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괜찮겠냐?”
삐딱하게 선 자세. 심술이 잔뜩 차오른 볼. 건들거리기까지 한 물음에 당위혼은 우묵한 눈으로 답했다.
“무엇이 말입니까?”
“…여러 가지로 말이야.”
“글쎄요.”
어린 가주는 사슴 가죽 장갑. 예로부터 독을 막아준다 하여, 당가의 무인들이 전투 전에 착용하던 그것을 손에 끼며 덤덤히 답했다.
“지금껏,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고 노력했다 생각합니다. 하나, 이 손이 과연 형님께 닿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흥, 당연하지. 아직 이 형님을 따라잡기에는 십 년은 일러, 인마.”
십 년이라.
턱없이 긴 시간을 논하는 그 말에 당위혼은 그저 웃으며 두 손을 가슴께까지 들어 올렸다.
쿠구구…….
서서히 끓어오르는 투지.
무엇보다 확고한 대답에 당유혼은 결국 퉤, 하고 씹던 나뭇가지를 뱉으며 으르렁거렸다.
“좋다, 한번 막아봐라.”
파팟―
직후, 그의 모습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뒤? 아니, 아래!’
그리고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솟구쳤다.
콰아앙!!
둔탁한 충격.
겨우 팔을 겹쳐 막아냈지만, 다 흘리지 못한 충격에 몸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제법인데?”
내뻗은 주먹을 회수하지도 않은 채 당유혼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진심으로 막을 줄 몰랐다는 표정에 당위혼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답했다.
“…빠르시군요.”
“느끼는 감상은 그것뿐이냐?”
“…강하시군요.”
“그게 다는 아닐 거야.”
파팟!
또다시 당유혼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땅을 박차며 시야의 사각으로 파고들고 있다.’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상황이지만, 그 와중에도 당위혼은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속도에 아득한 위력은 포기를 강요하기 충분하건만, 그의 뇌와 사고는 어떻게든 이 고난을 극복할 계책을 짜내고 있었다.
‘아래가 아니면, 위!’
오연화인(五連花印). 작약(芍藥).
우웅―
당위혼의 손이 붉게 물들었다.
마치 작약 꽃잎이 흩날리듯, 붉은 궤적이 머리 위로 그려졌다.
‘제법인데?’
마침 정확히 그 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던 당유혼은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 손을 휘둘렀다.
오연화인(五連花印). 백련(白蓮).
우우웅―
당위혼의 손이 붉게 물들었다면, 당유혼의 손은 새하얗게 물들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백색으로 물든 손은 갈 지(之) 자를 그리는 기이한 곡선을 만들며 얽혀들었다.
‘…뭐?’
파앗―
그 순간, 둘의 손이 엇갈렸다.
분명 마주 가격할 위치였으나, 하얗게 물든 손이 어느 순간 붉게 물든 손을 휘감으며 그곳에 담긴 힘을 흘려낸 것이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무리(武理)에서 논하는 기본 중의 기본.
손과 손이 맞닿는 그 순간, 당유혼은 손장난과 같은 움직임으로 날아드는 장력을 흘려냈을 뿐 아니라,
휘청―
‘큭?’
손이 맞닿는 순간, 세상이 회전하며 시야가 바뀌었다.
쿠당탕!!
균형조차 잡지 못하고 내동댕이쳐져 버린 어린 가주가 고통에 몸을 떨었다.
‘…강하다.’
단순히 ‘힘이 세다.’라는 표현이 끝이 아니었다. 역량도, 기량도 아득한 차이가 느껴질 정도였다.
“뭐해, 여기서 끝이야?”
하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겨우 두 수 남짓 교환했을 뿐이지만, 상대는 자신에게 그 격차를 처절하게 느끼게 했다.
“…역시, 강하시군요.”
“몰랐냐?”
“형님과 제가 과연 얼마나 큰 차이가 날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가늠해 보고 싶었습니다.”
“흥, 그래서 확인차 산공독(毒)까지 쓰냐?”
- 크르릉…….
단전에 자리 잡고 있는 녀석이 으르렁거렸다.
그사이 당위혼이 몰래 흩뿌린 독을 씹어먹은 녀석의 품평이 썩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산공독(散功毒).
일반적인 독은 내공으로 억제할 수 있지만, 그 내공 자체를 흩어버리는 것으로 유명한 독이었다.
