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04화 (104/350)

104화

사천비무대회가 계속될수록 점점 청성산의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동시에, 두 명의 별호가 연신 울려 퍼지기 시작했으니,

파병수(破兵手).

만병수(萬兵手).

당가이수(唐家二手)라 불리는 두 명의 별호가 바로 그것이었다.

“쯧쯧, 잘한다, 잘해. 한 놈은 상대방 무기는 다 때려 부순다고 파병수고, 한 놈은 온갖 무기를 다 다룬다고 만병수냐?”

연이은 승전보를 가져와 칭찬받을 생각이던 둘은 육포나 질겅여대던 당유혼 앞에서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

‘아니, 잘했는데 왜?’

‘왜 또 시비야?’

할 말은 많았지만, 댓 발 튀어나온 입을 삐죽거렸다가는 사람들 앞에서 처맞을 게 뻔하기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결국, 보다 못한 당위혼이 대신 그들을 변호해 줬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 이들입니다. 격려를 해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형님.”

“좋은 결과는 무슨. 가주님, 저 두 별호가 강해 보여? 막 딱 붙으면 그냥 오금이 저려서 덜덜 떨 것 같아?”

“…그건, 아니지요?”

“그래, 그게 문제야!”

딱―!

“악!”

육포 쪼가리에 얻어맞은 당지명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왜 때리십니까!”

“약해 보이잖아!”

당가이수라니?

어디 당가무적권쯤 되야 그래도 쪽은 안 팔리지 않겠냐고, 그리 말하는 외침에 둘은 그냥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대화는 사람이랑 하는 거다…….’

‘사람은 개랑 함께 짖지 않는다…….’

불경을 되뇌듯 구시렁거리던 둘의 모습을 보며 당위혼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일단, 진정하시고 돌아가시지요. 오늘 비무는 여기까지이니 고생한 이들에게 휴식을 주어야 합니다.”

“저러고 휴식을 취하게 하자고? 휴식을 취하자면 저 정도는 돼야지.”

당유혼의 손이 마침 이제 막 비무가 끝난 비무대 하나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검을 떨어트린 무인 앞에선 어느 삿갓인이 덤덤하게 상대방을 향해 검극을 겨누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을 둘러싼 대중들의 환호가 빗발쳤다.

“역시 무명객(無名客)이야!!”

“이번에도 완벽하게 상대를 압도했군!”

“어찌 저런 문파가 숨겨져 있었을까?”

삿갓을 쓰고 나타난 무명객.

무영검문(無影劍門) 출신이라 소개한 그는 처음에 아무런 별호도, 이름도 알려진 게 없었다.

하지만 예선을 거쳐 본선에 이르기까지 압도적인 승리가 이어지자 그 모습에 열광하기 시작한 군중들이 무명객(無名客)이라는 별호를 붙여주었다.

“딱 봐도 강해 보이잖아!”

“그건…….”

솔직히 방계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말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고, 결국 당위혼이 나서서 손을 내저었다.

“일단 돌아가시지요, 형님.”

“에잉, 쯧.”

불만족스러운 구시렁거리는 소리만 고막을 찔러왔지만, 당지명과 당불퇴은 그래도 애써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맞지는 않았잖아?’

그럼 됐지, 뭐.

* * *

방계들이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돌아갈 때, 청성파의 분위기는 상갓집 못지않게 흉흉했다.

“…그놈, 만병수를 봤나?”

“파병수, 그놈도 만만치 않더군.”

외부 시선이 닿지 않는 곳. 어느 전각 내부에 모인 이들의 정체는 청성파의 이대 제자들이었다.

당장 지난번 당가의 상행을 습격했던 이들은 딱딱히 굳은 표정으로 오늘 있었던 비무들을 반추했고, 개중 이대 제자인 제형우가 입을 열었다.

“놀랄 만큼 성장했다. 그놈들, 그때 부딪쳤을 때보다 몇 배는 강해졌어.”

직접 손을 섞었던 만큼 어느 정도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가 방계들의 성장세는 놀라울 만큼 드높았다.

“어쩌면… 사형조차 위험할 수도 있어.”

“개소리하지 마! 진 사형이 패배한다는 소리냐?!”

“아, 아니 그건 아니지! 다만, 위험할 수 있다는 거야. 하필 그 두 놈은 다른 대진인데, 진 사형은 파병수를 상대하고 만병수를 상대해야 하잖아.”

누군가의 외침에 제형우가 당황하며 변명했다.

그 말에는 다들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대로 갔다가는 진 사형에게 불리해.”

“그럼 어떻게 하지?”

누군가 물음을 던졌지만, 사실 그 답은 정해진 것이었다.

“습격…할까?”

“뭐, 뭐?”

