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잔치가 벌어졌다.
광형 상단에서 단단히 준비했는지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상이 수십 개가 넘게 장원 여기저기에 놓였고, 차양당의 방계들은 한 자리씩 꿰차며 광운대원들과 어울렸다.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이야, 잘 마신다!”
“캬하……!!”
술동이를 통째로 들어 꿀꺽꿀꺽 마시는 당불퇴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형씨! 남자구만?!”
“크흐… 남자아닙니까!”
당가에서는 싸움 붙었던 광운대원 하나가 지금은 당불퇴와 어깨동무를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다가 간혹 칼에 베여 붕대로 감아놓은 부위를 건드리기도 했지만…….
“끄아악!! 자, 잠깐 거긴!!”
“어이고, 이거 괜찮소?”
“쓰읍! 괜찮아, 괜찮아!”
취기로 버텨내는 건지, 아니면 그 특유의 배짱인지 당불퇴는 다시금 좋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광형 상단의 이들과 어울리는 건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당지명 역시 여러 사람들이랑 어울리며 술잔을 교환했고, 당율기는 광명삼의 삼인방과 교류했다.
“오오, 이게 감숙에서만 자라는 독초군요!”
“허허, 독초라니요. 저희 쪽에서는 약초로 쓰입니다.”
“아아, 냉기를 가시게 하는 쪽으로 말씀이지요?”
“그렇지요, 허허허.”
그들은 아직 어린 당율기가 그들이 약초학이라 불리는 것에 관심을 보이자 아낌없이 지식을 나누어주었다.
덕분에 모든 이들이 즐겁게 어울리는 듯했지만,
“아니, 왜?!”
단 한 명만은 그렇지 못했다.
“난 왜 술을 안 주는 건데?!”
그의 이름은 당유혼.
아직 열여덟 세의 청춘의 외침에 방계들은 애써 고개를 돌리며 속삭였다.
‘그야… 아직 대형은 성인이 아니잖아요…….’
직위는 가장 위에 있지만, 나이만큼은 가장 어린 그들의 대형. 이 인지부조화의 현실 덕에 당유혼은 술 대신 음료를 받았다. 그것도, 광세운에게 직접.
“허허허, 어릴 때부터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몸에 해롭습니다, 대협. 제가 한 번 쓰러져 봐서 잘 알지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은 상단 복귀 이후 밀린 일이 많으니 일찍 들어가겠다고 휘적휘적 사라지는 광세운을 당유혼은 그저 허망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으니,
“으헤헤, 대형은 아직 음료나 더 과실음료나 더 마십시오!”
그 모습에 당불퇴는 박수를 치며 좋아라 했다.
‘저 새끼가…….’
회식 끝!!
당가였다면 그렇게 선언했을 당유혼이지만, 오늘은 그냥 꾹 참기로 했다.
결국 과실음료가 든 호리병을 잡고 휘적휘적 걸어가니, 당유혼은 어느 전각의 지붕에 앉아 꼴깍꼴깍 음료나 마시며 멍하니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이고~ 대형, 왜 여기 계십니까?”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니,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 취했나?’
휘청휘청 걸음걸이로 잘도 다가와 퍽― 주저앉는 당불퇴의 모습. 원래라면 어디서 대형과 겸상하려 드느냐, 라며 발길질이 날아갔겠지만…….
“어디서 대형과 겸상이야! 새끼야!”
“끄에에엑!! 대, 대형 저 다쳤는데……!”
“그래서 오늘은 주먹으로 참았다.”
철푸덕― 엎어진 당불퇴는 취기가 다 깰 정도의 서러움을 느꼈다.
“…왜 안에서 같이 안 놀고 혼자 여기 계십니까요?”
그래도 의지의 사나이 당불퇴. 꿋꿋이 당유혼의 옆으로 다가가 쭈그려 앉으며 물어왔다.
“술이 없잖아.”
“상단주님이 안 주신 거잖아요.”
“그래서 참고 있잖아.”
아니었으면 이미 술 창고를 털고 있을 거라고?
“…그럼 그건 뭔데요?”
“이건 안주.”
옆에 놓인 대접에는 닭 다리 구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말 나온 김에 하나를 집어 입에 밀어 넣어 순식간에 발골 작업을 끝마치고 살점 하나 남지 않은 닭 다리뼈만 툭― 뱉어냈다.
