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65화 (165/350)

165화

【 사교도 】

“민생 안정?”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당유혼의 표정은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아니, 그걸 내가 왜?”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소리라며 학을 떼던 당유혼이었으나,

“아, 맞다. 내가 정파지?”

마침 하윤호가 네놈 소속이 뭔데!! 라고 소리 지르기 전에 알아서 답을 찾아냈다.

“헤헤헤, 사천의 일은 사천당가에게! 예전에는 다들 그런 말을 하고 다니지 않았습니까요?”

“흐으음… 그건 맞지.”

딱히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그건 꽤 현답(賢答)이라 불릴 만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걸 깜빡했군.’

단순히 당가의 명성이 올라가고, 손에 쥔 경제력과 가진 무력이 드높아진다 해서 이전의 사천당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가가 굳이 그 이름 앞에 사천 두 글자를 붙인 것은 당가가 곧 사천이요, 사천이 곧 당가였기 때문이다.

‘관아에서 해결해 주지 못하는 일들을 대신해 주기도 하며 민생의 안정을 수호하는 것이 당가의 역할이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당유혼은 자세를 고치며 물었다.

“괜찮네. 그런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디 사파 새끼들이라도 새로 기어들어 왔냐?”

다만 떠오르는 의문은 한 가지.

“당가에서 할 민생 안정이라는 게 사파놈들 조지는 것 말고는 없을 텐데 말이야.”

관아에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것.

그건 바로 무림의 일이었다.

‘예로부터 관과 무림은 상호불가침 관계였으니까.’

지금이야 시대가 혼탁해 사천성주가 사천삼주를 쥐잡듯이 패고 다니지만, 원래는 그런 경우가 흔치 않았다.

삼십 년 전 사천당가쯤 되야 관과 무림 양쪽에서 감히 건드리지 못할 거물이었으니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세했다지만, 사파놈들이 양민에게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아니면 대게 당가에서 할 일은 없었다.

‘왜냐면, 산에서 맹수가 내려와 사람을 물어가거나 논밭을 헤치면 사천삼주 그 세 녀석들이 해결하고는 했으니까.’

도심의 일은 사천당가가 하고, 산악의 일은 사천삼주가 하는 그런 분업화가 예로부터 내려오는 역사와 전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합리적 의심은 제법 지당한 것이었기에 하윤호도 마주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요. 확실히 용독문이 멸문하며 더 이상 사천 땅에 사파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니…….”

눈앞에 있는 저 자신이 그 사파의 거두라 불리는 하오문이라는 것은 둘째치고, 이제 사천 땅에서 해악을 끼치는 사파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요 근래 발생하는 일이 조금 특이해서 말입니다요.”

“특이한 일? 그게 뭐지?”

“실종 사건입니다요. 사천성 인근, 약 사십 리쯤 떨어진 어느 작은 산골 마을에서 자꾸만 마을 주민들이 실종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요.”

실종 사건이라고?

이건 더 특이한 일이었다.

“그건 저기 사천삼주라는 놈들이 해결할 일 아니야? 설마 우리한테 좀 줘 터졌다고 자기네들 일을 방임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렇다면 좀 이상할 일이다.

그들이 민심을 얻는 게 대개 그런 사건들을 해결하고 명성을 쌓는 것이니까.

사업체 경쟁에서 밀린다고 그런 일까지 하지 않으면 그들이 쥐고 있는 명문 정파로서의 가장 큰 무기인 ‘명망’을 잃게 된다.

“방임…은 아닙니다요. 한데, 놀랍게도 청성에서 직접 나섰으나 그 파견 인원들이 실종이 되어버렸답니다요.”

“허… 청성에서 실종?”

그건 좀 달리 들렸다.

‘암만 걔네들이 병신이라지만, 이건 좀 아닌데?’

“뭐 인신매매단이라도 있는 거냐?”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요.”

“뭐?”

하윤호는 머쓱한지 괜히 헤헤 웃으며 변명했다.