때문에 무인 전용의 독으로 불리는 것이 산공독일진대,
‘이것까지 통하지 않는다니…….’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다시 일어섰다.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진 당위혼은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서며 양손을 휘둘렀다.
파파팟!!
‘세모침(細毛針)!’
작디작은 바늘 수십이 날아들었다. 당가를 대표하는 암기술이 펼쳐진 것이다.
그에,
“흥!”
당유혼 역시 비슷하게 양손을 휘둘렀다.
카카카캉!!
그의 손에서도 투사체들이 날아들어 당위혼의 암기들과 맞부딪쳤다.
먼저 날아든 암기들을 정확히 요격해 떨어트리는 놀라운 기예가 펼쳐졌지만, 그에 대한 당위혼의 반응은 놀라움보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이었다.
“…뭡니까, 그것은?”
“뭐긴 뭐야, 암기술이지.”
‘암기술? 고작해야 젓가락을 던지는 게?’
암기는 비싸다.
금속으로 만들어져서 원재료도 비싼데, 그걸 잘 날아가고 잘 박히게 만들려면 고급 기술도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헌데, 고작 나무젓가락을 던지는 것만으로 그런 암기랑 비슷한 위력을 낸다고?
“…당가의 선조들이 들으면 허탈해하시겠군요.”
“허탈해하기는.”
이게 그래도 왕년에는 천골저(穿骨箸)라는 이명까지 붙었던 놈이거늘.
“가진 밑천이 이게 끝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대답과 동시에 당위혼은 뒤로 거리를 벌리며 암기들을 폭사시켰다.
이미 한 번 선보인 세모침. 하나가 손아귀만 한 크기의 대형 암기 풍음탄, 모래같이 미세한 금속 가루를 뿌리는 금사우 등. 당문이 자랑하는 암기술이 연이어 펼쳐졌다.
‘제법인데?’
기본기가 튼튼하다.
아무렇게나 암기를 뿌려대는 게 아니라, 적재적소의 요소에 상대가 회피하기 난해한 순서로 암기술을 펼쳐댔다.
지금도 그러했다.
타타탕!
바닥 위로 사납게 울려 퍼지는 쇳소리.
당유혼이 막 떨어져 내리는 지점에 사초편이 흩뿌려졌다.
사초편은 네 개의 모서리를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암기로, 투척하기는 힘든 모양새지만 바닥에 깔아두기에는 적합했다.
그걸 막 허공에서 다른 암기들을 피해 내고 지면에 착지하려는 순간 뿌려대니 보통이라면 발을 다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뭐, 뭐지?!”
“하늘을 날았어?!”
비조(飛鳥)와 같은 움직임으로 회피 기동을 선보인 당유혼은 사초편의 가시밭을 훌쩍 넘어 당위혼에게 짓쳐 들었다.
그 순간 당위혼의 입이 불룩 부풀더니―
후우우우!
녹연(綠煙)이 퍼부어졌다!
‘사독후(蛇毒吼), 이 녀석…….’
입 안에 있던 독단을 깨물어 부수고, 그것을 내뱉는 날숨과 함께 뒤섞어 뿌려대는 제독술!
그야말로 피할 새도 없이 날아드는 공격이지만,
“상성이 나쁘구나.”
당유혼은 그걸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면으로 다가가 정권을 갈겼다.
“훅… 커억……!”
내뱉는 숨결에 정권이 복부로 꽂혀 들었다.
그 일격이 당유혼을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쓰러지게 만들었다.
턱―
천천히 다가온 당위혼이 그 앞에 섰다.
“나쁘지 않다. 재능도 나쁘지 않고, 노력한 흔적도 역력해.”
어린 나이에 고급 암기술을 펼치거나, 상승 무공을 펼칠 줄 안다면 그건 그냥 재능의 영역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그리 뛰어난 무공과 암기술을 익히지도 않았는데 급박한 순간, 자신이 가진 것들을 전부 물 흐르듯 펼쳐냈다.
그건 그 모든 것을 습관이 될 정도로 피눈물 나게 노력했다는 증거.
