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 * *
용독문.
바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연일 상승가도를 달리던 그들의 회의실은 우울과 분노, 침음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콰아아앙!!
분노를 이기지 못한 주먹질에 박살 난 의자 손 걸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아아아아!! 웃기지 마, 웃기지 말란 말이다!!”
용독문주 용제운.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사천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지던 사내는, 지금 패배함과 비루함에 둘러싸여 있었다.
사천성주에게 제집에서 압도당하는 굴욕을 만인 앞에 보였으니, 그의 기세가 꺾이다 못해 개 박살 나버린 것이다.
“내가… 이 내가 당가의 종놈이라고? 웃기지 마!!”
사나운 외침이 터져 나옴에도 용독문의 간부라는 이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사실 용제운과 함께 도망쳐 나온 당가의 노비들.
죽어가는 주인의 등에 칼을 꽂고 도망친 그들은 과거를 잊고 살려 애써왔으나, 불쑥 들이 밀어진 현실에 도저히 눈 돌릴 수가 없었다.
결국 무력함만이 장내를 채울 때,
“한 가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광란에 휩싸인 용제운의 시선을 끌었다.
“방법이 있습니다.”
“뭐, 뭐라고……?”
사막에서 신기루를 발견한 방랑자와 같이, 길길이 미쳐 날뛰던 용제운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 향했다.
“구, 군사……. 그래!! 군사가 있었지!!”
지금의 용독문을 일으킨 데 가장 큰 일조를 한 인물.
채용이 존재감을 드러내자 체통도 잊고 허겁지겁 그의 앞까지 달려간 용제운이 두 손을 붙잡고 매달려 왔다.
“그게 대체 무엇인가! 내 군사의 책략을 경청하겠네!!”
이제 오만한 군주는 없다. 아래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며 의지할 뿐인 심약한 윗대가리만이 있을 뿐.
그에 간부들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기실 그들의 심정도 용제운과 다를 건 없었다.
“문주님. 사실, 지금 당장 이 상황을 뒤집을 방법은 없습니다. 사천삼주 역시 저희에게 이어놓았던 끈을 끊는 추세이고… 사천성의 관병들이 낮이면 우르르 몰려와 본문의 재산을 약탈하고 있으니까.”
“그, 그렇지!! 이 더러운 도둑놈들! 낮이면 찾아와 내 재산을 훔쳐 가는 날강도들!!”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하는지…….
하지만 채용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간사한 교언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제가 제안할 것은 차선책. 저희의 제물이 누군가에게 흘러간다면, 그 흘러갈 곳을 쑥대밭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흘러갈 곳……? 그, 그 말은……!!”
“예. 지금 당가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
당가를, 친다고?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진심, 인가……?”
“그렇습니다. 어차피, 그들이 있는 이상 저희는 재기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관의 추적이…….”
“문주님.”
덥석―
자신을 붙잡아오던 손을, 이제는 역으로 붙잡아가며 채용이 속삭였다.
“사천을 버리셔야 합니다.”
마치, 뱀의 혀처럼 교언이 쏟아져 나온다.
“사천삼주도, 사천성주도 저희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저희 용독문이 어째서 사천당가가 되려 했습니까? 저희는 혼란의 시기, 사천의 정기를 우뚝 세워 전란 이후 힘들어하는 사천성민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뜻을 저들이 저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저희 역시 저들을 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들이 우리를 저버렸으니, 우리도 저들을 저버린다.
“그럼… 우리는 당최 어디로 간다는 말이더냐?”
“할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아직 불안정하긴 해도, 거의 다 완성된 대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들을 챙겨 사천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터를 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모두의 시선이 최고조로 집중되는 그 순간,
“어떻게 되긴. 신나게 처맞는 거지.”
그것을 뚝― 끊는 소리가, 갑작스레 장내에 울려 퍼졌다.
흠칫―!
깜짝 놀란 용독문의 간부들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누구냐!!”
“웬 놈이냐!!”
