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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검제-116화 (116/141)

#116화.

결과적으로 나군천은 죽지 않았다.

진기를 모조리 끌어올려 진천십팔식을 폭사시킨 덕에 상대에게 조금이나마 내상을 입힐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봤자 얼굴이 약간 창백해질 정도의 가벼운 내상일 뿐이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나군천이 혼신의 힘을 다해 펼친 진천십팔식에 내상을 입어 상대가 주춤하는 사이 상천에게 뒤를 맡기고 출발했던 철혈전마대주가 나타났다.

빠르게 말을 몰아 나군천이 있는 쪽으로 달려간 전마대주는 재빨리 그의 팔을 낚아채 말에 태웠다.

전마대주가 나군천을 말을 태우는 것을 본 고현은 즉각 후퇴 명령을 내렸다.

후퇴 명령이 떨어지자 은남도문 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반월도문 안으로 후퇴했고, 그에 반월도문 쪽에서도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실로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군마성 쪽에서는 그들의 추격을 포기했다.

어차피 날도 많이 어두워져 있었고, 비록 예상대로 당장 반월도문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날이 밝으면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싸움에서 지기는 했지만 반월도문은 일단 무사했다.

하지만 그 상황이 풍전등화와 같이 위태로웠다.

도균현에서의 싸움은 압도적인 군마성의 승리로 끝이 났다.

반월도문 쪽 진영이 수적으로는 훨씬 더 많았지만 개개인의 무위는 군마성 쪽이 훨씬 뛰어났다.

게다가 계속되는 대치 상황 속에서 반월도문 쪽 진영은 정신적 피로가 계속 쌓인 상태라 육체적으로 느끼는 피로는 훨씬 더 심했다.

또한 각각 한쪽 팔을 잃은 가릉과 장무진이 비장한 각오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몰아쳐 승리를 쟁취했다.

반월도문 쪽의 피해는 팔 할 이상, 구 할에 가까운 반면 군마성 쪽 피해는 이 할이 채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얼마나 일방적인 싸움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도균현에서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군마성 진영은 어둠을 뚫고 북상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귀령대주와 수석장로인 여상(呂上)이 있는 귀양이었다.

반월도문의 분위기는 암울했다.

문파를 지키기는 했으나 싸움에서는 대패했고 문주인 나군천은 큰 부상을 입었다.

내상은 약하다 하나 다리에 입은 자상이 제법 깊어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운 좋게 하루를 버텼다고는 하지만 당장 내일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급한 일들을 정신없이 처리한 하신은 접객실로 향했다. 도움을 준 비호와 화룡이 쉬고 있는 곳이었다.

깨끗하게 씻은 후 상처를 치료하고 반월도문에서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은 방에 주저앉아 쉬고 있었다.

귀양까지 강행군을 한 뒤 곧바로 적들과 사투를 벌이다 보니 졸음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졸리기는 했지만 상천이 올 때까지는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에 두 사람 모두 꾸벅꾸벅 졸지언정 누워서 잠을 자지는 않았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졸고 있던 두 사람은 밖에서 하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 들어오십시오.”

비호가 입가에 흐른 침을 닦은 것을 확인한 화룡이 하신을 안으로 들였다.

하신의 얼굴에도 피곤이 가득했다. 그간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문파 내의 업무를 총괄한 까닭이었다.

“두 분의 도움에 반월도문의 군사로서 문주님을 대신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신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에 비호와 화룡도 마주 허리를 굽혔다.

“아닙니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오히려 죄송합니다.”

화룡의 말에 하신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하다니요. 두 분 덕에 문도가 한 명이라도 목숨을 건졌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입니다.”

하신의 말에는 반월도문에 속한 모든 이들 한 명 한 명을 소중이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런데 백룡문주님께서는 안 오셨습니까?”

“저희에게는 귀양으로 가라 하시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셨습니다. 뭐, 함께 다녔어도 워낙 속도가 빠르셔서 저희가 힘들었을 겁니다.”

비호의 말에 상천이 절정의 경지에 오른 것을 모르는 하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천 수준에 빨라봤자 얼마나 빠르겠는가? 그런 그의 속도를 쫓지 못한다니. 하신은 그들이 잘못 말한 것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그럼 곧 오시겠군요. 알겠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쉬십시오. 문주님께서 도착하시면 기별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신이 밖으로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호와 화룡은 곯아떨어졌다.

상천이 반월도문에 도착한 것은 해시(亥時)가 갓 넘은 즈음이었다.

반월도문 앞에 도착한 상천은 굳게 닫힌 정문을 보며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현판도 그대로 있고 정문도 닫혀 있는 걸 보니 일단 한고비를 넘긴 듯 보였기 때문이다.

