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당가 부활 】
[만독을 고치는 약이며, 당가의 이름을 떨치게 할 힘이다.]
“독이… 약이며 힘이란 말입니까?”
힘이라면 이해가 된다. 당문의 무공은 독을 다루니까.
‘하지만 이게 약이 된다니?’
“율기야. 이게 왜 독이더냐?”
“예? 그야…….”
대력초는 복용 시 평범한 사람도 천하장사로 만들어 주지만, 그 대가로 다음 날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에 이른다.
동박하는 추운 지방에서는 소량 섭취함으로써 몸에 열을 내지만, 다른 일반지역에서는 고열을 펄펄 끓게 하는 독으로 취급된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
방식은 달라도,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론은 제법 잘 아는구나.”
“…제 말이 틀립니까?”
“틀리지는 않다. 다만, 사고의 발상이 너무 단순해.”
지식을 응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그 자체로 암기하는 것. 이것을 일차원적 사고라고 한다.
“네가 익힌 심법이 무엇이냐?”
“그야… 귀원일기공(歸原一紀功)입니다.”
귀원일기공.
그것은 당가에 속한 인물이라면 직계든 방계든 가리지 않고 가장 먼저 입문하는 심법이다.
다만…….
“당가의 대표심법이라 하기에는 기를 쌓는 축기가 그리 빠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가나 도가의 심법처럼 안정성 면에서 뛰어난 게 아닌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지.”
“어… 그건…….”
일반적으로 알려지기에, 그리 효율적이고 뛰어난 심법은 아니었다.
“왜? 틀린 말도 아닌데?”
“…대형, 조사님들께서 들으면 경을 치실 것입니다.”
“경을 치긴 무슨.”
내가 조사인데.
“됐고, 그래서 넌 이게 왜 이렇게 안 좋기만 한 특징을 가진 줄 아느냐?”
“그, 글쎄요?”
“솔직하게 말해 봐라. 단순히 기본 심법이라서 효능도 별로인 것이라 생각했지?”
“어…….”
차마 그렇다고는 말하지 못했지만, 그 답은 뻔히 표정에 드러나고 있었다.
“쯧쯧, 이래서 요즘 것들은 안 돼.”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이지.”
아주 본질적인 이유가 따로 존재하지.
“답은 순환이다.”
“순환…이요?”
“귀원일기공은 단전에서 시작해 온몸의 온갖 혈도를 다 돌아다닌다. 발끝부터 손가락 끝, 머리끝까지 다 움직이며, 쓸데없는 곳까지 순환하는 게 귀원일기공이다. 권각술을 펼칠 때 쓰이지 않는 곳까지 다니다 보니, 내공 증진에 큰 효력이 있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혈도를 넓히거나 질기게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라 안정성이 좋은 것도 아니다.”
“아니, 그럼…….”
완전 단점만 있는 심법 아냐?
그리 말하려는 순간,
“다만.”
척.
검지를 세워 올린 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당문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지.”
“…네?”
“당문에서는 어릴 때부터 조금씩 독을 음복한다. 대게 독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는 이유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뿐이라면 이상하지 않느냐?”
독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는 것은 좋다.
다만…….
“어느 정도부터는 면역력이 생긴다고 하지만, 처음 독을 먹을 때는 면역력이라 할 것도 없을 텐데 어떻게 당가의 어린아이들이 그 독력을 이겨내는지 말이다.”
어린아이들?
“그야… 아주 소량의…….”
“그 소량조차 그 어린아이들에게는 위험할 텐데?”
“…….”
그건 그렇네?
“그때 필요한 게 귀원일기공의 운기다. 독이란 대부분이 과한 약력을 지닌 것이 신체에 해를 끼치는 것. 따라서, 그 과한 것을 체내 전신에 흩뿌려 균등하게 배분한다면 독이 독이 아닌 약으로써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옛 법이다.
예전에는 너무나 당연시 알고 있던 것이고, 그렇기에 굳이 책으로 적어 전승하지도 않는 것.
