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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39화 (39/184)

039화 첩첩이 길 없는 산만 이어지고 (1)

도저한 고통과 통증 때문에 청운은 몇 번이나 그만둘까 생각했다.

하지만 청운은 이 정도 고통도 이기지 못하면 자신이 강호에서 하려고 하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치우천결과 천륜공을 운용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청운의 태생적 성격은 포기를 몰랐다.

그렇게 두어 시진이 지났을까?

처음에는 이마에 진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 듯 힘들어하던 청운의 표정이 점차 안정되어 갔다.

만면에 평온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청운은 거의 삼매에 빠져 오히려 그 고통 즐기는 표정이었다.

수십 번의 대주천을 거듭하자, 드디어 치우천결과 전륜공은 원래 한 샘에서 솟아난 물처럼 서로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지금 청운이 자기의 모습을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청운의 몸을 주렴처럼 감싼 자색의 성운이 은은한 서기를 내뿜으며 그의 전신을 서서히 돌고 있었다.

그 성운이 내뿜는 자황색 서기에 의해 청운의 몸은 침대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결가부좌를 튼 청운의 몸은 정확히 침대와 천장 중간쯤에 떠올라 바닥에 내려올 줄을 몰랐다.

청운은 치우천결과 전륜공을 동시에 운용하다 자신도 모르게 부공삼매(浮空三昧)에 든 것이다.

청운의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투명한 자황색의 성운이 층층이 겹쳐 있었다.

달빛이 거의 사그라진 새벽까지 청운은 그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던 한순간 청운의 몸을 감싸고 있던 자황색의 성운과 서기가 모두 청운의 입과 코로 빨려 들어갔다.

곧이어 청운의 몸이 원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서히 침대로 내려앉았다.

청운이 눈을 번쩍 떴다.

예전에도 깊었던 청운의 눈빛은 심연처럼 더 깊어지고 은은한 서기까지 내비쳤다.

이제 ‘치우천결’이 아니라 ‘치우전륜결’이라 명명해야겠다고 청운은 혼잣말을 읇조렸다.

내공이 급격히 높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온몸의 혈과 맥 그리고 혈관이 몇 곱절이나 튼튼해진 걸 청운은 실감했다.

그리고 치우천결의 진기가 전륜공이 뚫어낸 길을 따라 세맥까지 몇 주천을 돌고 나자 과거에는 단전과 혈만 거치던 내공의 힘이 이제는 온몸의 세맥까지 온전히 가 닿았다.

청운은 전륜공의 기연에 의해 과거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세맥의 감각까지 온전히 느끼게 되었다.

청운은 전륜공에 의해 혈과 맥이 몇 곱절 강해진 것은 물론 이제는 세맥의 힘까지 검기에 실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청운은 뜻하지 않은 기연에 기쁘기 그지없었다.

전륜공 그 자체는 절세의 내공도 검초도 아니었다.

한순간에 내공을 급격하게 상승시켜 주는 절세의 심법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무공과 연계될 때 그 온전한 묘용을 발휘하는 천하에 다시없는 심법이었다.

청운의 얼굴에 희열이 넘쳐흘렀다.

자신이 생각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이제 멸환겁은 몰라도 멸환은 어느 정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혈과 맥이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생성되어 멸환을 펼치려고 하면 느껴지던 통증을 이제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운은 당장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잠시 참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마음껏 펼쳐보겠다고 결심하면서.

* * *

청운은 [만역만변]도 품속에서 끄집어내어 살펴보았다.

그것의 내용 대부분은 기관과 기진에 관한 것에 할애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 또한 자신의 강호행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강호는 워낙 암계와 귀계가 난무한 곳이기에 하나라도 더 알아서 나쁠 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은 그것보다 직접적인 싸움과 관련된 무공이 더 시급했다.

