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36화 (136/141)

#136화.

가백현이 자신의 도를 들고 움직였다.

딱 일합.

단 한 번의 부딪침이었지만 그것이 가져다준 울림은 컸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강자의 등장에 흥분과 긴장, 두려움이 공존했다.

실로 오랜만에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 상대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서서히 기도를 끌어 올리며 가백현도 자신의 도를 들고 서기종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서기종은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은남도문 무사들은 그에게 제대로 접근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저벅저벅 걸어간 가백현이 순식간에 기도를 끌어 올려 도에 집중시킨 뒤 있는 힘껏 휘둘렀다.

부웅!

초식도 없었다. 속된 말로 그냥 냅다 휘두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그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시선을 두고 있진 않았지만 기도만으로도 누군가 다가왔다는 것을 느낀 서기종은 가백현의 일격에 재빨리 몸을 피하며 검을 들어 가백현의 도를 막았다.

‘음…….’

생각보다 묵직한 가백현의 일격에 서기종이 속으로 약한 신음을 흘렸다.

검이 부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의 일격이었다.

“오호. 이번에도 막았단 말이지.”

가백현이 쓴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도를 거둬들이고는 서기종이 일어서길 기다렸다.

서기종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특유의 무심하고 침착한 표정으로 가백현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이런 게 튀어나왔을까.”

가백현이 신기하다는 듯 서기종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동안 서기종을 빤히 바라보던 가백현이 질문을 던졌다.

“군마성주와는 무슨 관계지?”

“제자.”

서기종이 짧게 대답했다. 가백현과 검을 맞대고 말을 섞는다는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서기종에게 지금 이 순간은 꿈같은 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었다.

그런 것을 최대한 내색하지 않기 위해 짧게 대답한 것이었지만 가백현이 듣기에는 거북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짧군.”

“적이니까.”

서기종이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답했다. 그에 인상을 찌푸렸던 가백현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군마성주가 제자를 제대로 키웠군. 그러니 더 싹을 잘라야겠어.”

그와 동시에 가백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내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대화를 나눌 때에도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가백현이었지만 내력을 끌어 올리니 더욱 압도적인 존재감이 서기종의 전신을 압박했다.

그에 침을 한 번 삼킨 서기종도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점차 빠르게 뛰던 심장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위험한 놈이다. 군마성주가 죽어도 이런 제자가 있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서겠지.’

가백현은 서기종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한 대 무투대회를 전전하던 삼류 무사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와라. 은남도문의 무공을, 이 가백현의 무위를 보여주마.”

좁은 성벽 위에서 마주 선 두 사람.

한 줄기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고 지나갔다.

끼기긱! 끼기긱!

경첩이 한계에 다다른 듯 요란한 비명을 질러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정문을 바라보며 은남도문 무사들과 반월도문 무사들은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끼기기긱!!

쿠웅-!

결국 정문이 쓰러졌다.

고막을 울리는 거대한 소음과 함께 보얀 흙먼지가 주변을 감쌌다.

정문을 바라보며 서 있던 은남도문과 반월도문 무사들은 도를 고쳐 잡으며 흙먼지 뒤쪽을 바라보았다.

먼지 때문에 눈이 따가웠지만 언제 적들이 밀고 들어올지 몰라 아픈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흙먼지는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시야는 확보가 안 되고 있었지만 소리만큼은 또렷이 들렸다.

점점 가까워오는 발걸음 소리.

그 소리가 지척에 다가왔을 때 은남도문과 반월도문 무사들이 먼저 치고 나갔다.

순식간에 주변을 병장기 소리가 뒤덮었다.

“크악!”

“캬악!”

채채채챙!

서걱!

무언가가 잘려 나가는 소리와 금속성, 그리고 비명이 뒤섞여 도저히 듣고 있기 어려운 소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정문 밖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문을 무너뜨렸음에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군마성 무인들이 은남도문의 정문 위쪽에 달린 현판을 뜯어내기 위해 다시금 탑을 쌓고 있었다.

정문 위쪽 망루에 있는 은남도문 무인들이 기를 쓰고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결국 탑 정상까지 오른 군마성 무인 한 명이 현판을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드드드득!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단단하게 붙여 놓은 현판이 부서질 듯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쒜에에엑!

그때.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리더니 현판을 잡아떼려던 군마성 무인의 목이 몸통과 분리되었다.

터엉-!

군마성 무인의 목을 뚫고 날아온 검은 그대로 은남도문의 현판에 박힌 채 심하게 요동쳤다.

그에 떨어지려던 현판은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금 단단히 고정되었다.

현판을 고정시킨 검은 다름 아닌 비호의 검이었다.

군마성 무인들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고 있는 상천의 모습이 보였다.

상천의 눈빛은 차가웠다.

적어도 그는 현판이 가지는 무거운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상천의 눈에 은남도문의 현판을 떼어내려는 군마성 무사의 모습이 들어왔고 제법 먼 거리임에도 지체하지 않고 지니고 있던 검을 던졌던 것이다.

