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14화 (114/141)

#114화.

상천은 도균현에 막천풍과 옹안 지부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직감적으로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빠르게 귀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만약 막천풍과 옹안 지부장이 도균현으로 오는 길에 적과 마주쳐 당한 것이라면 반월도문이 위험했다.

자신들 셋이 간다고 해서 반월도문이 위기에서 벗어날 리는 없겠지만 반월도문의 위기와는 상관없이 막천풍과 여권문도들의 안위만 생각하며 움직이는 상천이었다.

경공을 사용해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상천의 뒤를 쫓는 비호와 화룡은 죽을 맛이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속도를 맞춰 따라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점점 더 빨라지는 상천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조금 천천히 가면 안 되겠습니까! 도대체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

상천과의 거리가 조금 벌어지자 비호가 뒤쪽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상천은 대꾸도 하지 않고 더욱 속도를 높였다.

“세상에! 저게 사람이야?”

비호의 옆에서 죽어라 달리고 있던 화룡이 더욱 빠르게 앞으로 치고나가는 상천을 보며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곧장 반월도문으로 향하시오. 그쪽 군사가 얼굴을 알고 있으니 신원 확인은 될 것이오!]

비호와 화룡에게 전음을 보낸 상천이 이내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상천이 사라지자 달리던 발걸음을 멈춘 두 사람은 지친 몸을 잠시 쉬었다.

비호와 화룡을 떼어낸 상천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몸 안의 진기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상천의 다리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아직 규화공의 진기가 신단의 기운을 완벽하게 녹여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력을 내고 있었다.

‘되려나?’

빠르게 북상하면서 상천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단전의 기운을 밖으로 뿜어내었다.

상천은 진기를 가느다란 실처럼 만들어 사방으로 쏘아 보냈다.

‘기껏해야 십 장 정도가 한계인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상천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싸움이 벌어졌거나 벌어지기 직전이라면 양쪽에서 뿜어내는 살기가 상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살기가 바람에 실려 퍼져 나올 것이고, 그것을 뿜어낸 기운으로 감지해 방향을 잡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운을 뿜어낼 수 있는 한계는 십 장 정도에 불과했고, 그것으로는 방향을 잡기가 힘들었다.

‘어쩔 수 없지.’

상천은 더욱 속도를 높여 귀양을 향해 일직선으로 주파하기 시작했다.

***

나군천은 비장한 표정으로 도를 비껴들고 있었다.

그동안 참고 참아온 살기와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반월도문의 전력과 철혈전마대를 제외한 은남도문의 지원군을 이끌고 반월도문의 정문 앞에서 적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계속되는 척후의 보고에 의하면 적의 진격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신중한 움직임일 수도 있겠지만 나군천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월도문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더욱 분노를 끌어올렸다.

하신은 정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을 제안했지만 나군천은 그 의견을 간단히 묵살했다.

상대의 전력이 강해질 운명이면 농성을 할 바에야 정면으로 부딪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고, 그렇게 해서 반월도문을 사도련의 이인자로 만들었다.

나군천의 자존심에 농성은 있을 수 없었다.

“오 리 밖에 있습니다!”

“후우…….”

다급하게 달려오며 외치는 척후의 보고에 나군천은 심호흡을 했다.

오 리 밖이라면 반 시진 안에 도착할 터.

그간 갈무리해 두었던 살기와 분노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 들끓고 있었다.

“감히 반월도문을 우습게 봤더냐! 이 나군천을!”

콰쾅!

나군천이 휘두른 도 한 번에 그에게 달려들던 적 두 명이 나가떨어졌다.

그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나군천은 또다시 자리를 옮겨 도를 휘둘렀다.

반월도문 앞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물밀 듯 밀려오는 적들을 맞아 반월도문 무사들과 은남도문 무사들은 죽을힘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집념 때문인지 초반에는 적들을 맞아 전혀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지원군은 은남도문의 정예들인만큼 적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나군천이 종횡무진하며 적들을 도륙해 나가고 은남도문 지원군이 적들을 쓰러뜨렸지만 적은 너무나 강했다.

쒜에엑!

날카로운 파공음이 나군천을 겨냥했다.

살기와 분노를 마음껏 터뜨리며 적을 쓰러뜨려 나가던 나군천은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일격에 반사적으로 도를 휘둘러 막았다.

쩡!

검을 막은 나군천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도를 쥔 손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강한 힘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날뛰게 두어서는 안 되겠군요.”

나군천에게 검을 휘두른 사람은 곱상하게 생긴 남자였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보면 군데군데 흰머리가 제법 보여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마른 체격임에도 강한 힘이 실려 있다는 건 그만큼 내공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날뛰게?”

