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63화 (163/350)

163화

* * *

청성산.

천사도의 창시자인 장도릉이 오두미도의 교리를 창안했다고 전해지는 도교의 발원지 중 하나인 이곳은 오늘날에도 무수히 많은 향객들의 방문을 받고 있었다.

산악에 흐르는 영험한 기운이 이곳을 찾는 향객들에게 신령한 가호를 내려준다는 소문이 파다했기에 오늘도 많은 이들이 청성산을 올랐다.

그리고, 개중 일반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길을 오르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개같은 놈! 빌어먹을 놈! 똥물에 빠트려버릴 놈!”

신성한 청성산에는 어울리지 않는 온갖 험한 말을 뱉어대고 있는 진혁수였다.

‘가르침을 줘? 두 번 줬다가는 사람 잡겠구나!’

구십구 일의 시간이 지나고, 백 일째 되는 날 주어진 소원권으로 당유혼에게 가르침을 요구했다.

그래, 분명 먼저 배움을 청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그 지랄 맞은 성격이 반영될 것이야 예상했지만,

‘그래도 정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니더냐!’

사정없이 처맞았다.

분명 백 일째 되는 날 돌아가려 했는데, 얼마나 흠씬 두들겨 맞았는지 일주일 밤낮을 끙끙 앓으며 드러누워 있어야 했다.

‘복수한다. 은혜를 잊지 않으나, 원한 역시 잊지 않는 것이 이 몸 진혁수니까!’

그나마 뼈가 이쁘게 부러져서 붙기 쉬웠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인지, 먹을 건 잘 챙겨 줘서 원래는 전치 육 주쯤 걸릴 부상이 일주일 만에 회복되었다는 것에 안도를 느껴야 할지.

부상을 털고 일어나 회복하는 대로 청성을 오르고 있지만, 아직도 뼈 마디마디가 수신 게 현실이었다.

덕분에 입에서는 계속해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지만,

“…후.”

청성파.

수려한 글씨가 새겨진 현판이 보이는 순간, 진혁수는 긴 한숨과 함께 험한 말들을 털어냈다.

이전까지야 이 말 저 말 다 한데도 양심에 터럭만큼도 가책이 없었으나, 저 현판 앞에서는 경건해야 했다.

“혁수야, 청성을 부탁하마.”

스승님의 마지막 유지가 있었고,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청성파는 장차 그 자신이 이름을 드높일 곳이었다.

‘내가 그리 만들겠다.’

청성에 모든 것을 다 바칠 준비가 되었기에, 스스로가 청성의 모든 것을 계승할 자격이 있다는 확신.

그런 믿음이 진혁수라는 본질적으로 오만한 이마저 스스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렇게, 정숙한 묵념 후 다시 발걸음을 안으로 들어가자 이대 제자와 삼대 제자들이 진혁수를 발견하고 알은 채 해왔다.

“사형!!”

“사형을 뵙… 아니?! 사, 사형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안색이……!”

“됐다. 신경 쓰지 마라.”

반갑게 달려오던 이들이 깜짝 놀라 굳을 만큼 파격적인 행색.

옷가지는 이리저리 찢어져 있고, 한쪽 눈에는 푸르스름한 멍이 들어 있다.

입술도 한쪽이 부어 있는 것이, 쉽게 말해 어디 저잣거리에서 줘 터져 온 게 아닐까 싶은 수준.

‘신경 쓰지 마시라고 해도…….’

‘대체 무슨 일이…….’

결국 눈치만 보던 삼대 제자들이 한숨만 푹 내쉬자, 진혁수는 아무렇지 않게 물어왔다.

“한데, 인원이 적구나. 지금이면 청소 시간이 아니더냐?”

“예? 아, 그것이…….”

석 달 만에 돌아온 문파 내부는 인원수가 생각보다 적다.

그것도 삼대와 이대 제자들의 숫자가 적어 의아해 묻자, 어린 제자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 있느냐?”