무기인 검을 던져 버린 상천은 전혀 개의치 않고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그를 향해 군마성 무인들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퍽! 퍼퍼퍽!

어느새 상천은 주먹을 쥔 채 자신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군마성 무인들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펼쳐지는 백룡권.

그간 검법을 주로 사용한 탓에 모습을 드러낼 일이 거의 없었던 백룡문의 백룡권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유려하게 펼쳐지는 천유보와 백룡권의 궁합은 환상적이었다.

“죽지 않았을 줄 알았지.”

성벽 위의 군마성 무인들을 상대하던 나군천이 상천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런 감상에 젖어 있을 틈이 없었다.

정문이 뚫렸으니 은남도문 안으로 군마성 무인들이 개떼처럼 밀려들어 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회포는 나중에 푸는 거로.”

그렇게 중얼거린 나군천이 훌쩍 성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쩌엉-!

가백현의 도와 서기종의 검이 또다시 허공에서 부딪쳤다. 벌써 수십 합을 나눴지만 둘 다 서로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가백현과 서기종은 서로를 상대하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피아를 넘어 이런 무인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 순간.

서기종의 눈빛이 달라졌다.

반가움과 조급함이 교차하는 눈빛이었다.

‘역시. 왔나.’

상천의 기도를 느낀 서기종의 입가에 언뜻 미소가 번졌다. 가백현을 상대하는 동안 약간의 표정 변화도 없던 그였다.

‘기다려라. 곧 간다.’

서기종이 더욱 내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서기종의 변화를 가백현이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힘을 아껴두고 있던 건가.’

가백현은 자존심이 상했다. 서기종이 강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군마성주도 아니고 그의 제자가 사도련의 수장인 자신을 상대로 힘을 아껴두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가백현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꽈릉!

가백현의 도에 실린 내력이 더욱 강해졌다. 처음으로 그의 도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서기종은 그런 가백현의 공격도 무리 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콰쾅!

가백현의 도와 서기종의 검이 맞부딪쳐 요란한 소음을 만들어내었다.

맞닿은 검과 도 사이로 가백현과 서기종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힘을 아껴두다니. 괘씸하군.”

“그건 그대도 마찬가지 아니오?”

“본인을 나와 같은 급으로 생각하고 있다니.”

차분하게 말하는 듯 했지만 가백현의 목소리는 분노에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미안한 일이지만 얼른 끝내야 할 것 같소.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해서.”

서기종의 말에 가백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 그의 얼굴이 사나워졌다.

상천의 등장은 군마성의 기세를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군마성주가 말한 고수 한 명의 위력.

이미 귀령대주가 한 차례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것의 표본이 바로 상천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군마성주의 눈빛이 차가워져 있었다.

물론 아직 군마성의 장로급 고수들이 나서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언제든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불만족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놈이구나. 그 아이가 기다리던 놈이.”

그렇게 중얼거린 군마성주는 상천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안력을 돋워 그를 바라보았다.

“저놈이 군마성 삼대 도법을 깨뜨린 놈인가.”

그렇게 말한 군마성주는 인상을 찌푸렸다. 보이는 나이에 비해 실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머저리 같은 놈들.”

그렇기에 가릉과 장무진, 장세진의 죽음에 더욱 화가 나는 군마성주였다.

“이쯤에서 제자 녀석 소원 한번 들어주는 것도 좋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군마성주가 뒤쪽에 서 있는 일 장로 여상을 바라보았다.

“바꿔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여상이 가백현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서기종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빠르면서 위력적인 공격을 주고받는 서기종과 가백현은 계속해서 숨 쉴 틈도 없이 서로를 몰아치고 있었다.

반응이 조금만 늦어도 어디 한 군데 잘려 나갈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휘릭!

까강!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에 의해 가백현의 도와 서기종의 검이 막혀 버렸다.

도검이 살벌하게 교차하는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는 것도 대단한데 위력적인 공격을 손쉽게 막아버린 무위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백현은 지금의 상황에 얼굴이 종잇장 구겨지듯 구겨져 있었다.

상대의 무위가 어떻고는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싸움을 방해받았다는 사실에 짜증만 날 뿐이었다.

“소성주께서는 만날 분이 계시지요?”

여상이 서기종을 소성주라 불렀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서기종을 군마성주의 후계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지만 여상은 달랐다.

군마성주의 제자라면 후계는 당연한 것. 그렇다면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었다. 그리고 여상은 그런 쪽에서는 가장 빠른 인물이었다.

“우리 소성주께서 바쁜 일이 있어 대신 상대하러 왔소이다. 부족하겠지만 좀 봐주시구려.”

여상이 미소를 지으며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백현을 향해 말했다. 조롱은 아니었지만 가백현에게 여상의 말은 그렇게 들렸다.

“어서 가보십시오.”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요.”

그렇게 답하며 웃어 보이는 여상을 뒤로 하고 서기종이 성벽을 훌쩍 뛰어내렸다.

“자, 계속하실까요?”

웃으며 말하는 여상을 보며 결국 가백현은 분노를 폭발시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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