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피비린내.
코를 찌르는 그 지독한 내음이 훅 하고 닥쳐올 때 나는 잠에서 깬 듯 정신을 차렸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 중심을 잡으며 바로 서자 곁에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대형. 졸기라도 하셨습니까?”
“아, 저희한텐 내일 긴장된다고 못 자면 다 죽는다고 해놓고, 대형이 잠을 자지 못한 겁니까?”
멍하니.
그 목소리들을 듣다가 입을 뗐다.
“우리, 지금 뭐 하러 가고 있었지?”
“예?”
“……?”
내 물음에 떠들썩한 목소리들이 멈춘다.
잠시 침묵.
“그야 뭐.”
그리고,
“천마 놈. 목 따러 가고 있었죠?”
마치, 마실이라도 가는 중이었다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랬었지.”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가만 고개를 끄덕이고 보니 광활한 대지가 보인다.
온 세상의 봉우리를 모아 놓은 듯한 십만(十萬) 개의 대산과, 그 가운데 저 하늘에 닿을 뜻 뻗어 있는 천산(天山)이.
그 모습을 가만 보다 고개를 뒤로 돌리니, 이번엔 너무나 그리운 정경이 보인다.
사천당가(四川唐家).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부서지기 전.
낡았으되 장엄하고, 화려하되 정갈한.
기나긴 역사가 담긴 한 가문의 영토가 보인다.
‘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 걸음을 내디디면 전장으로 향하는 것이고, 한 걸음을 물러서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무것도 잃지 않을 수 있고, 너무나 그리웠던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
그 생각에 저도 모르게 우두커니 멈춰 섰을 때,
“대형, 뭐 하십니까?”
“설마, 진짜 겁먹은 겁니까?”
“설마… 쫄?”
“…마지막 새끼 나와.”
“왜 나만!!”
으하하하하!
그 걸음이 떨리지 않게, 온 세상이 대신 떨리게 만드는 웃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빌어먹을 놈들. 너희는 쫄리지도 않냐?”
그 한복판에서 나도 모르게 웃어젖히다가 물었다.
그에 녀석들도 함께 껄껄 웃어대다가 답했다.
“당연히 쫄리죠.”
“천마 그놈이 어디 보통 무시무시한 놈입니까?”
“천하의 장강용왕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잖습니까.”
“하오문의 그 녀석도 진지하게 밑에 녀석들 빼돌릴 생각부터 하던데요?”
두렵다.
무섭다.
천마라는 괴물을 상대하는 감정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근데 솔직히 겁나는 게 당연하긴 해.”
“맞아, 맞아. 듣자 하니까 놈은 산도 무너트린다던데?”
“그래? 난 땅을 가른다고 들었는데.”
“하늘을 갈라버린다고 까진 들었다.”
어째 증언들이 첨가될수록, 녀석에 대한 악명이 무성해졌다.
그에 어처구니가 없어 되묻다가,
“너희… 진짜 그놈 잡으러 갈 생각인 거 맞냐?”
“아, 그야 물론이죠.”
“그러니까 이렇게 함께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문득 들려온 말에 우뚝 멈춰 서 버렸다.
“…함께?”
“네, 함께.”
“함께… 함께라…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것이구나.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너무나 늦게 깨달은 사실에 걸음을 멈춰 섰고, 함께 가던 녀석들도 멈춰 섰다.
“있잖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가 내리는 것인지, 물기 젖은 시야가 뿌옇다.
“나, 사실. 너희들 얼굴이 잘 기억이 안 나.”
이유는 모르겠다.
고작해야 일 년 남짓일 뿐인데, 이렇게 함께 있어도 녀석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삼십 년을… 잠들었다 깨어난 영향 때문일까? 항상, 이렇게 네 녀석들 목소리는 귓가에 아른거리는데. 암만 생각해도 네 녀석들 얼굴은 떠오르지 않아.”
아까부터 그랬다.
