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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27화 (27/184)

027화 줄 건 아낌없이 주고, 받을 건 철저히 받아낸다.

무림에는, 아니 세상에는 아무 사심 없이 타인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림맹주의 공치사와 덕담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맹주의 의도는 명백하다.

맹주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장로원의 힘을 조금 빼려는 심산이다.

그리고선 자신이 맹의 전권을 장악하려는 속셈이다.

덤으로 청운 같은 강호의 신진 강자를 자신의 측근으로 삼아 무림에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것이 맹주의 저의임에 틀림없었다.

청운 또한 맹주의 힘을 간접적으로나마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자신에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맹주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였다.

청운 역시 자신이 앞으로 하려는 일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아무리 사소한 힘이라도 모두 끌어모아야 자신에게 유리할 것 간아 맹주의 제의를 수락했을 뿐이었다.

줄 건 아낌없이 주고, 받을 건 철저히 받아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청운은 하오문의 섬서분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흑오파>의 밀실.

탁자 위에는 푸짐한 산해진미와 각종 주류가 놓여 있었다.

상석에는 특이한 인상과 복장을 한 사십대 중반 정도의 두 인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왼쪽에 앉은 사람의 얼굴과 복장은 백납같이 희고, 오른쪽에 앉은 사람의 얼굴과 복장은 정반대로 숯처럼 새까맸다.

그 두 명의 인물 바로 아래에는 왼쪽 눈 밑에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칼자국 흉터가 흉하게 나 있는 삼십 대 초반 정도의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 사내는 상석의 두 인물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기 위해 아첨을 있는 대로 떨고 있었다.

“흑백쌍선님, 지금 기녀들을 부를까요. 섬서 땅에서 가장 싱싱하고 농염한 애들로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오늘 마음껏 여독과 회포를 푸시지요.”

“…….”

“그리고 그깟 하오문 섬서분타를 징치하는 일는 마음 내키실 때 언제든지 하시면 됩니다요. 하오문분타 하나 없애는 일에 이리 귀한 분들이 오시다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얼굴의 칼자국이 있는 사내가 두 인물에게 몸을 최대한 조아리며 살살거렸다.

“흑백쌍선은 무슨, 그냥 쌍귀지. 짜귀야, 네가 인상은 험악해도 인사성 하나는 좋구나. 술과 계집은 잠시 갔다 와서 즐기도록 하자.”

“하하.”

“우리는 할 일을 앞에 놔두고 술과 계집을 즐기는 것은 별로야. 손 한 번 휘두르면 끝나는 일을 뜸 들이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그는 말을 이어 갔다.

“안 그래도 방주님께서 우리가 섬서에 간다니까 손사래를 치며 말리셨다. 그깟 일에 우리가 나설 필요가 뭐 있느냐고 하시며. 하지만 말이다.”

“네.”

“흑수방에 빈객으로 와 있으면서 그냥 놀고먹는 것은 우리 체질에 맞지도 않고, 이참에 섬서 땅에 우리가 와 있다는 걸 만방에 알릴 필요도 조금 있을 것 같기도 하고…….”

“…….”

“겸사겸사해서 방주님이 극구 반대하시는 걸 간신히 물리치고 왔느니라. 짜귀야, 앞장서라. 금방 끝내고 와서 이 밤을 마음껏 즐겨 보자구나.”

스스로 흑백쌍귀라고 말한 인물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짜귀가 앞장서 그들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하오문의 섬서분타는 도박장 뒤의 가건물을 이용하고 있었다.

인원이라야 다 합쳐도 이십 여명에 불과했다.

하긴 하오문이란 조직 자체가 힘으로 뭔가를 해결하는 무력집단이라기보다는 정보를 팔고 사는 단체에 가까우니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섬서 분타주는 삼십 대 중반의 섭평이라는 자였다.

그의 무공 수위는 겨우 이류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섭평은 단 한 번도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적이 없었다.

섭평의 무공은 누군가 도박장에서 돈을 쓰고는 갚지 못해 맡긴 비급 혹은 기루에서 만취해서 흘린 누군가의 비급을 보고서 혼자서 몰래 익힌 것들이었다.

그러니 깊이도 없고 발전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청운이 분타에 도착하자 섬서분타에 속한 인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인사를 했다.

청운은 섭평의 안내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에는 간소한 다과와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섭평은 청운에게 상석을 권했다.

청운이 자리에 앉자 섭평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자님, 아마 오늘 저녁 아니면 내일 중 흑오파가 들이닥칠 것 같습니다. 방금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오늘 해질녘에 흑수방에서 파견한 고수 둘이 흑오파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상당한 고수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분타주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최선을 다해 막아보겠습니다. 이제 그만 문도들을 쉬게 하십시오. 그래야 적과 싸울 때 힘을 쓰지요.”

청운은 섭평에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일부러 과장되게 자신감을 내비치며 말했다.

“분타주님, 여기 호법사자님이 와 계시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맞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그깟 흑오파 놈들 쯤이야…….”

“한 번 죽지 두 번 죽습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소.”

마치 두더지가 논두렁에 머리를 내밀 듯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자신의 의기를 드러내는 말들이 두서없이 튀어나왔다.

비록 배운 것 없고 무공도 변변찮아 세상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근근이 자신의 생계를 건사하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의 결기와 동료애는 비루하면서도 아름다웠고, 용기와 의기는 익살스러우면서도 비장했다.

* * *

콰—콰—쾨—콰—앙.

갑자기 밖에서 뭔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그 충격에 튕겨진 조각난 파편들이 창호지를 뚫고 청운이 앉아 있는 내방까지 날아들었다.

“웬 놈들이냐?”

