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47화 (47/184)

047화 공중으로 신형을 솟구친 바로 그 순간.

분기탱천한 파륵미찰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사나운 검기가 막 청운과 사라유리의 몸을 두 동강 내기 바로 직전.

청운의 무영검에서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번쩍하며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놀라운 광경이 장내에 펼쳐졌다.

청운이 발출한 자황색의 검기가 파륵미찰의 검기는 무론 검을 들고 있는 그의 팔까지 그대로 잘라 버렸다.

졸지에 자신의 검과 팔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파륵미찰은 잘려진 오른팔에 피를 철철 흘리며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비명을 고래고래 내질렀다.

마라성의 무리가 모여 있는 곳에서는 비단폭을 찢는 비명과 절망이 그리고 유라궁의 궁도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경탄의 탄성과 감탄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두 쪽 편 다 너무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다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양쪽 편 다 청운의 놀라운 무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파륵미찰이 다급하게 자신의 오른팔을 지혈하고 무리 뒤로 몸을 숨기자, 청운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화산이검이 자신의 검을 빼 들고 싸움판의 전면에 나섰다.

화산이검의 표정은 아주 심각했다.

그들 역시 청운의 무위에 엄청나게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화산이검은 지금 당장 자신들이 싸움판에 나서지 않으면 자신들 무리의 기세가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꺾여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대단히 신중한 자세를 취하며 청운의 주변을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그들이 청운의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하자, 그들의 발밑에 가만히 쌓여 있던 눈들도 회오리바람을 만난 먼지처럼 허공으로 치솟아 눈팽이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조금 전 유라궁주를 공격했던 수법과는 전혀 다른 검법이었다.

청운을 중심으로 빙빙 돌던 그들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급기야는 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허공에 두 자루의 은빛 검만 번쩍거렸다.

한순간, 마—라—합—벽! 이라는 외침이 화산이검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두 자루의 은빛 검이 하나로 합쳐지더니 커다란 한줄기 은광이 되어 청운에게 폭사되었다.

그와 동시에 청운의 무영검에서도 어마어마한 자황색의 검기가 운해처럼 쏟아져 나와 화산이검을 휩쓸어 갔다.

청운의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와 화산이검의 은광이 장내의 한복판에서 충돌하자 천지를 진동하는 엄청난 폭음이 장내의 허공을 찢어발겼다.

연이어 으악—으—아—악, 하는 처절한 두 마디 비명이 그 폭음에 뒤따랐다.

폭음과 함께 허공으로 낭자하게 치솟아 올랐던 눈덩이들이 후드득후드득 땅바닥에 모두 떨어지고 나자 장내의 광경이 선명히 드러났다.

화산이검 중 하나는 목이 댕강 잘린 채 목과 몸이 따로 분리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아예 온몸이 걸레처럼 헤진 채 나무토막처럼 눈밭에 나자빠져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꾸역꾸역 삐져나오는 붉은 피만이 자신이 태어난 몸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한동안 그들의 식어 가는 몸을 가만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단 일 초식의 교환으로 화산이검은 절명해 버렸다.

반면에 청운은 피를 본 짐승처럼 눈빛이 벌겋게 충혈된 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어떤 미증유의 광기에 휩싸여 버렸다.

그 광기의 힘은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 광기의 폭발은 강자에 의해 약자가 핍박당하는 걸 평소에도 잘 참지 못하던 청운의 선천적인 성정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파륵미찰의 난폭한 야인 무리가 유라궁의 여리고 약한 여자들을 못살게 구는 장면을 보자 안 그래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청운이 더 미쳐 버린 것 같았다.

청운은 평생을 끊임없이 배움과 공부로 자신을 다스려왔다.

그렇게 갈고 닦은 수양과 인내심으로 청운은 어지간한 일에는 전혀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독한 기억상실로 이성이 마비되자 청운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폭력성의 봉인이 그만 찢어져 버린 것이다.

당연하게도 누적된 분노가 분출된 청운의 공격성은 그 분노의 수위만큼이나 더 사나워지고 더 난폭해져 있었다.

광기가 폭주에 비례하여 무위 또한 그만큼 격상된 상태였다.

광기의 폭주가 끌어올린 청운이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는 거의 일 장 이상이나 일렁거렸다.

청운은 무영검을 힘껏 꼬나쥔 채 파륵미찰과 마라성의 무리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는 청운의 야차 같은 모습을 본 마라성의 무리가 다리를 후들거리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들 무리 중의 누군가가 꽥 소리를 내질렀다.

“빨리 이곳에서 도망쳐라! 저놈은 인간이 아니라 사신의 현신이다!”

그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파륵미찰의 무리 모두가 재빨리 장내에서 몸을 빼내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파륵미찰 역시 청운의 눈치를 세심하게 살피며 달아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달아나는 적들을 응시하던 청운의 눈빛이 더욱 사납고 난폭하게 이글거리며 불타올랐다.

청운은 달아나는 무리를 마치 상처 입은 멧돼지를 사냥하는 대호처럼 사납게 뒤쫓았다.

청운은 닥치는 대로 마라성의 무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무리 중에서 무공이 뒤처지는 자들이 먼저 하나둘 한 많은 세상과 하직을 했다.

자신들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던 화산이검을 단 일 초식으로 죽여 버리는 청운의 무위에 대경실색한 파륵미찰은 자신의 부하들이 죽거나 말거나 자신부터 살기 위해 가장 먼저 달아났다.

그의 모습은 이미 하얀 눈 위의 아득한 소실점이 되어 있었다.

파륵미찰에겐 지금 염치도 의리도 없었다.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청운은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는 파륵미찰 또한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하는 사냥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최대한의 신법을 전개해 추적했다.