결코 약하게 지지 않아 고통에 허덕이는 당위혼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상성이 좋지 않다. 나는 네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독에 면역이야. 암기술과 박투로 싸워야 하지만, 그건 내가 야전에 살아왔기에 능숙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적당히 좋게 좋게 그만하는 게 어떻냐고. 그리 말하려는 순간,
퉷―
“형님은…….”
피와 독이 뒤섞인 타액을 뱉어내며 몸을 일으킨 당위혼이 그답지 않게 도발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답지 않게 말이 많으시군요?”
“…뭐?”
“제가 쓰러지기라도 했습니까?”
후들거리는 두 다리. 하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고 일어선 그가 말했다.
“언제부터 당가가 입으로 싸웠습니까.”
“하…….”
샌님 같은 놈이.
“심금을 울리는 말을 하는구먼?”
맞는 말이다.
당가는 그 이전부터 독으로 명성을 떨쳐왔지만, 그보다 더 앞서는 게 바로 인성이었다.
‘한 번 건드리면 피눈물을 흘릴 때까지 보복하는… 결코 말로 하지 않는 게 당가였지.’
그 인성의 선두주자였던 당유혼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다. 어디 한번 계속해 보자꾸나!”
뛰어난 도발 효과에 당유혼이 그 자리에서 주먹을 휘둘렀다.
별다른 권법은 아니지만, 맞는다면 머리통이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력.
당연히 피할 줄 알았건만,
쑤욱―
‘……?!’
그 순간 당위혼이 오히려 머리를 들이미는 게 아닌가?
“이, 이놈이?!”
순간 당황해 손을 뒤로 물리는 순간,
파팟!
당위혼은 그 틈을 이용해 안쪽으로 파고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눈부신 반격이지만,
“흥.”
당유혼의 움직임은 그보다 몇 배는 빨랐다.
우웅―
먼저 움직인 당위혼의 안으로 파고들어서는,
터억!
턱을 쳐올리고,
스으…….
팔을 대각으로 흘러내려 방어를 풀고,
탁―
다리를 걸어 균형을 무너트리며,
당가박투술(唐家搏鬪術). 통배권(通背拳).
복부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쿠당탕!!
“커… 헉……!!”
“가, 가주님?!”
“저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지켜보는 이들이 더욱 몸을 떨 만한 살벌한 일격.
허나, 당유혼의 눈은 흙먼지를 풍기며 나가떨어진 어린 가주를 계속해서 쫓고 있었다.
그리고,
“……!”
기어코, 흙먼지 속에서 두 개의 안광이 빛을 발하며 달달 떨리는 몸을 일으켰다.
‘저건…….’
그리운 눈빛이다. 결코 꺾이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이의 눈.
고통에 굴복하지 않은 투지가 더더욱 불꽃처럼 피어오르니, 당유혼은 자세를 잡으며 손을 까딱였다.
“와라.”
“…하아!”
대답은 기합으로 대신한다.
다시금 달려드는 당위혼이 사나운 기세와 함께 무공을 펼쳐냈다.
그러나,
퍽―
퍼억……!
퍼억!!
연이어 울려 퍼지는 것은 일방적이다시피 한 구타음.
가지런했던 의복이 엉망진창이 되고, 바닥을 구르다 못해 튕겨 오르고, 나가떨어져 핏물을 흩뿌린다.
제대로 된 반격은 한 번도 허용되지 않은 채, 일방적인 폭력이 가해지는 수준이었다.
허나,
“…끄으으…….”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는 주제에 당위혼은 나가떨어질 때마다 꿋꿋이 몸을 일으켰다.
그에 당유혼의 눈도 흔들렸다.
처음에는 그 투지를 인정했고, 두 번째는 독기를 인정했으나, 세 번째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하면 농락이 될까 어느 순간부터는 제법 힘도 실었건만,
“…으극… 하……!”
몇 번이나, 몇십 번이나 억눌린 폐부의 숨을 내뱉으며 당위혼은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이미 방계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침묵에 절어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기어코 몸을 일으켜 주먹을 쥐는 것은 그들과 별다른 나이 차이도 나지 않은 당가의 어린 가주.
그 모습에,
“…어째서냐.”
결국 다물렸던 당유혼의 입이 열렸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느냐? 이건 더 배우는 게 아니다, 이건 차라리…….”
혹사라고 부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차마 마지막 말은 뱉지 못하는 어린 형님의 물음에, 당위혼은 문득 왼팔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아, 이런.’