하지만 그렇기에, 입에서 입으로 전달할 사람이 사라지면 후대에는 자연스레 그 이유가 실존되어 버리는 옛 법.
“그렇게 약으로 독을 섭취하면, 이후 쌓이고 쌓여 힘이 된다. 그게 바로 당가의 저력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자. 마셔라.”
한 국자 걸쭉히 퍼 올린 독액이 내밀어졌다.
“이걸 먼저 삼키고 말이지.”
“이건… 구자초를 빻은 것 아닙니까?”
동시에 내밀어진 가루까지.
그걸 본 당율기가 못내 탄성을 내질렀다.
“응고의 성질을 지닌 것들은 약으로 만들 때는 잘 뭉쳐서 효율이 좋지만, 그걸 체내에 흡수시킬 때는 분명 문제가 생길 터! 그래서 융화의 성질을 지닌 구자초 가루를 같이 복용하는 것입니까?”
‘이 녀석… 확실히 독에 대한 건 진심이잖아.’
무공에 대한 이해도는 영 만족스럽지 않지만, 아까부터 독의 활용에 대해서는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도 그런 녀석이 있었지.’
독과 암기를 고르게 발전시키는 것이 최상이라지만, 개중에는 한쪽에만 특출난 재능을 보이던 녀석이 있었다.
“두고 보십시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독 하나만큼은 형님을 넘어볼 테니까!!”
당찬 포부, 그리고…….
‘실제로도 그 말을 지켰던 녀석.’
“…님? 형님?”
“응? 아, 그래. 네 녀석이 이해한 게 맞다. 귀원일기공을 통해 독초로 비롯된 약력을 체내에 순환시킨다. 그럼, 당가 한정으로 영약을 먹은 효과를 얻게 될 거다. 뭐, 고작 해봐야 소환단은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아니, 미친…….”
소환단은 소림에서만 만들어지는 영약이다.
비록 소림 제일의 영약이라는 대환단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그 효능은 무공 한 자락 익히지 않은 범인도 평생 무병장수하게 만들어 준다 할 정도로 유명했다.
‘그런데, 그걸 고작 뒷산에서 캐낸 풀로 만들어 낸다고?’
당율기가 도저히 믿기지 않아 눈만 껌벅거리고 있자 당유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작 이 정도로 놀라지 마. 이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약력을 때려 박는 것이기에 한 번 먹으면 그다음부터는 효용이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소림의 살인 병기라 불리는 나찰사(羅刹寺)의 놈들은 소환단을 한 달에 한 번씩은 먹고, 그걸 대부분의 손실도 없이 흡수하지.”
“역시 소림…….”
경외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거, 남이 얼마나 잘난 지 일일이 신경 쓰지 말고, 네 녀석은 이제 이걸 마시기나 해.”
“제,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왜, 막상 하려니 덜컥 겁이 나냐?”
“그야…….”
독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과 그걸 직접 몸뚱이로 실험하는 것은 다르지 않겠냐, 그리 묻는 듯한 당율기의 모습에 당유혼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흥, 걱정 마. 널 못 믿겠으면 날 믿어.”
“…대형을 말입니까?”
그게 더 못 믿겠는데요?
“날 못 믿겠다면, 내가 만들 당가를 믿어라.”
“예……?”
“지난번, 가주 앞에서 내가 스스로 뱉은 말을 말이다. 나는 당가를 강하게 만든다. 그중에는 분명 네 녀석도 속해 있겠지.”
내가 만들 당문.
정작 그 ‘나’를 못 믿어 이러는 와중에 뱉기로는 실로 모순적이지만…….
‘그래도, 참 낭만적이네.’
어째서인지, 그 말에 불안이 조금 가시는 것을 느꼈다.
“큭… 까짓거, 한 번 시도해 보죠! 저 당율기입니다! 차양 제일 독일이 될 몸이라구요!”
‘녀석.’
제법 괜찮은 포부잖아?
