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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4화 (4/184)

004화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시공에 빠져드는 것 같은

고서와 밤낮으로 씨름하던 어느 날, 청운은 마찬가지로 표국의 일을 끝낸 후 저녁을 먹었다.

이후 방으로 돌아와 창을 열고 아무 생각 없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올려보던 그의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뇌전처럼 머리를 강타했다.

‘맞다. 옥함의 그 환에 별자리가 새겨져 있었지.’

청운은 어쩌면 그게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별안간 했다.

다음날 일을 마치자마자 청운은 성도의 저잣거리 난점에 들러 녹을 닦아 내는 약을 사 왔다.

청운은 부드러운 광목에 약을 듬뿍 찍어 환을 정성껏 닦기 시작했다.

녹을 벗겨 내자 환은 반투명한 자색의 은은한 빛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시선을 집중에 환을 불빛에 비춰 보자 그 속에 무수한 별자리와 성운이 신비롭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별자리와 성운들은 금방이라도 밤하늘 가득 떠오를 것처럼 찬연하고 생생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청운은 자신의 몸이 그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시공에 빠져드는 것 같은 아득한 느낌을 받았다.

청운은 다른 쪽 환도 닦아 보았다.

두 개의 환을 동시에 들어 불빛에 비춰 보았다.

바로 그 순간 청운은 아! 하고 뭔가를 깨달았다.

그랬다.

그 고서의 문자는 바로 별자리를 응용해 만든 것이었다.

왼쪽 환에 있는 별자리는 자음을 나타내고, 오른쪽 별자리는 모음에 해당되었다.

* * *

모든 것은 나의 불찰 때문이었다.

나의 못난 아집과 잘못된 판단이 수천 년 영화를 누려온 환국을 파국으로 이끌고 말았도다.

내가 역도들의 꾐에 빠져 황제와 칠십 세 번을 싸워 모두 이긴 내 아우 치우와 헌원을 기어이 탁록에 보내어 죽게 만들고 말았도다.

그 전투는 황제의 함정이라고 죽어도 출정하지 않겠다는 치우와 헌원의 충절을 의심해 환국의 기둥인 그 둘을 결국 사지로 몰아넣고 말았도다.

특히 치우는 나의 고집에 너무 격분한 나머지 자신을 지켜주는 신물이자 부적인 치우환마저 빼놓고 출정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말았도다.

그의 황망한 죽음은 전적으로 내 탓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를 죽인 황제가 후세에 그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게 그의 시신을 다섯 토막 내어 다섯 방위에 뿌리고 간 것이다.

아우의 시신을 모아 온전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였구나.

죽어서 청제, 적제, 황제, 백제, 흑제의 오방신이 된들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 부질없고 부질없도다!

한날한시에 같이 죽자고 피보다 진한 의로 맺은 맹세와 신의는 나의 잘못으로 깨어지고, 그 틈을 타 역도들은 세상의 불과 물을 다스리는 <환서>, 나라의 물자와 상업을 일으키는 <환척>, 파사와 퇴마의 묘가 기록된 <환경>을 갖고 달아나 버렸다.

환국은 삼보를 잃고 서서히 국력이 쇠하여 마침내 내 대에 이르러 여러 땅으로 찢겨 분리되고 말았도다.

연자여, 여기 내 아우 치우의 신물인 치우환과 치우천결을 남기니, 치우환을 차고 치우천결을 열심히 연마하여 그 힘을 온전히 얻기를 바란다.

내 말대로 하면 후인은 틀림없이 미증유의 공능을 얻을 것이다.

부디 그 힘을 전부 얻어 세상에 복되는 일에 쓰기를 바라노라.

그리고 악인의 손에 천결이 들어가면 세상은 감당치 못할 혼란에 빠질 수 있으니 구결을 다 외우면 반드시 태워 없애라.

<환국의 서>, 환단 서

* * *

황당했다.

