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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33화 (33/184)

033화 그건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렇게 되면 천산의 천도봉에 제날짜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고 청운은 걱정했다.

물론 천산에 꼭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면 또 자신의 계획이 또 뒤틀어지고 모든 일을 다른 단서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건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다른 단서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전혀 없었다.

안 그래도 天의 행적이 짙은 안개에 가려진 가물가물한 오솔길 같은데 어디 가서 또 새로운 단서를 찾는다고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가능하면 천산에 제날짜에 도착해야만 한다.

청운은 다시 한 번 천산 행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신법을 전개했다.

울울창창한 빽빽한 거목들이 만든 깊은 어둠, 그 어둠을 더 어둡게 하는 고요와 적막.

그 고요와 적막을 더욱 깊게 만드는 산속의 밤.

너무나 조용했다.

이럴 수는 없다.

시끄럽지 않은 숲은 더 이상 숲이 아니다.

특히 모든 야행성의 짐승이 눈을 뜨는 밤의 숲은 낮의 숲보다 훨씬 더 분주하고 바쁘고 시끄러워야 정상이다.

이것은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청운의 감각이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했다.

시작하려면 한시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더 낫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자기 팔의 두 배 정도 되는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 가지를 수도로 몇 개 잘라냈다.

그리고는 고요하고 고요한 숲속 한가운데 고인 적막의 중심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파—파—파—팍.

청운이 내던진 소나무 창은 순식간에 허공에서 수십 토막으로 잘려져 풀숲에 떨어져 내렸다.

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철—삭—천—잠—사!

쇠든 바위든 걸리는 것은 무엇이든 잘라 버린다는 악마의 실이었다.

아무 경각심 없이 그냥 길을 지나갔다면 순식간에 청운의 몸은 수십 토막의 핏물로 숲의 거름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너무 잔인하고 악독해 전쟁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저런 마물을 사용하다니.

청운은 저 마물을 설치한 자가 눈앞에 있다면 그가 누구든지 당장 때려죽이고 죽이고 싶은 짙은 살의를 느꼈다.

저 마물의 함정은 시작인가 끝인가.

아무래도 시작일 것 같다고 청운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위기가 중대할수록 판단은 빠르고 행동은 단호해야 한다.

청운은 치우천결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투명한 자색 강기가 성운처럼 청운을 감쌌다.

청운은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는 철삭은잠사가 설치되어 있을 것 같은 공간을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번개처럼 갈랐다.

따—따—따—땅.

쇠를 긁는 듯한 소리와 동시에 철삭천잠사가 끊어지는 느낌이 청운의 손목에 찌르르 전해졌다.

철삭천잠사와 청운의 검이 강한 충격으로 부딪치자 간신히 독을 몰아넣었던 왼팔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청운은 욱신거리는 왼팔의 아픔을 억지로 참으며, 시시각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밤의 숲속으로 묵묵히 나아갔다.

피—피—융—타—타—타—따—땅.

수십 개의 비도와 화살이 밤하늘의 어둠을 찢으며 청운의 전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대부분의 비수와 화살들은 치우천결로 보호한 강기막에 막혀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몇몇의 비도는 치우천결의 강기막이 찢어질 정도의 대단한 위력이 있었다.

저들 중에 상당한 고수가 몇 명 있구나, 라고 청운은 판단했다.

청운은 암기가 날아왔던 방향을 대충 가늠해 최대한의 공력으로 쾌—타—절의 초식을 연달아 전개했다.

크—크—크—큭.

청운의 검기가 휩쓸고 간 사방의 숲에서 억지로 참다가 어쩔 수 없어 급박하게 내뱉는 날숨 같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속전속결.

물이 들어올 때 힘차게 배를 저어야 한다.

청운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일다경 이상을 적이 잠복해 있을 것 같은 공간을 향해 연속적으로 살수를 전개했다.

시끄러웠던 숲이 한동안 고요했다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처음의 시끄러움은 치열한 격전이 만든 시끄러움이었고.

두 번째의 시끄러움은 살수들의 잠복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적막했던 숲이 다시 찾은 수다스러움 때문에 만들어진 시끄러움이었다.

청운은 밤벌레와 밤짐승의 수다스러움이 활기찬 숲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앞으로 나서라! 잠복한 곳에서 그대로 죽고 싶지 않다면.”

청운은 잠시 기다렸다.

한동안 고요하던 숲의 어둠에서 마치 자신들이 밤의 주인이라고 우기듯이 흑의인들이 속속 청운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들 대부분은 청운이 감각적으로 적이 잠복해 있을 것이라 느꼈던 공간으로부터 나타났다.

그들은 나타남과 동시에 청운을 에워쌌다.

그들의 숫자는 족히 수십 명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 중 반수 이상이 청운의 공격에 당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몇몇 심한 부상자들은 더 이상 싸울 기력도 여력도 없어 보였다.

청운은 이 자들이 왜 이렇게 집요하게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도저히 그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어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날 이렇게나 지독하게 공격하는 것이오. 당신들은 어디서 나왔소.”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명령받은 대상만 제거할 뿐, 다른 것은 알 필요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앞에 선 복면의 사내가 왼팔을 허공에 들어 올렸다가 내리자마자 그자의 뒤에 서 있던 흑의인들이 벌떼처럼 청운을 향해 돌진했다.