청운은 기관과 진식에 관련된 부분을 대충 외운 후 나중에 한가할 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마지막 몇 장은 내공을 이용해 얼굴과 몸의 근육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신묘막측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

청운은 이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 의아해하며 진기를 조절해 보았다.

정말 되었다.

‘이런 신기한 것이 있을까.’

청운의 얼굴이 다시 한 번 희열에 들떴다.

정통 무공이 아닌 잡기에 속하는 무공이었지만 틀림없이 어떤 순간 소중히 쓰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만역만변]은 대단한 묘용도 있었지만 치명적 단점도 있었다.

단점은 내공의 소모가 워낙 막심해서 함부로 펼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무림의 일이란 어느 한순간도 위기가 아닐 때가 없는데 함부로 내공을 소비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정말로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만역만변]을 함부로 펼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운은 황윤 노인과의 인연도 신기했고 황궁의 폐창고에 나뒹굴던 이런 책자가 자신의 손까지 흘러든 것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하늘이 자신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고 이런 거듭된 기연을 자신에게 자꾸 주는지…….

청운은 한편으로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들었다.

청운은 [다라패엽경]과 [만역만변]을 삼매진화로 태워 버리고는 잠을 청했다.

밤새도록 [다라패엽경]과 [만역만변]과 씨름하느라 몸은 몹시 노곤하고 나른했으나 오히려 기분은 날아갈 듯 상쾌했다.

이리저리 뒤척여도 잠이 들지 못했다.

청운은 오늘 잠을 자기에는 아예 틀렸다는 생각에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청운은 산막의 노인이 알려 준 이름 모를 동굴에서 얻은 <무영문>이라는 팔각패와 열쇠꾸러미 그리고 구멍이 세 개뿐인 묵빛의 피리를 몇 번 만지작거리다 아예 밖으로 나왔다.

이건 또 어떤 묘용이 있는 것인지 청운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오늘 우연히 달빛 때문에 [다라패엽경]의 기연을 얻었듯이 언젠가 때가 되면 또 하늘이 알려 주겠지, 중얼거렸다.

청운은 자신이 안달복달한다고 일이 빨리 풀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걸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조금 있으면 곧 날이 샐 것 같았다.

어차피 잠을 청해 봤자 제대로 잘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청운은 전륜공의 심득으로 깨달은 ‘환멸 초식’의 위력을 시험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청운은 묘묘보허의 경신술을 이용해 순식간에 수십 리 산길을 내달렸다.

주변을 둘러보며 ‘멸환’을 펼치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청운은 숲 한가운데에 셋 방향을 집채만 한 바위가 둘러싸고 있는 공터를 발견하고 신형을 멈추고 내려섰다.

청운은 밤새 익혔던 ‘치우전륜결’을 끌어올렸다.

온몸의 모든 세맥에 물밀 듯 진기가 휘돌았다.

청운은 서서히 검집에서 무영검을 뽑아들었다.

정신을 한층 맑게 하는 청아한 검명이 아무도 없는 허공에 울렸다.

무영검의 검명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자신이 오른손에 힘껏 쥐고 있는 무영검에 전신의 진기를 주입했다.

무영검이 돌연 우—우—우—웅 세차게 떨렸다.

무영검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온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거의 이 장이나 일렁거렸다.

확실히 그 모습은 어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무위였다.

청운은 무영검을 비스듬히 허공에 들어올렸다.

청운은 오 장여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집채만 한 바위를 향해 천천히 ‘멸환 초식’을 전개했다.

전륜공의 공능으로 인해 예상대로 혈과 맥이 몰라보게 튼튼해져서 그런지 진기가 전신의 혈과 맥을 통과할 때 미약하게 은은한 통증만 있을 뿐 과거처럼 온몸의 혈관이 찢어질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은 전혀 없었다.

한데 청운의 검기에 강타된 바위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청운은 그렇게 혼잣말을 되뇌며 바위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청운은 바위를 향해 다가가면서 무영검에서 뻗어 나온 검기가 분명히 바위에 작렬하는 느낌이 손에 전해졌다고 생각을 했다.