청운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전설인가 싶었다.

<환국>이라는 나라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국명이었다.

청운은 누군가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하고 괜히 헛고생만 했다는 생각에 허탈했다.

책을 탁자 한쪽으로 밀쳐낸 청운은 남은 차를 마저 마신 후 침대에 쓰러지다시피 누웠다.

머리를 식히려고 열어 둔 창으로 아득한 밤하늘이 보였다.

검은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무수한 별들이 어제처럼 제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하늘의 질서와 섭리로 오늘도 하늘은 변함없이 운행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난 과거를 회상하듯, 밤하늘의 심연을 쳐다보던 청운은 갑자기 벌떡 상체를 일으키고는 다시 곰곰이 <환국의 서>를 생각해 보았다.

그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그리고 이렇게 책자와 정교한 유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일이 실재했던 일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저 한 쌍의 환이 치우환이라면 치우천결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고서를 몇 번이나 살펴보아도 어디에도 그런 구결은 없었다.

청운은 다시 한 번 환과 고서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작정하고 먼저 옥함을 열었다.

환은 거의 종잇장만큼이나 얇았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도 전혀 뒤틀리지 않았다.

이리저리 힘을 주어 뒤틀어도 금방 원래의 모양으로 복원되었다.

도대체 무슨 물질로 만들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은은한 자색을 띠는 표면에는 금방이라도 밤하늘에 올라가 빛나고 흐를 것 같은 성좌와 성운이 은하수처럼 떠 있었다.

손으로 더듬으면서 환을 자세히 살펴보던 청운은 갑자기 ‘아!’ 하고 짧은 비명을 토했다.

종잇장처럼 얇디얇은 환의 세로 면을 눌러보다 살짝 손가락을 베었던 것이다.

몇 방울의 피가 환으로 스며들자 스르륵 하는 미끄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환이 활짝 열렸다.

청운은 환을 양 팔목에 찼다.

그러자 환은 열릴 때와 마찬가지로 청운의 팔목에서 스르르 감기듯 닫혀 버렸다.

평소에 어떤 장신구도 착용하지 않던 청운은 다시 환을 벗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으나 환은 마치 처음부터 팔목의 일부인 양 착 달라붙어 도저히 벗겨 낼 수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환의 비밀을 풀기 전까지는 계속 차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청운은 체념했다.

다행히도 양팔에 환을 찾음에도 전혀 불편하거나 무게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청운은 혹시나 자신이 놓친 부분은 없는지 한 장 한 장 세심히 고서를 다시 살피며 넘겨보았다.

거의 문장 한 단락 한 단락을 곱씹듯이 살펴도 그 어떤 특이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허탈했다.

역시 이것은 어느 미친놈의 허무맹랑한 잡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권을 내팽개치려는 순간!

청운은 마지막 권의 뒤표지가 다른 쪽보다 조금 두껍다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청운은 뒤표지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풀에 엉겨 붙은 종이를 떼어 내듯 조심스럽게 두 쪽으로 갈랐다.

‘아! 있었다. 정말 있었다.’

딱 표지 크기로 두 번 접힌 얇고 부드러운 양피지가 표지 속에 있었다.

양피지를 꺼낸 청운은 양피지가 상하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펼쳤다.

너무 세월이 오래되어 문양과 그림이 희미했지만, 양피지에는 인체의 윤곽과 인체 위에 무수히 찍힌 성좌, 그 성좌를 도는 성운이 그려져 있었다.

또한 바로 그 아래에 그것을 운용하는 구결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청운은 침대 위에서 즉시 결가부좌를 틀고 구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 * *

유무상생이라, 무와 유는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서로를 살린다.

그 둘의 조화로움에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모든 생명이 있다.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돌은 원래 같은 것이다.

어느 것이 본질이고 어느 것이 그림자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경계 없는 관계로 이어지니 세상 모든 사물과 생명이 그 길을 따라 생성되고 멸하고 다시 생성되니 유 아닌 것이 없고 무 아닌 것 또한 없음이니…….