자신의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법이다.

청운은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여태까지는 아무리 악인이라도 손에 어느 정도 사정을 두었다.

하지만 이제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청운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배우고 닦아온 인간에 대한 존엄과 외경을 단호히 버리기로 작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면 자신의 목숨을 그 대가로 내어 놓아야 한다.

그럴 수는 없다.

모든 생명체에게 결국은 자신의 목숨이 가장 소중하기에.

그건 청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청운은 자신에게 무작정 돌진하는 적을 향해 이빨을 굳게 깨물었다.

청운의 검으로부터 뻗어 나온 자색의 투명한 강기가 자신을 태우며 어둠을 불사르는 유성처럼 사방으로 줄기줄기 뻗어 나갔다.

으—악—으—아—악.

돌연 몸속 가장 깊은 심연에 존재하는 마지막 영혼을 쥐어짜는 듯한 처절한 비명이 숲의 적막을 갈기갈기 찢어발겼었다.

후—드—득, 투—드—득.

청운의 검기에 잘린 살수들의 팔다리와 목이 풀숲 곳곳에 내던진 돌처럼 떨어져 내렸다.

청운은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잘려진 사지와 시체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깊은 숲에 깜깜한 어둠만 남기고 모두가 사라졌다.

청운은 잠시 고개를 들어 별들이 차갑게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달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구름 사이를 유유히 가로지르며 제 갈 길을 가고 있었고.

별들은 여느 밤처럼 어두운 하늘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힘껏 제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강호의 삶이 원래 이런 것일 수밖에 없는가?’

이와 같은 회의에 청운이 잠시 정신줄을 놓고 있을 때, 왼팔에 참을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더 이상 지체하면 팔을 잘라 내야 할지도 모른다.

청운은 다시 한번 허공을 향해 전음으로 삼호! 삼호! 삼호! 라고 세 번을 크게 외치고는 자신이 은신할 만한 곳을 서둘러 찾기 위해 신형을 날렸다.

* * *

인간의 눈으로는 그 어떤 사물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동굴 안에 한 사내가 정좌하고 있다.

어떤 미동도 없어 언뜻 보면 그냥 동굴 한쪽에 불룩 솟은 검은 바위처럼 보였다.

그 사내는 바로 청운이다.

그는 지금 살수들에게 마지막 초식을 펼칠 때, 너무 많은 진력을 한꺼번에 소모하는 바람에 자신의 왼쪽 팔에 간신히 가두어 놓았던 독이 폭주하고 있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청운은 계곡 근처에는 동굴이 많다는 생각이 들자, 무작정 물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내달렸다.

마침내 적당한 은신처를 찾은 청운은 운기행공으로 벌써 몇 다경째 발작하는 독을 힘겹게 다스리고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청운은 자신의 보표이자 비선인 삼호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었다.

청운이 동굴에서 운공을 한 지 몇 식경이 지났을 즈음.

삼호가 그의 행적을 발견하고 찾아왔다.

청운의 상태를 본 삼호는 대경실색하며 자신의 품에서 비상약을 찾아 청운에게 먹였다.

하지만 그 약은 말 그대로 일시적으로 독을 억제하는 효력만 있을 뿐 근본적인 해독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삼호는 청운이 운기조식하고 있는 동굴을 적이 발견할 수 없도록 몇 가지 조치를 한 후 서둘러 해독약을 구하기 위해 동굴을 나섰다.

자칫 때를 놓치면 청운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삼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신법을 전개했다.

청운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독이 심장에 침투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청운은 독이 심장을 범하지 못하도록 마지막 남은 내공으로 심장 주변의 혈을 몇 시진째 이마에 진땀을 뻘뻘 흘리며 보호하고 있었다.

거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이제 정말 몇 다경만 더 지나면 자신은 결국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제아무리 무공의 경지가 높고 지혜의 깊이가 탁월하다 해도 인간은 결국 인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고금의 무수한 고서에서 인간의 지고한 정신력을 상찬하고는 있지만, 장구한 역사에서 그 어떤 인간도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초월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결국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신력 또한 최소한으로라도 육체가 버텨줄 때 발휘될 수 있는 인간의 의지일 뿐이다.

아, 이제는 정말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청운은 이제 정신마저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눈앞의 사물들이 자신의 형체를 잃고 마치 원래부터 하나의 형태인 것처럼 두루뭉술해지더니 급기야는 묽은 액체처럼 출렁거렸다.

심지어 동굴 입구와 바닥, 천장까지 하나의 커다란 어둠의 덩어리처럼 보일 뿐이었다.

청운은 이제 정말 끝이구나 생각했다.

모든 걸 포기하려 할 때 삼호가 기적처럼 다시 돌아왔다.

청운의 상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삼호는 급히 자신의 품속에서 몇 알의 환약을 꺼내 청운에게 먹였다.

그리고 잠시 후, 청운의 등 뒤에 장심을 붙인 후 공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청운은 자신의 몸속으로 물밀듯 들어오는 삼호의 내공을 마지막 남은 자신의 내공으로 이끌었다.

평소의 청운 같았으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야 삼호의 은혜도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청운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삼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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