그대로 독액을 사발로 벌컥벌컥 들이켜는 당율기를 보며 당유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윽……!!”
곧바로 몰려오는 강력한 독력에 당율기의 눈이 부릅떠졌다.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도드라졌고, 폭발하는 것만 같은 무언가에 입이 볼록 부풀었다.
‘시작해 볼까.’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일부러 설명을 줄였지만, 이 독액은 소환단과 비교해서 결정적으로 떨어지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안정성!
‘중용의 상징인 소환단은 몇 번이나 먹어도 제 약력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을뿐더러, 별다른 위험도 없지. 하지만, 이건 위험해.’
제아무리 귀원일기공을 익힌 당문인이라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기혈이 다 터져 나갈 약력이 들어있다.
그걸 다루지 못한다면 당장 폐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
그러니까,
‘내가 없었다면 말이지.’
스윽.
내뻗은 손바닥이 당율기의 등판에 포개어졌다.
‘일어나라.’
그를 통해, 당유혼의 단전에 똬리 틀고 있던 탐(貪)이 몸을 일으켰다.
‘방계들이 익히는 귀원일기공과 내가 창안해 낸 혼원신공은 기실 그 맥을 같이 하는 것. 그렇다면, 탐에 대한 거부감도 훨씬 덜한 것이 당연지사.’
악덕 주인에 의해 원래 집에서 쫓겨나 새집으로 이사 가게 된 탐은 사납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래 성질대로라면 닥치는 대로 주변을 부숴야 하지만, 어째 이번 집은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물론 본래 집에 비해 좁고 영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별장으로 오게 된 기분?
이 상황에 의아해하던 탐은 곧장 별장 탐방을 시작했고, 이내 포악한 성격대로 패악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 크르르르…….
‘녀석, 거기가 마음에 안 드나 보구나?’
막힌 것, 비좁은 것, 불편한 것을 있는 대로 부숴 버리기 시작하는 녀석!
하지만 그건 기혈을 부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좁고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기혈에 초진화에 가까운 이적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였다.
구구구구구…….
‘만났군.’
맹렬히 나아가며 막힌 혈도를 개척하는 탐은 때마침 당율기의 체내에 휘몰아치던 약력을 만났다.
당율기의 제어를 무시하며 멋대로 날뛰던 약력이지만, 탐은 그것을 만나는 순간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었다!
구우우우웅!!
단번에 약력을 제압한 탐은 그것을 그대로 포식하며 별장 재건축의 재료로 삼았다.
막힌 혈도는 때려 부수고, 비좁거나 불편한 것은 확장시킨다. 그 와중에 상처 입거나 부족한 곳에 약력을 덧대며 쭉쭉 나아갔다.
구구구…….
그러다 만난 작고 미약한 흐름.
당율기가 필사적으로 운용하던 귀원일기공의 흐름으로, 그건 본래 탐이 타고 날아다니던 혼원신공의 그것에 비하자면 실로 같잖은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제법 시원한 흐름쯤은 되었다.
마침 재건축을 하느라 노동을 했던 탐은 기분 좋게 그 흐름에 편승해 올라탔고, 이후 더더욱 빠른 속도로 작업을 재개했다.
그리고 그것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바로… 지금!’
재빨리 탐을 회수하며, 원활해지는 흐름이 스스로 궤도에 오르게 만들었다!
“쿠웨에에엑!!”
동시에 당율기의 입이 쩌억 벌어지며 검붉은 토사물이 토해졌다.
그동안 체내에 쌓여있던 노폐물이 조금 전 약력을 흡수하며 걸러진 것.
“헉… 허억… 헉…….”
완전히 진이 빠진 당율기는 땅바닥에 처박힌 채 숨을 헐떡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
터벅―
그의 눈앞으로 그림자가 생겨났다.
“대성을 축하한다.”
“대성…이라니요?”
“네 지금 상태. 온몸의 모든 흐름이 상시 유지되는 것. 그게 바로 귀원일기공의 대성이다.”
“예, 예……?!”
그러고 보니…….