가까이서 바위를 살펴본 청운은 깜짝 놀랐다.

집채만 한 바위에 마치 물고기의 비늘 같은 실금이 온통 빼곡했다.

청운이 툭 건드리자 마치 모래처럼 주르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아직 완성된 ‘멸환’이 아닌데도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

‘이 초식은 함부로 펼치면 안 되겠구나…….’

혼잣말을 읊조린 청운은 다시 객점을 향해 신법을 전개했다.

갑자기 배가 몹시 고파왔다.

아침을 먹자마자 청운은 객점을 빠져나왔다.

천을령 쪽으로 삼십여 리쯤 가자 과연 점소이의 말대로 어른이 양팔로도 안을 수 없는 아름드리 노송 세 그루가 있었다.

청운은 소나무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곧장 산길로 내달았다.

길을 따라 굽이굽이 펼쳐지는 산세가 대단했다.

한 식경 쯤 더 달리자 이제 아예 희미하던 산길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더 이상 길이 없었다.

첩첩이 길 없는 산만 이어지고 있었다.

청운은 천도봉을 찾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산속의 미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느낀 청운은 일단 근처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갔다.

점소이의 말대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쪽으로 들어왔다면 산이 아무리 깊고 넓어도 분명 어떤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청운은 신법을 최대한으로 전개해 거의 나무와 나무의 우듬지를 밟고 날아가듯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정을 향해 치달았다.

몇 개의 절벽을 타고 올라 드디어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올라섰다.

아직 겨울의 초입인데도 봉우리 근처에는 눈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청운은 자신이 지금 발을 딛고 있는 봉우리가 바로 천도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최대한 안력을 돋우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첩첩의 산과 봉우리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다시 세심하게 살펴보았지만 산과 나무, 바위와 눈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청운은 곰곰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이번에는 계곡 쪽을 한 번 죽 훑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산길은 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기에 청운은 그리 결정했다.

봉우리에서 산양처럼 뛰어내린 청운은 계속 아래로만 달렸다.

얼마나 그렇게 아래로 내려왔을까?

어디선가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씩 아래로 내려올수록 물소리는 점점 크게 들렸다.

드디어 계곡이 보였다.

산이 높은 만큼 계곡도 크고 깊었다.

시퍼런 물이 굽이치는 계곡은 마치 거대한 청룡이 기어가는 것 같았다.

제법 고수인 청운에게도 어떤 낭떠러지와 절벽은 보기에도 아찔했다.

천도봉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산을 너무 오래 탔는지 청운은 갑자기 목이 조금 말랐다.

청운은 계곡으로 내려가기 좋은 길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오십여 장 앞 까마득한 절벽 사이로 간신히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길이 보였다.

그 좁은 소로는 마치 뱀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청운은 머뭇거리지 않고 그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아찔한 절벽을 끼고돌자 이번에는 사람 서너 명이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동굴이 나타났다.

청운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들어갈수록 조금씩 넓어졌다.

동굴의 길이도 제법 길었다.

한참을 걸어가자 백여 장 밖에서 희미한 햇빛이 비쳤다.

청운이 동굴 끝에 다다라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흠칫 놀랐다.

동굴 끝에서 백여 장 아래로 불규칙한 간격의 돌계단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돌계단 끝엔 아래엔 수만 평이나 되는 널따란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 평지 한가운데에 커다란 장원이 있었다.

흑의와 백의를 입은 수십여 명의 보초들이 장원을 빙 둘러싼 채 도열해 있었다.

갖가지 색의 옷을 입은 남녀노소가 이따금 정면의 커다란 솟을대문으로 드나들고 있었다.

그때마다 경계를 서던 보초들이 공손하게 묵례를 했다.

청운은 묘묘보허를 최대한 전개해 한 마리 새처럼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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