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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13화 (13/184)

013화 두 줄기 기운이 생사현관에서 쾅하고 부딪쳤다.

청운은 또다시 무수한 행성과 성운이 자신을 중심으로 웅웅거리며 도는 꿈을 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청운이 온몸에 몽둥이찜질을 당한 듯한 통증을 느끼며 간신히 눈을 떴다.

하얗고 따뜻한 이불을 덮고 있었다.

이곳에 웬 이불이지, 하며 청운은 그것을 자세히 만져 보았다.

청운은 깜짝 놀랐다.

자신을 따뜻하게 덮고 있는 것은 대붕의 깃털이었다.

그는 대붕의 둥지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가 깨어난 것을 본 대붕이 머리를 돌려 청운을 바라봤다.

그 커다란 눈은 인세에는 없는 깊고 깊은 연못 같았다.

대붕은 심연 같은 눈빛으로 청운을 지긋이 쳐다보며 머리를 몇 번 주억거렸다.

아마도 대붕은 자신을 도와준 청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청운은 괜히 기분이 우쭐해졌다.

아마도 이런 기분 때문에 사람들이 약자를 돕는 모양이지, 하고 청운은 생각했다.

적곤은 보이지 않았다.

청운이 적곤을 공격한 그 잠시의 순간에 대붕이 기력을 회복해 적곤을 물리친 모양이었다.

난데없는 청운의 공격에 상처를 입은 적곤은 도저히 대붕을 상대할 수 없어 곧장 도망친 것 같았다.

청운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바로 그 순간.

청운의 단전에서부터 솟아난 두 줄기 뜨거운 기운이 백회혈과 용천혈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청운은 다급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청운은 재빨리 치우천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용천혈과 백회혈에서 맹렬하게 뻗어 나온 두 줄기 기운이 생사현관에서 쾅하고 부딪쳤다.

그 충격에 청운은 또다시 기절하고 말았다.

얼마 후 깨어난 청운은 자신의 몸속에 엄청난 기운이 용솟음치는 걸 느꼈다.

그 힘이 혈과 맥을 지날 때마다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졌다.

모든 세맥까지 기운이 충만했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청운은 자기 몸에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지 못했지만, 그것은 무림인이라면 꿈에서도 바라던 생사현관이 타통된 현상이었다.

몸에 날개라도 달린 것 같았다.

대붕의 둥지에서 훌쩍 뛰어내린 청운은 연못가에 떨어진 자신의 검을 주워 들고는 잠시도 머뭇거림이 없이 자신이 창안한 무위검법을 전개했다.

<쾌 — 타 — 절 —변 — 회 — 접 — 파척>

청운은 일곱 초식을 연달아 전개했다.

청운의 검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온 투명한 자색의 검기에 집채만 한 바위가 종잇장처럼 잘려지고 채 베어져 나갔다.

대단한 위력이었다.

청운은 자기 눈앞의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바위를 정말 자신이 저렇게 만들었는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청운은 자신이 너무나 장하고 대견해 하늘에 대고 장소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동굴이 응답이라도 하듯 중후하고 웅숭깊은 메아리를 청운에게 되돌려 주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초식은 자신이 창안해 놓고도 무슨 이유인지 전개가 불가능했다.

머릿속에서는 그 두 초식의 전개 방법이 훤히 보이는데 초식을 펼치려고 하면 공력이 끊어지고 동작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온몸의 혈관이 타들어가는 듯이 아프고 쓰렸다.

두고두고 풀어야 할 숙제 같았다.

아무래도 대붕이 그에게 뭔가 좋은 것을 먹인 모양이었다.

단전과 혈에서 기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났고 초식을 생각하기만 해도 그 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의 혈과 맥을 타고 돌아, 청운이 마음만 먹는다면 곧바로 검기로 발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운은 다시 대붕의 둥지로 훌쩍 날아올라 갔다.

그리고 대붕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그의 목 한쪽을 몇 차례 가볍게 쓰다듬었다.

대붕이 머리를 아래위로 끄덕이며 끼—륵—끼—르—르—륵 하는 소리를 지르며 청운의 인사에 응답했다.

