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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23화 (23/184)

023화 사람이 아니라 마치 막대기와 장승이 걸어오는 것 같았다.

“긴급히 저를 찾으실 때는 허공에다 대고 전음으로 ‘삼호’라고 세 번 크게 부르시면 됩니다. 물론 제가 사자님 지척에 있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삼호…….’

“하지만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능하면 저를 안 찾으시는 게 좋습니다. 저까지 적에게 노출되면 사자님이 정말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저는 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사자님을 그림자처럼 뒤따라야 사자님의 안위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저 반혼시들은 말 그대로 사람도 귀신도 아닌 악귀입니다.”

“…….”

“지금까지 저 귀혼진에 갇혀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자님 정도 되시니까 그렇게라도 버티신 겁니다. 몇 식경만 더 있으면 곧 첫닭이 울고 날이 밝은 것입니다. 반혼시들은 낮에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녀는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사자님께서는 주로 낮에만 이동을 하시고 밤에는 저희 하오문이 안배한 이런 장소에서 쉬시는 게 안전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수탁의 피를 말려 벼락 맞은 복숭아나무의 가루와 섞은 것입니다. 저런 반혼시나 강시에게 부리면 효과가 있습니다. 품에 넣어두시지요.”

보표는 청운에게 주먹보다 조금 더 큰 가죽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를 받아 품속에 넣으면서 말했다.

“고맙소.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나중에 내 몇 배로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사자님, 저에게 존대하시면 안 됩니다. 문주가 아시면 경을 칩니다. 그리고 제가 한 건 임무이지 은혜를 베푼 게 아닙니다. 조금도 개의치 마십시오. 그리고 낮에는 저들이 다시 어떤 공격을 해 올지 전혀 짐작할 수 없습니다.”

삼호는 진심으로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청운은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했다.

저들의 공격도 공격이지만, 자신이 天의 사자를 직접 죽인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의 비밀을 전혀 알아낸 것도 없는데, 왜 天이 이토록 집요하고 지독하게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도 용서를 할 수도 없었다.

청운은 그들이 자신을 공격한 만큼 반드시 되돌려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저들이 어떤 공격을 해 오든 이제부터 인정사정없이 단호하게 상대하겠다고 결심했다.

청운은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보표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내 뒤를 따랐습니까. 그리고 이런 사태가 벌어질지 어떻게 예상했는지요.”

“사자님이 떠나시자마자 문주님이 즉시 저에게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태는 문주님도 저도 전혀 계산에 없던 일입니다.”

삼호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청운의 물음에 대답했다.

청운은 다시 삼호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혹시 天이 어떤 집단이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으시면 말 좀 해주시지요.”

잠시의 생각도 없이 보표는 곧바로 대답했다.

“지금 강호에서 天의 진정한 실체와 목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신이 天에 속한 자 말고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심지어 天에 속해 있다고 하더라도 최상층의 수뇌부에 속하지 않으면 알지 못할 것입니다.”

“아…….”

“그리고 최상층에 속한 인물들조차 서로 최소한의 수단을 통해서만 연락하는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닌가하고 정보각에서 조차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녀는 한 가지 더 말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남표국의 사건과 이번 사자님의 사건에서 알 수 있듯 天은 자신의 실체를 알려고 하거나, 조금이라도 건드리거나, 자신의 목적에 반하는 자는, 그게 집단이든 개인이든 절대로 가만두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역시…….’

“즉 그들은 자신의 이익과 목적에 반하는 자는 그게 누구이든 간에 반드시 제거하는 것 같습니다.”

삼호의 생각과 청운의 생각은 거의 일치했다.

잠시 후 삼호가 일어서면서 말을 했다.

“날이 밝은 것 같습니다. 아마 반혼시들은 어딘가 어둡고 습한 곳에 들어가 처박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자님, 제 궤에 갈아입을 옷과 건량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 저는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를 부르는 신호를 잊지 마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삼호는 포권을 취하자마자 동굴을 나가 사라졌다.

그 난리법석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밤새 한숨 잘 잔, 밝고 깨끗한 얼굴의 태양이 힘차게 동쪽 산봉우리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어젯밤의 그 악몽이 모두 거짓말 같았다.

여느 때의 늦가을처럼 하늘은 높고 청명하고, 대기는 맑고 투명했다.

거의 잠을 못 잤음에도 불구하고 청운은 여러 번의 운기조식으로 거의 공력을 회복했다.

몸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밤을 한차례 겪고 나자 이제 청운은 밤이 무서워졌다.

낮을 이용해 최대한 많이 이동해야겠다는 생각한 청운은 서둘러 산길을 내달았다.

* * *

반나절 만에 몇 개의 산봉우리를 넘었다.

산길 곳곳에 폭포와 절벽이 있었지만 풍경은 더 이상 청운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건량과 육포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청운은 다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마침 산길에는 인적이 거의 없어 청운은 최대한 신법을 전개해 거의 날다시피 달렸다.

청운의 머릿속엔 달리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없었다.

또다시 거의 반나절은 쉬지 않고 달린 것 같았다.

조금 목이 말랐다.

건량과 육포만 먹고 종일 내달린 탓에 갈증이 났다.

청운은 최대한 청력을 기울여 서쪽 십 리 밖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찾아냈다.

마침 그쪽에 삼호가 안배한 잠자리가 있는 쪽이었다.