삐걱거리던 몸의 일부가, 드디어 구동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음에 어린 가주의 메마른 눈동자는 천천히 움직여 입술이 터져라 굳게 깨물고 있는 이를 비추었다.
“들었, 습니다.”
“…뭐?”
“방계들에게, 들었습니다.”
메마른 것은 입 안도 마찬가지인지, 갈라지고 찢어진 입술을 달싹였다.
“매번… 야산으로 방계들을 데리고 가서, 독초와 약초를 채집하고, 직접 사냥을 해 아이들을 먹이고 계신다지요?”
새벽이면 일어나 산을 오르고, 독초니 약초니 할 것 없이 있는 대로 캐낸다.
그걸 요리로 만들어 하루 두 끼를 때운다.
“이놈들아, 오늘 점심 완성이다!”
“오오오!!”
“너무 맛있습니다!”
“대체 뭘 하면 이렇게 맛있습니까?”
그리고 요리는 놀랍게도 호평 일색.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당위혼은 생각했다.
“형님은 분명 천재이십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천재라도 야산에서 하는 요리까지 잘하신다는 것은 분명 재능 이외의 영역일 것입니다.”
그건 아마도.
“형님께서는, 그런 생활이 익숙하시겠지요? 제가 가주라고 편히 지붕 아래에서 비단 이불을 덮고 쌀밥을 먹고 살 때, 대형은 들과 산에서 직접 독초를 캐고 사냥을 하며 끼니를 해결하셨겠지요.”
터억―
어느새 다시금 자세를 잡은 당위혼이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그게, 지금의 형님과 저를 가른 원인이겠지요.”
편한 자리에서 자라난 자신과 불편한 자리에서 자라난 상대방.
지금 이렇게 일반적인 격차를 만들어 낸 것은, 기본 각오부터가 달랐던 성장 환경이 아닌가.
“가주로서…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이거냐?”
“그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가주란 누구보다 강하며 가문을 지킬 존재. 그런 제가 편한 이불을 덮고 따뜻한 밥을 먹어 이리 약해 빠졌으니, 지금이라도 그 값을 다해야겠지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뱉어오는 말들에, 당유혼은 저도 모르게 이를 갈며 소리쳤다.
빠드득!!
“이런 바보 같은 놈이!! 그래서, 그 몰골로 계속 덤벼들겠다고?”
그에 사나운 외침이 장내에 울려 퍼졌지만,
“무엇이 문제입니까?”
돌아온 것은 싱그러운 봄바람과 같은 대답이었다.
“아직 두 발로 땅을 밟고 서 있을 수 있고, 두 팔은 더 휘두를 수 있습니다. 그럼, 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뭐?”
한 점 흔들림 없는 대답.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직 두 발로 땅을 밟고 서 있을 수 있고, 두 팔은 더 휘두를 수 있습니다. 그럼, 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유혼은 먼 과거에서 누군가 했던 말이, 바로 귓전에서 아른거리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에,
“…하.”
“…그렇구나.”
전율이 일었다. 어쩌면 눈물이 차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감정이 들끓어 올라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그 벅찬 감정을 겉은 어려도 속은 노강호인 남자는 능숙하게 삼켰다.
‘과연 그 녀석의 핏줄이구나.’
스으으…….
천천히 자세를 잡아가는 노강호가 오랜 과거를 곱씹고, 이내 흘러간 먼 시간과 함께 흘려보내며 형형히 눈을 빛냈다.
“좋다.”
깊게 똬리 틀고 있던 무언가가 몸을 풀며 몸을 일으켰다.
‘정녕 네가 그렇다면.’
“절망을 느껴라.”
어린 가주는 알지 못할, 탐(貪)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남자의 등허리를 휘감으며 웅지를 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항거할 수 없는 대적이란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이 당위혼에게 짓쳐 들었을 때,
“좋습니다.”
꽈악―
어린 가주는 오히려 미소와 함께 손을 움켜쥐었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가뭄이라도 온 듯 비쩍 마른 단전에서 한 줄기 내공이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폭발시키며 소리쳤다.
“가겠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전력!
파파팟!!
모든 걸 털어놓듯 가진 암기 수십 종을 한꺼번에 흩뿌리고,
후욱!
