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 기습은 신이고 암기는 무적이다 】
사파 새끼들은 종족 특성인지 꼭 못된 버릇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자기가 상처 입힌 사람의 피 맛을 맛보는 것.
칼날이든 손톱이든 자기 혓바닥 베일 것 생각 않고 할짝이는데, 진정 조상 중 개새끼의 피가 흐르지 않을까 싶은 짐승 같은 행각이다.
‘그러다가 피 볼지도 모르고 말이야.’
대표적으로 장강의 전설이 된 추풍대주 갈무흔이 그랬다.
그냥 칼질만 열심히 했다면 어떻게 비벼볼 만한 결전을 괜히 있어 보이겠다고 할짝이다 골로 가버렸던 갈 뭐시기.
그것과 똑같은 행동을 저놈이 하고 있었다.
“이놈!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은 개뿔. 네가 했지, 내가 했냐?”
지가 핥아놓고 왜 이러실까.
“무슨 독이… 말도 안 된다. 내 몸은 이미 백여든아홉 가지의 독에 완벽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데…….”
흑시문주는 강시공을 익힌 놈이라 했던가?
강시라는 존재 자체가 수십 종이 넘는 약물에 인간의 육체를 절여 만드는 괴병(怪兵)인 만큼, 그것을 본떠 만든 무공인 강시공은 살아 있는 몸으로 비슷한 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하게 된다.
그에 따라 각종 독에 저항력을 가지게 되는 부가 기능이 따르지만,
“뭐래는 거야. 고작해 봐야 이백 개도 안 되는 것 가지고.”
그래서, 그게 만독불침이라는 소리는 아니잖아?
“세상은 넓고, 독은 많아.”
“이익, 애송이 놈이!!”
“그래그래, 넌 그 애송이한테 당하는 거야.”
“커헉!!”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흑시문주의 입에서 검붉은 탁액이 폭포수처럼 토해졌다.
“너… 너……!”
“내 독은 그냥 독이 아니거든. 네 몸에 들어 있는 독을 강제로 분해시켰다.”
강시공을 익히기 위해 복용한 독은 독에 대한 저항력을 선사하고 육체를 강화하며, 체내에 흐르는 독이 되어 그 자체로 적에 대항하는 무기가 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걸 내 혈독(血毒)이 분해시켜 버렸지.
“잘 가지 마라.”
너희 같은 놈들에게 명복을 빌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곧장 품속에 있던 암기를 댓 발로 흩뿌렸다.
따다당―
“애송이 놈이 진정 명줄을 재촉하는구나.”
하지만 그 순간 끼어든 조취산이 자신의 거대한 대부로 암기들을 전부 튕겨내 버렸다.
“뭐래는 거야? 그럼, 여기 가만히 있어 잘라가기 좋게 목을 빼내주리?”
“무공은 아직 그럭저럭인 것이 혓바닥은 여간내기가 아니군. 하지만 되도 않는 연기도 여기까지다.”
척―
저 거대한 양손 도끼가 무겁지도 않은지, 한 손으로 번쩍 들어 한쪽 날을 내게 겨눈 조취산의 두 눈에서 안광을 뿜어냈다.
“이 독무(毒霧). 네가 이 무림에서 찾아보기 힘들 독공의 고수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 나이대는 물론이고, 그 이전 세대를 더해도 상대를 찾아보기는 힘들겠지.”
그 사실을 선선히 인정한 조취산은 점점 자신의 발밑으로 다가오는 독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이 정도의 독공은 아무 대가 없이 펼칠 수도, 그리고 그걸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무림이란 약육강식의 땅에서 굴러다니며 본능에 새겨진 감각.
달리 직관이라 불러도 될 만한 그것으로 독무를 넘어 나를 꿰뚫어 본 조취산은 나지막이 말했다.
“안 그런가? 당가의 애송이.”
당가의 애송이라.
‘진짜 살다 살다 별꼴을 다 겪는다더니.’
참신하다 못해 병신같은 경고에 나 역시 비죽 웃어주었다.
“한낱 산적 나부랭이 아니랄까 봐, 착각도 자유분방하구만?”
“착각이라고? 어디서 허세를…….”
“어이. 산적 나부랭이.”
- 크르르…….
내 몸을 축으로 전신을 휘감고 있던 탐이 머리를 쳐들었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다른 이의 눈에 비치지 않는 녀석이지만, 조취산은 경지가 경지인 만큼 무언가를 느끼기는 했는지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나는 지금 허세를 부리는 게 아냐.”
