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40화 (40/184)

040화 첩첩이 길 없는 산만 이어지고 (2)

청운은 장원의 입구가 정면으로 보이는 커다란 바위틈에 몸을 깊숙이 숨기고 장원을 주시했다.

장원의 솟을대문 양쪽에 [천의 도로 봉우리를 이룬다.]라는 황금빛 깃발이 수십 개나 걸려 있었다.

또한 솟을대문 정면에는 커다랗게 [천도봉]이라는 글자가 금색으로 쓰인 편액이 걸려 있었다.

청운은 아! 하고 스스로 놀란 듯 긴 숨을 뱉었다.

천도봉은 천산의 산봉우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천의 도를 이룬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상상의 봉우리였다.

청운은 ‘봉’이라는 말의 선입견 때문에 자신이 완전히 허를 찔렸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한순간 자신을 자책하는 헛웃음을 지었다.

청운은 빨리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는 야음을 틈타 몰래 장원에 침투해서 정탐해 볼 생각이었다.

청운은 날이 완전히 깜깜해지자 마치 어둠 속의 또 다른 어둠처럼 장원의 지붕으로 날아갔다.

하오문의 비급에서 익힌 은잠술을 이용해 대전 바로 위의 지붕에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기와를 몆 장 들어낸 청운은 석회 벽의 갈라진 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상석이 따로 없는 커다란 원형의 탁자에 가벼운 술상과 다과가 차려져 있었다.

다섯 명의 중년인과 흑의 미부가 한 명 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앙탁자에서 조금 떨어진 먼발치에는 눈빛이 형형한 수십 명의 검수들이 탁자에 앉은 육 인을 호위하듯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마치 그 자리에 붙박인 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청운은 최대한 청력을 돋우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 시도했다.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들을 만했다.

금색 장포를 걸친 중년인이 원탁에 앉은 사람들을 한 번 쭉 둘러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뗐다.

“달포 전에 우리 표국에 특급 정보를 보관하는 비고에 어떤 자가 침입한 흔적을 발견했소. 그자가 절대 보지 말아야 할 정보를 본 것 같소. 그 정보가 암호로 되어 있어 그자가 다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특수하게 제작한 천리향을 발라 놓아 그자의 정체는 밝혀냈소.”

금색 장포를 걸친 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자는 요즈음 강호에 제법 이름을 떨치고 있다는 무위검 강청운으로 밝혀졌소. <흑림>의 살수들에게 제거를 부탁했는데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소. 그자의 무위가 생각보다 고강해 조금 골치를 썩이게 생겼소. 하지만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 놓았으니 곧 해결될 것이요.”

말을 꺼낸 이는 대륙표국과 관련된 사람 같았다.

“아, 나도 그 자를 좀 알지요. 그자가 바로 내가 독아방을 통해 관리를 맡겼던 하월산 계곡의 금광과 선금장 일을 망친 놈이오. 게다가 독아방에 수금하러 갔던 수금책까지 미행해서 죽인 놈이오. 그래서 내가 거금을 들여 ‘마객’에게 청부를 넣었는데 실패하고 말았소.”

“그 놈을 알고 있소?”

“알다마다, 절대 쉽게 볼 놈이 아니오. 그자가 아마 하남표국의 서기였다지요. 그런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그런 고수가 되다니 진정 놀라울 뿐이오.”

은색 장삼을 걸친 중년인이 이맛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번에는 그 말을 듣고 있던 주황색 옷을 입은 맞은편 중년이 말을 받았다.

“나도 그놈 때문에 낭패를 한 번 본 적이 있소. 그놈은 하오문의 호법사자이기도 하오. 내가 섬서의 밤을 지배하고 있는 흑수방과 연계해 제법 짭짤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하오문 섬서분타에서 그 정보를 무림맹에 넘기는 바람에 애를 먹었소.”

“…….”

“다행이 흑수방에서도 그 일을 직접 하지 않고 그 지역의 건달패인 흑오파를 뒤에서 조종해 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흑오파가 궤멸되는 것으로 다행히 일은 마무리되었소.”

“그렇군.”