상비용으로 지니고 다니던 독까지 흩뿌렸으며,
우우웅……!!
마지막 내공까지 짜내며, 두 손을 녹색으로 물들여 십수 년의 기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수련의 결실을 펼쳐 보였다.
칠종수인(七宗手印). 녹목인(綠木印).
소름 끼치는 녹광(綠光)의 장막이 펼쳐졌다.
눈앞에 있는 상대가, 일생의 대적이라도 되는 듯이 펼쳐내는 무시무시한 살수(殺手)!
하나, 그 가공할 살의(殺意)를 앞두고도,
터억―
당유혼은 두 눈을 감고 합장하듯 두 손을 마주 대었다.
“보거라.”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작지만, 너무나도 선명히 들려왔다.
‘이것이 진정한 당가의 무(武)일지니.’
다시금 눈을 떴을 땐 광망이 뿜어져 나오며 두 손에서 어마어마한 거력이 뿜어져 나왔다.
다음 순간 당위혼의 두 눈에는 거대한 수인(手印)이 아로새겨지는 것만 같았으니,
‘아…….’
그것은 너무나 드높아, 결이 다른 벽!
칠종수인(七宗手印). 합일(合一). 칠채수인(七彩手印).
파스스스스…….
일곱 빛깔을 뿜어내며 다가오는 장력에 당위혼이 펼쳐냈던 녹광의 수인이 차차 부서져 갔다.
미리 떨쳐냈던 암기도, 하독했던 수십의 독도 전부 무너트리며 다가오는 일수(一手).
그야말로, 완벽(完璧)이라는 이름의 벽이 짓쳐 들었다.
‘아아…….’
경탄과 함께, 마침내 한계에 부딪혔던 의식이 무너진다.
모든 걸 꺼냈음에도, 어느 하나 상대에게 닿지 못했다.
그럼에도 소년의 입꼬리는 분명한 미소를 지었고, 그리 허물어지는 어린 가주를,
터억―
한 걸음 빠르게 다가온 당유혼이 받아냈다.
“…….”
실신해 의식 한 점 없는 소년,
타타탕…….
뒤늦게서야 떨어지는 암기들의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당유혼은 이내 어린 가주를 안아 들고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조금 전까지 있던 격돌에, 장내는 침묵에 감싸였다.
오직 발소리만이 들려오는 장내에서 당유혼은 한곳에서 멈추었다.
“혼절했을 뿐, 위중한 것은 아니야.”
“…….”
실신한 소년을 늙은 총관이 받아 들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소년을 받아 드는 당궁상에, 문득 당유혼이 입을 달싹였다.
“왜 안 막았지?”
먼 과거, 자신과는 담을 쌓고 지냈지만, 가주에게는 죽는시늉이라도 할 정도로 충성심 깊던 늙은 노복이다.
모두가 떠났어도 홀로 이 장원을 지키고 있는 것도 이 노복이다.
그런 당궁상은, 선 자리의 땅이 파헤칠 정도로 힘을 주고 있음에도, 결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 묻자,
“그것이, 가주님의 선택이니까.”
노인은 참으로 멋들어진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현답(賢答)이군.”
결국 다시 한번 높은 하늘을 올려다본 소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유야, 사명아…….’
이 아이는 참,
‘너희들을, 똑 닮았구나.’
그가 없는 시간, 그 시간 동안 당가를 지켜오던 어린 가주를 눈에 담으며, 어떤 말로도 할 수 없는 그 감정에 결국 당유혼은 결심을 내렸다.
‘이젠, 내가 너희를 지키마.’
* * *
어둠.
불 한점 켜지지 않은 곳은 깊디깊은 심처에 존재하며, 겹겹이 쌓인 호위로 둘러싸인 하오문의 비밀 안가.
이곳을 아는 이는 정보를 다루며 기밀을 생명으로 여기는 하오문 인원 중에도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몇 안 되는 인원 중 하나인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오다 멈칫했다.
“…이거, 선객이 있으셨을 줄은 몰랐습니다요.”
남자, 하윤호는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있는 이는 형형한 안광을 뿜으며 어둠 속에 녹아내리듯 앉아있는 당유혼.
“받아들이지.”
어둠 속에서 더없이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는 말해 왔다.
“복검(腹劍). 네놈들의… 가장 날카롭고, 음험한 검이 되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