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 죽음의 꽃 】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 해야 할지, 절벽 위에서 인사 담당 대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하자 녹림 산적들은 헐레벌떡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근데 그걸로 되겠냐?’
비록 긴급 공수하느라 화약을 채운 포탄은 없지만,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석포환과 철포환은 그들을 마주친 내 반가움 마음을 담기는 충분했다.
콰콰콰쾅!!
“끄아아악!!”
“으아악!!”
머리 위로 포환들이 떨어지고, 우리의 인사를 받은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밝은 인사성에 몸을 비틀었다.
이렇게 격렬한 환영이라니, 내가 다 부끄러운걸?
“투왕!”
“알고 있네!”
우리의 인사가 너무 과했던 걸까?
날아드는 포환을 도끼날로 썰어대는 기염을 토하던 조취산이 두 눈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놈!!”
파산대부(破山大斧).
산왕진천하(山王進天下).
“무슨 도기가?!”
“피, 피해라!!”
콰콰콰쾅!!
대부가 휘둘러지며 거대한 도기가 날아들었다.
도기의 크기는 다섯 장에 달할 정도였고, 우리가 밟고 선 지각 일부를 완전히 박살 내며 그 위에 있던 대포들마저 박살 냈다.
“이 건방진 놈!! 그 잘난 대포가 박살 나도 주둥아리를 나불댈 수 있나 보겠다!!”
“아니, 우리 인사 담당한테 왜 그래?”
그저 반갑게 인사했을 뿐인데, 내가 다 섭섭해지게.
“인사 담당이 싫으면 진작 말하지. 그럼 내가 대신해 줬을 텐데.”
구구구…….
포신이 박살 났고, 대포를 갈기던 표사들은 후다닥 물러서야만 했다.
하지만 뒤편에 쌓아 놓았던 강철 포탄은 아직 여유분이 남아 있었으니―
나선포(螺線砲).
강철우(鋼鐵雨).
은퇴한 인사 담당을 대신해, 새로 부임한 당가식 예절 주입기가 인사드리겠습니다.
콰콰콰쾅!!
“으아아악!!”
“끄아악!!”
예절을 주입당한 산적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이며 착해졌다.
다음 생에는 인사성 밝은 아이로 태어나렴.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아직 예절을 주입당하지 않은 산적 대장이 분노에 찬 괴성과 함께 대부를 휘둘렀다.
파산대부(破山大斧).
산왕진천하(山王進天下).
노기를 꽉꽉 압축시켜 날린 도기가 반월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그 기세가 얼마나 웅장한지 보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못 막는다.’
내기의 압축도가 달랐다.
단순 위력만 따지면 포탄 세례가 더 위겠지만, 정면에서 부딪치면 포탄 따위는 두부처럼 가르며 날아들 게 뻔했다.
하지만,
“으하하!! 그쪽은 내가 상대해 주지!!”
그 순간 뒤편에서 솟아난 황금빛 기운이 반월을 그리며 날아든 반월과 충돌했다.
콰아아앙!!
“용왕(龍王)!!”
녹림에 투왕이 있으면, 장강에는 용왕이 있다고.
지금껏 뒤에서 팔짱 끼고 구경하던 백경 아재가 위기의 순간 나타나 자신의 존재감을 자랑했다.
“흐흐, 나이 먹고 어린 애들 괴롭히면 즐겁소?”
“같잖구나! 네놈 역시 이 몸에 비하면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에 불과하다!”
확실히, 액면가만 보면 백경 아재도 불혹을 넘겼을 것 같지만, 사실 그도 아직 서른 중반에 불과했다.
“자네, 뭔가 실례되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예? 그게 무슨 소리신 지…….”
“…안 그래도 노안이라 상처받으니 그러지 말게나.”
찰나의 순간 마음을 읽혀버렸다.
이것이, 용왕의 혜안?
‘진짜 많이 성장했네.’
용왕진기(龍王眞氣).
