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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75화 (175/350)

175화

불퇴(不退).

물러서지 않는다.

자신의 그 이름처럼, 당불퇴는 언제나 선봉에 서길 원했고, 지금 역시 몰려오는 마물들의 무리 속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진짜 징그럽게 생겼네.’

홍수월이라는 남자가 말했다.

‘저들은 마물입니다. 자연의 뒤틀림에 의해 변해 버린 요괴(妖怪)가 아니라, 인위적인 뒤틀림으로 만들어낸 마물(魔物). 대게 그 성정이 흉포하고,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생김새를 지니고 있으며 기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진짜 흉측하게 생겼다.’

호랑이의 몸에 거미의 다리.

원숭이의 몸통에 벌의 날개.

사마귀의 몸통에…….

‘저건 또 뭐야?’

기상천외한 마물들을 두 주먹으로 때려눕히면서도 당불퇴는 질겁을 했다. 세상에 이게 뭐다냐?

“내가 존재의 가치를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너희는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웅혼한 권풍(拳風)이 몰아치며 궤도에 있던 마물들 대여섯 마리를 일수에 격살했다.

단순한 직선적인 공격일변도의 권격이지만, 그만큼 위력 하나는 확실했다.

순식간에 펑펑 터져나가는 마물들 사이로 공백이 생겼고, 그 틈에 당불퇴는 이 땅의 중심지에 있는 걸 확인했다.

‘저거구나.’

핏빛처럼 붉은빛을 뿌리는 삼 장여의 기둥.

‘보는 것만으로도 영 꺼림칙한 게, 역시 당장 파괴해야겠어.’

“크에에엑!!”

“키이익!!

당불퇴가 결심을 굳히자 그걸 읽기라도 한 듯 주변 마물이 달려들었다.

조금 전 일권으로 공백을 만들어냈다지만, 주변에 산재한 수십의 마물들은 밀물처럼 밀려와 그 틈을 메웠다.

파파파팟!!

우측에선 두꺼비를 닮은 놈 하나가 등에서 가시들을 쏘아냈고, 좌측에선 목이 기다란 거북이가 입을 쩍 벌리더니 탁액을 뿜어냈다.

원래라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지만,

‘좌측은 암기 세례에 우측은 끔찍한 독액, 뒤편에서는 마물들이 쫓아오고 있으니… 남은 것 전방뿐인가?’

그럼 어쩔 수 있나.

당불퇴는 씨익 웃으며 중단전을 개방했다.

우우웅!!

지금까지 없던 강렬한 기운이 당불퇴를 중심으로 몰아쳤다. 중단전의 사용법은 방계들마다 각기 다르지만, 당불퇴의 경우는 자신의 능력을 폭발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었다.

물론, 아직은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

하나, 그 찰나에 한해서라면,

‘나는, 푸른 야수가 될 수 있지!’

콰콰콰쾅!!

앞으로, 더 앞으로.

검푸른 빛으로 둘러싸여 쇄도하는 당불퇴의 앞에 있던 마물들은 말 그대로 육편이 되어 박살이 났다.

그 위력은 실로 파멸적이었고,

“으악!”

대가는 당연히 따라왔다.

쿠당탕―!

너무나 빠른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키르륵!”

“크륵!”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물 무리들이 달려왔지만, 그들의 머리 위로 붉은 기둥이 내리꽂혔다.

콰앙!!

“조심하시게.”

“젠장, 믿고 있었다고!!”

마족 서너 마리를 짓뭉개며 착지한 적웅을 향해 눈물겨운 엄지를 척― 세워준 당불퇴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 있는 붉은 기둥을 직시했다.

‘흉흉하구만.’

가까이서 보니 훨씬 잘 느껴졌다.

저 기둥에서 발생되는 기분 나쁜 힘이 대지로 흘러들며 마물들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원리는 모르지만, 일단 가만 놔둬서 좋을 건 없을 게 확실했다.

그러니 당장 부숴야 하지만,

“어이, 슬슬 일어나지? 딱 봐도, 쉽게 박살 내도록 허용해 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만큼 중요한 물체이기 때문인지, 그 앞에는 넝마 비스무리한 것으로 전신을 가린 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이놈이 이곳의 대장인가?’

아니, 그건 아니겠지.

