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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41화 (41/184)

041화 모공마다 섬뜩한 소름을 돋아나는

청운의 비꼬는 말을 들은 그자의 눈빛에 일렁이던 붉은 기가 더욱 짙어졌다.

그 눈빛은 그자의 백납 같은 낯빛과 대조되어 그자의 얼굴을 더더욱 기괴하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참 바보들이 많지. 그중에서도 배고픈데 차려 준 진수성찬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바보가 세상 최고의 바보지. 세상은 어차피 약육강식의 전쟁터.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지배, 착취해 잘 먹고 잘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그자는 방금 땅속의 관을 부수고 기어 올라온 것 같은 사이한 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말을 뱉었다.

“그게 세상의 진정한 질서야. 그 엄연한 질서에 순응을 거부하고 반기를 드는 건 미쳐도 아주 미친 짓이지. 현명한 사람은 그 질서에 저항하기보다는 그 질서를 자신을 위해 이용할 줄 알지. 이 세상에 진정한 정의란 있을 수 없어.”

“…….”

“모든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다 다르지. 그건 네가 새로운 세상을 재창조해도 마찬가지야. 새로운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다른 새로운 질서가 세상을 주도하면서 잠시 정의롭게 보이기도 하겠지.”

“그… 그렇지 않…….”

“하지만 그 질서도 얼마 가지 않아 바로 그 새로운 세상을 만든 자들에 의해 똑같이 썩고 부패할 수밖에는 없지. 왜냐하면 그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는 주체도 당연히 불완전한 인간일 수밖에 없거든. 그들 역시도 세월이 지날수록 탐욕과 욕망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지.”

그는 말을 계속해서 이어 갔다.

“그게 인간의 본질이지. 인간의 본성이 결국 그럴 수밖에 없는데 어찌 세상의 질서가 깊은 산속의 샘물에서 흘러나오는 물처럼 계속 맑은 물만 솟아날 수 있겠나.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세상도 그 세상에 작동하는 질서도 불완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저자는 힘과 권력에 미친 자 같았다.

아니, 어쩌면 힘과 권력에 쏠리는 세상의 이목을 황홀하게 즐기는 자였다.

힘과 권력의 본성은 가능하면 더 크고 더 많이 움켜쥐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누릴 힘과 권력만을 생각했지, 그 권력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부작용과 폐해에 대한 어떤 고려도 없다.

그것은 세상과 세상의 질서에 대한 엄청난 착각이고 환상일 뿐이다.

권력의 강제와 핍박이 커질수록 반기와 저항도 그만큼 커진다는 걸 저자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권력과 저항은 쌍둥이다.

힘과 권력이 태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 반기와 저항도 태어난다.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듯이,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청운은 적의인의 말을 쇠귀에 경을 읽듯 듣고는 곧바로 대꾸했다.

“그건 괴변이요. 당신이 그런 가치관을 가진 건 평생 세상의 한쪽 면만을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이오. 세상은 하나의 바퀴로는 절대 굴러가지 않소.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세상이 불완전하다는 당신의 생각은 어느 정도 맞는 구석도 있소.”

순간 공기가 고요해졌다.

“하지만 세상과 사람에 대한 당신의 그런 편협하고 좁은 인식이 바로 당신의 한계요. 역사에 길이 남을 큰 성취를 이룬 무수한 성인들과 현자들의 말씀은 바로 당신이 방금 말한 그런 불완전한 세상과 사람을 바꾸고 정화하기 위해 애쓰다가 탄생한 것이지요.

“…….”

“세상의 수많은 양서들을 보시오. 그 양서들 속의 성인들과 현자들은 이 불완전한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만들어 가야 하는지 분명히 말하고 있소.”

청운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이 불완전한 세상과 사람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계도하고 그래서 모두가 다 같이 좀 더 인간적으로 잘 살 수 있는 세상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바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 또한 진실이요.”

청운의 말을 들은 자의 표정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지금도 저 들과 산에는 새벽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미약한 자신의 힘으로 자신과 가족 그리고 세상을 먹여 살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황하의 모래알만큼이나 부지기수요.”

“…….”

“당신 역시 그들의 피나는 노동으로 만든 밥과 고기를 먹고 똥을 싸고 있소. 단지 그들이 힘이 없다고 그들을 지배하고 착취해서 나만 더 잘 사는 세상을 나는 결코 바라지 않소.”

청운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나는 힘없고 착한 사람들과 같이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오.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 강호는 바로 그런 것이오. 권력 없고 힘없는 민초들은 자신이 조금 힘이 더 있다고 약자를 인정사정없이 짓밟는 바로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늘 궁핍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소.”

“훗.”

눈앞의 남자는 순간 비소를 흘렸다.

“그리고 당신 같은 위정자들이 아무리 억압하고 핍박을 해도 민초들은 야생초 같은 강인하고 끈질기고 비장하기까지 한 생명력으로 이 땅에 대대로 새 생명을 키워 내며 이 정도나마 간신히 세상을 지탱시켜 왔소. 그게 아름답지 않으면 세상천지에 뭐가 아름다운 것이오.”

“…….”

“그래서 나는 그들의 피땀을 배반할 수 없소. 그들이 바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내 아버지, 내 어머니이지요. 내 이웃들이오. 나는 당신네들이 던져 주는 부귀영화보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 같은 그들의 선량한 삶이 더 소중하오.”

시체 같은 얼굴의 적의인이 붉은 뱀 같은 눈동자를 사악하게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대단하구나. 대단해. 그 나이에 무공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인식과 언변도 탁월하구나. 나는 인재를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나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오른 손을 서서히 허공으로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런 자는 고금에 없는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어도 나는 살려 두지 않는다. 그런 자는 내가 꿈꾸는 세상에 두고두고 방해물이 되기가 쉽지. 나와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자는 나와 똑같은 세상을 살 이유가 없다. 잘 가거라.”