“그래도 분을 참지 못한 흑수방주가 하오문 섬서분타를 궤멸시키기 위해 빈객으로 와 있던 흑백쌍마를 보냈는데 마침 거기에 와 있던 무위검 강청운이란 자에게 거의 반X신이 되고 말았소. 그자가 자꾸 우리 일에 걸리적거리니 빠른 시일 내에 확실히 제거해야만 할 것 같소.”

“맞는 말이요. 우리의 대업에 방해가 되는 자는 비록 그자가 왕족이라고 해도 살려 두어서는 안 되오.”

이번에는 은색장심을 입은 중년인의 바로 옆에 앉은 적의를 걸친 중년인이 말했다.

그는 마치 표백을 한 것처럼 얼굴이 희고 수염도 없었다.

귀신처럼 백납 같은 얼굴에 검붉은 눈동자가 희번덕거릴 때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서늘한 오싹함이 저절로 묻어났다.

그자가 두 사람의 말을 곧바로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천망의 대업이 빨리 이루어져야 하오. 그래야 대대손손 우리 세상을 누릴 수 있을 것이오. 각자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이행하는데 한 치의 차질이 없어야 할 것이요. 나는 이미 관과 황궁 쪽에 천망을 대부분 구축해 놓았소.”

‘천망의 대업이라.’

청운은 더욱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이제 관과 황궁에서 내 의도에 어깃장을 놓거나 토를 달면 그자가 비록 황족이라도 역적으로도 만들어버릴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놓았소. 한시바삐, 무림맹과 구대문파, 오대세가 그리고 마련과 사련에도 단단한 천망이 구축되어야 할 것이오.”

“…….”

“황금과 여자를 최대한 활용하시오. 제아무리 성인군자라 해도 황금과 여자에게는 약하지요. 필요하면 남창이라도… 하다 하다 안 되는 자는 결국 제거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지만…….”

비록 형식적으로는 모두의 지위가 수평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방금 말한 저자가 말하는 품새로 보아 그래도 조금 발언권이 센 것 같았다.

저 모임을 사실상 주도하는 자는 바로 저 적의를 입은 자 같았다.

청운은 天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엿본 것 같아 안개 속 같은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 바람에 청운이 잠시 방심하고 말았다.

다행히 뭔가를 알았다는 기분에 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후, 하고 숨을 살짝 크게 내쉬고 말았다.

“어떤 쥐새끼가 겁도 없이 이곳까지 숨어들었단 말이냐.”

적의를 입고 있던 중년인의 눈빛이 갑자기 불에 달군 칼처럼 매섭게 변하더니 자신의 앞에 타자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러자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젓가락들이 일제히 청운이 은신하고 있는 곳을 향해 벼락같이 날아갔다.

그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청운이 피한다고 피했지만 왼쪽 어깨와 허벅지에 두 개의 젓가락이 적중되고 말았다.

순간의 방심이 엄청난 화를 부르고 말았다.

청운은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젓가락이 자신의 왼쪽 어깨와 허벅지를 파고드는 순간.

지붕을 뚫고 솟구쳐 자신이 들어왔던 동굴의 입구를 향해 내달았다.

청운은 여기 모여 있는 자들의 무공 수위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호랑이 굴이나 다름없는 여기서 싸워 봤자 자신에게 전혀 득이 될 게 없다는 생각에 무조건 달아났다.

달아나는 청운의 등 뒤에서 아까 청운에게 젓가락을 던진 적의인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끝까지 쫓아라. 그놈은 나의 ‘회회비도술’에 적중되어 갈수록 상처가 커지고 피를 많이 흘릴 것이다.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놈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청운이 동굴 입구에 도착하자 언제 그곳에 와 있었는지 흑의를 입은 수십 명의 사내들이 벌써 검을 빼들고 청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속전속결.

청운은 최대한 공력을 끌어올려 앞에 있는 자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갔다.

청운의 검에서 발출된 일장에 가까운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사내들을 휩쓸 때마다 흑의의 사내들이 썩은 짚단처럼 픽, 픽, 픽 쓰러졌다.

청운의 엄청난 무위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 자들이 우왕좌왕하며 한순간 그들이 구축한 포위만 이곳저곳에 틈이 생겼다.