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나는 지금 ‘경고’를 하고 있는 거다.”
“경고……?”
“그래. 내가 여기서 뒈지건, 무리를 하고 있건,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냐.”
독무 속에 몸을 얹은 탐이 날 선 이빨을 세웠다.
“중요한 것은 하나. 다른 곳은 몰라도, 적어도 여기서라면 네놈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거지.”
분명 나는 아직 저들에게 닿지 못한다.
하다못해 저 혼자 헛짓거리를 하다 병신같이 중독당해 피를 토하고 있는 흑시문주도.
독무 속에 당당히 선 채 도끼의 날을 번뜩이고 있는 산적 우두머리도.
아직까지도 전장에 참여하지 않은 채 관망하듯 이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저 상놈도.
그 누구도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목숨을 앗아간다 자신할 수 있는 녀석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할 수 있다.
“네놈이든, 저기서 피 토하고 있는 반 시체 놈이든, 혹은 이 되지도 않는 수작질을 꾸민 저 상놈이든.”
그게 누구든 간에,
“단 한 놈만큼은, 평생 반 불구로 만들어 줄 수 있거든.”
적어도 몇 단계는 앞서 있는 이를 향한 오만한 선언.
그러나 그게 단순히 오만한 망상임에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게 바로 사천당가의 독인(毒人)이니까.”
지금은 잊혔으나, 어째서 사천당가의 무인이 같은 정파의 무인들에게 경원시 되었던가?
그건 바로, 목숨 하나 태우는 걸로 몇 단계 위의 경지에 있는 고수들에게도 위협적이다 못해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
“이놈…….”
그 경고가 결코 단순한 경고로만 들리지 않았기에, 조취산 역시 더 이상 함부로 소리치지 않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지루한 대치만이 계속되려 할 즈음,
“…하아.”
누군가의 한숨이, 절묘하게 이어지던 신경전에 금을 만들어냈다.
“졌습니다, 고객님.”
“…상천?”
“죄송합니다, 투왕. 하지만 한 번만 제 체면을 살려주십시오.”
그리 말한 것은 뒤편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흑상.
녀석은 한숨을 한 번 더 푹 내쉬더니 짙은 독무 사이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정말, 제 예상을 훌륭히 뛰어넘어 주셨군요.”
그런 녀석의 입 안에는 무언가가 물려 있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피독주로 보였다.
“누가 상놈 아니랄까 봐, 비싼 피독주 쓰는구만?”
“여벌의 목숨값이라 하기에는 거저이지요.”
입 안에 피독주를 물고도 뭉개지지 않은 발음으로 또렷이 말한 흑상은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발치 앞에 툭 던졌다.
처음엔 독일까 싶었으나,
“…금?”
발 앞에 떨어지며 살짝 봉인이 풀린 주둥이 안으로 보이는 것은, 번쩍번쩍 빛나는 귀여운 금덩어리였다.
“목숨값입니다. 부디, 저희를 그냥 보내주시지요.”
가볍게 던진 것치곤 그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못해도 삼 대가 평생 놀고먹을 걱정 없어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액수의 금덩어리가 저 안에 있다.
“천하에서 제일 흉악하다는 사파 새끼들 우두머리 세 놈의 목숨값으로는 너무 저렴한데?”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제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입니다. 흑상의 전 재산을 털었다는 상징성.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아시겠지요?”
돈 앞에선 어미 아비도 몰라본다는 흑상이다.
그런 흑상의 전 재산을 털었다는 것은 곧, 그들의 자존심을 짓밟았다는 것과 같다.
“한낱 상놈 자존심이 그렇게 비쌌던가?”
“그에 대한 값어치를 흥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그저 고객님께 부탁드릴 뿐입니다.”
“…….”
지루한 대치가 생겼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기이한 침묵.
그리고 약 일각 여가 흘렀을 쯤.
“…쳇. 좋아.”
생겨났던 독무가 서서히 걷히며, 대기가 원래의 색채를 되찾아 갔다.
“운 좋은 줄 알고 당장 꺼져.”
이후 사납게 일갈하자,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녀석은 영업용 미소를 짓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뒤로 물러섰다.
그게 명백한 후퇴 신호인 것은 두 번 말할 이유가 없었고, 흑시문주나 투왕 역시 한 번씩 씹어먹을 듯 노려보기는 했으나 하나둘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두고 보자, 애송이.”
