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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18화 (18/184)

018화 天은 도대체 뭘 하는 곳이요.

승패는 분명했다.

흑의인은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어 보였다.

상대를 제압한 청운은 거의 협박조로 상대를 겁박했다.

“다시 묻겠소. 天은 뭐하는 집단이며, 근거지는 어디에 있소?”

“후후후… 네 놈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네 놈이 감히 天을 건드린 이상 이제부터 네놈은 어느 한순간도 두 발을 뻗고 잠들지 못할 것이다.”

흑의인은 간신히 자기 말을 마치자마자 품속에서 대통 같은 뭔가를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청운이 놀라서 쓰러진 흑의인의 몸을 흔들었지만 이미 절명한 후였다.

반드시 지켜야 할 비밀 때문에 입속에 있던 독단을 깨물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 같았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청운은 상대를 죽일 마음이 털끝만치도 없었다.

청운은 자신이 직접 살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자신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자신의 대응이 아무리 정당방위였다 해도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청운은 시체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일단 묻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땅에 묻기 전에 그의 신분에 대한 단서라도 찾을까 싶어 그의 품속을 뒤졌다.

天자가 양각된 두 치 정도 되는 크기의 동으로 만든 패와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각각 색깔이 다른 약병 세 개 그리고 대륙전장에서 바꿀 수 있는 금자 삼백 냥짜리의 환이 나왔다.

엄청난 돈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독아방에서 받아온 것 같았다.

청운은 그의 복면을 벗겨 보려다 멈칫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한 줄기 붉은 폭죽이 새까만 밤하늘에 터진 것이다.

좀 전에 天의 사자가 쏘아 올린 폭죽임에 분명했다.

서둘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청운은 검기로 서둘러 구덩이를 대충 판 후 시체를 묻었다.

그리고는 나중에 알아보기 위해 커다란 돌 하나를 무덤에 올려놓고는 급하게 현장을 벗어났다.

* * *

낙양은 중원 최고의 대도시다웠다.

가는 곳마다 고루거각이 즐비했고 길을 나다니는 사람들의 숫자도 엄청났다.

낙양을 가로지르는 천변에 늘어선 상가의 규모도 하남성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방대했다.

물 위에는 대낮부터 배를 띄워 놓고 음주 가무를 즐기는 한량도 수두룩했다.

어딜 가나 세상은 불공평했다.

한쪽에선 거지꼴을 하고 수로를 정비하거나 누군가 먹고 싼 똥지게를 지는 일로 간신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선 벌건 대낮부터 주지육림에 빠져 기녀들을 희롱하며 하루를 탕진하는 자들이 있었다.

청운은 자신이 특별한 도덕군자도 아닌데 왜 저런 광경을 볼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지 자신도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몽환루>는 물길이 굽어져 휘도는 천변에 있었다.

주변에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줄지어 있어서 제법 운치가 있었다.

고루거각은 아니지만 제법 규모도 그럴 듯했다.

청운은 주저함 없이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대낮이어서 그런지 기루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청운은 계산대 옆 탁자에서 전표를 펴놓고 주산으로 뭔가를 열심히 계산하고 있는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에게 다가가 <하오문>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고 말했다.

그제야 고개를 든 사내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청운을 올려다봤다.

사각턱에 제법 사나운 인상의 사내였다.

청운은 여러 말을 주고받는 것이 싫어 다짜고짜 <하오문 낙양분타>에서 받아온 서찰을 사내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서찰을 잠시 들여다본 사내는 갑자기 공손해지더니 바닥을 쓸고 있던 어린 점소이에게 소리쳤다.

“이분을 오휘 형님에게 안내해드려라.”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사내는 서찰을 다시 청운에게 돌려주었다.

어린 점소이가 바닥을 쓸던 빗자루를 벽에 대충 기대어 놓고는 청운에게 와서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공자님, 절 따라오시지요. 그리고 공자님을 위해 미리 말씀을 드리는 건데, 오휘 형님은 힘도 장사고 성격도 보통이 넘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요.”