“그래, 웬 놈이시다.”
어느새 들어온 걸까?
그들이 있던 건물의 문이 열려 있고, 새어 나오는 달빛을 맞으며 전신을 흑의로 감싼 인물이 그곳에 서 있었다.
“시위, 시위는 뭐 하느냐!!”
“저런 놈이 여기까지 오도록 가만히 두다니!!”
발작하듯 외치는 간부들의 모습에 복면을 쓴 흑의인은 비릿하게 웃으며 문을 닫았다.
“걔들은 가만히 안 있었어. 그래서 나도 가만히 안 있었지.”
닫히는 문 사이로,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인영 몇몇이 비추어졌다.
그 풍경은 오래가지 않아 완전히 닫히는 문 사이로 가려졌지만, 그것만으로도 용독문도들의 인상이 딱딱히 굳기에는 충분했다.
“뭐, 너무 예상한 대로라 놀랍지도 않다. 내 마음속의 한 조각 죄책감까지 남김없이 지워주는 안 고마운 놈들아.”
흑의인, 당유혼은 서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긴말 필요하냐? 시작하자.”
뭘 시작하자는 건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용독문도들은 이미 저마다의 독 병을 들어 올린 채였고, 그들 주인의 허락은 곧장 떨어졌다.
“뭐해!! 죽여!!!”
피 끓는 듯한 용제운의 외침에 일제히 독 병들이 날아들었다.
그에,
파파팟!!
솟구친 빛줄기가 독 병들을 깨트렸다.
뿌옇게 생겨나는 독무들 사이에서, 그 빛줄기의 정체가 젓가락이라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멍청한 놈!”
“그걸 깨트린다고 될 것 같았나?”
제 발로 독무 속에 범벅이 되어버린 난입자를 비웃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그래도 한 가지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한점 변함없는 목소리가 그들의 심장을 멎게 만들었다.
“우리 어린 가주님이라면 너희들 같은 것들의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는 의견에 끝끝내 동의해 주지 않으셨을 것이거든.”
그 착해빠진 데다가 공명정대하기까지 한 녀석에게 이들의 처벌을 맡겼다면, 사천성 내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게 고작이었겠지.
“그러니까, 감사를 표하는 거야.”
완전히 독무를 헤치고 나온 당유혼은 녹아내린 복면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한결같은 쓰레기 새끼들아.”
구구구구구……!!
“어, 어……?”
“도, 독무가!!”
그 순간, 자욱하게 퍼져 있던 독무가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당유혼, 아니, 그의 등 뒤에 어른거리는 무언가.
- 크르르르…….
이미 똬리를 풀고 몸을 일으키고 있던 탐(貪)이 그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독무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당장 죽이라고!!”
“놈은 한 명뿐이잖아! 달려들어!!”
무언가 잘못되었다.
서서히 뇌를 잠식해 오는 공포에 누구라고 할 것 없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 떠밀린 누군가 하나가 엉겁결에 달려들었고,
“으으… 으아아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독장을 휘둘러왔다.
녹사장!
녹색으로 물든 손아귀가 독 기운을 잔뜩 품고 뻗어왔지만,
덜컥―
당유혼은 선 자리에서 그것을 잡아채고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천박하구나.”
“끄… 그으으… 으으으으아아아?!!”
손목이 잡힌 간부는 그 순간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내 내공이……!!’
독기를 잔뜩 머금은 자신의 내공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고, 두 눈은 점점 초점이 풀려 흐릿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의 손목을 잡아 쥔 자의 등 뒤에 보이는 어떤 흉포한 무언가의 서슬 퍼런 안광이었으니.
“끄으으어…….”
허무하게 스러져 내린 용독문의 간부를 뒤로한 채, 대전의 중앙까지 걸어가 우뚝 선 당유혼은 무방비할 정도로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명색이 독을 다룬다는 놈들이.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법(法)은커녕, 예(例)에도 이르지 못해 술(術)에 머물러 있구나.”
구구구구…….
