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26화 (326/350)

326화

자리에서 일어서는 당지명의 모습을 보고 방계들은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어이, 거기 멈춰.”

“시체 같은 놈이, 귀도 먹은 거냐?”

“입 닥쳐. 송장 썩는 악취가 여기까지 풍기잖아.”

저급하기 짝이 없는 값싼 도발.

저런 말을 할 만한 사람은 그들 사이에 하나뿐이지만,

‘나, 나 아냐!’

당불퇴는 전력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금 제대로 목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그들의 맏형이 보였다.

“진작 관작에 들어가야 할 녀석이, 잘도 살아서 나불거리고 있군.”

“허허… 어디 그럴듯한 무명조차 날리지 못한 녀석이…….”

흑시문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하지만 그도 잠시,

쿠구구구…….

가공할 기세가 왜소한 그의 육신을 타고 흐르며 장내에 무시무시한 살기가 뒤덮였다.

“좋다. 결정했다. 반은 살리고, 반은 강시로 만들어주마. 그렇게 둘로 나뉜 뒤 싸움을 붙이는 게야. 어때, 재밌을 것 같지 않나?”

“나 또한 결정했다. 넌 그냥 여기서 죽는다.”

당지명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온몸을 짓누르는 살기가 느껴졌지만, 두려움 따위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가라앉아야만 했다.

“율기.”

“예, 형님.”

“가주님의 상태는?”

“응급조치는 끝냈습니다. 그리고 이게 설명은 힘든데… 가주님의 내부에 거대한 힘이 존재합니다. 제가 아니었어도 목숨을 잃지는 않으셨을 듯합니다. 다만…….”

“그만. 그거면 됐다.”

가주님께서 당최 무슨 수를 부리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위중하지 않으시다면 그걸로 그만.

지금은 그저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기로 했다.

“문주님.”

그리고, 당지명과 마주한 흑시문주의 뒤로 창백한 안색의 무인들이 다가섰다.

그들은 흑시문의 강시술사들.

강시공을 깊이 있게 익히고, 스스로의 육신조차 반 강시로 만들어낸 이들도 흑시문에서도 고위 간부에 속한 이들이었다.

“산채로 데려오면 되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사지를 뽑아 대령하겠나이다.”

오로지 흑시문주에게만 충성하도록 세뇌된 그들이 얌전히 명을 기다리자 흑시문주는 고개를 저으며 화답했다.

“아니, 물러서라. 저들은 나 혼자 상대한다.”

여기서 부하들을 부린다면 결판은 쉽게 나겠지만, 그래서야 면이 살지 않는다.

자신을 조롱한 이들을 홀로 짓밟고 모독해 줘야 다른 사패천의 무인들 앞에서 면이 사는 것이다.

‘이미, 투왕이 그리했으니까.’

남이 한번 한 것을 따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전장이 전장이기에 어쩔 수 없다.

보기 좋게 정천맹을 밀어붙이고 그들의 숨통을 끊는 결전지인 만큼 그 정도의 압도적인 장면은 연출해 줘야 했다.

“자, 덤벼보아라.”

그렇게 시작된 일 대 서른셋의 전투.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흑시문주는 오연히 웃으며 흑시공을 전력으로 운용했다.

스스스…….

손끝에서 시작된 검은 물결이 전신을 뒤덮고 순식간에 검붉게 물들였다. 당지명 역시 귀원일기공을 최대 출력으로 전개했다.

“토악질 나게도 생겼군. 그나마 다행이야. 생긴 거나 하는 짓이나 똑같이 역겨워서.”

그래야 진심으로 살의를 가지더라도 마음에 미련이 없지.

“차양당, 전원.”

여태껏 없던 분노로 충천한 당지명이 차갑게 읊조렸다.

“삼재진을 전개한다.”

“존명!”

“존명!”

그의 명령에 따라 방계들 역시 귀원일기공을 전개하며 삼재진을 발동시켰다.

밥 먹듯이 익힌 귀원일기공과 숨 쉬듯 익힌 삼재진이 순식간에 발동되며 장내를 자신들의 영역권으로 만들었고, 그 한 중앙에 놓인 흑시문주는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무얼 한다 했더니, 고작해야 합격진인가?”

