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새 하루가 밝았다.
야산의 시원한 이슬과 함께한 덕에 아침부터 싱글벙글 관절통과 함께 일어선 예비 잡룡단원들은 평소와는 다른 오늘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오늘이 오긴 오는구나…….”
“그러게…….”
두 달이 흘렀다.
두 달간 그들은 인세의 지옥이 무엇인지 여실히 겪었고, 매일매일 포기하고픈 욕망에 시달리며 안간힘을 쓰며 버텨야 했다.
‘그래, 버텨야 했다.’
수련?
이건 결코 강해지기 위해 설렁설렁하는 수련 따위가 아니었다.
‘살고 싶으면 버텨야 했지.’
매일 수십 근 강철 덩어리를 온몸에 매달고 깎아지듯 가파른 절벽을 올라야 했고, 등 뒤에는 또 망태기를 들고 반나절 약초를 캐야 했다.
산속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기에 노숙에 야전 식사는 기본이었는데, 그 식사 재료 전부를 알아서 캐내야 하다 보니 독초 잘못 먹고 골로 갈 뻔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니, 여긴 왜 이렇게 독초랑 독충이 많은 거야?!”
누군가 비명을 내질렀을 때―
“아, 그거?”
당시 수련을 맡았던 방계 하나가 덤덤히 답해 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우리 가문에서 좀 심었다. 여긴 마침 인적도 드문 곳이라 평범한 약초꾼이 올 일도 없는데, 이만한 넓은 부지가 있다면 방목해서 키우기 딱 좋은 환경이잖냐.”
부동산 문제와 독을 사용하는 무가(武家) 특성상 원활한 독의 수급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 결정!
그 덕분에 매번 독 잘못 먹고 죽을 뻔하다 겨우겨우 살아나며 독에 대한 내성을 키웠던 잡룡단원들은 입에 게거품을 물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야.”
“흐흐, 그러게 말이야.”
20년 같은 2달이 지나고, 오늘에서야 드디어 그들은 이 산을 내려간다.
본격적인 잡룡단 활동이 시작되는 날!
당연 희망에 찬 그들의 가슴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때,
“얼씨구? 니들 뭐 하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다 안 모여?”
“지, 집합!!”
“집하아아아압!!”
언제부터인가 노사부 설정은 내던져 버렸는지, 건들거리는 모양새로 나타난 당유혼이 삐딱한 시선을 던졌다.
호다다닥!
그제야 흐트러져 있던 잡룡단원들은 익숙한 십 열 종대로 모여 섰고, 그들 모습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약속했던 두 달이 지났다, 애송이들아.”
어디서도 선택받지 못했다는 설움에 가득 찬 그들이 당가로 몰려온 지도 어언 두 달.
“그때 기억이 떠오르는구만. 용(龍)이 되고 싶다고 했었지.”
그땐 감히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들.
그때를 떠올리자면, 나도 참 가슴이 절절해진다.
“그땐 너희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눈에 밟혀. 용이 되고 싶다던 너희들의 모습.”
그건 마치,
“지렁이 같았지.”
마치, 벌레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뭐, 지금은 실뱀 정도는 되겠지만 말이야.”
“…….”
“…….”
반응들이 안 좋다.
설마, 내 고급 농담이 안 통하는 건가?
‘하긴, 웃으러 나온 건 아니지.’
내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꿈과 희망에 가득 차 하하호호 웃고 떠들던 녀석들이지만, 글쎄.
‘그 꿈. 개같이 부숴주는 게 내 역할이니까.’
언제나 현실을 직시시켜주고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게 참스승의 도리와 역할.
개똥 씹은 표정의 녀석들을 향해 빙긋 웃었다.
“좋아. 그럼 실뱀들아. 너희들이 이제 내려가면 뭘 한다고 생각하냐?”
“저희… 말입니까?”
“그야 잡룡단원으로서 활동을…….”
“잡룡단원으로서의 활동?”
그래, 좋은 말이다.
“그게 뭐지? 협의를 수호하는 것? 무림의 정기를 살리는 것?”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하하!”
그렇지 않냐고?
“당연히 그렇지 않지!”
잡룡단의 정식 명칭은 맹외호법원(盟外護法院)이다.
