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78화 (178/350)

178화

다시금 집으로 돌아왔다.

불퇴 녀석이 날 찾았다는 말을 듣고 뭔 일인가 싶다가,

“대형! 기술 좀 가르쳐 주십쇼! 화려하거나 화끈한 걸로!!”

“그래? 그럼 화려하고 화끈하게 처맞아 봐라!”

“악! 아악! 잠깐!! 만천화우는 반칙이잖아요!!”

가뜩이나 심란한데 짜증 나게 하고 있어.

감히 대형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죄로 젓가락으로 꽃꽂이를 해준 뒤 연무장 한구석에 처박아 놨다.

다른 놈들이 알아서 수거해 가겠지.

“후우…….”

한숨이 나온다. 아주 푹푹 나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불안했다.

‘너무 느려.’

당가는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눈에 차지 않았다. 자고로 빠르다는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고, 외부에서 평가하기에는 분명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강해지는 당가지만 그 기준조차 내게 빗대면 느려터졌기 짝이 없다.

‘나 하나 강해진다고 해도, 당가 전체의 전력 상승은 아니야.’

삼십 년 전과 같이 대전쟁이 펼쳐지면, 그때부터 필부의 용맹은 그냥 미친놈 칼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그 잘난 천마조차 혼자 깝치다가 칼 맞아 죽은 게 그 방증이다.

“이거 진짜 답이 없나…….”

그렇게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자니,

“형님. 요새 고민이 있으십니까?”

어느 날 갑자기 위혼이 녀석이 찾아왔다.

“네가 웬일이냐?”

가뜩이나 업무로 바쁠 녀석이 일과 시간에 찾아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형님께서 요즘 근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니, 누가 또 그딴 헛소문을 흘렸어?

지명이냐? 불퇴냐?

오늘 또 내 만천화우가 울부짖을 날이…….

“그렇게 입 꾹 다무시고 괜히 다른 아이들 괴롭히려는 나쁜 생각하지 마십시오.”

“…요즘 독심술이라도 익히냐?”

에잉, 쯧.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차마 이 녀석에게까지 막 나갈 수는 없지.

“그래, 허심탄회하게 말하마. 요즘 고민이 좀 많다.”

“무엇이 말입니까?”

“음… 이걸 어찌 비유해야 할까.”

당가가 너무 약해빠져서 걱정이 크단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암만 그래도 가주 녀석 앞에서 가문에 똥칠을 하는 꼴이니까. 사실 단순히 그런 문제뿐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사연이 있으니…….

‘이놈의 무림은 밖에서 언제 마교도가 쳐들어올지 모르고, 실제로도 내부에 간첩을 심어놓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박 터지게 싸우고 있으니… 우리 당가가 거기 버티기에는 너무나 연약하단 말이야.’

이 말을 최대한 빙빙 돌려 비유하듯 설명했다.

그러자 그 이야기들을 전부 경청한 위혼이 녀석은 심사숙고하더니 곧 고개를 주억거렸다.

“즉,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상황이군요.”

“뭐, 그렇지?”

위혼이 녀석이 문자를 쓰니까 좀 있어 보인다.

역시 당가의 얼굴이랄까?

“형님. 비록 제가 형님에 비해 배움은 적지만, 감히 선현의 지혜를 빌려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봐라.”

“형님께서 말씀하신 내부를 하나의 국가로 동일시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보통 이럴 때, 과거 일국을 이끌던 군주들은 대개 동일한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고위 관리들이 자기들 잘났다고 왕 말은 듣지 않고 빼애액거릴 때 사용하던 역사와 전통의 방법.

“국내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것이지요.”

“뭐?”

“외세의 침략이라든가, 외세의 침공이라든가, 아니면 국가사업과 같은 거대하고 공동 목표 의식을 가질만한 그런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요는 공동의 목표 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지요.”

공동의 목표?

처음에는 애초에 그게 안 돼서 이 문제다…라고 하려 했지만,

‘아니, 잠깐만.’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면 되잖아?’

말 더럽게 안 들어 먹는 것들을 어르고 달래 목표 의식을 고취시킬 방법 따위는 모르겠다만,

‘요는 목표를 만들면 되는 것 아냐?’

