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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07화 (107/350)

107화

【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

새 하루가 밝고, 선수 보호 차원에서 주어졌던 사흘간의 휴식 시간이 끝나며 사천비무대회가 재개되었다.

관중들의 열기는 휴식기를 걸쳤음에도 식기는커녕 더더욱 화끈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관심을 한몸에 받는 비무장에 선 당불퇴는 저기 어디쯤 자신을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을 적세희를 생각하며 양팔을 크게 흔들어 보였다.

그때,

“여유가 넘치는구나.”

차가운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히죽―

“아, 미안하게 됐수다. 딱히 그쪽을 무시하거나 한눈을 판 건 아닌데… 이쪽도 사정이 있거든.”

그제야 고개를 돌린 당불퇴가 자신의 상대인 삿갓 무사를 보며 양 주먹을 쾅쾅 부딪쳤다.

“자, 시작해 봅시다.”

“이놈이…….”

진혁수는 그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거칠게 검을 뽑아 들어 그 끝을 당불퇴의 미간을 향해 겨누었다.

“워후, 흉흉하구만.”

당불퇴가 가볍게 너스레를 뜰 때,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신호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둘은 선 자리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쩌엉―!!

내뻗은 주먹이 검면을 때리며 굉음을 퍼트렸다.

부딪히는 순간, 둘의 인상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강하다!’

‘강하잖아?!’

같은 말이었으나 한 명은 인상을 찌푸렸고, 한 명은 흥분으로 물들었다.

당연 후자 쪽이 당불퇴.

아직 낫지 않은 부상이 욱신욱신했고, 일수의 교환으로 일어난 반탄력이 그 부상을 더더욱 찌릿하게 자극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당불퇴의 희열을 돋우는 취기와 같았다.

“형씨, 진짜 강하구만!”

강한 상대와의 승부가 가져다주는 흥분에 당불퇴가 그리 소리칠 때, 진혁수는 더더욱 차갑게 안색을 굳히며 검을 휘둘렀다.

부웅―

‘이크!’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검격.

피했다 생각했는데 아슬아슬했던 것인지 머리카락 몇 다발이 잘려 허공에 흩날렸다.

‘강하다.’

확실히 이 남자는 강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추풍대의 마적들과는 다른 느낌의 강함이었다.

“정파의 무공은 느려. 수련 과정도 답답하기 그지없지. 사파의 무공이 이런저런 편법으로 성큼성큼 뛰어간다면, 정파의 무공은 답답할 정도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나아가.”

머릿속에 그의 어린 대형, 당유혼이 일러주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게 십 년이 되어 훌쩍 나가 있게 되면 그때부터 검에 담기는 무게가 달라져. 언제나 정직하게 나아간 그들의 무(武)는 성큼성큼 뛰어가느라 이것저것 빠트렸던 사파의 것들과 달리,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나아가서 빈틈을 찾을 수 없게 된다.”

힘이든 속도든 단순히 빠른 것뿐만이 아니다.

무식하게 휘두르는 검이 아니라 확실하게 상대의 허점을 노리고 파고드는 검이기에 반격할 빈틈조차 찾기 힘들었다.

하나,

‘빈틈이 안 보이면, 만들어 내면 되지!’

당불퇴의 몸이 핑그르르 돌더니 상대를 향해 뒤돌려 차기를 갈겼다.

“흡?!”

그게 얼마나 신속한지, 막 연이어 공격을 날리려던 진혁수는 검면을 세워 그걸 막아내야 했고,

쩌엉―

그 힘을 채 흘려내지 못해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서야 했다.

“이놈…….”

검병을 쥔 손아귀가 저릿저릿했다.

하나 그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 이유는 다른 것.

“크하… 이걸 막냐?”

완전히 무너진 자세에서 뒤돌려 차기를 날리느라 당불퇴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져 있었다.

‘그 자세에서 반격을 날려?’

너무나 변칙적인 일격이어서, 만약 진혁수가 당황하지 않고 파고들어 연격을 날렸다면 승부는 조금 전에 끝났을 것이다.

그야말로 미친 도박수.

‘하지만… 놈은 그걸 시도했고, 성공했지.’

그 사실에 진혁수는 짜증스레 검을 휙― 하고 휘두르며 으르렁거렸다.

“실로, 짐승 같은 놈이구나.”

“그 소리 많이 들어. 당가의 푸른 야수가 내 별명이거든.”

읏차―

자리에서 일어선 당불퇴는 다시금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자, 그럼 놀아보자고!”

파팟―!

당불퇴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진현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허공으로 솟구친 그는 진혁수의 머리 위쪽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삿갓에 가려 시야 파악이 느렸던 그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자 꽈앙― 하는 소리가 바로 앞에서 울려 퍼졌다.

“형씨, 그 삿갓… 안 벗어도 되겠어?”