점소이가 안내한 곳은 기루 뒤쪽에 있는 이 층 도박장이었다.

사람의 몽롱하게 만드는 불그스레한 홍등의 불빛, 대마를 피우는 매캐한 연기, 주사위 던지는 소리,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한숨과 탄식 소리, 찌든 술 냄새.

도박장이 원래 그런 곳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실상은 청운의 예상을 훨씬 능가했다.

점소이는 청운을 도박장 입구에 앉아서 도박장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는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한 젊은 사내에게 데리고 갔다.

“이곳을 책임지고 계시는 오휘 형님입니다. 공자님, 인사하시지요.”

점소이는 오휘라는 자 앞에서 계속 쭈뼛거렸다.

오휘란 자는 대각선으로 상체의 거의 반을 드러낸 표범 가죽을 걸치고 있었다.

점소이의 말에 그가 천천히 얼굴을 들어 청운을 올려다봤다.

눈빛이 아주 사나웠다.

각진 그의 얼굴에는 그의 살아온 이력을 보여주는 흉터가 여럿 있었다.

청운이 전혀 기죽지 않고 담담히 그를 쳐다보자 오휘는 의외라는 듯 입가에 묘한 웃음을 흘렸다.

청운이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먼저 말했다.

“하오문 문주를 만나러 왔소. 안내하시오.”

청운의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오휘가 왼 주먹으로 청운의 어깨를 툭 치며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문주님이 무슨 동네 강아지인 줄 아시나 보지. 개나 소나 다 만나 주시게. 딱 보니 서생 나부랭이에 개털 같은데.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썩 꺼져라.”

이제 청운도 적지 않은 강호의 경험으로 이런 거친 놈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조금 알고 있었다.

이 자 역시 자신이 가진 힘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자에게만 굴복하는 양아치 같은 놈이었다.

청운은 아무 말 없이 탁자 위에 있는 주사위 한 질을 왼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이성의 치우천결을 운용해 주사위를 가루로 만들고는 오휘의 얼굴에 대고 입김을 훅 불었다.

허연 주사위 가루를 얼굴에 뒤집어쓴 오휘의 눈빛이 갑자기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했다.

“공자님은 대체 누구시오. 내가 하오문도는 맞지만 말단이기에 문주님에게 바로 안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보다 서열이 높은 분에게 안내는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청운을 도박장까지 안내한 점소이가 말했다.

“이 공자님께서는 하남 분타주님의 서신을 갖고 계십니다.”

오휘가 갑자기 점소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느냐. 이 미련한 놈, 진작 말했으면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았지. 에이 모자란 놈 같으니.”

점소이에게 한바탕 욕지기를 내뱉은 오휘가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청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앞장서 계단을 내려간 오휘가 도박장 맞은편에 있는 창고 비슷한 건물로 걸어갔다.

청운은 그의 일장 정도 뒤에서 묵묵히 뒤따랐다.

* * *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를 면밀하게 살핀 오휘가 창고 문을 열고 재빨리 들어갔다.

뒤이어 청운에게 따라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는 천장에 늘어뜨려진 몇 개의 밧줄 중에서 푸른색 밧줄을 세 번 당겼다.

잠시 후 땅인지 천장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곳에서 깊은 저음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은 그 자리에 계시고, 오휘는 물러가서 네 일을 봐라.”

소리가 끝나자마자 오휘는 문을 열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다시 예의 그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손님은 다섯 번째 회색 줄을 두 번 당기시오”

청운은 그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회색 줄을 적당한 힘으로 두 번 아래로 당겼다.

그러자 오른 쪽 구석진 곳에서 바닥이 벌떡 열리며 시커먼 구멍이 나타났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딘가로 통하는 비밀 통로 같았다.

“그곳으로 들어오시오.”

그 목소리였다.