진짜라면 아마 저 지하에서 대형과 박터지게 싸우고 있을 것이다. 저쪽도 자신들처럼 이 지상에 남겨져 소임을 다 하고 있을 터,

“원래라면 같은 처지끼리 자기소개라도 하겠지만, 암만 생각해도 사람을 괴롭히는 너희와 할 얘기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일어나기 싫으면 거기서 그대로 죽어라.”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사나운 권풍이 몰아쳤다.

중간에 깔려있던 흙바닥이 전부 일어났고, 그 잔해들을 휩쓴 채 몰아치는 청야권은 마치 폭풍과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닿기 직전―

감겨 있던 괴인의 눈이 번뜩 뜨였다.

나태진주(懶怠眞呪).

영겁벽(永劫壁).

그의 입술이 달싹이며 불경한 진언이 흘러나왔고, 권풍과 괴인 사이로 붉은 벽이 생겨났다.

콰아아앙!!

권풍은 강렬했으나 그 벽을 뚫지 못했고, 어느새 벌떡 일어선 괴인이 두 손을 들어 기묘한 수인을 맺었다.

나태진주(懶怠眞呪).

낙우(落雨).

기이잉―

그러자 한차례 붉은 기둥이 진동하더니, 그로부터 붉은 기운이 뽑혀 나와 허공 중에 구름처럼 뭉쳤다.

‘비구름?’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구름에서 붉은 비가 쏘아졌다.

파파팟!!

“하, 너 암기 좀 치냐?”

알갱이 같은 것들이 빠른 속도로 쏘아지며 전 방위를 뒤덮었다.

피할 곳은 어느 곳도 없지만,

“어떻게 하냐? 나도 암기 좀 치는데.”

유혼비술(流魂祕術)

천골저(穿骨箸)

파파파팟!!

당불퇴는 허리춤에 있던 암기통에서 젓가락을 한 다발 꺼내 집어던졌다.

퍼퍼퍼퍽!!

그것은 차양당 방계들이 그간 설움을 담아 만들어낸 비술.

그의 대형이 입으로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친절히 몸에 새겨준 것들로 만들어진 무공이었다.

“……?!”

그 광경은 괴인 역시 생각하지 못했는지 놀란 기색을 보였고, 당불퇴는 훨씬 득의양양한 기세로 소리쳤다.

“어떠냐! 우리 방계들의 설움이 담긴 무공이다!”

장장 수백 일 동안 처맞고 또 처맞으며 만들어낸 무공이라고나 할까?

괴인은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곱씹더니 검지를 뻗어 당불퇴를 가리켰다. 처음에는 삿대질하며 뭐라 욕이라도 하나 싶었지만,

나태진주(懶怠眞呪).

중보(重步).

“뭐, 뭐여?”

갑작스레 몸이 엄청나게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살(殺).”

그 틈에 괴인의 명령을 받은 마물들이 당불퇴를 포위하며 달려들었다.

‘이익?!’

내공을 더욱 회전시키니 발걸음이 떼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걸음을 내디딜 수준은 아니었고, 마물들은 삽시간에 지근거리에 다가와 저마다의 흉포한 살수를 번뜩였다.

그 순간,

무공명(武功名) 미정(未定).

거미의 춤.

광란(狂亂).

허공에 새하얀 은실이 번뜩이며, 마물들이 통째로 썰려 나갔다.

“형님!”

“이놈아, 누가 방심하라더냐.”

비천은사(秘淺隱絲)를 휘두르며 다가온 당지명이 핀잔을 줬다.

“아니, 방심한 거 아니거든요! 저놈이 더러운 수를 쓴 거뿐이거든요?!”

“그런데 이놈이?”

“불퇴 소협은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듯 항변하고 있자니, 함께 다가온 홍수월이 그를 변호했다.

“저자는 마도사. 저 붉은 마석의 힘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덕에, 불퇴 소협도 쉬이 저항하기 힘든 저주를 내린 것입니다.”

“예?”

“역시!”

둘 다 이해 못한 것은 매한가지지만, 당불퇴는 어쨌거나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받고 쾌재를 불렀다.

그때,

“지금 사담을 할 틈이 없는 것 같소.”

홍수월과 당지명이 내부로 진입하기 수월하도록 돕기 위해 외부로 나갔다가 돌아온 적웅이 짧게 경고했다.

“이 주변의 마물들이 죽을수록 저 붉은 기둥은 더욱 강해지는 것 같소. 그리고 그 말은, 이 주변의 마물들도 숫자가 줄어들수록 더욱 강해진다는 뜻이겠지.”