목표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두 가지.

그만한 목소리를 낼 인물과, 그만한 작업을 할 비용이다.

‘그리고 이 무림 땅에는 전통적으로 정파의 공동 목표 의식을 고취시킬 만한 놈들이 있잖아?’

세상에, 왜 내가 이걸 몰랐지?

떠올리고 보니 이보다 더 적절한 수가 없는 획기적인 계책!

질질 끌 것 없이 곧바로 움직였고,

“…해서, 본관을 찾아왔다는 건가?”

당유혼의 방문을 받은 사천성주 이문학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했다.

“예. 어떻습니까?”

어떻냐니…….

‘어처구니가 없군. 이런 급작스러운 제안은 이십 년 전 하 지부장 이후로 처음이야.’

그도 그럴 것이,

“본관에게, 이미 수십 년 전에 해체된 무림맹을 재건하게 하라는 게 말이 되는가?”

그건 무림과 관은 상호불가침이라는 원칙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제안이었으니까.

“허허, 무섭게 말씀하시네요. 전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그래, 표면상으로는 그러지 않겠지.”

하지만,

“사천을 중심으로 무림 단체를 꾸려 녹림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리라는 것이… 무림맹을 창설하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수십 년 전 잘게 쪼개진 무림 문파들을 한데 뭉쳐 집단으로 만드는 게 무림맹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뜻인가?

“예에?”

어허?

이 양반 큰일 날 소릴 하시네?

“저는 어디까지나 양민의 고혈을 착취하고, 황궁에 들어가야 할 혈세를 빼돌리고 착복하려는 극악무도한 놈들을 벌하려는 것뿐입니다!”

말하자면 권선징악이랄까?

두 눈에 핏발까지 부릅 세우고 꽉 쥔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열변을 토하자 이문학의 표정이 팍 찡그려졌다.

“…우리 솔직하게 말하세. 원하는 게 뭔가?”

권선징악? 분명 좋은 말이다.

다만,

“자네가 그런 것에 관심이 있을 것 같지는 않구만.”

“억울합니다! 본가는 대대로 천하제일…….”

“의협지문이라고? 알지. 잘 알고 있네. 다만, 자네 가문이 그런 가문이라 해서 자네 역시 의협은 아니잖나?”

“어… 그건…….”

“자네 입으로 말해 보게. 나는 협객이다, 라고.”

“저, 저는 협… 협개, ㄱ… 우웨엑!”

젠장, 역시 못하겠구만.

“그럴 줄 알았네.”

쯧쯧― 혀를 찬 이문학이 팔짱을 꼈다.

“피차 같은 배를 탄 사이. 원하는 게 있다면 솔직히 말해 주게. 전부를 말해 달라고는 하지 않겠으나, 최소한의 그림은 알려줘야지. 어차피 자네도 내 영향력과 목소리가 필요한 게 아닌가?”

‘쯧, 역시 쓸데없이 똑똑하구만.’

최연소 사천성주 자리는 딱지치기로 꿰찬 게 아닌지, 본질을 꿰뚫어 오는 물음에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질서를 만들려 합니다.”

“질서?”

“예. 현 무림은… 정확히 말해, 정파 무림은 너무나 약해져 있습니다. 게다가 흩어져 있기까지 하기에 사파 무림에 비해 턱없이 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힘의 균형추를 맞춘다는 건가? 하나 그렇다면 같은 질문의 연속일 뿐이지. 자네가 그런 걸 원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사람의 성향을 따지자면 네 녀석은 질서보다는 혼돈에 가깝지 않냐고.

그렇게 물어온다면… 뭐, 사실 부정할 수는 없긴 했다.

다만,

“저는 분명 질서보다는 혼돈에 어울리는 그릇이긴 할 겁니다. 하지만 저를 담은 당가라는 그릇은 질서에 어울리는 그릇입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군.”

사천당가.

비록 지금은 몰락했을지라도, 당장 삼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천하제일 의협지문이라 불리우던 이름값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해서, 그 이유로 녹림을 토벌하겠다는 건가?”

“원래 녹림이 역사적으로 그런 곳 아닙니까?”

자고로 무림에 출사하는 젊은 신진 고수들이 협명을 쌓기 가장 좋은 게 산적채 토벌이 아니던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경험치 통이라고나 할까?