‘무언가 흐름이 느껴져……!’
단전에서 시작된 한 줄기 흐름이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온 전신을 순환하다가 다시 단전으로 되돌아간다.
‘근원으로 돌아가는(歸原)… 하나의 흐름(一紀)……!! 아아… 이래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와 버렸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미증유의 힘은 한번 겪어보지 않는다면 결코 알 수 없는 환희였다.
“이건… 이건…….”
그저 폭력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그런 사람. 하지만, 하지만…….
“뭐하냐?”
흠칫!
“예, 예?”
“뭘 멍하니 놀고만 있어. 너만 볼 장보고 다 끝이야? 다른 놈들도 하나씩 데려와.”
“설마… 다른 방계들도?”
“그럼, 너만 하게?”
“아, 아닙니다……!!”
허겁지겁!
서둘러 일어선 당율기는 밖으로 가서 다른 이들을 하나씩 인도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인데? 말은 해줘야지!”
제대로 설명도 없이 따라 들어오는 방계들은 당황했지만,
“아, 닥치고 빨리 들어와!!”
그럴 정신도 없는 당율기는 알 수 없는 희열에 차 그들을 하나씩 안으로 들였다.
이후,
“아… 아아……!!”
“이, 이럴 수가… 내공이… 내공이?!”
하나둘 울려 퍼지는 경악이 마침내 차양당 앞마당을 가득 채울 정도가 되었다.
“어휴, 손 많이 가는 것들.”
모든 가정을 끝내고서 멀어지는 당유혼은 그런 그들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떠나갔지만, 그 뒤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어느새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얘들아. 봤냐?”
“예? 무엇을 말입니까?”
그리고 가장 선두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당지명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형의 손… 떨리고 있었어.”
아닌 척하지만, 당지명은 분명 보았다.
‘반응들을 보면… 내게 해준 것을 다른 형제들에게도 모두 해주셨다.’
추궁과혈. 경지에 이른 고수가 자신의 내공으로 아랫사람들을 인도해 주는 것! 제아무리 고수라도 한번 시행하면 기진맥진해진다고 하는 것인데, 대형은 그것을 자신들 모두에게 해주었다.
‘당신은 대체…….’
생각해 보면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지막지하게 강하다고는 알고 있지만, 그 깊이는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저 나이대에 그것이 쉬웠을까?
“…아.”
방계들의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뭉클거렸다.
장내가 숙연함으로 물들 때…….
“일어서자.”
당지명은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수련하자.”
“…형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잖냐. 그러니, 그거라도 잘해야지.”
천천히 손을 내뻗기 시작한다.
무공 수련에서 가장 기본적이라는 정권 내지르기, 그 행동 하나에,
“악!!”
폐부에서부터 힘껏 내지르는 기합이 당겼다.
“…큭, 나도!”
“나, 나도!!”
“악―!”
“아아악!!”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우후죽순 따라 기합을 내지르기 시작하는 방계들!
자신들의 외침이 대형에게 닿을 수 있게, 있는 힘껏 내지르는 기합이 차양당을 넘어 당문 전체에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 * *
그리고,
“…으으, 죽겠네.”
차마 쪽팔리는 꼴은 면하고 싶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닥에 죽은 듯 엎드려 있던 당유혼.
“대형 체면에 애들 다 보는 곳에서 퍼질러 있을 수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
사람 시선 안 닿을 어느 전각의 지붕 위에서 눈감고 엎드려 있던 당유혼의 귀에,
“악―!”
“아아아악―!”
저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가 부딪쳤다.
“응? …아, 하… 이 녀석들.”
이 가소로운 것들이.
그 역시 결국 피식 웃어버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저 하늘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사유야, 너무 걱정 마라.”
이래저래 익숙하지는 않지만,
“나 역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그저 푸르기만 한 하늘.
그 하늘을 보며 그리 말했다.
“악―!”
“아악―!”
연이어 울려 퍼지는 함성 소리가 잠잠해진 것은 깊은 밤이 되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