선대 장강용왕으로부터 물려받은 그 신묘한 힘은 어느새 백경 아재의 내면에 자리 잡아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의 전신을 휘감은 황금빛 서기는 이제 그가 나보다 확실히 윗줄의 고수라는 것을 의미했으니―
‘대체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가 이 일 저 일 처리하느라 뛰어다니는 동안 저쪽은 업무는 다 육언에게 맡겨버리고 수련만 했다지만, 무력도 통찰력도 부쩍 늘어버렸다.
장강, 그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어이, 상놈.”
“…그거 절 부른 것입니까?”
“사람 아닌 놈이라 상인이라고는 못 불러주겠거든.”
여하튼, 소강상태가 생겨나고 그 잠깐의 틈에 흑상을 부르자 그는 재빨리 안색을 회복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분명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그 찰나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유지하다니, 저놈도 난놈은 난놈이다.
“호칭은 썩 유쾌하지 않으나… 저를 상인으로서 찾으셨다는 것은 교섭의 뜻이라 봐도 되겠습니까?”
척하면 척.
“아무렴. 그게 아니면 내가 왜 입 아프게 널 불렀겠냐? 다만, 네게 그럴 권한이 있을지가 의문인데…….”
“권한이라.”
그 말에 흑상은 가라앉은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자신을 바라보는 투왕을 마주 응시했다.
“투왕. 제게 권한을 위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쯧.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되었군요.”
역시나.
‘투왕이라는 놈. 생긴 건 멧돼지 같지만, 그 속은 여우 같은 놈이라지?’
하윤호에게 듣기로 녹림의 투왕은 멧돼지처럼 무식한 도끼를 휘두르며 행동하는 것과 달리 손익 계산이 빠르고 철저히 합리주의적인 이득을 따라 움직인다고 했다.
그가 대부를 휘두르는 것도 어쩌면 그가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어떠한 상징성을 만들기 위한 일환이며, 그가 광폭하게 전투를 벌이는 것도 말 안 듣는 산적들을 따르게 하기 위한 지배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는 게 하윤호의 판단.
‘우리가 불리할 때야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 전투를 벌일 정도로 말이 안 통할 놈이지만, 우리가 유리하다 싶을 때는 적당한 명분만 던져줘도 대화가 성립된다 했지.’
투왕에게 있어선 저 상인 놈이 명분이었다.
습격을 받았긴 하지만, 자신은 자신과 동급인 흑상을 존중하여 차례를 양보했다고 말하면 되니까.
그리고 그걸 잘 아는 흑상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왔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원하긴 뭘 원해. 여기서 발 빼.”
“저희에게 퇴각을 권고하시는 것입니까?”
“지금 가면 좋게 보내준다. 이런 기회, 흔치 않아.”
진짜다.
내가 사파 새끼들을 살려서 보내주는 날이 올 줄이야.
눈물을 흘리며 대특가로 팔아버리는 이 슬픈 현실에 장탄식을 흘릴 기분이다.
“그것참, 염가에 거래해 주신다는 듯이 들리지만… 글쎄요, 제가 보기에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내가 허세 부리는 것 같아?”
“아니라고 주장할 생각이십니까?”
하, 이 새끼 봐라?
“한낱 사파 상놈이 나랑 장난을 하려 하네. 우리 인사 담당자들 아직 다 안 죽었어.”
저 무식한 놈이 도끼질로 반타작 내긴 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인사 담당자가 많다.
정 부족하면 내가 직접 예절 주입기를 가져와 줄 수 있는데 뭘 믿고 허세일까.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녀석은 덤덤히 말을 이었다.
“선상에서나 쓸 만한 함포를 뭍에서 쓸 생각은 저 역시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만한 인원과 물자를 보유한 장강수로채 정도나 되어야 사용이 가능하겠죠.”
“어허, 장강수로채라니. 여기 계신 분들은 장강수로상단의 표사님들이라고?”
어디 한낱 사파 놈들과 개과천선한 정파의 역꾼들을 비비고 있니?
“불과 어제까지라면 그럴 수 있겠군요. 하지만 오늘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하. 어째 쉽게 넘어가는 일이 없냐.”