서너 개의 산허리를 바람처럼 돌자 드디어 자신이 오늘 반드시 처리해야 사냥감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그 짐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백여 장 앞에 있는 돌로 지은 성을 향해 곧장 돌진하고 있었다.

그 성은 담장 전체가 회색의 돌로 둘러쳐져 있었다.

파륵미찰이 부리나케 성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본 망루의 한 병사가 성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성주님이시다! 빨리 문을 열어라!”

성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파륵미찰은 쥐가 제 구멍에 숨어 들어가듯 성문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가 버렸다.

자신의 바로 눈앞에서 뒤쫓던 사냥감이 사라지자 청운의 광기는 더욱 폭주하기 시작했다.

청운은 성문에 대고 분노의 장력을 퍼부었댔다.

하지만 단단한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성문은 청운의 장력에 쿵, 쿵, 쿵, 쿵 세차게 울리기만 할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청운은 주변을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청운은 아예 성벽을 넘어가기로 작정했다.

청운은 땅을 박차며 한 마리 매처럼 그대로 몸을 허공에 솟구쳤다.

그러자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청운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운은 호신강기로 전신을 보호한 채 그대로 성벽을 넘어 버렸다.

수백 명의 마라성 병사들이 쏜 화살은 청운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내력도 없이 무작정 쏘아대는 병사들의 화살은 청운의 호신강기에 가로막혀 곧바로 땅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청운의 엄청난 무위에 대경실색한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활과 검을 내팽개치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병사들의 등 뒤에서 파륵미찰이 발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하느냐. 이 병X 머저리 같은 놈들아! 빨리 저 짐승 같은 놈을 죽여라. 네놈들이 도망가면 내가 네놈들의 마누라와 자식을 먼저 쳐 죽이고 말겠다.”

악귀 같은 파륵미찰의 협박을 못 이긴 병사 중 백여 명이 되돌아와 청운을 몇 겹으로 포위했다.

하지만 광기에 휩싸인 청운이 검을 한 번 휘두르자 수십 명이 한꺼번에 목과 허리가 절단되어 즉사하고 말았다.

그 광경을 눈앞에서 목도한 마라성의 병사들은 파륵미찰의 협박마저 무시한 채 자신의 무기를 내팽개친 채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뿔뿔이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청운의 엄청난 무위에 극도의 공포를 집어먹은 병사들마저 모두 도망쳐 버리자.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란 말이야!”

혼비백산한 파륵미찰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며 자신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청운을 향해 발악을 하며 아무렇게나 자신의 검을 마구 휘둘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운이 자신의 검을 사선으로 한 번 쭉 긋자 으—아—악, 하는 단말마의 비명만을 남긴 채 파륵미찰의 몸은 순식간에 세로로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자신의 몸뚱이가 두 조각으로 갈라지기 직전 파륵미찰은 자신에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자를 너무 밝히더니, 결국 내가 여자 때문에 이렇게 죽는구나.”

파륵미찰을 일 검에 쳐죽인 청운이 성벽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가자 조금 전 도망쳤던 병사들과 여자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한데 모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

청운이 서서히 다가오자 그들은 이마를 땅바닥에 찧다시피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복걸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청운이 허공으로 눈길을 돌리고는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너희들은 여리고 약한 자들이로구나. 너희끼리 싸우지 말고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이만 가겠다.”

마라성의 군웅들에게 말을 하던 도중에 청운은 자신의 등 뒤로 쏘아져 오는 미세한 살기를 느꼈다.

청운이 고개를 휙 돌리고는 하얀 눈만 가득한 설산의 중턱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보통 사람의 안력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 아득한 거리의 설산 중턱에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청운의 눈에 포착되었다.

청운은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는 그 물체를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뭔가가 화살처럼 빠르게 자신에게 달려오자 처음에는 저게 뭐지 하고 멀뚱히 쳐다보던 그 물체도 어떤 위협을 감지했는지 재빠르게 산봉우리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꿈틀거리던 물체는 바로 설산에만 산다는 설표였다.

설표가 자신을 보고 달아나자 청운은 더욱 광기에 휩싸였다.

청운은 전력을 다해 설표를 뒤쫓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청운의 기세를 본 설표는 점점 더 높고 가파른 산정을 향해 무작정 도망쳤다.

설표도 빨랐지만 청운은 더 빨랐다.

청운이 점차 자신을 따라잡자 공포와 두려움에 거의 미쳐 버린 설표는 점점 더 험하고 비탈진 절벽 쪽으로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목표물의 형태가 드디어 육안에 포착되자 청운의 광기도 거의 극점에 다다른 듯했다.

곧 목표물을 도륙할 수 있다는 생각에 청운은 자신의 신체가 버티지 못할 정도로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드디어 설표가 백여 장 앞에 보이기 시작하자 청운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설표를 향해 바람처럼 쇄도했다.

하지만 설표 또한 설산의 제왕이었다.

설표는 인간이 가장 접근하기 힘든 절벽만을 골라 마치 곡예를 하듯 길이라곤 전혀 없는 눈 덮인 절벽의 가장자리를 미끄러지고 건너뛰며 달아났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목표물에 분노가 치밀 대로 치민 청운은 지금 자신이 위치한 주변의 지형을 완전히 도외시한 채 목표물만을 집착하며 뒤쫓았다.

마침내 자신이 추적하던 목표물이 자신의 공격권 안에 들어오자, 청운은 자신의 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밑바닥의 잠력까지 끌어올려 멸환의 초식을 전개했다.

청운이 설표를 도륙하기 위해 공중으로 신형을 솟구친 바로 그 순간.

청운은 단전과 모든 혈맥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주화입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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