우습기 그지없다.

두 다리에 내공을 불어넣은 흑시문주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쇄도해 당지명의 위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역시, 반응조차 못 하는군.’

벽을 넘어선 자들만이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의 속도.

저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는 기세 좋게 나선 주제 그 속도에 언감생심 발끝조차 들이밀지 못하는 이었다.

그런 이의 목을 분지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

내리 휘두르는 손이 단번에 당지명의 목을 향해 꽂힐 때―

티잉!

무언가에 걸리며 흑시문주의 손이 바깥쪽으로 튕겨 나갔다.

‘은사?’

그것이 너무나 얇은 은사이며 이 주변을 빼곡히 뒤덮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당지명은 고개를 돌려 흑시문주를 쫓고 있었다.

비록 그의 감각을 아득히 상회하는 속도로 나타났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 비천은사로 온몸 주변을 휘감고 있다가 그중 하나에 흑시문주가 포착되자 곧바로 움직인 것이다.

“거기냐.”

차양십이지명(遮陽十二之命).

천년혈주(天年血蛛).

수십 수백에 달하는 은사들이 일제히 움직이며 흑시문주를 향해 폭사됐다.

카카카칵!!

거친 쇳소리가 그의 전신에서 울려 퍼졌고, 비늘 같은 것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이놈이?!’

비천은사의 위력은 어지간한 칼날보다 더욱 날카로웠지만, 흑시공으로 강화된 흑시문주의 육신은 그것들을 튕겨내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지만, 당지명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은사들을 조율했다.

꾸구국―

흑시문주를 둘러싼 수십 수백의 은사가 그를 꽁꽁 묶었고, 그 틈에 측면에서 당불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이, 개자식아!!”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콰아아앙!!

폭음이 일며 흑시문주의 몸뚱이가 옆으로 처박혔다.

“큭… 이, 이것들이?”

거칠게 땅바닥을 나뒹군 흑시문주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런 방비도 없이 당불퇴의 필살기를 몸으로 받아냈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그러나 장내의 누구도 그 모습에 신경 쓰지 않았고 일어나면 일어난 대로 자기 차례라며 달려들었다.

“죽여버려!!”

“가만 안 둔다!!”

그야말로 무모한 도약이었고, 흑시문주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이다지도 많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어디서 잔재주를!”

그가 두 손을 휘두르자 비천은사들이 통째로 말려 왔고, 운신의 제약을 풀어헤친 그는 다시금 쌍장을 휘둘러 달려드는 방계들을 그대로 휘몰아쳤다.

콰콰쾅!!

허공 중에 검은 폭발이 일며 방계들은 바닥을 나뒹굴었고, 흑시문주는 그대로 몸을 돌려 당지명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사이로 끼어드는 이가 있었으니,

“형님한테 가려면, 나를 먼저 넘어서야지!!”

한 마리의 푸른 야수처럼.

순식간에 당지명과 흑시문주의 사이에 끼어든 당불퇴가 청야권을 날렸다.

당불퇴의 전심전력이 담긴 일격이지만,

“같잖다!”

흑시문주가 보기에 그 권로는 너무나 단순하고 일직선적이었으니, 살아오며 수십 종의 무공을 익혀온 그에게 청야권은 파훼하기 너무 쉬운 단순무식한 무공이었다.

턱―

가볍게 손을 뻗어 당불퇴의 권로를 파헤치고 상대의 맥문을 잡아챈 흑시문주는 있는 힘껏 반대편 지면으로 내리꽂았다.

콰아아앙!!

“크악!!”

바닥이 부서지며 파편이 일 정도의 충격.

그 모습을 바라본 당지명은 탄식하며 소리쳤다.

“야, 이놈아! 그러게 진작 새로운 기술 좀 만들라니까!!”

그놈의 청야권 외길.

이 와중에도 같은 것만 쓰다가 저렇게 두들겨 맞는구나.

탄식하는 당지명을 향해 흑시문주는 차갑게 조소하며 쇄도했다.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그의 손끝이 검게 물들며 단번에 당지명의 목젖을 꿰뚫기 위해 날아들었다.

그에,

“그건 우리가 할 말이지.”

“당주 형님은, 남 걱정해도 되거든!”