적당히 분위기 흐름상 물타기로 속여 넘겨보려고 했는데, 놈은 단번에 우리의 약점을 짚어왔다.
“장강수로채의 참전은 확실히 상정 외의 전력. 정천맹의 무력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들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후미에서 기습한다면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 제게 저들의 참전은 상당히 위험한 변수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틀린 것은 없더군요.”
장강수로상단이란 이름이 유명세를 떨치는 데도 그는 그들을 상정 외의 전력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애초에, 수로채로서의 무력을 거세하고 그 과거를 청산했기에 정천맹에 상단으로서 합류한다는 억지를 부릴 수 있었던 이들. 하지만 저들이 그 시절 사용했던 병기들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이전까지와 같은 관계가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정천맹에 장강수로상단의 무력이 더해진다면 확실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 둘은 애초에 더해질 수가 없기에 위협적이지 않다.
“교섭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저희의 체면을 살려주는 척 얌전히 퇴로를 열어주어 나가게 하는 책략을 훌륭했습니다만… 이런 사기극에 속아 물러가기에는 상인으로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군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응당, 합당한 대가를 더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교섭을 원한다면 그에 알아서 머리를 숙여라.
그 말에,
“…하.”
머리에 무언가 뚝― 끊기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사파 새끼들이 아주 끝도 없이 기어오르네?”
- 크르르…….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른다.
그에, 얌전히 똬리를 틀고 있던 탐(貪) 역시 그 게으른 몸뚱이를 일으켰다.
쿠구구…….
“…저건?”
“물러나게, 흑상.”
그 기운에 상황을 지켜보던 흑시문주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곁에 있던 투왕이 앞으로 나섰다.
두 명의 절대자가 앞으로 나섰지만, 내 분노는 조금도 차가워지지 않았다.
‘정말, 긴 시간이 흘렀긴 흘렀구나.’
내 앞에서 사파 놈들이 이렇게 머리를 뻣뻣이 들 수 있었던 게 몇십 년 만의 일일까?
한낱 과거 팔이가 아니라, 한창때의 내게 감히 이따위 교섭을 제안하던 사파 놈 따위는 분명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어째서였는가?
‘아, 그렇구나.’
스스로 자문을 던지다가 그 답을 얻었다.
‘긴 시간 속에 변한 것은, 저들뿐만이 아니었구나.’
문제는 분명 내게도 있었다.
약해졌다는 이유로, 예전 같지 않다는 이유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저들과 타협하려 했으니.’
내가 제아무리 천하제일독인이었다지만, 날 적부터 천하제일독인이었을까.
나 역시 약하던 시절은 있었고, 나보다 더 잘났다고 떵떵거리던 놈들도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이 내가 천하제일독인이라 불리기 전부터 사파의 공포라 불렸던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멍청했지. 사파 새끼들 따위랑 타협하려 했다니.”
사마외도와의 타협은 없다.
오로지, 그 가치를 지켜왔기 때문.
“물러날 길을 열어줘도 그 길을 가지 않겠다면, 너희가 갈 길은 오로지 하나뿐이지.”
혼원신공(混元神功).
탐(貪).
아(牙).
“저승길이라고.”
푸푸푸푸푹!!
“이런 미친!! 내 강시들이?!!”
절벽 아래, 저들의 한복판에서 모습을 드러낸 탐이 그 이빨을 번뜩였으니, 그것이 꿰뚫는 대상은 다름 아닌 흑시문의 강시들.
당가칠대금기(唐家七大禁忌).
사화(死花).
각종 독물로 만들어진 강시들이 파괴되며, 그로부터 흘러나온 독기가 탐의 독기와 뒤섞이며 폭발했다.
“독?”
“이런! 물러서야 하오!!”
가장 먼저 상황을 깨달은 흑시문주가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내지르며 물러섰고,
“흑상!”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투왕 역시 흑상과 함께 범위 밖으로 몸을 빼냈다.
그리고 미처 반응하지 못한 그 독무에 휩쓸린 이들은,
“허억?!”
“커어억!”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으니―
“교섭은 결렬이다.”
죽음의 꽃이 활짝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