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41화 (141/141)

#141화.

콰콰콰쾅! 꽈릉!

상천이 펼쳐낸 마지막 초식, 역천은 모든 이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그만큼 강맹하고 위력적인 초식이었다.

마치 하늘이 심판을 내리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들어 낼 정도의 초식.

지켜보는 누구도 상천의 승리와 서기종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후두둑!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뽀얗게 일어났던 흙먼지는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에 빠르게 가라앉았다.

단월검 마지막 초식 역천이 만들어낸 흔적은 상상 이상이었다.

진짜 하늘에 심판자가 있고 그들이 거대한 망치를 가지고 있다면 이런 흔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흔적의 한가운데에 서기종이 서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상처 없이 멀쩡했지만 사실 그가 지금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후회 없이 단월검을 펼친 상천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얼굴로 그대로 맞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비 때문에 흐릿한 시야 사이로 얼핏 종삼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지? 그렇지, 사부?’

상천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쿨럭! 크악! 칵!”

서기종이 피를 토해내었다. 그 소리에 상천이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서 형.”

상천이 나직이 서기종을 불렀다.

이미 그와 싸우면서 상대가 서기종임을 확신하고 있던 상천이었다.

상천의 부름에 서기종은 어렵사리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를 토해낸 입뿐만이 아니라 코와 눈, 귀에서도 조금씩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피가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뒤섞여 바닥을 흥건히 적시기 시작했다.

“나도… 백룡문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서기종이 힘겹게 말했다.

이제 서기종에게 더 이상의 기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서 형에게도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오. 우리 다음 생에는 형제가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변치 않고 오래 가는 인연이 되어 만납시다.”

“고맙…….”

서기종이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풀썩.

서기종의 무릎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서기종은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상천은 그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런 그의 마지막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 한 걸음 내디디고 싶었지만, 상천 역시도 기력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저벅. 풀썩.

겨우 한 걸음 내디딘 상천도 그대로 쓰러졌다.

지켜보던 가백현과 나군천이 재빨리 그를 향해 달려갔고 군마성 진영에서는 군마성주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가백현과 나군천보다 먼저 그 자리에 도착한 군마성주는 싸늘한 주검이 된 서기종을 바라보았다.

“과거에 당했던 핍박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모진 경험을 하게 한 너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힘을 길렀고 너에게 중원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었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군마성주가 서기종의 손에 들린 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쓰러진 상천 쪽으로 몸을 돌렸다.

“멈추시오!”

그때 도착한 가백현과 나군천이 상천을 자신들의 뒤에 두고 군마성주를 막아섰다.

어찌 보면 자신이 나설 이유가 하나도 없음에도 자신들을 대신해 죽음을 무릅쓴 상천이었다.

그런 그의 목숨을 마지막까지 지켜 주는 것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도리였다.

검을 쥔 군마성주는 사나운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가백현과 나군천에게 한 번씩 시선을 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서걱.

길었던 군마성주의 머리카락이 잘렸다.

군마성주는 손에 들린 머리카락을 가백현과 나군천의 발아래에 던졌다.

“과거 위나라의 조조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죄를 빌었다지.”

그렇게 말한 군마성주가 다시 몸을 돌려 힘없이 허물어져 있는 서기종을 품에 안아 들었다.

가백현과 나군천은 여전히 도를 쥔 상태로 군마성주의 등을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군마성주의 목숨을 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서기종을 품에 안아 들고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이 너무나 작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멀어진다면 평생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쏴아아-!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중원을 도모하던 군마성은 사도련의 벽도 넘지 못한 채 지하로 되돌아갔다.

***

또각. 또각. 또각.

길게 이어진 관도 위에 말발굽 소리가 천천히 퍼져 나갔다.

하늘은 맑고 해는 뜨거웠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 유랑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관도 위를 걷고 있는 네 마리 말의 앞쪽으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낯익은 풍경에 말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번졌다.

네 마리 말이 마을에 들어섰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말 위에 탄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반가움과 존경의 표시를 담아서.

마을 한복판을 지나고 머지않아 그럴싸한 장원 하나가 보였다.

그 장원 앞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말발굽 소리가 들리자 일제히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들의 표정 역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네 마리 말은 장원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 근처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말에서 가장 먼저 내린 사람은 은남도문에서 새롭게 만들어 준 백룡포를 걸친 상천이었다.

말에서 내려선 상천은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상천에게 정문까지 가는 길을 터 주었다.

그 모습에 상천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정문이 가까워져 올수록 상천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러면서 점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천천히 걷고 있음에도 호흡이 가빠지는 것 같았다.

