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 *
“화, 환자의 호흡이 가빠집니다!!”
“물수건! 물수건 없어?!”
“뭐 하고 있나! 당장 약재를 가져와!!”
황산현, 그중에서도 괴질 환자를 모아놓은 곳은 난리도 아니었다.
혹시 모를 역병의 전념을 막기 위해 격리해 놓은 그곳은 곧 숨이 넘어가려는 환자들의 신음 소리와 그들을 치료하기 위한 의원들의 다급한 고함 소리로 시끄러웠다.
“아, 아아…….”
그 모습을 보는 광세운의 눈은 절망으로 얼룩져 있었다.
“큭……!!”
그의 두 주먹은 잔뜩 힘이 들어가 붉어져 있었으며, 손톱은 생살을 파고들 정도로 깊이 박혀 갔다.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광형삼의는 눈을 꼭 감았지만,
“…단주.”
그들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들어 광세운을 불렀다.
“자리를 피하시지요.”
“장 노……?”
광형삼의 중 가장 맏이 역할을 하는 이가 딱딱히 굳은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곳은 우리 노인네들이 힘써보겠습니다.”
“맞습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듯합니다. 가주께서 이곳에 있으셔서 좋을 게 없습니다.”
“험한 것은 보지 마시고, 상단의 업무를 보시지요.”
둘러 둘러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이유가 그 때문은 아님을 안다.
그들이 애써 광세운을 돌려보내려는 이유는 첫째가 이곳의 역병이 위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다, 단주?”
핏발이 선 눈으로 광세운을 소리쳤다.
“절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내고야 말겠습니다!”
“상단주님!”
광운대주마저 그를 강하게 불렀다.
하나,
“듣기 싫습니다!!”
이번만큼은, 광세운도 자신의 귀를 막았다.
“이 역병이 얼마나 위험한 아시지 않습니까!”
답답한 듯 소리치는 광운대주였으나,
“예, 압니다. 잘 알지요!”
광세운의 목소리는 더더욱 커져만 갔다.
“어찌 모르겠습니까? 선친께서 그토록 발 벗고 나서 고치려 했고, 그러지 못해 이 어린 애송이놈을 두고 먼저 떠나게 만든 간악한 괴질이지요!”
“다, 단주님…….”
모두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이제 와 숨겨 무엇할까.
홍연이라는 괴질은, 선대 광형상단의 상단주… 즉, 광세운의 아비를 전염시켜 죽게 만든 역병이었다.
“…저를 걱정하시는 것 압니다.”
모두가 그에 괴로워하지만 그 괴로움이 광세운만 할까?
차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는 침묵 속에서 광세운은 말했다.
“아버지께서도 잡지 못한 역병이요, 괴질이니 저 역시 쉽게 어찌하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광세운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렇다 해서,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맞서 싸워 이기지는 못해도, 도망치지는 않겠다고.
아비가 없어도 상단을 잘 꾸려나갈 수 있음을 증명하리라 홀로 상행까지 다녀온 어린 상단주는 그리 소리쳤다.
그에, 장내에 침묵의 휘장이 드리울 때,
짝짝짝―
그 휘장을 들어내는 박수 소리가 큼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휘유, 역시 대 광형상단의 주인이시구만?”
“다, 당 소협?”
박수 소리의 주인은 당연 당유혼이었다.
“왜들 그리 가라앉아 있어?”
뭐가 문제야?
그리 말하며 자연스레 등장한 당유혼의 모습에 온 시선이 몰렸다.
그중에는 바삐 돌아다니던 문사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여유로운 당유혼의 모습에 분노했다.
“저, 저… 자기 일 아니라고……!”
“됐네.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일이나 하세!”
급박하게 돌아가는 장내에 도착한 그는 자신에게 평화롭지 않은 주변을 휙휙 둘러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급박해 보이네요.”
급박했다.
실제로도 많이 급박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당유혼의 행보는 여유로웠으니,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광세운이 설마 싶어 퍼뜩 정신 차리며 소리쳤다.
“소, 소협… 설마?!”
“역시, 우리 단주님 감이 참 좋으시네.”
씨익―
당유혼은 잡아 온 혈화사의 시체를 들어 올려 보이며 웃었다.
“홍연의 주범. 찾아왔지요.”
“그게 무슨…….”
“잠깐, 저건… 혈화사?”
“혈화사라고? 허, 그러고 보니 상태가 엉망진창이긴 해도 분명……!!”
다들 당황스러워하는 와중 광형삼의는 그래도 그 정체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래도 밥값은 하는 노인네들이구만.’