그 뜻은 맹에 소속되지 않은 채, 맹외에서 법을 수호하는 집단이란 뜻이다.
하지만,
“너희가 내려가면 무슨 대우를, 아니, 무슨 취급을 받을 것 같냐?”
“그야, 맹의 법을 지키는…….”
“웃기고 있네.”
개소리도 그 정도면 초절정 경지다.
“너희는 근본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개잡놈 취급을 받게 될 거다. 뿌리도 없고, 뒷배도 없는 너희들이 옳은 말 좋은 말, 고운 말을 한다? 맹자 왈 공자 왈 논어 읊지 말라고 욕만 뒤지게 처먹겠지!!”
그게 너희 현실이다, 이 머리 덜 깨진 놈들아.
“그, 그런……!”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울음 섞인 항변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저희는 어째서 그 지옥 같은 수련을 버텨온 것입니까?!”
“저, 저희를 강하게 해주신다고……!!”
“아아, 억울한가?”
당연히 억울하겠지.
아주 억울하고 팔짝 뛸 거다.
하지만 분명 그 이유와 가치는 있다.
“정말 저희는 이 지옥과 같은 수련을 거친 이유가 없는 것입니까?”
“말해 주십시오!! 저희는, 저희는 바뀔 수 없는 것입니까!!”
타고나고 주어진 것은 진정 영원한 것인가?
뼈를 깎고,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르다 싶을 끔찍한 고생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인가?
“저희는… 대체 어째서 여기 있는 것입니까!!”
그 답을 묻는 그들에게,
“어째서냐고?”
나는, 그 이유를 답해 주었다.
“그걸 몰라서 묻냐? 그건 바로 인생에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다!!”
“기, 기회?”
“그래! 기회!!”
이건 기회다. 인생에 둘 없을 기회!
“우리 같이 근본 없는 놈들이, 근본 넘치는 견공 자제분들의 대가리를 깨부술 인생 마지막 기회다!!”
“……!!”
“……?!”
“협의라거나, 무림의 정기 같은 건 다른 잘난 녀석들이 세워줄 거다!”
예를 들자면, 우리 고금 제이가주 위혼이 같은 녀석들이.
그러니까,
“너희는 가서 닥치는 대로 물어뜯으면 된다! 싸가지 없고, 말 안 듣고, 딱 봐둬 쥐어패야겠다 싶은 놈들은 참지 말고 물어뜯어라!!”
그 뒷배는 내가, 그리고 당가가 되어줄 테니.
“참지 마! 두 달간 죽어라 참았잖아! 왜 너희들만 힘들어야 되냐. 왜 너희들만 고통스러워야 하냐?”
고통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잖아?
“잡룡단!!”
“예, 예!!”
“마, 말씀하십시오!!”
홀린 듯 소리치는 녀석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지 않고 주먹을 쭉 내뻗는다.
지금 녀석들에게 필요한 건 하나하나의 개인적 교류와 소통, 공감 따위가 아닌 오로지 주어질 단 하나의 목표 의식.
“다 구속시켜.”
짤막한 한마디 말로 그 모든 걸 대신한다.
그 결과,
“와, 와아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오오!!”
“우와아아아아아아!!”
맹수들이, 풀려났다.
* * *
하산한 잡룡단원들은 곧장 마을로 내려갔다.
“와아아, 이게 얼마만의 도시 냄새냐!!”
해산하기 전 기세는 당장이라도 정천맹에 쳐들어갈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밟아야 할 절차도 이것저것 있었을뿐더러―
“밥! 밥부터 먹자!!”
“쌀밥!! 쌀밥이 너무 먹고 싶어!!”
일단 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구, 국밥!! 국밥으로 하자!”
사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계속된 야전 식사에 요리 실력이 늘다 보니 그것들도 그럭저럭 먹을 만해지기는 했다지만, 그래도 산속에서 쌀을 구할 수는 없는 법이 아닌가.
기름진 것보다 쌀밥이 너무 먹고 싶었고, 뜨끈한 국물에 든든한 밥을 말아 먹고 싶은 유혹을 참을 수가 없었다.
“크하, 국밥! 그건 못 참지!!”