“그… 요새 하도 하는 일이 많은지라… 인원이 부족해서…….”

“…너희 정보 조직 맞냐, 진짜?”

무슨 놈의 정보 조직이 필요할 때마다 정보가 없어?

“그게… 청성에서도 일대 제자가 실종되는 사건이다 보니 쉬쉬하고 있는 듯합니다요…….”

“허참, 뭐 이대 제자나 삼대 제자가 실종된 것도 아니고. 일대 제자가 실종이 돼?”

청성도 한물가긴 같구만?

쯧쯔…….

그렇게 혀를 차고 있는데,

“예. 그런데 그 일대 제자라는 양반이 또 당가와 연이 있습니다요.”

엉?

설마…….

“진혁수라고… 지난번에 법구를 만들기 위해 고용했던 무인입지요.”

* * *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진혁수 그 녀석쯤 되는 무인의 실종 사건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해서, 그 건을 조사하러 가시겠다는 뜻이군요.”

사천당가 가주 집무실.

그 주인 되는 당위혼은 하오문으로부터 얻어온 정보 같지도 않은 정보를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심상치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 사람이 실종되는 마을이라니.”

“호랑이 같은 게 산에서 내려와 사람을 물어가는 거 아닐까요?”

“불퇴야. 실종자 명단에는 그때 청성의 일대 제자도 있다. 너도 알다시피 그는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이 자리에 함께 모인 당불퇴와 당지명은 진혁수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최소한 자신들과 동등, 혹은 그 이상.

이미 몇 달 전에도 호랑이쯤은 십수 마리가 덤벼들어도 살아나갈 무력을 보유하고 있던 진혁수였으니, 한낱 금수의 습격 따위는 가당치도 않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아니, 뭐. 평범한 호랑이가 아닐 수도 있죠.”

당불퇴는 조금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얘도 평범한 새는 아니잖아요!”

- 삑?

자신의 새로운 둥지가 된 당불퇴의 머리 위에서 나무 열매를 쪼아먹던 삑삑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 영물이란 거냐?”

“영물이 사람을 잡아가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요물(妖物) 내지 요괴(妖怪)쯤 되겠죠.”

“허, 요물이라…….”

가당치 않은 말 하지 말라고 하고 싶으나, 그러기에는 이미 저 운남 땅에서 천년혈주라는 독물과도 혈전을 벌인 기억이 있다.

“그런 게 흔치 않으니 내 입장에선 어디 사파 무리가 새롭게 둥지를 튼 게 아닐까 싶긴 한데…….”

당지명 역시 그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지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그래도 조금은 현실적인 대안들을 제시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가만 듣고 있던 적웅은 무어라 의견을 제시하는 대신 가주를 쳐다보았다.

“가주. 이 몸은 변방에서 왔기에 아무래도 이런 쪽에는 지식이 부족하여 감히 소견을 내기는 어려울 듯싶소. 다만, 이런 자리에 이 몸을 불러오신 것은, 이 몸에게도 소임을 맡길 생각이신 듯한데 그 생각이 옳겠소?”

과연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는 괴물의 정체가 진정 괴물인지 혹은 인두겁을 둘러쓴 괴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웅에게 있어 당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당가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설 것인지,

두 번째는 그에 자신을 기용해 줄 것인지.

붉은 바위 일족과 적웅이 적석촌을 만들고 당가에 뿌리내린 이후, 그들과 함께할 것은 그들 스스로 맹세했다지만 이런 작전에 함께 나가게 해주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저 또한 궁금하군요. 이 자리에 불러주신 것은 같은 의미라 여쭈어도 될는지요?”

함께 자리해 있던 홍수월 역시 자신의 섭선을 펼쳐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고, 그런 둘의 기대 어린 시선에 당위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임무를 맡긴다거나, 소임을 내린다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두 분께 도움을 요청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

그 정중한 요청에 적웅은 두 주먹을 부딪치며 활짝 웃었고, 홍수월 역시 부드러이 섭선을 살랑였다.

“좋구려. 드디어 은혜를 갚을 때가 왔으니.”

