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5화 (15/184)

015화 응징을 결심한 이상 단호해야 한다.

전각 삼층에서 깊은 저음의 중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직하지만 건물 전체를 울리는 위엄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왼쪽의 장한이 청운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기가 죽어 거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님, 저를 따라 이쪽으로 오시지요. 바로 이쪽입니다.”

장한은 오른손으로 건물 뒤쪽에 별도로 나 있는 계단을 가리켰다.

청운은 자신의 뒤에서 새파랗게 질려 있는 칼새에게 은자 하나를 휙 던져주고는 장한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삼층까지 바로 올라갔다.

“어르신, 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앞장섰던 장한이 문 앞에서 안을 향해 공손이 말했다.

“됐다. 너는 내려가 네 일이나 보거라. 공자, 들어오시지요”

아까의 그 중후한 저음의 목소리였다.

청운은 혹시나 있을지 모른 급습에 대비해 바짝 긴장한 채 문을 밀었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자님.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그래, 여긴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그를 맞이한 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중년인이었다.

어찌 보면 사십 대 같았고 또 어찌 보면 오십 대 이상으로도 보이기도 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염소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방은 이중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가 들어선 방에는 둥근 탁자와 의자 네 개만 달랑 놓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벽에도 그림 한 점 없었다.

청운은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정보를 사러 왔소.”

“그래, 무슨 정보를 원하시지요.”

염소수염의 사내가 말했다.

“하남표국을 저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정보를 원하오.”

청운이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건 엄청난 가격이 필요하오. 그리고 그 정보는 내 맘대로 팔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정보요. 이만 돌아가시오.”

사내는 노골적으로 청운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도대체 얼마면 되오. 그리고 누구와 협상하면 됩니까.”

청운은 반드시 거래를 성사시키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중년의 사내에게 강하게 내비쳤다.

“정 그러시다면 좋소. 내 생각에 정보에 대한 대가는 아마 적어도 금자로 이백 냥은 족히 될 거요. 내가 서신을 한 장 써 주겠소. 그걸 가지고 낙양에 있는 <몸환루>를 찾아가시오. 그럼 일이 잘 풀리길 바라오.”

말을 마친 중년의 사내는 청운에게 서찰을 건네주며 나가는 문을 열어 주었다.

청운은 지금부터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시일도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기에 먼저 어머니에게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청운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앞산을 넘어가는 구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상.

그렇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구름처럼 변했다.

과거에 합격해 한평생 부모님을 모시고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살겠다던 어린 시절 자신의 꿈도 변했고, 친구들이 거의 떠난 고향의 산천과 인심도 변했다.

또, 어머니도 가는 세월에 많이 늙어지셨고, 동생도 어느새 다 큰 처녀가 되었다.

심지어 자신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무림인이 되었다.

앞으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지 도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변하는 것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았다.

청운은 상념에 잠겨 무심하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집으로 다가오는 가벼운 발자국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청운이 사립문 밖으로 나섰다.

옛날의 청운이라면 듣지 못할 작은 소리였다.

멀리서 바구니를 든 어머니와 영아가 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청운은 한달음에 내달려 어머니의 바구니를 빼앗다시피 받아들었다.

“어머니, 힘드신데 뭐하러 이런 들일을 하세요. 제가 보내드린 돈이 모자란가요.”

청운은 원망하듯이 말했다.

“운아, 그게 아니란다. 네가 주는 돈은 남으면 남았지 절대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할 것 다 하고 풍족하게 산단다. 집에 있으면 너무 심심해서 소일거리로 나물 캐러 간 것뿐이다.”

어머니는 청운의 등을 다독이듯 손으로 툭툭 쳤다.

“오빠, 얼마 전에 표행 간다고 집에 한참을 못 올 거라 말하지 않았어요. 갑자기 집엔 어쩐 일로 왔어요.”

영아가 대화에 끼어들며 청운의 말을 받았다.

어머니와 영아에게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내 집에 오는데 무슨 볼일이 꼭 있어야 하니. 그냥 오고 싶으니까 왔지. 어머니가 해주는 밥도 먹고 싶고. 그런데 너는 별일 없지?”

청운은 영아의 말을 농을 하듯 받아치며 능청을 떨었다.

“자, 자, 빨리 들어가자. 멀리서 온 네 오빠 배고프겠다.”

어머니가 먼저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든든히 먹은 청운은 어릴 적에 가끔 느꼈던 나른하고 기분 좋은 포만감에 휩싸였다.

그때 영아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오빠, 저 개울 건너 달밝골에 사는 선앵이 알지. 왜, 있잖아 나하고 같이 잡화점에서 일하는. 아픈 홀어머니와 어린 남동생과 함께 사는 애 말이야. 오빠도 몇 번 봤잖아요. 걔가 지금 큰일이야.”

“아, 그래 기억난다. 키가 좀 작고 얼굴이 좀 까만. 왜, 무슨 일인데. 걔는 집안은 힘들어도 누구보다 심성이 착하고 성실하게 산다고 했잖니.”

