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40화 (140/141)

#140화.

쑤에엑!

서기종의 검이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한층 더 위력이 높아진 공격이었다.

상천은 집중력을 최고치로 끌어 올렸다.

좁은 간격에서 전신을 난자하려는 듯 날아드는 검을 막고 피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집중력을 높이고 있어야 했다.

“상당하군.”

“그러게.”

가백현의 호의로 정문 망루 위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낭호와 녹엽이 중얼거렸다.

두 사람의 싸움은 대단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먹을 뻗어도 닿을 거리에서 서로 발을 교차하며 빠르게 검을 뻗어내고 있었다.

거리가 멀다고는 하지만 몇몇 공격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거리에서도 서로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실력이 대단한 것도 있겠지만 집중력이 상당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신력 소모가 극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범인이라면 일각도 유지하기 어려울 집중력을 두 사람은 한 식경 가까이 유지하고 있었다.

군마성주 역시 두 사람의 싸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낭호나 녹엽과 달리 군마성주는 두 사람의 공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위험한 놈이었구나. 삼대 도법을 깨뜨릴 만했어. 저런 놈을 꺾는다면 한 단계 더 성장하겠지.”

만약, 상천이 군마성주의 말을 들었다면 하늘에 있는 종삼에게 자랑했을 만한 내용이었다.

이는 서기종과 박빙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천에 대한 군마성주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서기종이 질 리 없다는 굳은 믿음이 함께하고 있었다.

쩌엉-!

파직! 파지직!

두 사람의 검이 다시 한 번 허공에서 부딪쳤다. 검에 불어 넣은 내력이 서로 맞닿으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그런 검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쉬지 않고 이어진 공방.

그럼에도 두 사람은 조금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활력을 찾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서기종이 상천을 노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단하군. 제자가 이 정도라면 군마성주는 어느 정도란 말인가.’

서기종도 상천도 서로를 대단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상천이 강해졌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하지 못하던 서기종이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수준까지 올라오고 나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상천, 넌 최고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백현과 나군천도 상천의 진정한 실력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삼류 문파의 무공으로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른 자.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슥!

상천의 발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스스슥!

그에 맞춰 서기종의 발도 움직였다.

마치 서로의 발을 밟으려는 듯 빠르게 움직이는 다리.

그것은 서로가 더욱 유리한 공간을 점하려는 치열한 보법 싸움이기도 했다.

발이 땅을 쓸며 어지러운 흔적을 만들어내었다.

여전히 두 사람의 검은 마치 한 몸처럼 붙어 있는 상태.

검은 맞붙어 있고 시선은 서로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지만 하반신은 그 어느 싸움보다 더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스슥! 텁!

어지럽게 움직이던 두 사람의 다리가 어느 순간 맞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까가강! 까강! 쩌엉-!

두 사람의 검이 짧은 순간에 수차례 허공에서 충돌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의 교차가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었다.

주륵.

서기종의 손목을 타고 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심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상천의 검이 서기종의 팔뚝을 스친 까닭이었다.

서기종과 상천의 실력은 큰 차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보인 것처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다면 바로 경험의 차이였다.

물론 서기종도 다년간 무투대회를 돌아다니면서 숱한 싸움을 했고 그 바닥에서는 제법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처럼 고수끼리의 싸움 경험은 상천이 훨씬 더 많았다.

하수끼리의 싸움과 고수끼리의 싸움은 큰 차이가 있는 법.

그 작은 차이가 지금의 상처 하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정도 상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서기종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상천 역시 지금의 이 한 번의 성공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균열이 결국은 거대한 둑을 무너뜨리는 법.

서기종의 팔에 난 상처는 작은 균열과도 같았다.

스슥!

스윽!

두 사람의 발이 다시금 빠르게 움직였다.

이번에는 그와 함께 검도 춤을 추었다.

두 사람의 내력을 한껏 머금은 검이 검은 물결과 백색의 물결을 만들어내었고 이내 흑과 백이 주변을 휘감았다.

상천의 검이 다시 한 번 단월검의 초식을 그려내었다.

부드럽고 강하게.

빠르면서도 때론 느리게.

넘실대는 상천의 단월검이 서기종의 눈을 어지럽혔다.

그에 맞서 서기종 역시 자신의 검법을 펼쳐 내었다.

검은 물결은 하얀 물결에 대등하게 맞섰다.

백색이 흑색을 집어삼킬 듯하다가도 흑색이 백색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아찔한 상황이 수차례 연출되었다.

보는 이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공방.

그들의 대결이 시작된 지 어느덧 반 시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거리를 벌리고 섰다.

그리고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호흡은 아직 정상이었지만 서기종의 몸에는 몇 군데 자상이 보였다.