당유혼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간 있던 일들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을수록 모두의 눈이 황망하게 변해 갔다.
“빌어먹을… 그러니 못 찾았지!”
“젠장, 이럴 때가 아니오. 원인을 알았다면 빨리 해결책을 만들어야 하오!”
“혈화사의 해독제에 좋은 게 뭐가 있지?”
“강황(薑黄)! 강황을 하수오와 섞어 견우자로 달이면 효과가 좋소!”
“멍청한! 혈화사는 양기를 띈 독이오, 뜨거운 성질을 지닌 강황보다는 차가운 성질을 지닌 울금(薑黄)을 섞어야지!!”
광형삼의는 서둘러 자신들의 지식을 나누며 해독제를 만들려 했다.
그 모습은 확실히 목소리만 괄괄한 노인네들은 아니란 증거였기는 하지만,
“그래서 언제 만들어와요? 약재 목록 보니까 없는 것들 몇 있던데. 당장 울금만 해도 사천 남쪽에서만 나는 거라 지금 약재 창고에는 없던데요?”
“뭐, 그걸 어떻게……!!”
안타깝게도 다 알아보고 왔수다.
“젠장! 그럼 어떻게…….”
“어르신들!! 환자들의 발작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필 환자들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며 상황은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에,
“쯧. 빨리 물 받으쇼.”
당유혼은 혀를 차며 혈화사의 시체를 들어 올렸다.
“당장 필요한 건 시간. 석창포와 의이인은 있더만? 그것들을 섞어 지독한 성질을 줄이고 먹이면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지, 지금 혈화사를 먹이자고?”
“자네 미쳤는가?!”
광형삼의는 그 뜻을 이해하고 충격을 받아 눈을 크게 떴다.
“충분히 제정신이구만 뭔 소리야. 살아 있는 혈화사도 아니고, 죽은 지 꽤 된 혈화사라면 당장 독성이 발휘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나머지 약재와 다듬으면 당장 저 열화되고 열화된 혈화사의 성분을 잡을 수 있겠지.”
“그게 무슨…….”
당유혼의 말은 말 그대로 극약처방(劇藥處方)을 하자는 것이었다.
열화되고 열화된 혈화사의 독성을, 진짜 혈화사의 독으로 때려잡자는 것!
다만, 당장은 독끼리 서로 상충해서 하루의 말미를 벌지 몰라도, 하루가 지나면 더욱 독한 성분에 사람들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 그럴 수는 없네!”
“하루 뒤에 약재가 도착한다면 모를까…….”
“그런 보장이 없는 한……!”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는 없잖아!”
“젠장, 그러다가 약재가 도착하지 못해 죽으면 누가 책임을…….”
환자가 죽어간다고 독을 먹일 수 있는 의원은 얼마나 될 것인가?
바쁘게 오가던 입의당의 유생들도 그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무엇이 옳은가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 혼란이 점점 심화될 때,
“갈(喝)!!”
사나운 외침이 터져 나와 장내의 혼란을 멈추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아주 입만 살았군.”
이어져 들려온 것은 서늘한 일갈.
“골방에 처박혀 책이나 달달 읽고 있으면 뭐 해? 그런 식으로는 죽은 지식일 뿐이지.”
확신을 가지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은 아무 의미 없다며 모두의 낯을 뜨겁게 만든 당유혼은 차갑게 조소하더니 이내,
“책임? 그딴 거 내가 져주지.”
혈화사를 통째로 들어 몸통 한 중앙을 크게 물어뜯었다.
우적우적우적―
비늘과 상한 고기, 체액이 기괴하게 뒤섞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고,
“…끄으, 더럽게 맛없네.”
입 안의 내용물을 꼭꼭 삼켜 목구멍으로 밀어 넣은 당유혼은 짧은 감상평을 토했다.
그리고, 아직도 눈만 크게 뜬 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뭐 해? 책임 내가 진다니까? 내일까지 약재 도착하지 못하면 죽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제.”
“……!!”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법.
“물을 받으십시오! 석창포와 이의인을 달여야 합니다!”
“무, 물을 받아라!!”
“약재창에서 석창포와 이의인을 싹 다 가져 와!!”
광세운의 외침이 터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허겁지겁 약재들을 구하러 달려갔다.
“이런 정신 나간! 그걸 삼키다니, 자네 미쳤나?!”
광형삼의는 깜짝 놀라 당유혼에게 달려왔고, 입가에 묻은 것들을 핥아먹은 당유혼은 씨익 웃었다.