바닥의 옥판을 때려 부수며 착지한 당불퇴가 낄낄 웃자, 진혁수는 거칠게 검을 휘두르며 일갈했다.

“네놈 따위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어이쿠, 그러시겠지!”

당불퇴는 자신이 박살 냈던 바닥의 옥판 조각을 발로 차 날리며 물러섰다.

휘둘러 오던 검의 궤적에 부딪힌 조각은 다시 한번 산산이 조각났고, 완전히 가루가 된 파편이 그의 시야를 가릴 때 당불퇴는 보법을 밟으며 진혁수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파파팟!!

당불퇴가 짐승에 가까운 몸놀림을 보일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건 몰라도 경신법과 보법만큼은 방계들 중 수위에 꼽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당불퇴의 움직임은 미처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고, 물씬 풍기는 투지는 끊임없이 상대방의 감각을 교란해 언제 기습적으로 덮쳐들지 몰라 긴장을 강요했다.

하나, 그 속에서도 진혁수의 눈은 예리하게 빛났으니.

‘지금!’

안광이 번쩍 토해질 때, 한 줄기 섬광이 허공을 꿰뚫으며 뻗어 나갔다.

푸확!

핏물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옆구리가 깊게 베이며 화끈한 감각이 느껴졌다.

“크흣……!!”

비명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가 당불퇴의 입에서 토해져 나올 때,

씨익―

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고,

터터턱―

당불퇴는 옆구리를 꿰뚫은 검을 쥔 진혁수의 팔을 팔꿈치로 단단히 결박한 채로 반대쪽 주먹에 내공을 잔뜩 불어넣어 내뻗었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진천권(振天拳).

꽈아아앙!!

단순 무식하지만, 그만큼 위력 하나는 확실한 일권(一拳)이 때려 박히며 진혁수의 몸이 뒤로 쭈욱 날아갔다.

길게 자국을 남긴 진혁수를 보며 당불퇴는 입맛을 쩝― 다셨다.

“…흐. 그걸 막네?”

확실하게 한 방을 먹일 수 있다 싶었는데, 그 순간 진혁수는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허리춤의 검집을 풀어 자신의 반격을 방어해 냈다.

타격은 있었겠지만, 그 와중에 대부분 흘리는 데 성공한 기가 막힌 방어.

‘이게 명문 대파의 제자라는 거지?’

공격도 방어도 너무나 견고하다.

다만,

“어이, 형씨. 암만 그래도… 진짜 끝까지 그걸로 날 상대할 생각이슈?”

당불퇴는 그럼에도 그게 상대방의 전부가 아님을 알았다. 처음엔 추측이었지만 몇 번 더 부딪혀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당신 원래 검법은 그게 아니잖아.”

습격 당시, 자신들 삼 형제의 합격을 받아낸 청성파의 무인. 그때 사용했던 검법과 지금의 검법은 아예 다른 것이었다.

“정체를 숨기려는 것은 알겠다만… 계속 그랬다가는 못 이길걸?”

점점 익숙해진다.

상대는 제법 강해졌다 자부하는 지금의 자신보다도 더 강하지만, 몇 번 부딪쳐 보니 움직임이 눈에 익는다.

워낙 자신보다 강한 이들과 싸워본 경험이 많은 당불퇴였기에, 조금 전 교환에서 찢겨 핏물이 흘러나오는 옆구리 주변의 혈을 짚어 대충 지혈한 뒤 씨익 웃었다.

“나한테 잡아먹힌다고?”

그에,

“…재밌군.”

고개를 푹 숙인 채, 일격을 허용 당할 뻔했던 제 가슴팍을 내려다보던 진혁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뭐야?’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더 이상 조금 전처럼 금방이라도 터질 듯 끓어오를 듯한 짐승의 그것이 아니었다.

섬칫―

‘예리하다. 칼날같이.’

비유하자면 차갑고 서늘한 검날의 감촉과 같았다.

“내가 보인 게, 한낱 장난과 같이 보였나?”

한 손에는 검을, 한 손에는 검집을. 그리고 그 검과 검집에 각기 다른 색의 아지랑이가 응어리졌다.

검에는 붉은 기운이 어렸고, 검집에는 푸른 기운이 어렸다.

푸른 구름과도 같고 붉은 노을과도 같아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난 그 상반되는 색채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그리하여 쌍검(雙劍)의 기수식을 취한 그 모습은 지금껏 펼치던 검법들과는 기질 자체가 틀렸으니.

아니…….

‘저게 정파의 검이 맞기는 한가?’

도가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선도와 수양을 위한 수법이기 때문에, 차가운 쇳덩이를 다루더라도 선기가 담겨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저 자세에서 느껴지는 건…….

‘추풍대… 그 마적들이랑 너무 비슷한데?’

