일한 조문인 손바닥만 한 푸른 역린이 얼핏 보였다.

청운은 생각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발치 근처에 떨어진 무영검을 주워 있는 힘을 다해 백무기의 조문에 박아 버렸다.

꽤―에액.

백무기가 얼음 절벽이 무너질 듯 괴성을 질렀다.

청운은 일 장 옆에 떨어진 빙혼검마저 주워 다시 한 번 백무기의 조문에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얼마나 세게 찔러 넣었는지 빙혼검의 손잡이까지 그대로 백무기의 조문 속으로 다 들어가 버렸다.

꽥, 꽤애애―액.

조문에 두 자루의 검이 박힌 백무기가 엄청난 괴성을 내지르며 요동을 쳤다.

연못의 수면이 십여 장 이상 뒤집히며 사방으로 물벼락이 튀었다.

백무기의 엄청난 몸부림에 튕겨 나간 청운은 그대로 얼음벽에 다시 한 번 처박혔다.

청운은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에 순간적으로 기절을 하고 말았다.

* * *

일다경쯤 지나서야 청운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오른손으로 힘들게 땅을 짚고 일어난 청운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았다.

다행히 얼음벽에 직격당하고도 청운의 몸은 크게 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것 말고는 움직이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청운은 자신의 몸이 과거보다 훨씬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빙화초의 효험을 많이 본 것 같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백무기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 연못가로 갔다.

백무기는 몸통의 반 정도가 물에 잠긴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완전히 죽은 것 같았다.

오른발로 힘껏 대가리를 차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백무기에 잠시 정신이 팔려 있던 청운이 연못의 수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직경이 거의 백여 장이 넘는 연못이 온통 시뻘겠다.

죽은 백무기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연못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연못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청운은 다시 한 번 더 놀랐다.

청운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쩍 벌린 채 다물지를 못했다.

괴사였다.

연못의 붉은 색이 점차로 옅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천빙열화과가 붉은빛을 사방으로 서서히 내뿜기 시작했다.

청운은 경신술을 최대한 전개해 연못 가운데 있는 섬으로 날아갔다.

천빙열화과는 어느새 청운의 주먹만큼 굵어져 있었고 투명한 붉은빛을 줄기줄기 내뿜고 있었다.

천빙열화를 탐하여 백룡이 되려고 했던 백무기를 오히려 천빙열화과를 숙성 시키는 영양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하늘의 안배와 섭리는 참으로 절묘했다.

청운은 연못과 천빙열화과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연못의 붉은 색이 옅어질수록 천빙열화과의 색이 더 투명한 붉은색을 띠었고 과육도 더 굵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연못이 제 우윳빛 색깔을 원래대로 회복하자 천빙열화과가 찬연한 붉은 빛을 천지사방으로 쏟아냈다.

연못을 병풍처럼 둘러싼 빙벽이 천빙열화과가 뿜어낸 투명한 붉은 빛을 수천 개의 거울로 되비추자 꿈에서나 봄직한 몽환적 풍경이 펼쳐졌다.

보고 또 봐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마치 천상의 유리 궁전에 수천 개의 유등을 일제히 켠 것 같았다.

청운은 얼이 반쯤 빠진 채 그 아름다움에 취해 버렸다.

그러다 청운은 아차, 하고 정신을 번쩍 차렸다.

천빙열화과가 땅으로 떨어지면 모든 것이 헛일이었다.

청운은 재빨리 천빙열화를 따서 입속에 넣었다.

천빙열화과는 입에 넣자마자 그대로 녹아서 목구멍 아래로 넘어갔다.

그것은 잘 익은 도화 맛 같기도 하면서 전혀 다른 맛 같기도 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상쾌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맛보는 색다른 맛이었다.

세 개의 천빙열화과를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운 청운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치우전륜결을 운용하는데 몰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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