제형우의 말에 모두가 당황해했지만, 이미 그 말을 뱉은 제형우는 기호지세라 여겼다. 어차피 누군가는 이 말을 해야 할 터, 그렇다면 자신이 첨병에 설 생각이었다.

“부상만 입히자는 거야. 어차피 놈이 진 사형을 이길리는 없어. 결과는 정해져 있지만, 괜히 놈이 자신의 형제를 위해서 이 악물고 달려들어 진 사형에게 부상을 입히고 패배하면 어떻게 해?”

“그건… 맞는 말이지.”

“놈이 어지간히 독한 놈이었냐…….”

실제로 당불퇴가 날아드는 칼날 앞에서도 머리를 들이미는 미친놈이란 건 익히 경험했기에, 이대 제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부상만 입히는 거야. 그러고 빠르게 퇴장시키자고.”

“그래,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던 것이니까.”

그들은 의견을 모았다.

어차피 정해진 결과에서 과정만 살짝 바꾸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협의에 어긋날 것도 없다 여겼다.

그것이 흔히들 합리화라 불리는 과정이었지만, 여기에 그 사실을 깨우쳐 줄 이는 없었다. 집단의 욕망은 개인의 정의를 가볍게 짓밟는 법.

그들의 음모가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악의가 향하는 종착지에 있는 당불퇴는…….

“어떻게 생각해? 네가 생각해도 대형이 너무하지 않냐?”

“삑?”

“와, 이걸 동의 안 해줘? 너 내가 처맞는 거 못 봤냐?”

“삑삑!”

“뭐, 뭐? 그건 내가 약해서라고? 자연은 원래 약육강식이라고?! 내가 네 어머니 구해 준 거 몰라?”

“삑.”

“우, 웃기지 말라고? 시간 지났으면 다 나았을 거라고?”

당불퇴는 한참 아기새 삑삑이를 머리에 태우고 홀로 밤길을 걷고 있었다.

“이, 이 배은망덕한 녀석!! 이 금수 같은 녀석!! 그게 지금 네 간식거리 사주려고 이 밤에 혼자 나와준 사람보고 할 말이냐?”

오늘 사천비무대회의 일정이 끝이 나고, 당유혼은 그 결과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둘을 달달 볶으려고 했다.

그때 그들을 구해 준 게 당위혼.

고생한 그들에게 휴식 시간을 주자며, 가주의 명령이라는 비장의 무기까지 꺼내 든 엄호에 결국 그들은 여가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역시… 대자대비고금제일우내최강가주님뿐이다…….’

혹시나 그들의 대형 놈이 자신들의 목덜미를 잡아챌까, 둘은 만세삼창을 외치고 곧바로 도망치듯 사천당가를 빠져나왔다.

무려 이틀의 휴가 시간이 주어졌기에, 일과 수련이 끝난 저녁 시간부터는 개인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고, 그동안 당불퇴는 원래 늘어지게 잠이나 자려고 했었다.

하나…….

“네가 머리를 삑삑 쪼아대며 간식 사달라고 해서 기껏 나왔더니!! 어떻게 네가 나한테!!”

“삑삑!”

“젠장! 이미 간식은 입에 들어갔다 이 말이냐?”

시장 거리에서 사준 육포를 두 날개로 꼭 쥐고 부리로 쪼아먹는 삑삑이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울어댔다.

그 모습에 어째서 세상에 금수 같은 놈이란 말이 나왔는지 알겠다는 생각을 하며 당불퇴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걸어갔다.

제발 부스러기만 머리에다 떨어트리지 말라고 소리치며.

그렇게 한참 걷고 있는데…….

우뚝―

문득 걸음을 멈춰선 당불퇴가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과 달빛이 흐드러지게 쏟아지는 어둠 속 골목거리. 주변에 지나다니는 행자들의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삑?”

무슨 일이냐며 머리를 콕 찔러대는 삑삑이의 부리질에 당불퇴는 조심스레 녀석을 두 손으로 집어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삑삑아. 우리 집 기억하냐?”

“삑.”

“그래. 먼저 돌아가 있을래?”

“삑삑.”

“왜 그러냐고? 아, 손님이 있는데… 어째 나한테 용무가 있는 것 같네.”

그 말에 삑삑이는 멀뚱멀뚱 당불퇴를 쳐다보다가 이내 도도도 뛰어가더니 돌담을 타고 올랐다.

삑삑이는 삐죽 튀어나온 곳을 연신 밟아대며 돌담 위까지 오른 뒤에 다시금 울음소리를 냈다.

“삑삑―”

“큭큭, 빨리 끝내고 같이 가자고? 내 머리 위가 제일 편하니까? 그래, 그것도 좋지. 조금만 기다려 봐. 얼마 안 걸릴 테니까.”