“누구냐!”

정문 앞에서 한숨을 쉬는 상천을 정문 위쪽 망루에서 경계를 서던 경비무사가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정문 안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경계를 한 것이다.

“백룡문 문주 상천이오! 안에 문도 두 명이 있을 것이오! 못 믿겠으면 그들을 불러주시오! 아니면 이곳 반월도문의 군사님과도 안면이 있으니 내 신분을 증명해 줄 수 있을 것이고!”

상천이 망루 위에 있는 경비무사에게 소리쳤다. 그에 경비무사가 아래쪽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상천의 말을 전하는 듯했다.

그렇게 한 식경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정문이 열리더니 하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굽혔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입니다.”

상천도 미소와 함께 인사하며 허리를 굽혔다.

“먼저 보내신 두 분 덕분에 큰 위기를 면했습니다.”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허허. 그런데 옷에 피가…….”

그제야 상천의 옷에 피가 묻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하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 피가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의복 좀 얻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얼른 들어가시지요.”

하신이 상천을 안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고 반월도문의 정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쉴 수 있는 방을 제공받은 상천은 씻고 난 후 하신이 준비해 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다실에 앉아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하신은 상천이 돌아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옷은 마음에 드십니까?”

“예, 좋습니다.”

“일부러 화려한 것보다는 적당한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하신의 말대로 그가 준비해 준 옷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활동하기에 편한 옷이었다.

어느 정도 격식을 차릴 수 있으면서 만일의 사태에도 불편함이 없는, 지금 같은 시국에 딱 적당한 옷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상천이 하신이 채워주는 찻잔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에 잠시 말이 없던 하신이 힘없이 대답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도균현에서의 전투는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밀려 패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 문을 공격한 이들에 도균현에서 북진하고 있는 적들까지 합치면 내일 하루도 버티기 어려울 듯합니다.”

하신의 말에 상천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주님도 다치셨다 들었는데 괜찮으십니까?”

“내상을 입지는 않으셨으나 외상이 조금 깊습니다. 게다가 정신적으로도 제법 충격을 받으신 듯하고요. 이래저래 어렵습니다.”

반월도문을 이 자리까지 올려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하신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직 문주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은남도문 쪽으로 피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들의 추격이 있을 겁니다. 쉽겠습니까?”

상천의 말에 하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통로 한두 개쯤은 있습니다. 하나는 옹안 부근까지 연결된 통로이고 다른 하나는 금사(金沙) 쪽으로 연결된 통로지요. 정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을 하는 척하며 몰래 빠져나간다면 그들의 추격이 닿기 전에 호남성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하신도 많이 답답했는지 상천에게 지금까지 생각해 온 것들을 하소연하듯 털어놓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말을 타고 있던 분들, 잘 도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

화제를 바꾼 상천의 물음에 하신이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물었다.

“서둘러 이곳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만 제때 도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철혈전마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들 이름이 철혈전마대였습니까?”

상천이 되묻자 하신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리통에 반월도문으로 돌아온 부대는 철혈전마대밖에 없었다.

“제가 노망이 나지 않았다면 말씀하시는 부대가 철혈전마대가 맞을 겁니다. 다행히 제때 도착했지요. 왜 그러십니까?”

하신의 물음에 상천이 살귀대와 있었던 일에 대해 간단히 말해주었다.

상천의 말을 들은 하신의 표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고작 일류의 무공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은남도문의 최정예라 불리는 철혈전마대도 고전한 상대이거늘.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많은 성장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운이 닿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상천의 대답에 하신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런 난국에 한줄기 빛이 내리는 것 같군요.”

하신의 과도한 축하에 상천이 민망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리고 저 하나로 이 난국이 타개되겠습니까? 모두가 힘을 합쳐야 가능한 일이지요.”

상천의 말에 하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

“혹시… 장세진의 목을 옹안지부에 가져다 놓은 것도 문주님이십니까?”

하신의 물음에 상천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이제 보니 영웅을 앞에 두고 대화를 하고 있었군요.”

“영웅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그저 그자가 백룡문에 와서 위협을 가하기에 문파를 지키기 위해 한 일일 뿐입니다.”

상천의 말에 하신이 마치 잘 큰 자식을 보듯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피곤하실 텐데 이만 주무시지요.”

“예.”

상천은 하신과 함께 다실을 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침상에 누운 상천은 한참 동안 잠에 들지 못했다.

막천풍과 옹안 지부장에 대한 일 때문이었다.

철혈전마대가 있던 곳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찾지 못했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죽은 것일까? 혹시 전마대주는 그들을 봤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날이 밝으면 전마대주에게 물어봐야겠다.’

결국 상천은 묘시(卯時)가 다 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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