반면 상천의 몸에는 상처가 없었다. 옷자락이 조금 찢어지기는 했지만,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이었다.

이것 역시 작지만 큰 차이였다.

한 치가 더 들어가고 덜 들어가고에 따라 사람의 생사가 결정 난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천의 몸에 상처를 내기에는 서기종의 공격이 한 치 부족했다.

반면 상천의 공격은 서기종의 몸에 상처를 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깊게 들어갔다.

공간을 뺏고 뺏기지 않느냐가 중요한 싸움.

이미 서기종은 공간 싸움에서 점차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싸움은 생사결.

거기에 사도련과 군마성의 명운이 달린 싸움이었다.

고작 몸에 상처를 내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싸움을 끝내기 위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

고요함이 주변을 감쌌다.

지켜보는 이들도 침 삼키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험이 쌓이면 우리보다 더 강할 거라고 했던 자네 말이 생각나는군.”

가백현이 곁에 서 있는 나군천에게 말했다. 그러자 나군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내가 그때 실언을 했군. 백룡문주는 우리보다 강해.”

나군천의 말에 가백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했지만 나군천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 쓰러져가는 백룡문에서 이런 고수가 나오다니. 백룡문주의 목표가 백룡문을 일으켜 세우는 거라고 했던가. 목표 달성이군.”

가백현의 말에 나군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싸움이 끝나고 나면 세상은 백룡문과 상천을 알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세대 교체가 이뤄지는군.”

나군천이 중얼거렸다.

군마성주의 눈에는 서기종의 몸에 생긴 상처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상천의 몸이 멀쩡한 것도 또렷이 보였다.

그리고 그 차이가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저들은 자신들이 이길 경우 자신의 목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서기종의 승패에 따라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상황.

여차하면 자신이 직접 나서 모든 것을 끝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군마성주는 끝까지 서기종을 믿기로 했다.

어느새 주먹을 쥐고 있는 군마성주의 손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

서기종과 상천은 호흡을 고르고 미친 듯이 날뛰던 내력을 안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묻겠소. 당신, 누구요?”

상천이 서기종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서기종은 피식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서 형이오?”

움찔.

이어진 상천의 물음에 서기종은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말했다.

“나를 이기거든 알게 될 거라고 했는데. 잊었나?”

“…….”

서기종의 말에 이번에는 상천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는 상천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날 이기고 하도록.”

그렇게 말하며 서기종이 먼저 움직였다.

빠른 몸놀림.

그의 검에 넘실대는 검은 기운은 기력을 회복한 듯 더욱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에 맞서는 상천은 천천히 움직였다.

최소한의 움직임을 가져가며 서기종의 공격에 맞섰다.

쾅! 콰앙! 콰쾅!

내력이 폭발하며 굉음을 만들어내었다. 그 여파에 주변의 공기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꽈앙!

슈우우욱!

두 사람의 내력이 충돌할 때마다 그 주변의 공기가 밀려났다가 다시 자리를 채우길 반복했다.

마치 강풍이 휘몰아치듯 매섭게 요동치는 바람 때문에 제법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지켜보는 이들이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울 정도였다.

상천의 단월검도 위력을 더했다.

군더더기 없이 펼쳐내는 상천의 단월검은 서기종을 폭풍처럼 압박해 나가기 시작했다.

덩달아 서기종의 손놀림도 더욱 어지러워졌다.

서기종은 최대한 상천의 공격을 받아내고 반격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천이 펼쳐내는 단월검은 빈틈을 찾기가 어려웠다.

자신과 싸우는 이 순간에도 완성을 향해 진화해 가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서기종은 상천의 표정을 보았다.

얼핏 행복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기종은 깨달았다.

몰아(沒我).

지금 상천은 자신의 수를 읽고 계산하며 싸우는 것이 아닌 자신을 잊은 상태에서 무공과 하나 되어 싸우고 있었다.

집중력을 넘어선 단계.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상천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단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이것이 너와 나의 차이인가.’

미친 듯이 집중하면 자신이 무언가를 해놓고도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그만큼 그것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단 한 번도 무공을 익히면서 그래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의 절실함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시 사부와 재회하고 강한 힘을 손에 넣었을 때.

그때 느꼈던 것은 절실함이 아닌 욕망이었다.

상천과 겨뤄보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상천은 달랐다.

사부와의 인연을 추억으로 묻어두고 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마음 하나로 살아왔다.

절박함. 절실함.

상천은 무공을 그렇게 대했다.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 차이.

그것이 지금의 상천과 서기종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상념에 잠겨있던 서기종이 정신을 차렸을 때.

상천은 어느새 단월검 마지막 초식인 역천을 펼쳐내고 있었다.

하늘을 거스른다.

‘하늘을 거스르려고 했던 나에게 내리는 형벌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서기종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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