그리 말한 당불퇴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리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카앙―!

재빨리 날아간 천골저(穿骨箸)가 무언가에 부딪혀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다.

“거… 다 들켰으니까 그만 숨어 있고 빨리 기어 나오슈.”

“…감이 좋은 놈이군.”

골목 여기저기서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복면을 뒤집어쓴 채, 옆구리에는 검 대신 쇠몽둥이를 하나씩 패용한 차림새였다.

“그건 무슨 이상한 복장이여? 밤 중에 칼질하러 왔다기엔 좀 이상한데?”

“나불거리는 입은 여전하구나.”

“뭐야, 나 아슈?”

‘…아.’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떠올린 제형우가 재빨리 입을 다물며 쇠몽둥이를 풀어 당불퇴를 향해 겨누었다.

“크크, 뭐야. 문답무용(問答無用)이라 이건가? 하긴, 좋은 주먹 놔두고 입 아프게 말해 봐야 뭐 하겠어?”

밤중에 복면 쓰고 찾아온 게, 딱 봐도 좋은 의도는 아닐 텐데.

그렇다면…….

“내가 먼저 가야지!”

파팟―

당불퇴는 곧장 땅을 박차고 아는 체를 했던 복면인을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빠르다!’

제형우는 흠칫 놀랐지만, 재빨리 십 년 넘게 익혀온 검법을 펼쳐 내 그 일격을 받아냈다.

쩌엉―

‘무, 무슨 힘이……!’

하지만 손아귀에 느껴지는 반탄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지난번에 부딪혔을 때도 결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흐, 제법인데?”

당불퇴는 제법이라며 씨익 웃었지만, 연이어 공격하진 못하고 재빨리 옆으로 비켜섰다. 그에, 배후를 노리고 뒤에서 날아드는 몽둥이질이 허공을 갈랐다.

‘손에 쥔 것은 몽둥이질인데, 사용하는 방식은 검법이구나.’

그것도 최고 십 년은 칼질을 해본 놈들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다시금 턱 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몽둥이질을 고개 살짝 젖히는 거로 피해 낸 당불퇴는 결론을 내렸다.

‘더 가까이 붙어줘야지!’

콰앙!!

땅을 박차는 소리가 폭음에 가까워졌다.

이전 돌진보다 몇 배로 빨라진 움직임에 그곳에 있던 복면인이 흠칫 놀랄 때, 날아 차기가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헉!”

그대로 돌담에 날아가 처박힌 복면인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때, 숨쉬기 힘들지?”

습격자들이 살기(殺氣)를 보이지 않았기에 살수(殺手)를 펼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고통이 강렬해 복면인이 쉽게 일어서지 못하자 다른 이들의 안색이 딱딱히 굳었다.

‘이건… 위험하다.’

어느 정도 강함을 예상했지만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모습.

그에 제형우는 정말 만일에 만일의 경우까지 생각했던 수를 쓰기로 결정했다.

“…검진(劍陳)을 펼친다.”

“뭐? 너 진심이야?”

“젠장, 자꾸 아닌 척하지 마! 네놈들도 알잖아! 저놈이 더럽게 강한 거!!”

참다못한 제형우의 일갈에 다른 복면인들은 안색이 딱딱히 굳은 채로 발을 움직였다.

그의 말대로 자존심을 부려 당불퇴를 과소평가했지만, 상대는 자신보다 아득한 강자였다.

“흐흐, 인정해 주니 고맙기는 한데. 검진은 또 뭐냐?”

원래라면 그게 펼쳐지지 않도록 막아야 하지만, 당불퇴는 그 검진이라는 게 펼쳐지도록 방관했다.

그의 내면에 자리한 어쩔 수 없는 무혼(武魂)이 더 새롭고, 강한 걸 보고 싶다 소리쳤기 때문이다.

물론 당유혼이 있었다면, “이 미친 새끼가 무혼은 무슨 얼어 죽을 무혼이야?!”라며 머리를 후려쳤겠지만…….

‘어쩌겠수, 형님. 나는 그런 게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을!’

그 무혼이 있었기에 오성이 떨어져도 방계들 중 특출난 결과를 보일 수 있었던 당불퇴였다.

그에 두 주먹 꽉 움켜쥐고 전투태세를 취하자 청성파에 전해져 오는 검진인 철검십이검진(鐵劍十二劍陳)이 펼쳐졌다.

그에 잔뜩 기대하며 웃고 있던 당불퇴는…….

“흐흐, 그게 검진인가 하는 뭔… 큭?”

심장이 억눌리는 듯한 막대한 중압감에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새삼스레 생각했다.

‘이거… X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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