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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1화 (11/350)

11화

【 집으로 】

모든 게 끝나고, 당유혼은 광운대주에게 직접 안내받아 광형 상단의 창고로 향했다.

“와, 이걸 진짜 다 써도 돼요?”

“허허, 물론이지요.”

그 안에는 지금껏 홍연을 치료하기 위해 구했던 오만 가지 약재들이 다 쌓여있었다.

“어차피,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사용한 것들인지라 상품성이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제값을 받고 팔 수 없는 것들이라, 오랜 시간 상단 내에서 사용해야 할 것들입니다. 시간이 지나 썩는다면 거름이 될 뿐이니, 은인께서 사용해 주신다면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지요.”

“흠… 그렇게 말해 준다면야.”

입 안에 굴러들어온 떡은 꿀떡 삼켜야 되는 법!

“그럼, 잘 쓸게요!”

호쾌하게 답한 당유혼은 품을 뒤적이더니 자루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그건 뭡니까?”

“예? 마음껏 쓰라고 하셔서, 마음껏 쓰려구요.”

안 되나요?

‘아니……!!’

그렇다고 약재를 자루에다 쓸어 담고 있냐?!

“아휴~ 광형 상단의 마음 씀씀이가 아주 그냥, 하해와 다를 바가 없네요!!”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는 약재들.

그걸 보는 광운대주의 마음속에 쌓인 감사함도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 * *

“…흐음, 이 정도면 됐으려나?”

방 안에 수놓아진 갖은 약재들.

종류별로 고루고루 챙겨왔는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린 그것들을 보는 당유혼은 팔짱을 낀 채 신중히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눈동자만을 이리저리 굴릴 뿐이었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약재 목록이 배열되고 있었다.

‘진짜 귀한 것은 없지만… 어차피 지금 필요한 것은 질보다는 양이지.’

혼원신공.

그가 만들어 낸 전무후무의 절학은 스스로 생각해도 전능(全能)에 가까운 범용성을 지니고 있지만 딱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축기가 더럽게 느리다는 거.’

독초를 먹어도 내공으로 바꾸고, 약초를 먹어도 내공으로 바꾸는 절학은 안정성은 뛰어나도, 다른 내공심법처럼 폭발적인 성장성을 기대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대기(大器)를 만들기 위해, 저 하늘에 닿을 탑을 쌓기 위해 결코 무너지지 않는 기반을 다지는 혼원신공은 단순히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으면 몇십 년은 흘러야 빛을 발할 심법이었다.

그래서,

“약물로 때워야지.”

바닥을 전부 가리다시피 한 무수한 약재들의 약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중 가장 먼저 손을 뻗어 쥔 것은 바로 적삼!

다른 약효를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적삼이기에 누군가에게는 독초가 되었지만, 지금의 당유혼에게는 영초나 다름없다.

“생식(生食)만 한 게 없지!”

우적우적!

한 뿌리를 통째로 입 안에 밀어 넣어 씹어 삼키자, 뜨거운 양기가 배 속에 치밀어 올랐다.

강력한 화력을 자아내는 고성능 땔감처럼, 그 약효를 드러내는 적삼의 존재감을 절절히 느끼며 그대로 다른 약초들까지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화르륵!!

약초 하나하나가 배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불꽃이 더더욱 거세지며 존재감을 드리웠다.

처음에는 모닥불이었던 것이, 금세 초가집을 통째로 삼키며 타오르는 화마(火魔)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

배 속에 자리한 거대한 불꽃은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오장육부를 집어삼킬 기세로 뻗어나갔다.

그야말로 아찔한 작열통이지만, 그 속에서 당유혼의 집중력은 예리한 칼날처럼 세워진 동시에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혼원신공의 운기를 시작했다.

구우우우…….

야생마처럼 날뛰는 약력… 그것을,

‘내버려 둔다……!’

혼원(混元), 그 현묘한 기운이 사지백해를 뒤덮으며 번져나갔다.

우우우우우우…….

약력이 폭주하며 난리 쳤지만, 혼원신공의 기운을 밟는 순간 마치 끝없는 수렁을 밟는 것만 같이 힘이 빠져나갔다.

제아무리 거친 야생마일지라도 딱딱한 들판을 밟고 달려야 날뛸 수 있는 것.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진창 속에서는 제풀에 잠겨갈 뿐이었다.

물론, 그러고도 약력은 한참을 난리 쳤지만…….

스으으으으…….

그 한참이 지나고 나자, 결국 길고 긴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오듯 천천히 단전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응어리지는 약력은 한곳에서 수렴하며 똬리 튼 ‘무언가’가 되었다.

- 크르르…….

울부짖는 듯한 흉성(凶聲)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것은 한번 낮게 울음소리를 흘리더니 다시금 스르르 말려 단전의 깊은 어림에 몸을 웅크렸다.

번쩍―

그와 동시에 깊게 감았던 눈을 뜬 당유혼이 씨익 미소 지었다.

“성능 확실하구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혈도를 타고 광포하게 질주하던 약력은, 도도하게 똬리를 튼 용처럼 잠들어 있다.

‘아니지, 아직 용은 아닌가?’

조금 정정하자. 용은 아니고 구렁이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대충 백 년 묵은 구렁이 정도?

“근데 그게 어디야.”

히쭉.

자리에서 일어선 당유혼이 그대로 손뼉을 내밀었다.

파앙!!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되겠네.”

혹시 몰라 벗어 두었던 옷을 입으며, 당유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돌아가 볼까.”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가 어느 정도 끝나가는 듯했다.

* * *

“예? 벌써 떠나신다구요?”

“뭐, 볼 장 다 봤잖아요.”

마을을 어지럽게 하던 역병도 이제 곧 완치되겠다, 모처럼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광세운은 집무실에 앉아있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일어섰다.