다른 방계들이 달라붙어 그의 일수를 쳐냈다.

‘내 공격을, 막아냈다고?’

흑시문주의 눈이 부릅떠졌다.

‘제아무리 진법을 전개했다 한들, 저놈들과 나의 격차는 한낱 쥐새끼와 범보다도 더욱 아득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내 공격을 차단해?’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의 차갑다 못해 냉철하기까지 한 이성은 눈앞에 벌어진 놀라운 일에 당황하기보다는 그 해답을 도출해 내기 위해 움직였다.

‘저들이 독을 다루는 이들인 만큼, 신체 능력에 영향을 주는 것 정도는 예상했다. 저들 가주가 그랬던 만큼 신체 능력을 크게 증폭시키는 수단이 추가적으로 있을 수도 있다. 혹은, 믿기 어렵지만 내 육체에 영향을 줄 극독이 존재한다거나.’

하독 방법이야 독의 조종이라 불리는 당가인 만큼 어느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중독시켰을지 미처 예상하기 힘들었다.

진법을 펼쳤으니 그 영향력 안에 들었다면 무조건 중독되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자체는 크게 개의치 않는데,

‘문제는, 내가 중독되어 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 그 자체!’

흑시문주가 익힌 흑시공은 익힌 대상의 육신을 강시처럼 만들어준다. 세간에서야 강시가 된다는 것이 꺼름칙하고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겠지만, 흑시문도들에게 있어 강시란 인간의 나약한 육신을 초월한 이상적인 육체를 의미한다.

‘흑시공을 완성하기 위해 내 육체에 투여된 독의 개수는 칠백이십사 종.’

일반적으로 모든 독에 면역이라는 만독불침에 비해 그 가짓수가 턱없이 적어 보일 수 있겠지만, 독이란 게 결국 비슷한 효과들도 있고 중복되는 효과들도 여럿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실질적으로 자신의 육신에 이 정도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독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니, 있다 쳐도 이건 너무나 비효율적이지. 그 정도의 극독이 있다면 감각만 교란시키고 끝낼 이유가 없다.’

차라리 자신을 죽여버리거나 지독한 내상을 입혀버렸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이 무수히 떠오르고, 그중 실현성이 낮고 오답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제외하니 자연적으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독이 아니라면? 만약, 이 진법 자체가 내 감각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딴 진법이 있다는 소리를 못 들었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가능하다 싶었다.

물론 그 정도쯤 되면 더 이상 무공 차원이 아니라 술법의 차원으로 넘어가야 하지만, 그들의 환상진이라면 또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감각이군. 내 감각을 건드리는 것이었어.”

흑시문주는 초월적인 이성과 무수한 경험 및 연륜, 그리고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한 독심으로 정답에 도달했다.

간발의 차로 당도한 이들을 쳐내며, 은사를 조종해 끝없이 자신을 견제해 오는 당지명의 인근까지 치달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기이한 진법이구나. 내 오감에 영향을 끼쳐 인지부조화를 일으킨 것인가? 하지만 고작해야 여기까지다. 이 거리에선 아무리 내 오감에 미세한 오차를 만들어도 네 목을 따기까지 조금의 지장도 없겠지.”

그의 흑수(黑手)가 더더욱 불길한 빛을 감돌며 검게 물들었고, 흑시문주는 사형 선고를 하듯 손을 내뻗었다.

“끝이다.”

지금껏 그를 가로막던 비천은사들이 종잇장처럼 찢겨지고, 목표물을 노리는 뱀처럼 뻗은 손은 단번에 당지명의 목숨을 취하려 했다.

“글쎄.”

직전에,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우뚝―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던 흑시문주는 내뻗으려던 손을 멈췄다.

금방이라도 적의 목숨을 취할 수 있건만, 그럼에도 멈춰선 이유는 단 하나뿐.

‘이 무슨… 살기가……!’

목 뒤로 소름이 일게 하는 살기가 저릿하게 느껴져 왔고, 저도 모르게 멈칫한 흑시문주는 천천히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것은,

- 크르르…….

조금도 그 흉성을 숨기지 않은 채, 물씬물씬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끔찍하리만치 거대한 뱀.

- 크르르르……!!

녀석이 그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고,

후두둑―

검붉은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