그런 생각에 닿을 때, 진혁는 그 끝을 겨누며 말했다.

“다시 하지. 이젠 실망할 일 없을 거야.”

“…두근두근한데?”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피부에 와 닿는 예기가 한층 더 예리해지자, 육감은 맹렬히 위기를 경고했다.

그 속에서 당불퇴는 다시 한번 내공을 돋우며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고, 진혁수는 차갑게 식은 시선으로 그 움직임을 좇았다.

‘…짐승 같은 움직임. 빠르기도 빠르지만, 무엇보다 그 공격이 급소를 노린다. 알고 노린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짐승과 같이 감각적인 움직임이다.’

몇 번의 합 속에 파악한 당불퇴라는 인간의 움직임.

양팔에 힘을 빼고 가볍게 쌍검을 쥔 두 손목을 휘휘 돌리던 진혁수가 일순간에 검무를 시작했다.

쒜엑―

철검이 붉은 반월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그 반월이 얼마나 실로 아름다웠으나, 차갑고도 서늘해 당불퇴는 깜짝 놀라 몸을 숙여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읏차… 위험하… 크윽?!’

뻐억!!

피했다 싶은 순간, 허벅지에 둔중한 충격이 느껴졌다.

‘검집!’

너무나 예리한 반월에 시선을 뺏겨 미처 검집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사실에 인상을 찌푸릴 시간도 없었다. 다시금 철검과 검집이 교차하며 날아들었기에 어서 피해야 했으니…….

하지만,

찌릿―

검집에 얻어맞은 부위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당불퇴는 원래 물러나려던 거리보다 한 걸음을 적게 물러선 채로 멈춰야만 했다.

‘자, 잠깐… 이 부위는……!!’

경악하는 사이에도 검격은 연이어 날아들었다.

곡예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그 자리에 선 자세에서 두 번의 검격은 무사히 피해 냈으나,

콰아앙!!

날아드는 발차기를 피하지 못해 가슴팍을 얻어맞고 뒤로 나가떨어져야 했다.

“크하……!!”

참지 못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저벅저벅 걸어온 진혁수가 철검의 끝을 겨누며 이죽거렸다.

“계속 보니, 그쪽 다리가 묘하게 비정상적이더군. 어디서 부상이라도 당했나?”

그 말에 머릿속에 몽둥이 들고 달려들던 열두 명이 떠올랐다.

워낙에 골고루 처맞아서 어디 어디를 처맞았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싶더니…….

“…길 가다 넘어졌다, 이 자식아.”

아득―

이를 악물며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후들후들 떨리는 두 다리로 애써 땅을 박차고 일어나니 어질어질한 현기증이 닥쳐왔다.

뭐야? 이건… 아…….

고개를 내리니 지혈했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 못 버틸 것 같은데.”

“알아.”

몸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새어 나오는 게, 얼마 안 가 또 기절할 것 같았다.

그러면 또 쓰러졌다 일어나서 대형과 형제들에게 비웃음을 들을 것이고, 적세희는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겠지.

그러니까…….

“그전에 실컷 놀아보자고!”

뜨거움이 새어 나간다고 식을쏘냐.

당가의 푸른 야수 당불퇴, 그는 그럴수록 더더욱 뜨거워지는 사내였다!

콰아앙!!

“짐승 같은 놈.”

질린 듯한 목소리로, 혹은 조금 감탄한 듯한 목소리로 진혁수는 다시금 검무를 시연했다.

“후우우…….”

중단세의 검이 붉은 노을을 만들면, 더 높게 치켜든 상단세의 검집은 푸른 구름을 만든다.

“크하하아압!!”

두 자루 적색과 청색이 펼치는 궤적은 당불퇴가 무차별적으로 휘둘러오는 모든 주먹질과 발길질을 쳐내고 다시 한번 옆구리에 칼집을 꽂아 넣는다.

‘치사한… 이, 이 새끼 때린 데 또 때리네……!!’

당불퇴는 호흡이 끊기는 격통을 느끼며 다시 한번 땅을 뒹군 후 간신히 고개만 들었다.

새액새액―

폐 어딘가가 잘못된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불현듯 물었다.

“…일단, 사과하지.”

“뭐?”

그에 진혁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

“네 녀석 그 검법 말이야. 훨씬 어울리는군. 그거, 대체 이름이 뭐냐?”

지독하게 차갑지만, 동시에 만든 놈이 죽어라 수련했을 열정이 느껴지는 검공.

무림에 저런 쌍검술이 있었나 싶어 묻자, 진혁수는 순간 표정을 굳히더니…….

“…하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뭐?”

잘 안 들려.

그 소리가 너무나 작아 다시 묻자, 진혁수 역시 한 층 더 목소리를 높이며 답했다.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우선은, 그렇게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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