청운이 잠시 머뭇거리자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런 장치나 위험도 없소. 그냥 계단을 내려가 쭉 가시면 됩니다.”

이십여 개 이상의 계단을 내려가자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것 같은 갱도가 나타났다.

갱도의 내부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했다.

하지만 청운의 안력이 예전과 달라서 청운이 움직이기에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한식경 정도 걸었을까.

갱도가 넓어지면서 조금 밝아졌다.

‘드디어 출구인가.’

그때, 다시 예의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갱도 속이어서 그런지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십여 장 앞에 있는 마차를 타시오. 그리고 즉시 상자 속에 있는 검은 안대를 쓰시오.”

청운은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잠시 후 안대를 쓴 눈에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드디어 밖으로 나온 모양이구나, 하고 청운은 속으로 자신의 말을 되뇌었다.

얼마 후 마차가 상당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산길을 달리는 것 같았다.

느낌상으로 최소한 삼십여 리 이상을 달린 것 같았다.

얼마 후 서서히 마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멈추어 섰다.

마부가 건조하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손님, 다 왔습니다. 안대를 벗고 내리시지요. 바로 앞에 보이는 장원으로 곧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장원의 규모는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았다.

소담스러운 연못과 늘어선 석등 그리고 몇 그루의 백송이 장원의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장원의 이름을 알려 주는 편액이나 현판은 없었다.

청운은 주저함 없이 장원의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안에서는 어린 시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손히 고개를 한 번 숙인 시비가 청운을 안내했다.

그리고 월동문을 열어주면서 청운에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그곳엔 키가 작달막하고 염소수염을 기른 사십 대 초반의 사내가 청운을 맞이했다.

“공자, 어서 오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남 분타주의 서신을 갖고 계신다던데 어디 봅시다.”

청운은 아무 말 없이 서신을 건넸다.

“틀림없군요. 들어가시지요. 내당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신을 왼손에 거머쥔 중년인이 건물 우측의 문을 열고 앞서가기 시작했다.

우측 복도를 돌아가자 다시 문이 나타났다.

“여깁니다. 들어가시지요.”

공손하게 청운에게 말을 건넨 중년인은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청운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자, 천장인지 바닥인지 모를 곳에서 또랑또랑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의자에 앉으시고 협탁 위의 차를 드셔도 됩니다. 그리고 우리 문의 규칙상 의뢰자에게 얼굴을 보여드릴 수 없음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래, 공자님은 무슨 정보를 원하시지요. 정보의 가치에 따라 정보 이용료는 천차만별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정보는 하남표국의 멸문과 관련된 것이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누가 표국을 그렇게 만들었으며, 국주님과 가족의 생사를 알고 싶소.”

청운은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기에 거침없이 말했다.

“그 정보는 매우 비쌉니다. 금자로 이백 냥은 주셔야 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알겠소. 여기 있습니다.”

청운은 天의 사자에게서 얻은 전표를 들어 보였다.

한참 후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전표는 곤란합니다. 그것은 수결한 사람이 지정한 사람만이 사해전장에서만 찾을 수 있는 전표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나 쓸 수 없는 그림의 떡이지요.”

“…….”

“공자님이 그걸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일종의 장물입니다. 함부로 시중에 유통시켰다간 현행범으로 채포됩니다. 그런 건 도박장에서도 유통이 안 됩니다.”

여자가 아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운은 난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아무 소득 없이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청운은 궁여지책으로 억지를 한번 부려보기로 작정했다.

“그것 말고는 나에게 귀하가 요구하는 그런 뭉칫돈은 없소. 지금 내 수중에는 은자 백냥 정도 있는데 나머지는 나중에 갚으면 안 되겠습니까. 내 반드시 갚겠습니다.”

“호— 호—, 호—. 공자님 배짱이 참 좋으시군요. 하지만 정보에는 외상은 없습니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황 노인, 손님에게 돌아가는 길을 안내해 주세요.”

일언지하의 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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