당장이라도 국밥집을 찾아가 ‘주모, 문 닫아! 오늘 우리가 전세 내버릴 테니까!!’라고 소리치고 싶은 잡룡단이었지만,
“잠깐, 멈춰라.”
다행히, 산속에서 막 뛰쳐나온 금수 같은 그들에게도 고삐 하나 정도는 있었다.
“중보?”
“왜 또 그래?”
그 이름은 구중보, 알게 모르게 그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게 된 남자였다.
“너희들, 신이 나는 것은 알겠지만 적당히 자중해야 해.”
“자중?”
“우리가?”
“왜?”
“어째서?”
이미 마음껏 날뛰라는 명령이 뇌리 속에 선 입력된 그들이 머리 위로 갈고리표를 뛰었다.
그에 구중보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비록 그분이 그리 말씀하셨다지만, 우리는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 우리는 잡룡단원이며 동시에 사천당가에 은혜를 입은 이들이다.”
“그건… 그렇지?”
“그래. 적어도, 우리가 사천에 있는 한 우리의 행동과 발언이 사천당가의 위신과 체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들의 권역이기에 더더욱 주의할 것.
잡룡단원들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아 저도 모르게 진중해졌다.
그 모습을 훑어보던 구중보는 너무 무거워진 분위기에 괜히 웃음을 지었다.
“뭐…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건 없고. 우리가 적당히 우리 일 하는 걸로 뭐라 하겠냐?”
“그, 그치?”
“맞아, 맞아. 우리가 애야? 그 적당히를 모르겠어?”
“에잉, 쯧. 밥 먹으러 가는 데 뭔 그렇게 밥맛 떨어지는 소리를 해?”
“훗, 미안하게 됐어.”
‘하긴.’
그리 말한 구중보도 사실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밥 먹으러 가는데, 무슨 사건이 벌어질까.
그냥 사전에 미리 말해 둔 것에 불과할 뿐이었으니까.
적어도, 그때까지의 구중보는 그리 생각했다.
* * *
국밥집.
주변 사람들에게는 소문난 맛집이요, 한자리에서 대를 이어오며 장사를 한 덕에 꽤 장사가 잘되는 그곳에 백 명도 넘는 인원이 우르르 몰려왔다.
“주모! 여기 국밥 한 사… 아니지, 우리가 알아서 떠먹을 테니 가마솥 통째로 주쇼!!”
처음엔 웬 거지 떼가 왔나 싶었는데,
‘진짜… 거지 떼인가?’
당돌한 주문량에 원하는 대로 가마솥을 통째로 가져다주니 순식간에 그 바닥을 비워가고 있었다.
“크으!! 주모! 한 가마솥 더!!”
뭐지? 꿈인가?
수십 년 국밥집 경력에도 경험한 적 없는 광경에 국밥집 주인장은 눈을 뻐끔뻐끔 떴다.
그나마 그들 무리 중 하나가 일어나 쓴웃음을 지으며 선금을 지급한 뒤에야 겨우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애들이 산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대금은 지불할 테니 걱정 말고 원하는 대로 내어주십시오.”
거지 몰골치고는 상당히 잘생긴 청년이 은자를 통째로 내어주자 눈이 돌아간 국밥집 주인은 곧장 움직였다.
“아이고, 물론입죠!!”
걸신(乞神)이 온 줄 알았는데 재신(財神)이 왔구나!
“이놈 돌쇠야! 물 끓여라!!”
먹는 속도로 봐선, 오늘 새벽에 장 봐온 고기로도 배를 채울 수 없을 듯해 보였다.
그렇게 국밥집 주인이 신명 나서 추가분을 끓이는 동안, 대금을 지급한 구중보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녀석들, 얼마나 굶주린 거냐?’
자신도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진짜 걸신들린 듯 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꾸웩꾸외에엑거리는 동기들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는 척하기 쪽팔린 것들.”
계산 다 하고 튀어버릴까?
진지하게 그런 고민이 들던 와중,
“고생했다, 얘들아.”
“들어가자.”
일단의 무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땀에 젖은 것은 매한가지지만, 자신들과는 달리 깔끔한 의복과 차림새로 들어선 이들.
그들의 등 뒤에는 현(玄) 자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