흥분, 기쁨, 그리고 설렘.

정문 위에 걸려있는, 백룡문이라고 적힌 현판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정문 앞에 다다르자 장여진을 비롯하여 공혜, 배동삼 등이 상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밝은 표정을 지은 채 상천을 맞이했다.

여전히 공혜는 상천을 볼 때마다 울먹였지만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 울면 안 된다는 배동삼의 당부에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잘 돌아왔어요.”

장여진이 웃으며 상천에게 말했다.

그에 상천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정문을 바라보았다.

열려 있지 않고 닫혀 있는 문.

은남도문의 도움으로 새롭게 지어진 백룡문이 다시 문을 여는 날인만큼 정문을 열고 들어가는 첫 번째 사람은 문주인 상천이어야 한다는 문도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정문 앞에 선 상천은 손을 들어 문을 어루만졌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꿈에 그리던 순간.

종삼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는 꿈같은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처음 종삼을 만났던 그 순간부터, 바로 어제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종삼과의 추억은 시간이 제법 흐른 지금까지도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랐다.

행복했고 즐거웠던 추억에 살짝 미소를 짓고 있던 상천이 이내 표정을 굳혔다.

이제는 들어가야 할 때였다.

“후우…….”

상천이 작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문에 얹은 두 손에 힘을 주어 안으로 밀었다.

끼이익!

정문에 달린 경첩이 기분 좋은 울음을 토해냈다.

천천히 문이 열리며 깔끔하게 지어진 백룡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전의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근사하고 멋지게 변한 백룡문이었다.

“어서 들어가 보세요.”

아직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은 상천에게 장여진이 말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상천이 천천히 안쪽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상천의 두 발이 모두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우와아아!”

“백룡문 만세!”

“백룡문주 만세!”

그러자 백룡문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진심을 담아 환호를 질러 주었다.

그 환호성을 들으며 상천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하늘을 자유롭게 떠다니던 구름의 모양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았다.

어느새 상천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안녕, 사부?’

상천의 인사에 하늘에선 종삼이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웃음이었다.

***

오 년 후.

군마성이 물러나고 사도련은 이도련이 되었다.

천중도문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긴 했으나 예전과 같은 성세를 구가하지 못하고 있었고, 합산도문은 그 맥이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

장여진이 있긴 하지만, 그녀의 무위가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기에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다.

합산도문은 그저 추억으로 남기고 백룡문의 문도로서, 그리고 또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은 그녀였다.

“힘주세요! 크게 심호흡하면서!”

안에서는 산파의 목소리와 함께 산모의 비명이 들렸다.

그 밖에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한 듯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상천이 있었다.

“형, 긴장 돼요?”

“문주님이라고 해야지.”

배동삼의 물음에 낭호가 눈을 부릅뜨며 지적했다.

그에 배동삼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긴장되지.”

짧게 대답한 상천은 계속해서 한 자리를 맴돌며 안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럴 때는 무공으로 인해 청력이 좋아진 것이 조금은 후회되기도 했다.

“응애! 응애! 응애!”

“형, 아니, 문주님!”

안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에 상천은 몸이 빳빳하게 굳었고 배동삼은 호들갑을 떨었다.

끼익!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며 공혜가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 보세요.”

웃으며 말하는 공혜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미소였다.

“고마워. 고생했어.”

상천이 공혜의 어깨를 다독여주고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에 배동삼이 공혜에게 다가왔다.

“누나, 괜찮아?”

“그럼! 괜찮지. 소문주님 정말 예쁘더라.”

“딸?”

“아니, 아들.”

“오오!”

공혜의 말에 배동삼은 마치 자신의 자식인 양 기뻐했다.

그런 배동삼을 뒤로하고 공혜는 씁쓸한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자 지쳤음에도 품에 안은 아이를 보며 밝게 웃고 있는 장여진의 모습이 보였다.

“괜찮아요? 정말 고생했어요.”

상천의 말에 미소를 지은 장여진이 조심스럽게 아이를 내밀었다.

“안아보세요.”

“음…….”

장여진의 말에 상천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손을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며 어떻게 안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 모습에 뒷정리를 하던 산파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 문주님도 어쩔 수 없는 아빠네요. 이렇게 안으면 된답니다.”

산파가 팔 모양을 잡아주고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겨 주었다.

상천은 그 어느 때보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큼지막한 눈을 말똥말똥 뜬 채 꼬물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무사히 잘 태어나 줘서 고맙구나.”

상천이 울먹거리며 품에 안겨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잘 살아라, 이놈아!’

종삼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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