“이 치욕은… 반드시 갚아주마!”
사파 새끼들은 도망치는 주제에 꼭 한마디씩 뱉고 가는 게 종족 특성인가?
일반 산적 잡졸들은 몰라도, 그래도 제법 간부라고 불릴 만한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저주 비슷한 말 한마디씩 내뱉고 떠나가니,
“…이제 다 갔냐?”
그렇게 모두가 떠나가고, 아직 수거되지 않은 시체와 시체였던 것만이 남은 숲 속에서,
“하… 아주 뒈지겠어.”
나는 풀썩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 * *
쓰러졌다고 했지만 기절한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온몸에 힘이 없어서 고꾸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 절벽 위에 있다가 내 한심한 꼴을 발견한 이들이 허겁지겁 내려오기 전에 자세를 고쳐 앉으며 적당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 괜찮으니 거기 있어요.”
구조대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은 알겠지만, 내 상태가 영 좋지 않아서 말이지.
‘사화(死花)는 나도 좀 다루기 빡세단 말이지.’
무차별 자살 폭격인 사화는 장로급에 달하는 당가인이라도 한 번 발동시키는 순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건 이 비술이 발동하는 순간, 단전이 녹아내리고 그 안에 가득 차 있던 독의 정화가 전신 혈도마저 함께 녹여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체내의 모든 것을 녹여버리고 그걸 극독으로 바꿔버리는 뒤 없는 비술이기에 당가에서는 펼치는 순간 죽음이 확정되는 신공이라 불리지만,
‘나는 이야기가 좀 다르거든.’
제아무리 지독한 극독이라도, 세상 만물의 기운을 다룰 수 있는 혼원신공은 그것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애초부터 평범하게 혈도를 타고 내공을 일주천시키는 심법이 아닌 만큼, 체내에 흐르는 극독이라 해봐야 조금 더 독기가 강한 정도에 불과했다.
다만,
‘그렇다 해도, 신체 상태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죽지는 않아도,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이 죽어 나간다.
안정화되기 전까지의 나는 역병의 근원이랄까?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다른 이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꾸에에엑!!”
“어어? 소협! 자네 괜찮나?”
“…끄으으, 괜찮아요.”
대충 한 사발을 넘는 피를 토해 냈다.
“어찌 된 건가?!”
“그냥, 내장 하나가 반 정도 녹아내린 거죠.”
“전혀 안 괜찮은 것 같은데?!”
“괜찮은 거 맞아요.”
진짜로.
이 정도면 엄청나게 싸게 먹힌 거다.
“저 정도의 괴물 놈들 쫓아내는 대가로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죠. 전 자연 재생력이 좋아서 빨리 낫기도 하고.”
“그건 그렇긴 한데…….”
벽을 넘은 무인들의 자연 재생력이란 술법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개중에서도 나는 특히 그게 월등한 편이었고.
“됐어요. 이걸로 한시름 덜었으니까.”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백경 아재도 안심시켰다.
“저놈들이 정천맹의 뒤를 쳤다면 그땐 진짜 재앙이었을 테니까.”
“그건 그렇지.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도울 수는 없었을 테니까.”
아슬아슬하게 과거를 숨기고 있는 장강수로상단인 만큼, 만약 사패천이 정천맹의 후미를 쳤다면 이 많은 병력이 통째로 사용 불가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랬다가는 미래가 영 밝지 않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기습을 통해 병력을 갉아내는 전략을 택한 건데, 다행히 결과는 예상보다 더 좋았다.
“해서, 어찌할 텐가? 자네는 이대로 광동으로 돌아갈 겐가?”
사패천의 야욕은 무사히 격퇴했다.
그렇다면 이제 광동으로 돌아가 구멍에 숨은 하오문주가 머리를 들길 기다렸다가 그 두개골을 이쁘게 부숴줄 것인가?
“아뇨. 그건 제가 굳이 갈 일이 없어요.”
답은 ‘아니다’ 였다.
“아저씨는 강변을 차단해 줘요. 혹시 놈들이 얌전히 안 돌아가고 저희를 기습하려 하면 선제 타격할 수 있도록.”
“응? 자네는 어찌하려는 건가?”
“전 안 가요.”
당장 쓰러질 것 같고, 어서 빨리 푹신한 침대에 눕고 싶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서 말이에요.”
이 모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 수순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