두 주먹에 탁액을 흥건히 묻힌 적웅의 경고는 모두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확실히.”

다시금 포위망을 형성하는 마물들은 이제 그 수가 눈에 보일 정도로 줄었지만, 흉흉한 기세는 확연히 강해져 있었으니까.

“그럼 답은 저놈을 뚫는 건데…….”

“저 시뻘건 벽이 더럽게 단단합니다.”

그들 사이를 가로놓은 불그스름한 벽.

그것이 일행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저건, 제가 해체할 수 있겠군요.”

그때 붉은 벽을 꿰뚫어 보듯 시선을 던지던 홍수월이 말했다.

“오, 정말요?”

“예. 다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 마도사의 수준은 저보다 한 단계 아래인듯하나, 저 붉은 마석이 가진 힘의 총량이 그 간극을 메우고도 남습니다.”

“간단한 이야기네요.”

결국은 시간 싸움.

홍수월이 마도사가 부린 술수를 해체하기까지만 시간을 벌면 일행의 승리였고, 반대면 몰살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한 건 마도사 역시 마찬가지.

나태진주(懶怠眞呪).

오합(汚合).

그의 입이 열려 다시금 불경한 진언이 흘러나오자 주변에 있던 마물들은 갑작스레 터져 나갔다.

“뭐, 뭐여? 갑자기 왜 자살을……”

“자살이 아닐세! 잘 보시게, 다시 합쳐지고 있네!”

터지며 조각난 육편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슬금슬금 기어 가장 중앙에 있던 괴인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지 몰라도 합체하는 듯한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당불퇴는 불현듯 벼락처럼 스쳐 가는 생각이 떠올랐다.

“상대방이 뭘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뭘 하는 것 같으면 기다려주지 마라.”

방계들이 공동 제작한 유혼비술 제1장 7절에 수록된 금언.

그에 따라 당불퇴는 홀린 듯 달려들었다.

“이 새끼! 딱 봐도 더러운 술수를 부리는구만!”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콰쾅!!

“어어? 부, 불퇴야?!”

당지명조차 깜짝 놀랄 만큼 급작스럽게 튀어 나간 당불퇴의 일격은 뭉쳐 들던 고깃덩이를 반파시켰다.

“크에에에엑!!”

고깃덩이는 살아 있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고, 뒤로 후다닥 물러나더니 거인(巨人)의 형상이 되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젠장, 얕았나?”

“아니, 훌륭합니다!”

홍수월의 눈에는 보였다.

만약 가만 놔뒀으면 끔찍한 괴물이 되었을 테지만, 조금 전 일격으로 삼할 이상의 유실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만큼 큰 충격을 받은 거인은 두 주먹을 크게 들더니 그대로 아래로 내리찍었다.

콰앙!!

“크악!”

큰 충격을 받은 당불퇴는 입에서 피를 토했고, 뒤편에 있던 적웅이 대신 쇄도하며 이어지는 거인의 주먹질을 받아냈다.

쿠웅……!!

당불퇴처럼 피를 토하지는 않은 적웅이지만, 그 역시 놀라 눈을 부릅떴다.

‘무슨 신력이……!’

힘 하나로는 누구한테도 끌리지 않는다 자부한 적웅마저 놀라게 만든 거력.

“크어어!!”

거기서 끝나지 않고 연격이 이어지자 적웅 역시 연이어 막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져 버렸다.

“크아아아아!!”

쾅쾅!

분노를 표출하듯 가슴을 두들기는 거인의 모습은 실로 흉포했으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지명의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이걸 상대로, 시간을 끌라고?’

가능할까?

불가능―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

파파팟!!

갑작스레 한쪽에서 날아든 암기 세례가 거인을 덮쳤다.

“크학?!”

시야의 사각에서 날아든 암기 세례지만, 거인은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소리만 듣고 한쪽 팔을 들어 방어해 냈다.

하나,

“그 팔을 받아 가마.”

원격발현(遠隔發現).

절독진(切毒陳).

숲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크허어억!!”

거인의 팔이 순식간에 녹아내려 버렸다.

투두둑…….

쏟아지는 진액이 빗소리처럼 들려오고, 그 소리를 즈려밟듯 장내로 진입한 인물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건 당최 무슨 괴물입니까, 지명 형님?”

그의 이름은, 당율기.

당가 삼총사의 마지막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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