서서히 또 하루의 해가 지고 있었다.

서쪽의 먼 산봉우리에 붉은 만장처럼 일렁이는 석양이, 틀림없이 깊은 밤이 내린다고 청운에게 서둘러 잠자리를 찾으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산속은 낮보다 밤이 훨씬 더 길다.

잠자리가 안배된 동굴이 있는 쪽으로 청운이 방향을 정하고 신법을 전개하려고 했을 때였다.

마치 어둑한 땅거미가 다가오듯 갈색의 무복을 입은 사내가 저만치서 청운이 걸어가는 정면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내는 검을 안 양팔로 가슴에 꼭 껴안고 있었다.

죽립을 깊이 눌러 쓴 깡마른 사내는 마치 길 위를 천천히 미끄러지듯이 청운을 향해 다가왔다.

참으로 이상한 사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의 느낌이 나는 법인데 저 사내에게선 어떤 인간의 느낌도 나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라 마치 막대기와 장승이 걸어오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길섶에선 새도 날지 않고 다람쥐도 제자리에서 먹던 도토리를 계속 먹고 있었다.

무생물 같은, 아니 사물 같은 사내가 막 청운을 마주 보며 스치려는 순간.

청운은 때마침 오른발 위로 넘어가려는 독사를 밟지 않으려고 슬쩍 옆으로 몸을 틀었다.

청운은 한순간 자신의 왼쪽 어깨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죽립의 사내가 범인이었다.

사내는 청운을 마주 스치면서 기습적으로 청운의 목을 잘라 버리려고 했다.

기습적 시도가 실패하자 갈의의 사내는 재차 자신의 검으로 청운의 목을 빛살처럼 찔러왔다.

청운이 황급히 뒤로 두 걸음이나 주춤 물러나며 사내의 공격을 간신히 피했다.

다짜고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살초를 전개하는 사내의 급작스런 공격에 분기탱천한 청운은 다급하게 치우천결을 끌어올리며 <쾌—> 초식으로 사내의 가슴을 베어 갔다.

청운의 검에서 발출된 투명한 자색의 검기가 사내를 섬광처럼 덮쳐 갔다.

사내가 자신의 검으로 청운의 첫 번째 공격을 간신히 막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청운의 검에서 뿜어진 자색의 강환이 연이어 사내를 짓이길 듯이 타격했다.

연속적으로 몇 번에 걸친 청운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갈의의 사내는 주르르 이 장 정도 뒤로 물러나며 곧 쓰러질 것처럼 몸을 휘청댔다.

입가에 가느다란 핏줄기마저 내비치고 있었다.

청운이 일부로 목소리에 공력을 실어 사내에게 일갈했다.

“네 놈은 도대체 누군데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다짜고짜 살수를 펼치느냐. 天이냐.”

“네 놈은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다. 그냥 이 자리에서 죽으면 된다. 나도 그것밖에 모른…….”

그자의 목소리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어떤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자의 말은 말이 아니라 돌을 던지는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청운보다 머리 하나는 더 키가 크고 깡마른 사내였다.

사내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품속에서 엄지손가락만한 검은 피리 같은 것을 꺼내 힘껏 불었다.

삐—이—익, 삐—익.

날카롭고 짧은 쇠된 소리가 주변의 대기를 강하게 울렸다.

무슨 신호음 같았다.

청운이 잠시 그게 뭐지, 하는 생각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갈의의 사내와 똑같은 갈의에 죽립을 쓴 사내들이 청운의 앞뒤에 휘리릭휘리릭 속속 날아 내렸다.

나무의 우듬지에서, 바로 옆에 있던 바위 뒤에서 그리고 땅거죽을 헤치며 동시에 나타났다.

먼저의 사내까지 합쳐 모두 아홉 명이었다.

처음의 사내가 자신의 검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내리자 다른 사내들이 일제히 청운의 전신요혈을 노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청운은 감히! 어딜!, 하면서 <쾌 –타—절—변>의 초식을 연속으로 펼쳤다.

차—차—차—차—창—차—창.

청운의 검과 사내들의 검이 부딪치자 사방에 불꽃이 튀었다.

주변의 초목들과 돌들이 검풍과 검영에 휘말려 허공에 소용돌이쳤다.

거죽이 벗겨진 땅껍질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후드득후드득 소리가 났다.

수십 합을 교환하자 서서히 우열이 판가름 났다.

사내들 개인은 공력과 초식의 운용 면에서 청운의 진정한 적수는 아니었다.

사내들도 그것을 아는 것 같았다.

사내들이 갑자기 전술을 바꿔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번갈아가며 치고 빠지는 식으로 청운을 공격했다.

청운의 전면에서 공격한 조가 마치 청운의 공격 받고 뒤로 물러나면 청운의 뒤와 허공에서 다른 조가 마치 정밀한 기계 맞물려 돌아가듯 청운을 목표로 세 곳에서 칼날이 날아들었다.

사내들의 이런 합격술을 수없이 연습한 기계 같았다.

그들의 합격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손발이 척척 맞았다.

다수가 한 명의 고수를 상대하는 차륜진이 장인의 기술처럼 능숙했다.

청운의 공격은 매번 상대를 정확히 응징하지 못하고 마치 눈발이 물에 떨어져 녹아 사라지듯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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