“선대의 인연이 이어지니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당유혼은 속으로 생각했다.

‘확실히 저 둘의 참전은 도움이 되겠지.’

솔직히 실종 사건의 전말에는 아직도 감이 잡히는 게 없다.

‘괜히 이것도 마교도 놈들 짓인가 생각하면, 그건 피해망상에 가까운 행동일 테지.’

요 근래 마교도 놈들이 하도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니, 별게 다 거슬리기는 했다.

‘하지만 놈들이 이렇게 대놓고 수상하게 행동할 일은 없고. 어디 사파 잡놈들이나, 사교도… 정말 예상외라면 요괴가 기승을 부릴 확률이 있을 터.’

뭐가 됐건, 나쁘지 않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혁수 그놈은 쉽게 잃기는 아까운 패임은 확실하고, 이번 활동으로 민생 안정에 기여한다면 사천당가의 이름이 다시금 사천인들의 인식 속에 뿌리내리기 훨씬 쉬워질 테니까.’

아마 이런 활동은 앞으로도 종종 일어날 것이었다.

이름부터가 구린 만가쟁패라는 시대는 힘없는 양민의 고혈을 쥐어짜며 그 명줄을 이어 갈 터이니, 당가의 가솔이라면 자신이 없어도 이런 활동에 익숙해져야겠지.

“형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가만 지켜보고 있자니, 발언권은 당유혼에게로 돌아왔다.

자신에게 차례를 넘겨준 당위혼은 가만 지켜본 당유혼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어렵게 생각할 게 뭐 있겠냐? 수상한 놈이면 끄집어내고, 나쁜 놈이면 쥐어팬다. 사파라면 모가지를 예쁘게 따주고, 사특한 요괴라면 토벌하면 그만이겠지.”

참으로 저다운 말이로다.

다들 허탈한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반발은 없었다.

“하면, 출발 일정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질질 끌 것 있나. 바로 가보자고.”

어차피 출발할 인원도 여기 다 모였겠다.

수상한 마을을 향한 방문은 바로 당일 날 시작되었다.

* * *

“저기네요.”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들 무공깨나 익혔거나, 그에 버금가는 재주가 있어 이동에는 오랜 시간 걸리지도 않았다.

“겉보기에는 딱히 특별할 게 없는 것 같은데…….”

“그게 당연하겠지. 가뜩이나 수상한 마을이 겉보기에도 유별나면 당장 감시 대상이 될 테니까.”

마을 어귀에서 보자면 평범한 화전민 마을보다 좀 더 나은 정도가 끝인 곳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드문드문 보이고, 저녁이 되어 어슴푸레 땅거미가 깔릴 때가 되니 밥 짓는 연기도 하나둘씩 올라온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계획대로 해야지. 자, 가보자고. 김씨.”

그리 말한 당유혼은 보무도 당당하게 마을 입구로 척척 들어갔다.

등에는 보부상들이나 질 만한 등짐을 멘 채 안으로 향하니, 곧 마을을 거닐던 사람들 몇 명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응? 형장은 누구시오?”

“아휴, 반갑습니다요! 저희는 이번에 막 상행을 시작한 천안 보부상 패입니다요! 이제 막 사천에 돌아가려는데, 하필 산 하나만 넘으면 되는 중에 날이 저물어서 잘 곳을 찾던 중 밥 짓는 연기를 보고 찾아왔습죠.”

“보부상…이라기에는 좀 어리신데?”

“헤헤, 안 그래도 이번이 첫 상행입니다요! 형님들에게는 귀여움 많이 받고 있습죠.”

뒤쪽에 멍하니 서 있는 이들을 가리키자 마을 사람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인가 보군. 하면, 촌장님께 안내해 드리겠네.”

“아이고, 그래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요!”

이 밤중에 꼼짝없이 노숙을 해야 할 뻔하다가 겨우겨우 살았다고.

부러져라 허리를 굽혀대는 당유혼을 보며 다른 이들은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저 새끼,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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