그렇게 즐겁게 웃고 떠들었던 주제, 녀석들을 바라볼 때마다 보인 것은 짙게 진 그림자뿐이었다.
“난… 나는, 그러니까 나는…….”
그 사실이 심장 어림을 아프게 할 때,
“잘됐네요.”
“…어?”
문득 들려온 목소리가 내 몸을 움찔 떨리게 만들었다.
“그거, 완전 잘됐다는 뜻 아닙니까?”
“잘…됐다고?”
“그쵸. 잘된 거죠.”
“그건 맞지. 그거 완전, 이젠 좀 잘 지내고 있다는 뜻 아닙니까?”
“원래 새로 사귄 친구들이랑 놀다 보면, 어릴 때 사귄 놈들은 어느새 잊게 되는 게 당연한 법칙입니다.”
“그러다가도 또 오랜만에 보면 반갑고, 정겹고 그런 거죠. 인생사가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한마디씩, 한마디씩.
녀석들은 툭툭 던져왔다.
“그걸 미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형.”
“저희도, 오히려 그런 걸 바랐으니까요.”
“안 그랬으면, 솔직히 속 터져 죽었을 듯?”
낄낄거리며 웃는 녀석들의 목소리가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마치, 신기루처럼.
원래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하나씩 흩어져 간다.
“그러니까, 대형.”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쇼.”
“우리도, 끝까지 함께할 테니까.”
사라져 가는 녀석들을, 나는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그저 습기 찬 눈으로 저 하늘을 바라봤고, 그런 내게 인사하듯 솟구치는 아지랑이들이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대형.”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
언제나, 내가 천둥벌거숭이처럼 나돌아다닐 때마다 묵묵히 뒤를 받쳐주었던 녀석.
“고생하셨습니다.”
천하제일세가, 사천당가의 가주.
대독협(大毒俠) 당사명.
녀석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고생이라.”
다른 녀석들이 그런 말을 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싶었지만.
이 녀석이 그런 말을 하니 괜히 목이 먹먹해지며 북받쳐 오르는 게 있었다.
“그래, 나. 진짜 고생 많이 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말하자면, 서책으로 집필해도 족히 열네 권 분량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답지도 않은 관리직을 맡아서, 더럽게 말 안 들어 먹고 재능도 없는 놈들 키워 내려니 답도 없더라. 힘들게 키워 놨던 가문은 쫄딱 망해 있고, 알던 놈들은 한 놈 빼고는 싹 다 뒤져 있고…….”
쌓여 있던 게 줄줄 새어 나왔다.
다른 녀석들 앞에서는 하지 못했던 말들이 사명이 앞에서는 잘만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또… 음……”
“왜 그러십니까, 형님.”
열심히 말을 이어 가던 나는 문득 말문이 막혀 오는 걸 느꼈다.
녀석은 언제까지라도 들어줄 듯 뒤편에 가만히 서 있었지만, 그 모습에 나는 더더욱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뒤를 돌아본다면, 언제나처럼 내 얘기를 듣고 웃어주는 녀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겠지.”
여기까지다.
어리광이나 피우고 있는 것은.
“사명아.”
“네, 형님.”
“나, 정말 노력했다.”
“알고 있습니다. 항상 지켜봤으니까요.”
“…그러냐.”
역시 그랬던 건가.
너무나 늦게 깨닫게 된 사실에, 나는 하늘을 바라보던 고개를 내려 앞을 바라봤다.
이젠 눈 내린 천산도, 십만 개의 봉우리를 자랑하는 십만대산도 없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다면 직전까지 있던 정겨운 풍경도 다시 찾아볼 수 없겠지.
“그럼, 계속 부탁해도 되겠냐.”
“물론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으며 가야 할 길을 되찾았다.
어느새 나를 감싼 세상은 어둠으로 물든다.