그 찰나의 순간, 청운은 신법을 최대한 전개해 동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청운은 죽을힘을 다해 동굴 속을 달리고 달렸다.

금세 밝은 빛이 백여 장 밖에서 비쳤다.

입구였다.

청운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동굴 밖을 뛰쳐나오자 난생처음 접하는 강력한 장력이 청운의 전신을 향해 벼락처럼 쏘아져 왔다.

대경실색한 청운이 치우전륜결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한꺼번에 쾌—타—절—변—회, 다섯 초식이나 전개해 간신히 막았다.

하지만 청운은 장력의 힘을 다 해소시키지 못해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청운에게 장력을 퍼부은 자는 아까의 모임을 주도하던 적의를 입은 그자였다.

가까이서 그자의 얼굴을 보니 더 소름이 끼치고 괴기스럽게 보였다.

잔뜩 회칠을 한 것처럼 흰 얼굴에 은은한 붉은 빛을 띠며 희번덕거리는 눈동자.

꿈속에서조차 마주칠까 두려운 낯짝이었다.

그자가 재빨리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다시 장력을 벼락처럼 발출했다.

그자의 장력은 너무 빨라 청운이 대응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자의 강맹한 장력 속에 깃들어 있는 마치 바늘로 온몸을 찌르는 듯한 실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기(氣)였다.

그 바늘 같은 기는 마치 불에 달군 철사처럼 청운이 최대한 끌어올린 치우천결의 호신강기를 금방이라도 꿰뚫어 버릴 듯이 맹렬한 기세로 끊임없이 청운의 전신요혈을 파고들었다.

그 이상한 기는 그자가 장력을 발출할 때마다 맹독을 지닌 붉은 독사의 이빨처럼 번쩍거렸다.

청운의 검기가 그자의 장력과 부닥칠 때마다 청운은 마치 자신의 검기가 쇳조각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더욱 힘든 것은 검기로 그자의 장력을 대부분 해소를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력의 여파가 마치 온몸의 살을 저미는 통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그자의 장력이 스친 자리마다 청운의 옷과 피부가 예리한 칼날에 베인 것처럼 찢어지고 살점이 도려내졌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호에 출도한 후, 우연히 여러 번의 기연을 통해 나름 자신의 무공 성취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졌던 청운이었지만.

그는 이 시체 얼굴을 한 자의 이상한 무공과 몇 번 손을 섞고 나서는 자신이 완전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새삼 느꼈다.

청운은 천재일우의 기연은 자신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자와 몇 합을 겨룬 청운은 지금의 자신은 절대 그자의 적수가 아님을 알아챘다.

그때 그자가 귀신이 현현한 것 같은 표정에 괴이한 괴소를 흘리며 청운에게 말했다.

“놀라운 일이구나. 놀라운 일이야. 내 ‘적린철인’을 이 정도까지 견디는 자가 강호에 존재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아직 호패에 먹물도 안 마른 귀때기가 시퍼런 애송이가. 좋다. 내가 네 재능을 높이 사서 한 가지 제안을 하마. 내 밑에서 일해라.”

청운은 자신이 들은 것이 맞는지 순간 의심했다.

“그러면 네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부귀영화를 네게 주마. 그리고 지금의 네 실력이면 내가 삼 년 안에 나를 제외한 천하제일고수로 만들어 줄 수 있다. 내가 장담한다.”

“…….”

“나에게는 네가 섭취하기만 하면 삽시간에 내공을 일취월장시킬 수 있는 세상의 온갖 기물들이 수두룩하다. 어때,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하지만 청운은 그자를 똑바로 노려보며 입가에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채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내가 보기에 당신들 무리는 절대 선한 사람들이 아니오. 달리 말해 당신 패거리들에게서 어마어마한 음모의 악취가 코를 찌르고 있소. 그것의 구체적 실체가 무엇인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오히려 나는 당신들의 그 악취를 없애는 일을 하겠소.”

청운은 당당하게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절대 그런 시궁창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소. 나는 내 길만을 가겠소. 내 강호를 살겠소. 감당할 수 없는 부귀영화는 당신이나 감당하시오. 나는 그런 부귀영화가 필요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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