“그… 척사행(斥邪行)을 나선 이들의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뭐?”

척사행.

달리 퇴마행이라고도 불리우는 그것은 청성파에서 정기적으로 주변 민생 안정을 위해 산간에 숨어 있는 요괴와 잡귀들을 토벌하는 행사와 같았다.

원래 요괴와 잡귀들이 인간을 해하는 성질이 있기에 그 위험성이야 당연 뒤따르겠지만,

‘소식이 끊기는 일은 결코 흔치 않은데…….’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청성도문인 만큼 척사행에도 도가 텄다. 위험하면 곧바로 물러서게 하기도 하는 만큼 부상자가 있다면 몰라도 연락 자체가 아예 끊겨 버렸음이 진혁수의 안색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다른 일대 제자들은… 아니, 장로님들과 장문인께서는 뭐라 하셨더냐? 추가적인 지원은 언제쯤 출발하는 것이냐?”

“그것이…….”

당장 사람을 파견해야 할 상황.

자신이 청성을 비웠던 백 일간의 시간 동안 일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는 몰라도, 날짜가 잡혔다면 당장에라도 함께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뭐? 아직 예정이 없다고?”

돌아온 답은 그의 인상을 더더욱 구겨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연락이 끊긴 지 얼마나 흘렀지?”

“사흘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흘? 그런데 아직도 지원, 아니, 구조대가 출발할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음이 말이나 되느냐?”

답답해 소리를 쳐보지만, 그게 애꿎은 화풀이라는 것은 진혁수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장문일을 찾아뵈어야겠다.”

“사, 사형?”

당황한 어린 제자들이 입을 모아 진혁수를 불렀으나,

“됐다. 내가 알아서 하마.”

의지로 가득 한 그의 눈은 이미 확고히 결정을 내린 뒤였다.

* * *

의복을 갈아입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등을 정리한 진혁수는 곧장 장문인을 찾아갔다.

원래라면, 제아무리 진혁수가 일대 제자라지만 그의 연배에서 장문인을 대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 이번 사천당가의 의뢰를 수행하고 받아온 착수금이 워낙에 컸기에 보고 형식으로 장문인을 독대할 수 있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포권을 취하며 깊게 읍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극상의 예를 다 하는 모습이지만, 정작 그런 진혁수를 보는 청원자의 눈은 그리 곱지 않았다.

“그래… 예정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의뢰에 완벽을 기하느라 지체되었습니다.”

부상을 회복하느라 사흘이 더 걸린 것을 지적하며 말해 오는 청원자였다.

하지만 정작 눈에 뻔히 보이는 그 부상은 물어오지 않으니 상대방이 자신에게 가진 감정은 익히 짐작되었다.

‘내가 여간 탐탁지 않으신가 보군.’

청원자.

지난 수십 년간 청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고 전해지는 인물이었다.

그간의 발전은 전부 청원자의 공격적인 문파 경영 덕분이었다는 평이 자자했고, 실제로도 마교의 발발 이후 기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체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혼란의 시기가 지난 이후에도 청성이 그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로가 혁혁했다.

하나, 그래서 진혁수는 그가 좋지 않았다.

‘당신은 예전부터 스승님과는 대척점에 있었지.’

스승 청운자가 더 이상 청성의 무공에만 얽매이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무공을 발전시키자는 성향이었다면 청원자는 오로지 청성의 무공이 제일이라 여기는 이었다.

단지 이런 측면만 보자면 한쪽은 진보적이고 한쪽은 보수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청운자는 그 개혁이 어린 제자들이 빠르게 강해져서 자신들을 지킬 힘을 갖추길 원했다는 쪽이라면 청원자는 자신이 장문으로 있는 청성 자체가 강해지길 원했다.

그렇기에 청원자는 자신의 권력 기반이 확고해지길 원했고, 자신과 같은 파벌의 이들은 가까이 끌어들이며 갖은 지원을 내려준 데 반해 다른 파벌의 인물들은 차별과 편파를 두었다.