섭평이 고함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자 다른 문도들도 잽싸게 자신의 무기를 꼬나쥐고서 우르르 밖으로 몰려갔다.

그러자 청운도 뒤따라 밖으로 나섰다.

무리의 맨 앞줄에는 왼쪽 눈 밑에 깊은 흉터로 인해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삼십 대 초반의 사내와 마치 얼굴에 흑백의 가면을 쓴 겉 같은 괴인 둘이 서 있었다.

기괴한 모습의 두 괴인은 괴괴한 달빛에 흠뻑 젖어 더욱 괴이해 보였다.

그 순간 하오문 문도 중 누군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설마, 흑, 백, 쌍, 마!”

일순간 하오문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흑백쌍마라는 명호에 절망한 것 같았다.

흑백쌍마는 무림 서열 백 위 안에 드는 고수로 아주 사악하고 간악한 자였다.

세상의 온갖 독물과 기물을 이용해 연마한 그들의 흑장과 백장은 강맹하고 사악하기로 강호에 유명했다.

특히 둘의 합공은 어지간한 절정고수들도 한 수 양보한다고 했다.

산동에서 부녀자를 간살하고 구대문파와 무림맹의 추적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강호에 돌았다.

그런 자들이 이곳 흑수방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가 하오문의 섬서분타에 나타난 것이다.

저런 악독한 자들을 서슴없이 빈객으로 받아들인 흑수방은 볼 장 다 본 방파임에 틀림없다고 청운은 판단했다.

저들이 그렇게 간악하고 악독한 자들이라면 청운은 절대로 인정을 베풀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앞으로 나섰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자들에게 베풀 자비는 나에겐 없다.

오히려 저런 자들은 하루라도 일찍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청운은 나이나 연배를 불문하고 처음부터 반말로 흑백쌍마에게 일갈했다.

“흑백쌍마, 네 놈들은 네 죄업을 참회하며 무림맹에 자수를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여기가 어디라고 싸돌아다니느냐. 무림맹이 하지 못한 징치를 오늘 본 공자가 하겠다. 앞으로 썩 나서거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하오문주가 직접 이 자리에 있어도 감히 노부한테 그런 막말을 하지 못한다. 네 놈이 오늘 죽고 싶어 간이 배밖에 나왔구나. 네 놈은 도대체 누구냐. 이름이나 말하고 죽어라.”

분기탱천한 흑마가 다짜고짜 청운에게 쌍장을 쳐냈다.

시커먼 안개 같은 독장이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청운의 전신을 짓쳐왔다.

으—으—으—읍.

흑마의 시커먼 독장과 일렁거리는 독무를 본 섬서문도 중 몇몇이 두려움에 떨며 다급히 자신의 신음을 목구멍 뒤로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청운은 흑백쌍마를 맞닥뜨린 순간부터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청운은 회— 초식을 이용해 흑마의 장력이 몸에 닿기도 전에 장력의 방향을 비틀어 버렸다.

방향을 잃은 흑마의 장력이 애꿎은 담장 밑 고목을 때렸다.

퍼—퍼—퍼—엉.

장력에 맞은 아름드리 고목의 밑동이 그대로 두 동강이 나며 부러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부러진 나무의 밑동과 줄기가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하며 말라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청운의 몇 보 뒤에 있던 하오문도들은 그 광경을 목도하고는 새파랗게 질렸다.

만약 청운의 검기가 흑마가 발출한 독장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저 고목 꼴이 되어 죽었으리라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청운은 잘못하면 하오문도들이 다칠까 걱정이 되어 즉시 살초를 전개해 흑마를 하오문도가 서 있는 담장 반대쪽으로 몰아붙였다.

치우천결은 어느 정도의 피독과 파사의 성질이 있어 흑마의 독장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거기다 얼마 전에 터득해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묘묘보허]를 전개하자 청운의 신형은 마치 밤안개 속을 유영하는 달빛처럼 너무나 표홀했다.

흑마의 장력 대부분은 청운의 옷깃도 스치지 못하고 애꿎은 밤하늘만 들쑤셨다.

반면에 청운과의 몇 번의 손 섞음으로 흑마는 이미 여러 군데 검상을 입고 비틀거렸다.

“에이, 그런 애송이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동생이 고전하는 걸 본 백마가 청운에게 쌍장을 내지르며 싸움판에 뛰어들었다.

백마의 흰 안개 같은 장력에서는 금방이라도 구토가 나올 것 같은 역한 냄새가 풀풀 났다.

청운은 싸움을 더 오래 끌다가는 하오문도들이 전부 중독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속전속결을 작정한 청운이 치우천결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청운의 검에서 뻗어 나온 투명한 자색의 검기가 거의 일 장이 넘게 일렁거렸다.

갑작스럽게 급변한 청운의 무위에 흑백쌍마의 안색이 심각하게 돌변했다.

청운은 아예 끝장을 볼 심산으로 쾌—타—절—변의 초식을 연속으로 전개하며 흑백쌍마를 휩쓸어갔다.

흑백쌍마는 자신의 장력을 기기묘묘한 신법으로 피하며 무화시켜 버리는 청운의 신법과 청운의 검에서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투명한 자색의 검기에 이미 여러 번 손해를 보고 있었다.

견디다 못한 흑백쌍마는 마침내 자신들의 최대 절초로 청운을 공격하기로 작정했다.

마치 둘의 장력이 원래부터 하나인 듯 흑백쌍마의 장력이 하나의 힘으로 섞어 청운을 덮쳐 갔다.

둘의 장력이 합쳐진 위력은 흑백쌍마가 따로 공격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바짝 긴장한 청운은 최대한 공력을 끌어올려 쾌—타—절—변—회 초식을 연달아 전개하며 흑백쌍마의 장력에 맞부딪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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