그자가 들어 올린 손이 괴이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마술 같은 광경이었다.

그자가 들어 올린 손 주변의 대기와 경물이 온통 휘어지더니.

손가락마다 흑발을 산발한 채 입가에 피를 철철 흘리는 붉디붉은 나체의 혈미인상이 하나씩 그자의 손가락 끝에서 마치 사이하고 요사한 꽃이 피듯 피어났다.

그 혈미인상은 그자가 공력을 끌어올릴 때마다 점점 자라나더니 마침내 실제 사람만큼이나 커졌다.

그 광경은 그것을 마주하고 있는 청운의 정신을 혼미하고 아득하게 만들었다.

그 괴이한 장면은 모공이란 모공마다 섬뜩한 소름을 돋아나게 했다.

또한 그것을 보는 사람의 가슴 한구석에 끝 모를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내게 했다.

청운은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치우전륜공으로 간신히 진정시켰다.

청운은 긴장하고 또 긴장했다.

강호에 나와 이렇게 긴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검을 쥐고 있는 청운의 손에 땀이 송골송골 배어났다.

그렇다고 싸우기도 전에 상대에게 두려움을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상대와 싸우기도 전에 미리 지는 것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서서히 자신의 검을 들어올렸다.

치우전륜결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청운의 무영검검에서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이 장 가까이 일렁거렸다.

청운은 며칠 전 깨닫기는 했지만, 아직 채 삼성에도 이르지 못한 ‘멸환’의 초식을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마치 지옥의 무저갱에서 방금 땅으로 올라온 괴기스러운 그자의 모습 뒤에서 조금 전 대전의 원탁에서 그자와 대화를 나누던 다섯 명의 중년인이 대기를 가르는 파공성을 울렸다.

곧이어 그자가 대치한 곳으로 날아오는 것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청운은 낭패도 이런 낭패가 있을까 싶었다.

이 자 하나만 해도 감당할 수 없는데 무위를 측정할 수 없는 자들이 다섯이나 더 들이닥치다니.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청운은 여기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내 천녀혈수에 죽는 걸 영광으로 알아라. 자! 그만 가거라.”

회칠한 시체 얼굴의 적의인이 청운을 향해 자신의 깡마른 손을 벼락같이 떨쳐냈다.

고—오—오—오—오.

산발한 흑발에 붉은 이빨까지 길게 빼문 혐오스러운 혈미인이 그자의 손을 떠나 전광석화처럼 청운의 전신요혈을 향해 쏘아져 왔다.

전혀 부상을 입지 않은 온전한 몸이어도 저자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 같은데.

어깨에 심한 상처까지 입은 상태에서 저자의 장력을 맞받아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청운은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전력을 다해 멸환—초식을 전개했다.

콰—콰—콰—아—앙.

청운의 검기와 그자의 장력이 서로 대치한 중앙에서 맞부딪치자 천지가 진동하는 엄청난 굉음이 몇 번이나 연달아 장내에 울려 퍼졌다.

장력과 검기의 매서운 소용돌이에 휩쓸려 사방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날아오르고 주변의 천길 깎아지른 절벽이 금방이라도 까마득한 계곡으로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자가 몸을 휘청거리며 뒤로 두어 발 물러난 반면.

청운은 입에서 선혈을 화살처럼 내뿜으며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하지만 대결의 결과에 더 놀란 사람은 청운이 아니라 바로 그자였다.

그자는 너무나 놀라 이 사태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붉은 눈동자에 의혹을 가득 내비치며 청운을 쳐다봤다.

그자의 일렁이는 붉은 흉광에 일순 불신의 기색이 가득 피어올랐다.

그리고 읊조리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 칠성의 천녀혈수를 받아내고도 죽지 않는 자가 중원의 후기지수 중에 있었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거기다 금강불괴에 가까운 내 몸에 상흔까지 내다니. 도대체 네 놈의 무공이 어디서 연유한 것이냐.”

“…….”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이구나. 몇 년 만 더 지나면 나조차도 네 놈의 무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을 할 수가 없겠구나. 괴이하다. 괴이해. 절대로 살려둘 수 없는 놈이구나. 이런 자를 살려두었다가는 앞으로 내가 무슨 곤경에 처할지 도저히 장담할 수가 없다.”

그자가 다시 손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그자의 손가락에서 또다시 스멀스멀 나체의 혈미인이 태어났다.

그자의 손가락 끝에서 이번에 나타난 혈미인은 핏빛도 이전 혈미인보다 더 짙었으며 크기도 두 배로 컸다.

방금 전 일 장의 교환으로 청운은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

그자는 청운의 적수가 아니었다.

청운은 자신이 ‘멸환’을 다 완성하기 전에는 절대 저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계란으로 아무리 바위를 때린들 바위를 더럽힐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로 바위를 깰 수는 없다.

청운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대결에서 몸을 빼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죽음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어린 영아가 어떤 상황이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더 이상 그 장면을 보지 않기 위해 자기 눈만 감아 버리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모든 것은 내가 살아 있어야 가능하다.

청운은 굳이 죽더라도 나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 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죽는다면, 나와 얽혀 있는 수많은 사람의 억울함을 어느 누구도 풀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이런 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내심 자신의 검기로 저자의 장력을 맞받아치는 척하다가 그 반발력을 이용해 재빨리 달아날 궁리를 했다.

이미 어디로 몸을 뺄지 방향도 정해 놓았다.

문제는 자신이 최소한의 손해만 보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달아날 힘이라도 간직할 수 있다.

그것도 지금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는 다섯 명의 중년인이 장내에 당도하기 전에 몸을 빼내야만 한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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