단지 그뿐만이라면 모를까, 청원자는 자신에게 반하는 이들은 문파 외부의 행사에 파견 면목으로 내보내 버리고는 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민생 안전을 위한 일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수련할 시간도 많이 주어지지 않았고 각종 궂은일, 힘든 일을 도맡아야 했으며, 그들이 그리 고생하며 청성파의 명성을 높여봤자 사람들은 그들 개개인을 알아주지도 않았다.

그리 철저히 차별화적인 운영이 반복되자 집중적인 지원을 받고 성장한 이들은 다시 문파의 무력 증진에 분명한 도움이 되었지만, 정작 그동안 고생한 이들은 제대로 보상받지도 못하고 문파 외부를 겉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의뢰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자신이 입은 부상에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기한을 넘겼다 면박을 주는 모습.

애초에 기대가 없었기에 실망도 없었다지만, 한층 낮아지는 어조를 숨기지 않은 채 답했다.

“또한, 그에 합당한 보상도 받아왔습니다.”

“허허, 도인이 되어 한낱 금욕에 눈이 멀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렇습니까? 유념하겠습니다.”

웃기지도 않은 말이지만 진혁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러가니 청원자가 입을 열었다.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느냐?”

자신은 할 말이 다 끝났으니 이제 물러가라는 명백한 축객령.

하나,

“예, 그렇습니다.”

그에 얼굴이 붉어지며 물러날 진혁수가 아니었다.

“얼마 전, 척사행을 떠났던 어린 제자들이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음.”

그 말에 장문인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

설마 싶었던 의혹이 점점 선명해지는 순간이었으나 진혁수는 마지막 조각들을 맞추기 위해 말을 이었다.

“혹시, 그곳에 제 동기들이 있습니까? 동기들이 있다면 저의 일이기도 하니 신경이 몹시 쓰입니다.”

“없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거라.”

‘하… 그럼 그렇지.’

사실상 지금의 일대 제자들은 자신을 제외하고 전부 장문인의 파벌이라 봐야 했다.

그동안 청성파를 이 자리까지 발전시켜온 청원자는 장로들 대부분을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였고, 일대 제자는 진혁수를 제외하면 전부가 그의 수족이라 봐야 했다.

‘장문인의 성격에 척사행을 떠난 인원 중 하나라도 일대 제자가 있었을 시 진작 구조대를 보냈을 것이다.’

청원자라고 해서 이대 제자와 삼대 제자들을 아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우선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할 뿐.

쯧.

결국 진혁수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는 힘들겠습니다.”

“뭐라?”

“저를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그 말을 뱉는 순간,

“호오…….”

진혁수는 분명히 보고 말았다.

원래는 피곤과 짜증, 기피 등을 지니고 있던 청원자의 눈빛이 언제 그랬냐는 듯 호선을 그리는 것을.

‘당했나.’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청원자의 설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척사행을 떠난 이들의 실종.

그들에 대한 구조대를 파견하는 것을 미뤄둔 것도, 당장 백 일의 의뢰를 마치고 돌아온 진혁수를 보내버리면 외부 시선에 영향을 받을까 봐 그가 스스로 나서겠다 말을 뱉기까지 기다린 것일 수 있겠다 싶었다.

‘아니, 분명 그렇겠지.’

추측이 마침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 진혁수는 다시 한번 재차 말했다.

“어차피 장문인께서도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까?”

“소식이 끊긴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말하느냐? 그야 물론 당연한 바이니라. 장문으로서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느냐. 한데 그 와중 네가 스스로 나서겠다 자원해 주니 한시름을 걷을 수 있었단다. 아주 고맙구나.”

뾰족한 말을 특유의 능글거림으로 받아내는 청원자의 언변에 진혁수는 그저 푹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아닙니다.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해야 할 일.

진혁수의 다음 행보는 그리 결정되었다.

그리고 사흘이 흘렀다.

스스로 구조대에 자원한 진혁수의 소식마저 끊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