그 사이로 총천연색의 빛이 스며들지만, 아직 나를 그로부터 보호하고 감싸주는 이 어둠의 비늘들은 그 윤기를 자랑하며 똬리를 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 고맙다.”
그러니까,
이젠, 내가 먼저 이 껍질을 부수고 나갈 차례였다.
“조금만 기다려라.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까.”
* * *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욱 밝은 별빛으로 가득한 공간.
감히 우주(宇宙)라 칭할 수 있는 세상으로 빠져나왔다.
어째서 이곳을 암흑 공간이라고 생각했을까?
사실은, 이토록 무수한 별빛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 크르르…….
그 속에서 나를 감싼 탐(貪)을 바라본다.
아니, ‘녀석들’을 바라본다.
“내가 그렇게나 못 미더웠던 거냐? 죽어서도, 그리 떠나가지 못할 정도로.”
혼자라고 생각했다.
삼십 년이란 지난한 세월이 흘러가고,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지난한 세월 동안 날 기다려준 녀석들이 있었고, 그 녀석들이 줄곧 나와 함께해 왔다.
‘그걸 깨닫기까지 일 년이나 걸렸다니.’
그건 참, 내가 생각해도 참 멍청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신공(神功)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혼원신공을 창안해 낼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오로지 하나뿐이었으니, 삼십 년 전에 나를 떠나보내지 못했던 녀석들이 지금껏 남아 나를 지켜주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지난 세월, 나 하나 지켜주겠다고 이 세상에 남은 녀석들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이 개개인의 의식이 남아 있거나 하지는 않다.
녀석들도 각각 개인으로서는 버틸 수 없었기에, 서로가 뭉쳐 하나가 되어 버티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녹여내 내 안에 깃든 녀석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당가의 전성기를 이끌던 내 형제 놈들이라 부르기도 힘든 수준이 되었다.
그러니까,
“혼(魂)이라고 칭하자.”
뭉뚱그려서, 그렇게 칭하자.
내 안에 간직한 당가의 혼이라고 칭하자.
- 크르르…….
그 호칭이 꽤 마음에 드는지, 녀석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훌륭하군.”
저 너머의 공간에서, 별무리가 하나의 형태가 되더니 천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독한 놈. 그걸 맞고도 안 죽었냐?”
“그대의 마지막 일격을 제법 신공(神功)이라 칭할 만했네. 하지만 고작해야 한 번뿐 아닌가. 진정 신의 힘을 다루려면, 그것을 물 흐르듯 사용할 수 있어야지.”
공(空)의 독은 천마의 존재를 빛무리로 만들어 흩트렸지만, 녀석은 기어코 육체를 재구성해냈다.
그게 가능한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몰랐는가? 원래 누군가에게 떠받들어지는 자리라는 것은, 반대로 그들 모두를 등 뒤에 짊어지는 자리라는 뜻일세.”
녀석의 등 뒤로는 수많은 별무리가 내려앉아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휘광(輝光)과도 같아 흐드러지도록 아름답지만, 반대로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는 이의 입장에선 등허리가 부러질 만큼의 무게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일세.”
천마.
녀석은 분명 타고난 신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 우주 어딘가에 떠도는 유성(流星), 혹은 별무리에 가까운 존재였다.
하지만 누구든 좋으니 자신들을 도와줄 이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 의해 떠받들어졌고, 어쩌다 보니 그들의 신이 되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져야만 했다.
그럼에도, 녀석은 그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냐.”
그것이 필연인지 우연인지는 이제 중요치 않다.
녀석이 그것을 즐겼을지 괴로워했을 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나나, 녀석이냐 짊어진 이들끼리 이제 그 끝을 봐야 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런 것일세.”
천마.
녀석의 등 뒤로 피어오른 별무리가 찬란한 빛을 발했다.
- 크르르…….
그에 지지 않으려, 내 뒤로 똬리를 튼 탐(貪)이 저 우주를 향해 포효했다.
대단원(大團圓).
길고 길었던 전쟁이, 이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