‘짐승 같은 새끼.’
당불퇴는 진짜 당가의 짐승은 이 양반이 아닐까, 하는 따가운 시선을 보냈지만, 당유혼은 그런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목이 마른 지 음료가 든 호리병을 꺾어 꼴깍꼴깍 마셨다.
그러다가,
툭―
“불퇴야.”
“옙?”
“여기 참 좋은 곳이지 않냐?”
문득 그렇게 말해 왔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껌뻑거린 당불퇴지만,
“예… 뭐, 그쵸? 당가보다는 못 하지만.”
솔직한 감상으로 답했다.
“정말? 여기가 더 뭐가 많지 않냐? 밥도 잘 나오고.”
“…그걸 아시면 식단 개선 좀 해주시면 안 됩니까?”
처음에는 잡룡탕이니 하는 것에서 시작하더니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약선(藥膳)이니 뭐니 하는 기괴한 식단은 대형 머릿속에서 나온 것 아닐까요.
은근슬쩍 의견을 제시해 보지만,
“니들 입맛을 개선시켜 보는 건 어떨까?”
“…허허, 전 지금 식단이 좋습니다요.”
역시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뭐, 그래도 전 저희 당가가 좋습니다.”
“진짜?”
“진짜죠.”
“왜?”
“옙?”
“왜 본가가 더 좋냐고. 여기가 이것저것 다 따져도 더 좋잖아.”
뭐지? 함정인가?
당불퇴는 평소 주 용도라면 적을 향한 박치기밖에 없던 머리를 굴렸다.
아주 잠깐이라도 망설이면 X되는 건가 싶어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있자니, 그들의 대형이 뜻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저 먼 하늘을 담고 있는 게 보였다.
‘저 눈빛은…….’
당불퇴는 그 모습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간혹, 밤중 홀로 지붕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던 당유혼의 모습. 밤에 측간에 가려던 방계들이 가끔 발견하고는 하는 그 시선은, 당불퇴 역시 이따끔씩 본 시선이었다.
수많은 감상으로 젖은 시선, 그러니까…
‘우리 훈련이 빡세질 때마다 보이던 시선인데?’
X됐다.
추측이 아닌 확신을 느끼며 당불퇴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아이고, 무슨 소리입니까? 이것저것 다 따져도 본가가 좋죠!”
“…대가리 굴리는 소리 다 들린다, 이 자식아.”
“살려 주십쇼!”
그대로 넙죽 엎드려 비는 당불퇴를 보며 당유혼은 피식 웃어버렸다.
에라이, 편하게 사는 새끼 같으니라고.
“불퇴야, 불퇴야. 나는 니가 참 부럽단다.”
“예? 왜요?”
“네 녀석의 목 위에 달린 것의 용도는 싸울 때 박치기하려고 있는 게 끝이잖아.”
“밥 먹을 때도 쓰는데요?”
“…그래, 참 부럽다.”
진심으로 부러운 새끼.
멍하니 하늘을 보던 당유혼이 이제는 저 지상으로 시선을 내려 잔치가 한창인 광형 상단을 훑었다.
“그래, 나도 사실 본가가 좋아.”
“그쵸?”
“그렇지. 하지만, 여기도 꽤 좋은 곳인 것 같아.”
“그건 맞죠. 밥도 잘 나오잖아요.”
그거 말고, 새꺄.
결국 당불퇴는 한 대 더 처맞아 바닥으로 굴러떨어졌고, 당유혼은 다시 기어 올라오는 당불퇴의 모습에 쯧쯧 혀를 찼다.
그렇게 세 번째로 지붕에 올라온 당불퇴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물었다.
“대형.”
“뭐.”
“진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오늘따라 이상하신데…….”
은근히 촉이 좋은 녀석이다.
때문에 당유혼은 조금이나마 속마음을 털어놓을까 고민했지만, 역시 그냥 고개를 저어버렸다.
“몰라도 돼.”
“예?”
“몰라도 된다고, 인마. 니가 이 대형의 깊은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겠냐?”
“…예, 뭐. 그쵸. 이해 못 하죠…….”
대형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당가에, 아니, 이 세상에 있기는 할까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 할 말을 삼키며 당불퇴는 떠나갔다.