유즉시무 무즉시유라.

만물을 만드는 기는 없는 것 같지만 있고, 텅 빈 것 같지만 꽉 차 있고, 크기가 무한이라 아무리 퍼내도 줄지 않으니 원하면 생각만으로도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다.

그것은 시공간과도 무관하니…….

* * *

청운이 정신을 집중하며 구결을 운용하자 갑자기 알 수 없는 어떤 뜨거운 기운이 단전에서 올라와 혈과 맥을 맹렬하게 돌게 하기 시작했다.

마치 성운과 성좌가 스스로 제 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듯이 그 기운이 청운의 온몸을 범람했다.

더 놀라운 것은 청운이 양팔에 찬 환속의 성좌와 성운도 자색의 투명한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며 빙긍빙글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환이 서서히 청운의 팔목에 스며들었다.

청운은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눈을 감고 계속 구결을 운용하다 동이 트는 새벽이 되어서야 번쩍 눈을 떴다.

동시에 환도 완전히 청운의 팔목으로 녹아들 듯 스며들어 전혀 흔적이 없었다.

청운은 한잠도 자지 않고 밤을 꼬박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날아갈 듯 개운한 것을 느꼈다.

모든 뼈와 근육 그리고 혈관에 뭐라고 형언할 수조차 없는 힘이 넘쳐흘렀다.

‘아! 이런 기분이라니.’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소싯적 아버지가 깊은 산에서 캐다 준 산삼을 먹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활시위를 당기듯 기지개를 몇 번 켠 후 청운은 고서에서 당부대로 구결이 적힌 양피지를 불살라 버렸다.

* * *

하남표국 국주의 집무실.

붉은 자단목이 늘어뜨려진 원탁에 국주와 총사 그리고 총표두가 식어 가는 차를 앞에 두고 마시지도 않은 채 말없이 둘러앉아 있다.

침묵의 분위기가 천근만근 무겁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간간이 한마디씩 던지는 말과 말 사이로 침묵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청운이 문을 열고 들어섰음에도 모두가 오랜 세월 제자리를 지키고 선 석상처럼 조금의 미동도 없이 흘깃 눈빛만 건넨다.

온 얼굴에 무거운 침묵이 덕지덕지 내려앉은 표정의 국주가 청운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턱짓을 한다.

국주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앉은 말을 억지로라도 할 수밖에 없다는 말투로 청운에게 말을 건넨다.

“왔는가. 할 말이 있어 이렇게 자네를 불렀네. 다다음 달 그믐이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일천의 갑년인 걸 혹시 알고 있나. 강 서기.”

“예, 작년 가을에 성도에 갔을 때 우연히 남궁영봉 낭자를 만나 초대장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청운은 그때 남궁영봉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일을 간단하게 국주에게 말했다.

“그것 참 잘 됐네. 자네 고향도 그곳과 가까우니 자네가 남궁가주의 생신에 좀 다녀오게. 남궁세가는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가이니 절대 소홀히 대할 수 없네.”

“네.”

“그리고 길을 나선 김에 남궁세가의 일이 끝나는 대로 산서에 있는 무림맹까지 좀 다녀오게. 안휘에서 산서까지는 그렇게 먼 길이 아니니. 그리고 총표두도 함께 갈 것이네.”

마치 말하기 힘든 말을 억지로 다 마쳤다는 듯이 국주는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국주님, 남궁세가의 일은 그렇다 치고 무림맹은 무슨 까닭으로…….”

청운은 말끝을 흐리며 국주에게 물었다.

“아, 그것은 황 표두 사건 알지? 황 표두의 시신을 화장할 때 그의 머리에서 사람의 이지를 제압해 조종하는 제혼침이 나왔다네. 그런 사악한 수법을 사용한 걸 보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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