“그렇긴 한데…….”

당유혼이 떠날 것은 알고 있었다. 원래부터 짧은 동행을 목적으로 했으니까.

하지만…….

“끄응……. 어쩔 수 없군요.”

아쉬운 마음을 곱게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 참 많이 닮았구만.’

그 모습에 역시나 누군가를 떠올린 당유혼도 몸을 일으켰다.

“사천으로 가십니까?”

“그렇죠. 아, 그리고 사실 전…….”

“용독문도가 아니라구요?”

“…어떻게 알았어요?”

잘 속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고백하려니 먼저 선수를 찔러왔다.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 번째로 용독문이 독은 잘 써도 약을 잘 쓴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요?”

“들려오는 소문이… 썩 좋지 않거든요.”

“소문이 안 좋다?”

금전 거래를 하는 상인이 할 만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뭔가 더 와닿는 게 있었다.

“혹시, 상행을 하나 꾸릴 생각인데… 함께 갈 의향이 있으십니까?”

“사천으로 가는 상행이요?”

“예. 그렇습니다. 소협께서 함께 가주신다면…….”

“에이, 됐어요. 일없어요.”

당유혼은 피식 웃으며 휘휘 손을 저었다.

“괜히 저 배려한답시고 없는 상행 만들 필요는 없어요.”

“하하……. 역시 못 당하겠군요.”

왠지 이런 제안은 거절할 것 같더라니, 먼저 몸을 일으키는 당유혼을 보며 광세운은 한쪽 주먹과 한쪽 손을 마주어 포개었다.

“바로… 떠나시겠지요?”

“챙겨준 노잣돈이 이미 두둑하니까요.”

“그렇군요. 부디, 보증하십시오.”

“히히, 단주님도요.”

작별을 고하는 것은 짧았다.

이별의 순간은 짧을수록 좋다는 것을 알기에, 당유혼은 그렇게 손을 휘휘 저으며 멀리멀리 떠나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광세운은 옅은 웃음과 함께 그가 짧게나마 앉아있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기연을… 만났다고 해야겠구나.”

그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을 듯싶었다.

* * *

“흐음, 여기도 오랜만이구나.”

광형 상단을 벗어난 당유혼이지만, 곧바로 사천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아직 마지막 채비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을 다루는데, 정작 약은 사용할지 모르고… 또 흉흉한 소문을 가진 놈들이 사천당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라…….’

당유혼이 비록 지금은 한낱 어린아이의 몸뚱이지만, 그 본질은 수십 년은 굴러먹은 노강호였다.

대개 이런 경우엔 무슨 깊고 더러운 사연이 있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

안 그래도 필요했던 것이 지금은 더욱 중요했다.

‘정보가 필요하겠어.’

정보.

도검무림(刀劍武林)의 세계에서 정보가 가지는 영향력은 분명 얕은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으니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무림에 잔뼈가 굵은 이들은 정보를 경시하지 않는다. 또한, 무림에는 그 정보만을 독점적으로 다루는 집단이 셋 있었다.

개방.

하오문.

흑점.

호사가는 이 셋을 각각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는 세 문파 중 가장 유명한 문파는 당연 개방이다.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는 세 문파 중 가장 광대한 문파는 당연 하오문이다.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는 세 문파 중 가장 위험한 문파는 당연 흑점이다.

그리고 이중, 당유혼이 향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오랜만이네.’

터억―

바삐 걸음을 옮겨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목적지에 도착한 당유혼이 고개를 들었다.

외양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포목점이지만, 그 진가는 해가 지며 드러난다.

저 성벽 너머로 해가 저물어 가는 술(戌)시의 초입에서, 성루의 그림자가 길게 저물어가며 가리키는 단 하나의 건물.

‘제대로 왔다.’

바로, 당유혼이 서 있는 포목점이었다.

스륵―

걸려 있던 휘장을 쳐내며 안으로 들어서니 퀴퀴한 먼지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주인장이 대충 관리하는 곳인지 오랫동안 위치 하나 변해 있지 않아 보이는 비단 뭉치들.

그 사이를 지나 가게를 관리하는 주인장 앞에 서니 그제야 앉아있던 중년인이 흘깃 시선을 들어 다가온 당유혼을 시선에 담았다.

“…아비 심부름이라도 왔느냐?”

의자에 반쯤 눕듯 앉아있던 주인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제일 어두운 옷감을 구해 오라더라구요.”

“제일 어두운 옷감? 취향 한 번 특이하군.”

“남들에게 이목이 쏠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래? 그럼 말을 제대로 해야지. 남들 눈에 가장 잘 안 띄는 옷감이라고.”

“아아, 맞아요. 그래서, 그게 어디 있을까요?”

“보자……. 그게 어디 있더라……. 아, 그래. 따라오거라.”

그것이 어디 있는지를 생각하듯 고민하던 주인은 곧 기억이 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점점 구석진 곳으로 향했고,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어느 골목을 도는 순간 앞서 가던 주인이 갑자기 옆쪽으로 손을 뻗더니 무언가를 조작했다.

스르륵―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벽면에서 검은 옷감이 지나온 길을 차단했다.

그 모양새가 워낙 자연스러워서 바깥에서 보기에는 더 이상 통로가 아닌, 옷감이 걸려 있는 벽면으로 보일 정도였고, 순간적으로 빛이 완전히 사라진 어둠이 되어버렸다.

그 어둠에 주인장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스윽―

목덜미로 드리워지는 서늘한 예기가 빛을 발했다.

“…넌 누구지?”

모든 감정이 깊게 가라앉은, 무정(無情)한 목소리가 당유혼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차디찬 금속의 감각.

정작, 시퍼런 칼날이 목 위로 겨누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게 씨익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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