좌중을 장악한 그 무거운 기세에 용독문의 간부들은 더 이상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다, 당신은… 누, 누구…….”
누군가 겨우 입술을 달싹거리며 물은 질문에,
“나는 독의 조종. 모든 독의 진정한 주인일지니…….”
쿠구구구…….
어느새인가, 검고 깊은 무언가가 그들의 목 아귀를 으스러트리며 포효했다.
“너희들이 훔쳐 간 것의 진정한 주인이다.”
푸확!!
그 순간 덜덜 떨던 용독문의 간부들은 일제히 칠 공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즉사, 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홀로 남은 용제운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마, 말도 안 돼…….”
이건 꿈이다. 지독한 악몽이다.
믿기지 않아 고개를 젓는 그의 두 눈에는 보였다. 온통 검은 기류를 휘감은 채,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이.
그 때문일까?
“으아아아아아아악!!”
극에 이른 공포는 이성의 끈을 끊어버렸고, 궁지에 모른 쥐새끼가 발악하듯 온 힘을 짜내 달려들 수 있었다.
구구구구…….
가공할 힘이 용제운의 손에 모였고, 삽시간에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수십 년간 먹어온 독초와 영약, 그것이 빚어낸 내공을 끌어내자 용제운의 두 눈이 광망을 토했다.
‘그, 그래 이 힘이면……!!’
그동안 악착같이 끌어모은 힘.
비록 그 괴물 같은 사천성주에게는 부족할지라도, 저런 애새끼라면 또 모를 일이다.
“죽어라!!”
그런 생각으로 내뻗은 주먹은,
턱―
허망할 정도로 가볍게 잡혀 버렸다.
“마, 말도 안 돼… 이, 이게… 어떻게…….”
믿기지 않아 말을 더듬는 그에게,
“말했잖아.”
검은 기류로 전신을 휘감고 이제는 용제운의 주먹마저 삼켜 버린 당유혼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바로, 너희들이 훔쳐 간 것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무슨… 무슨 소리야… 그게…….”
“이해 못 해도 돼. 다만, 돌려받을 것은 받아야지.”
혼원신공(混元神功), 탐(貪), 식(食).
쿠구구구구구!!
그 말과 함께 검은 기류가 솟구쳐 용제운의 전신을 완전히 휘감았다.
‘주, 죽는……!!’
무언가가 자신을 갉아먹는 게 느껴졌다.
수십만 마리의 개미 떼를 동시에 풀어, 그것들이 온몸을 타고 기어오르며 눈에 띄는 것은 닥치는 대로 찢고 씹고 집어삼키는 기분!
그리고,
“커… 커허억…….”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짐작할 수 없는, 끔찍한 순간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용제운은 자신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 살았…….”
살아있다.
저도 모르게 스스로의 목을 움켜쥐며 숨을 몰아쉬던 그는,
“어… 어…? 내, 내공…. 내 내공 어디 갔어!!!”
수십 년간의 시간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음을 깨달았다.
“내… 내 내공!! 내 내공!!”
복부 어림을 헤집으며 그 안에 있어야 할 수십 년 치의 내공을 찾아 헤맸다.
하나, 텅 비어버린 그것은 짙은 상실감만을 더할 뿐이었으니…….
“미쳐 버린 용독문주. 주화입마에 빠져 제 손으로 간부들을 죽이고 스스로도 가진 모든 내공을 잃다. 네 최후는 그렇게 기억될 거다.”
“으, 으아아……. 우, 웃기지 마!!”
긴 세월 쌓아온 내공과 부, 명성 그 모든 것들이 날아간다는 사실에 용독문주는 처절하게 절규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던 당유혼은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으니.
‘하나가 없군.’
그사이 도망친 하나를 쫓아 시선을 옮길 뿐이었다.
‘역시. 그놈인가.’
이 난장판의 와중 사라진 이는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인물.
사실은, 이미 이리될 거라 여겼던 마지막을 향해 당유혼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