그리고,
‘몰라도 되겠지. 오늘만큼은.’
멀어지는 당불퇴의 뒤를 쫓던 당유혼은 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기 전 하윤호와 했던 대담이 떠올랐다.
* * *
“우선은 청성파입니다요.”
광형 상단이 있는 감숙으로 떠나기 전, 하윤호를 찾아가 기억해야 될 것들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았다.
“사천삼주 중 그놈들만 나온다는 거야?”
“그렇습니다요. 다들 가기 싫어서 엉덩이만 쭉쭉 빼다가, 청성파 장문인이 점창파 장문인에게 진 빚이 있어 그들이 나서게 된 것입니다요.”
“청성파 놈들이라.”
머릿속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들과 얽힌 기억은…….
“…마땅히 없는데?”
“넵? 무엇이 말입니까요?”
“그놈들, 특별한 게 없어.”
정파가 자랑하는 구파일방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특출난 놈들이 있었냐면 또 그건 아니었다.
‘…맨날 깝치다가 처맞고 가던 삼인방 아니었나?’
점창, 청성, 아미라는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세 이웃 문파에 대한 당유혼의 기억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래도 꽤 힘들 겁니다요.”
“얼마나 오는데?”
“일 대 제자 하나에 이 대 제자 스물 정도로 파악되고 있습니다요.”
“캬, 역시 있는 놈들이 더 하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요?”
“감당할 수 있게 해야겠지.”
당가로 돌아가면 어떤 수련을 시킬지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대충 견적이 뽑히는 것 같아 이야기 주제를 다음으로 넘겼다.
“그래서, 첫 번째라는 건 걔들 말고 다른 게 있다는 거야?”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심해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요. 야차전(夜叉戰)입니다요.”
“…걔들은 또 누구야?”
삼십 년 전에는 진짜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잖아?
“근본이 북방의 마적 떼라지만 그래도 구패(九覇)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놈들입니다요.”
구패는 또 뭔데?
인상을 찌푸리자 표정을 읽은 하윤호가 먼저 부연 설명을 했다.
“구패는 사파의 가장 강대한 세력 아홉을 말합니다요. 정파의 구파일방에 비견되기 위해 스스로가 그렇게 이름 지었고, 썩 친하지는 않아도 때에 따라는 연맹도 하는 그런 놈들입니다요.”
“사파 새끼들이 뭉쳐봐야 사파지.”
불퉁하게 답하는 당유혼 앞에 선 현직 사파인 하윤호는 그저 허허롭게 웃었다.
“어쨌든, 그들 야차전 중 제팔전(第八戰) 추풍대(麤風隊)가 감숙 인근으로 움직였다는 정보가 있습니다요.”
“왜?”
“원래 그들이 본진으로 삼는 곳은 따로 있었는데,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세력에 패퇴하여 흘러오게 되었다고 합니다요.”
“녹림처럼?”
“그렇습니다요.”
“캬… 사파 새끼들 종족 특성 어디 안 가는구만?”
녹림은 칠십이 채의 산적 연합이다.
하지만 그 구성은 항상 변하니, 새롭게 등장한 신흥 세력이 기존의 칠십이 채 중 하나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면 그게 또 칠십이 채가 되는 구조다.
“패잔병이라는 거지?”
“마냥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요. 추풍대가 기존에도 야차전의 말석이기도 했고 이번 항쟁에서 전력의 대부분을 잃었다지만… 그들은 북방에서는 악몽으로 통하는 녀석들입니다요.”
야차전이라.
당유혼은 팔짱을 끼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런 당유혼에게 하윤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요. 혹시 그들과 부딪칠 일은 없겠지만, 그들은 아직 당가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전력일 것입니다요.”
* * *
“부딪칠 일은 없겠지만이라…….”
감숙 땅이 좀 넓은 것도 아니고, 하윤호는 하필이면 그곳에서 추풍대와 마주칠 일은 없을 거라 말했다.
하지만,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긴 시간을 살아온 당유혼은 잘 알고 있었다. 대체로 혹시, 만약, 설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게다가…….
“이 빌어먹을 삶이란 게, 그렇게 좋게 흘러가는 경우는 없더라고.”
먼 북쪽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일까, 전운이 감도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