청운이 궁금해하며 되물었다.

“선앵이, 걔 너무 착하지. 그게 탈이야. 얼마 전 걔 엄마가 갑자기 너무 아파 의원에 갔는데, 그 집에 갑자기 돈이 어디서 나겠어. 월급을 타면 갚을 요량으로 전장에서 무슨 이상한 계약서를 쓰고 급전을 썼어.”

“그래서?”

“그 이자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나서 버는 족족 갚아도 감당이 안 돼서, 결국 하월산 계곡에 있는 광산의 선금장에 끌려갔어. 거기서 종일 뼈 빠지게 일해도 이자가 자꾸 늘어나 도저히 갚을 길이 없데.”

“…….”

“이젠 아예 집에도 못 와. 세상에 그런 나쁜 놈들이 세상에 어디 있어. 사정이 딱한 것을 이용해 아예 갚지도 못할 정도로 높은 이자를 매기고, 그러다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들면 성노리개로 만들어 놀다가 기루에 팔아치우기도 한데. 어쩜 좋아.”

영아는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다.

청운의 가슴속에 갑자기 분노의 불길이 확 일었다.

하지만 동생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겠지.”

청운은 동생을 달래듯 위로하고는 오늘 밤 그놈들을 반드시 응징하겠다고 결심했다.

청운은 어머니와 동생에게 바람을 좀 쐬러 간다고 말하고는 경신술을 최대한 전개해 순식간에 하월산 계곡으로 내달았다.

광산은 집에서 채 삼십 리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계곡 주변은 짙은 어둠이 꽉 들어 아 산어귀보다 훨씬 더 깜깜했다.

안력을 집중하자 이곳저곳 산허리가 파헤쳐진 곳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그곳 중앙에 유등이 희미하게 켜진 몇 채의 가건물과 천막이 보였다.

대충 둘러보니 가운데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가건물이 이곳 관리자 놈들의 숙소 같았다.

청운은 그곳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일부러 걸음에 공력을 주입해 땅이 쿵쿵 울리게 했다.

응징을 결심한 이상 단호해야 했다.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일이 잘못되어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라도 하면 안 하느니 못하게 된다.

건물 앞에선 청운은 자신의 검을 천천히 빼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절> 초식을 전개해 가건물을 가로로 두 동강 내버렸다.

우르릉.

콰—광—콰—앙.

쾅—쾅—쾅.

건물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허물어졌다.

“뭐야!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웬 날벼락이야.”

술판을 벌이다 말고 혼비백산한 놈들이 우르르 건물 밖으로 몰려나왔다.

놈들은 아직도 무슨 사태가 어떻게 발발한지 몰라 우왕좌왕 난리법석을 떨었다.

바로 그때 청운은 공력을 실어 우렁차게 놈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총책임자가 누구냐. 앞으로 나서라.”

그제야 상황을 판단한 놈들이 우르르 칼을 빼 들고 청운을 에워쌌다.

족히 십여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청운은 맨 앞에 선 삼십 대 중반의 산도적 같은 놈을 쏘아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네 놈이 이곳의 총책임자인가.”

“아니다. 나는 이곳을 지키는 수석 순찰이다. 곡주님은 오늘 낮에 방주님을 뵈러 가셨다. 그건 그렇고 네 놈은 도대체 누군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이런 행패를 부리느냐. 아예 간이 배밖에 나왔구나. 애들아, 쳐라.”

수석 순찰은 주변의 부하들에게 즉시 청운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청운은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에 즉시 <타—>초식을 전개해 자신에게 달려드는 놈들을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퍼—퍼—퍽—퍽.

으—악, 크—악.

끄—으—윽.

겁도 없이 청운을 향해 달려들던 놈들이 한꺼번에 가슴과 어깨 아니면 배를 부여잡고 주변에 나동그라졌다.

그제야 보통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순찰 대장이 기가 한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는 대체 누구신데 남의 사업장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오.”

평생을 거친 삶을 살아온 이런 놈들에게는 무력이 최고의 약이었다.

힘으로 타인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걸 즐기는 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실상 더 강한 힘이다.

청운은 내친김에 더 강하고 단호하게 일성을 내질렀다.

“지금 당장 이곳에 붙잡혀 와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계약서와 여기 모아 둔 금과 돈을 내 눈앞에 갖고 오라. 난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열까지 세겠다. 그 시간 이후로는 네 놈들의 목이 몸에 붙어 있지 않을 것이다. 하—나, 두—울…….”

“협객님,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대령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곳엔 계약서는 없습니다. 그것은 방에서 관리합니다.”

수석 순찰은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는 듯 아주 무기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이라니, 무슨 방. 정확히 말해라.”

청운은 한 번 더 단단히 고삐를 죄었다.

“예, 이 광산과 선금장은 독아방 소유입니다. 그래서 방의 허락 없이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수석 순찰은 선처만을 바라는 눈빛으로 청운을 쳐다보았다.

“방과의 문제는 내가 전적으로 해결하겠다. 당신은 내가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