“저는 독에 대한 저항이 있어서 석창포와 이의인 같은 부가재가 없어도 좀 버텨요.”
“말 그대로 버틸 뿐이잖은가!!”
“이익!! 기, 기다리게 여기서!”
“금방 구해 올 테니!!”
그들은 허겁지겁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방도가 보이자마자 사람들은 그것들을 따르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우중충하던 지금까지와 다르게, 그래도 생기에 찬 역동적인 모습들.
그 모습을 본 당유혼은 입가를 핥았음에도 아직 뭐가 계속 묻어 있음에 쓱― 손을 훔쳤다.
“흠.”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에잉, 약해 빠진 몸뚱이.”
예전이라면 약주와 안주 대신 먹었을 것들이, 이제는 독이라고 고개를 빳빳이 드는 게 느껴졌다.
덕분에 어지럼증이 몰려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
살짝 흐려지는 시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젠 좀 볼 만하네.”
* * *
하루가 지났다.
다행히 약재들을 무사히 도착했고, 극약처방을 했던 홍연의 환자들도 다 치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니, 왜 이렇게 써요?!”
“그럼 약이 쓰지, 안 쓰겠나?!”
“감초! 감초 안 넣었죠!”
“네놈이 뭐가 이쁘다고 감초를 넣어!”
광형삼의가 만들어준 탕약을 먹은 당유혼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쓰다. 너무 써.
이딴 게… 탕약?
“몸조리나 잘하고 있어라.”
“어디 움직일 생각 말고.”
“에잉, 쯧.”
그렇게 굳이 한마디씩 뱉은 세 명의 노인은 우르르 몰려올 때와 같이 우르르 사라졌다.
“에효, 사람 여럿 구해도 의미 없구만?”
구시렁구시렁.
당유혼의 입이 댓발로 튀어나와 있자니, 곧 광형삼의가 떠난 자리로 다른 이가 들어왔다.
“몸음 좀 괜찮으십니까?”
“아니, 단주님!”
광세운이었다.
“좀 들어보세요, 제가 있잖아요!”
감초가 없니, 약이 쓰니, 잠자리가 불편하니, 광형삼의인지 산송장들인지가 사람을 괴롭히니…….
온갖 불평불만들을 늘어놓은 당유혼이었지만, 광세운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쯤 되니 오히려 무안해진 것은 당유혼이었다.
“흠흠, 뭐… 여튼 그렇다구요.”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더 신경 써 드리지 못한 잘못입니다.”
“옙? 아, 뭐… 그건 아닌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앞에 있는 게 광형삼의였다면 오늘 아주 곡소리 제대로 뽑아냈을 테지만, 사람 좋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광세운이라 괜히 헛기침만 했다.
그에, 광세운은 여상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소협.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엇? 이거 왜 이러세요?”
이러면 내가 너무 부담스럽잖아.
굽어진 허리가 필 생각을 안 하던 광세운은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바로 섰다.
그의 두 눈은 붉게 물들어서, 언제 눈물방울이 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 부친께서는 홍연에 의해 돌아가셨습니다.”
“…최초 감염은 아니시겠고, 환자들을 돌보다가 감염되셨나 보네요.”
“그렇습니다. 저희 가문이 이곳 황산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며 누린 권리만큼,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직접 홍연에 걸린 이들을 돌보시다가 그리되셨지요.”
그런 그에게 있어 당유혼은 단순히 역병을 치료해 줬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소협. 덕분에… 아버님의 업을 제가 다할 수 있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받은 은혜가 하해와 같다.
갑작스레 물려받은 상단, 홀로 잘할 수 있다고 보여주리라 떠났던 상행에서도 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리멸렬한 결과를 맞이했을 것이다.
그곳에서부터 자신은 그를 온전히 믿지 못했으나, 당유혼은 행동으로서 자신을 증명해 주었다.
특히, 마지막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혈화사의 시체를 생으로 씹어먹는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뿐만이 아닙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창가로 향했다.
그렇게 닫힌 문을 열자,
“전원!”
기다렸다는 듯 바깥에서 광운대주의 외침이 들려오고,
“인사!”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갚겠습니다!!”
저마다 다른, 하지만 그 마음만은 한결같은 입의당 문사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들 모두가 소협께 빚을 진 이들입니다. 소협의 협행에 감명을 받은 이들도 있지만, 이곳 황산현 사람들끼리 모두 알음알음 아는 이들인 만큼 가족, 친지들이 목숨을 구함 받기도 한 이들이지요.”
그들 모두가 열렬한 환호성을 토해 내고 있으니, 당유혼은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흐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뭐, 나쁘지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