대붕이 사람의 의도를 짐작하는 것 같았다.

청운은 혹시 하고 손으로 하늘로 뚫린 통로를 가리키며 양팔을 저으며 올라가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대붕이 몸을 바닥에 엎드리며 자기 등에 올라타라는 자세를 취했다.

청운은 대붕의 등에 잽싸게 뛰어올랐다.

대붕이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자마자 날개를 퍼덕이며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청운은 자신이 계곡으로 떨어진 현장에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어 대붕의 목을 툭툭 치며 그 방향으로 대붕을 유도했다.

청운의 뜻을 알아챈 대붕은 청운을 정확히 그곳에 내려주고는 자신의 둥지가 있는 동굴로 순식간에 다시 날아갔다.

* * *

현장 어디에도 그날의 사건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고도 청운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현장이 너무 깨끗한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한 청운이 현장을 떠나기 위해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절벽 한쪽의 커다란 바위 근처에서 반짝거리는 뭔가를 발견했다.

청운은 그것을 주워들어 살펴보았다.

그것은 여자들이 멋을 내기 위해 허리에 차는 옥으로 된 노리개였다.

노리개는 은은한 녹색 빛이 투명하게 감돌고 있었다.

게다가 표면에는 대단히 섬세한 솜씨로 봉황이 음각되어 있었다.

아주 질이 좋은 옥 같았다.

부잣집 여인이 아니면 감히 소유할 수 없는 물건 같았다.

‘누구 것일까.’

청운은 그날 그곳에 어떤 여자도 없었다고 기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럼 이건 누구 것인가.’

혹시나 어떤 단서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청운은 노리개를 품속에 넣고는 자리를 떴다.

우선 동굴에서 가지고 나온 백매태를 약방에 팔아 돈을 좀 마련해야겠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자신이 아는 한 이 정도 품질의 백매태면 제법 돈이 될 것 같았다.

우선 옷부터 한 벌 사 입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그동안 묵은 때를 벗겨 내고 싶었다.

청운은 거울을 보지 않고도 지금 자신의 몰골로는 사람 사는 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원숭이 꼴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집에도 한동안 돈을 부쳐주지 못한 것도 걱정이 되었다.

청운은 우선 산을 내려가자마자 백매태를 사 줄 약방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조급한 마음에 최대한 공력을 끌어올려 거의 날아가다시피 산길을 내달았다.

* * *

얼마를 그렇게 달렸을까.

족히 두어 시진은 쉬지 않고 달린 것 같았다.

최소 수십 리를 지나온 것 같았다.

과거 자신의 체력이면 아예 엄두도 못 낼 거리와 시간을 청운은 거의 날다시피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청운은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의 현재 몸 상태가 신기하게 여겨졌다.

이래서 무림인들이 공력, 공력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가 싶었다.

그렇게 달리던 어느 순간, 거의 십여 마장 떨어진 아래쪽에서 자신이 있는 산길로 올라오는 사람의 모습이 하나의 까만 점처럼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운의 안력으로는 도저히 물체를 식별할 수 없는 거리였다.

청운은 그 사람이 놀라지 않도록 서서히 속도를 죽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수염이 성성한 육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허리에 대나무로 짠 망태기를 매고 손에는 호미를 들고 있었다.

전형적인 약초꾼의 모습이었다.

노인을 보자 아버지 생각에 청운은 극도로 공손하게 그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저, 어르신 말씀 좀 묻겠습니다.”

청운은 깊숙이 머리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가. 젊은 양반.”

빗질을 안 해서 제멋대로 들쑤셔 놓은 것 같은 머리카락과 스치기만 해도 금방이라도 찢어져 버릴 것 같은 누더기를 입고 신발 또한 다 헤져 엄지발가락이 툭 튀어나온 거의 산짐승 같은 청운의 몰골에 너무 놀랐는지 노인은 다소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르신, 여기서 어디로 얼마쯤 더 가야 관도가 나오는 지요. 그리고 근처에 큰 약방은 어디쯤 있는지요.”