“…어느 시대의 녹림을 말하는지 모르겠군. 분명 수십 년 전 녹림은 그러했겠지. 하나, 지금의 녹림은 많이 다를 텐데.”

“확실히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합니다.”

녹림.

범대륙적인 중원 산적들의 연합인 그들은 예전에야 진짜 알곡은 없고 순 쭉정이들로 숫자만 불린 이류 문파였다.

하지만, 만가쟁패의 시대가 그들을 탈바꿈시켰다.

“마교의 대란 이후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대폭 늘어나며 산적이 되었지요. 그들을 흡수한 녹림은 크게 세력을 불렸을 뿐 아니라, 그리 산적이 된 이들끼리 반목하며 끊임없이 투쟁을 일으키다 보니 분명 그 숫자도 크게 불어났습니다.”

확실히 예전처럼 툭하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줘 터지던 동네북은 아니겠지.

“그래도, 그 정도는 되어야 체면이 서지 않겠습니까? 다른 이도 아닌 무려 사천성주님께서 명을 내리시는데 말입니다.”

“…내게도 그 기회를 이용하라는 것이군.”

“솔직히, 평범하게라면 허락 안 해주실 것이잖습니까.”

막말로 이 명령을 내리면 무림의 힘이 강해진다.

그게 싫어서 사천삼주를 쥐잡듯이 잡았던 사천성주가 이제와서 이 계획에 쉽게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게 망상병이지.

“아는데도 내게 이 제안을 했다는 건, 내게도 돌아올 확실한 이득이 있다는 뜻으로 알면 되겠나?”

“이미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건 확실한 게 좋지 않겠나.”

즉, 이미 다 짐작하고 있지만 확실히 내 입으로 말해달라는 뜻.

“성주님이 얻으실 이득은 총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민심인가?”

“그렇습니다. 그것도, 사천 성내의 민심뿐 아니라 전 중원적인 민심입니다.”

지금도 중원의 양민들은 산적에게 고통받고 있다. 예전엔 산을 넘어갈 때 가장 무서운 게 호랑이였다면, 이제는 산기슭마다 터를 잡은 산적놈들에 벌벌 떨고 있다.

“관도 반쯤 손을 놓은 산적들을 성주님께서 무림인들을 부려 토벌을 했다 하면 전 중원에 성주님의 이름을 떨치게 될 것입니다. 그건 곧 ‘중앙’으로 가실 때 든든한 밑천이 되실 겁니다.”

“자네는 자꾸만 위험한 말을 겁도 없이 하는구만. 뒷말은 못 들은 걸로 하고, 두 번째는 무엇인가?”

“돈입니다.”

그 말에 이문학은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돈이라면 충분히 있지 않나?”

“에이, 왜 그러십니까? 원래 재물은 다다익선인 법입니다.”

“…실로 솔직하군. 한데, 이미 장강수로상단으로 끌어들인 만큼 끌어들인 것 같은데, 틀린가?”

“더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도 훨씬 더.”

장강수로상단은 기존에 존재하던 물길이라는 흐름의 것에 편승했을 뿐이다.

하지만, 무림맹이 생긴다면?

“무림맹을 창설하게 되면 그 흐름 자체를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천하의 중심은 결국 황궁이지만, 무림의 중심은 결국 무림맹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 중심을 만든다라…….”

확실히 흐름에 편승하는 것과 흐름을 만든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크다.

이쯤 되니 이문학 역시 두 눈에 이채를 발할 수밖에 없다.

이문학이 그전까지 막연히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풀고 깍지를 끼며 그 위에 턱을 괴었다.

“그럼, 마지막은 무엇인가?”

여기까지 온다면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대감이 점점 더 부풀어 올라 절정에 달했을 때, 당유혼은 빙긋 웃었다.

“제일 큰 겁니다. 이 모든 게, 성주님께서는 손 하나 깜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응?”

“저희가 다 해드린다는 겁니다. 그냥 허락만 해주십쇼.”

민심과 금력, 둘을 다 얻는데 그게 공짜라고?

이건 못 참지.

“하……!”

그 말에 이문학은 결국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말했다.

“불가(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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