“이 산길로 쭉 사십여 리만 가면 바로 관도가 나오네. 그리고 거기서 길이 갈라지는데 오른쪽 길로 한 오십여 리만 가면 성도 초입이 나온다네.”

“…….”

“그리고 성도 안에 약재상들이 즐비하네. 뭘 팔고 사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대련약방>을 찾아가게. 거기가 가장 후하고 양심적이네.”

노인은 무슨 바쁜 용무가 있는지 청운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몸을 돌려 총총히 떠났다.

청운은 멀어지는 노인의 등 뒤에 대고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 * *

청운은 지금 자신의 몰골이 어떤 모양새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면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을 골라 성도 초입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대련약방>을 찾았다.

약방은 제법 규모가 있었다.

청운이 약방의 문을 밀고 안에 들어서자, 약방을 지키고 있던 열대여섯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읽던 책을 바닥에 떨어트리며 벌떡 일어났다.

청운의 산짐승 같은 몰골에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소년은 두려운 표정을 얼굴 가득 내비치며 더듬더듬 말을 버벅거렸다.

“여… 여… 기는 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예. 제가 귀한 약제를 조금 가지고 있어 팔려고 왔습니다.”

급한 마음에 청운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등에 짊어진 백매태 꾸러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지금 주인님은 출타 중이십니다. 손님, 좀 나중에 오시지요.”

청운의 몰골에 놀란 약방 사환은 당장이라도 청운이 약방에서 나가주었으면 하는 말투로 짧게 말했다.

“여기서 좀 기다리면 안 될까요.”

지금 당장 이런 몰골로 어디를 가기도 곤란한 청운은 부탁의 어조로 말했다.

“글쎄요, 손님. 주인님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니까요.”

사환은 아까보다 훨씬 더 짜증이 난 표정으로 청운에게 은근한 축객령을 내렸다.

청운은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내려놓았던 백매태 꾸러미를 다시 어께에 짊어지고 약방을 나가려고 등을 돌렸다.

바로 그때 백삼을 입은 사십 대 중반의 약간 마른 체형의 사내가 약방의 문을 밀고 들어오면서 사환에게 물었다.

“그 동안 별일 없었지.”

“여기 이분이 무슨 약재를 팔겠다고 왔습니다.”

사환은 그 중년인에게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그제야 그 중년인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사환의 바로 옆에 있는 봉두난발의 행색을 한 청년의 아래위를 자세히 살펴보며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래, 무엇을 팔려고 오셨소. 한 번 봅시다.”

청운은 등에 진 백매태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으려고 할 때 주인이 말했다.

“약재를 그렇게 바닥에 함부로 놓으면 안 되지요. 손님, 여기 탁자에 올려놓으시지요.”

청운이 약재를 탁자에 올려놓자 주인은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커다란 돋보기를 꺼내 약재를 꼼꼼하게 살피다가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이건 최상질의 백매태가 아니요. 이렇게 많은 백매태를 도대체 어디서 채취했소.”

주인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청운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고, 이걸 사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약방으로 가고요.”

청운이 약간 배짱을 부리듯 약방 주인에게 물었다.

“이런 걸 안 사면 그 약재상은 문을 닫아야지요.”

주인은 청운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고는 사환에게 즉시 차를 내오라고 시켰다.

“그래, 도대체 얼마를 받길 원하오.”

주인은 단도직입으로 청운에게 물었다.

“정확히는 안 달아봐서 나도 모르겠지만 족히 백 근은 넘는 양입니다. 근당 은자 다섯 냥은 받아야 하겠습니다.”

청운은 거래의 우위를 선점하려고 일부러 가격을 조금 더 높게 불러보았다.

“이게 최상질의 것이긴 하나 저도 어느 정도 남아야 장사를 하지요. 은자 사백 냥을 드리지요.”

주인은 그만하면 적절한 가격이라고 말했다.

청운도 그 정도 금액이면 적당한 것 같아서 흔쾌히 동의했다.

“백 냥짜리 전표 석장과 나머지는 은자로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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