나군천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상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피 냄새가 진동하고 사방으로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으며 병장기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는 아수라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였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지요. 후후.”

그 말에 나군천은 더욱 기분이 상했는지 얼굴을 사납게 구겼다.

“감히 날 물로 보다니.”

“물로 보다니요? 어찌 감히 사도련의 이인자인 반월도문의 문주님을 물로 보겠습니까?”

사내가 이인자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에 나군천의 인내심이 한계치에 다다랐다.

“그리고 문주님이야말로 저를 물로 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군마성 장로 직에는 아무나 앉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상대의 말에 나군천의 머리는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가워졌다.

‘군마성?’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상대의 입에서는 분명 군마성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사실이었단 말인가!’

하신이 적의 정체가 군마성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는데 상대의 한마디로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어이쿠! 제가 방금 군마성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습니까? 아직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군요.”

상대가 너스레를 떨며 검을 고쳐 잡았다.

“아직은 알려져선 안 될 단어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목숨, 거둬가겠습니다.”

상대의 말에 나군천은 이를 악물고 도를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는 속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젠장!’

***

보통 사람이 이삼 일에 걸쳐 걸어 갈 거리를 상천은 단 한 시진 만에 주파했다.

구릉이 나오든 숲이 나오든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일직선으로 달린 결과다.

‘거의 다 왔다!’

귀양을 향해 빠르게 달리던 중 상천의 기감에 미약한 살기가 감지되었다.

멀리서부터 날아온 살기를 감지해 낸 상천은 곧장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 일직선으로 달렸다.

철혈전마대가 출진한 곳.

상천이 향하는 방향은 그곳이었다.

한참을 달려간 상천의 귀에 병장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코끝으로 피 냄새가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

상천은 검을 뽑아 들었다.

조금 더 달려 거리가 삼 장 정도로 좁혀졌을 때, 상천의 시야에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한 무리가 들어왔다.

파박!

상천이 힘차게 땅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전장에 도착하는 짧은 순간 적아를 판단하고는 검을 뿌렸다.

쒜에엑!

서걱!

상천은 철혈전마대원의 목을 노리며 검을 휘두르던 적 한 명의 목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뒤늦게 적의 공격을 알아차려 꼼짝없이 당했다고 생각했던 전마대원은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을 구해준 상천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뒤!”

바닥에 착지하며 상천이 소리쳤다.

그에 퍼뜩 정신을 차린 전마대원이 말 위에서 그대로 엎드렸다.

까앙!

히이잉!

전마대원을 반으로 가르려던 검은 그의 등을 지나 그대로 철갑을 두른 말의 목덜미를 강타했다.

철갑으로 보호를 했다고는 하지만 내력이 실린 일격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말이 고꾸라졌고, 가까스로 검을 피한 전마대원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제대로 낙법을 펼쳐 큰 부상은 당하지 않은 그였다.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몸을 일으킨 전마대원은 상천이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천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잠시 동안 넋을 놓고 있던 대원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주변에 있는 적들을 향해 도를 휘둘러 갔다.

철혈전마대와 살귀대의 싸움은 대등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철갑을 두른 말 위에 앉아 도를 휘두르는 철혈전마대가 조금은 유리한 듯 보였지만 살귀대의 힘은 그러한 불리함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철혈전마대와 살귀대의 싸움에 정면으로 뛰어든 상천은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갑작스레 나타난 상천 때문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살귀대원들은 전혀 그런 기색 없이 상천을 향해 검을 뿌리고 있었다.

상천은 한껏 진기를 끌어올려 마음껏 천유보를 펼쳤다.

생각보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라 간격이 좁음에도 불구하고 상천의 천유보는 빛을 내고 있었다.

쒜엑!

살귀대원의 검이 날카롭게 상천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지난번 상대했던 적들보다 확실히 더 빠르고 정확하며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상천은 그대로 상체를 뒤로 젖혔다.

미간을 꿰뚫을 것 같았던 적의 검은 그대로 허공을 찔렀고, 상천은 유연하게 몸을 틀며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쒜엑!

쩍!

“컥!”

그러면서 뻗은 검은 반대로 살귀대원의 미간을 그대로 찔러 버렸다.

푸슈슈슈!

검이 꽂힌 미간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재빨리 검을 뽑은 상천은 곧장 다른 적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살귀대주와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치고 있는 철혈전마대주의 귀에 갑자기 단말마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에 저절로 전마대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갑자기 비명이 많이 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어느 한쪽으로 전세가 기울었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호적수에 집중하느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어 확인하기가 어렵지만 정황상 밀리는 쪽은 철혈전마대일 가능성이 컸다.

일반적으로 기마병과 보병이 싸우면 당연히 기마병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기동력이 뛰어나고 높은 곳에서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적들은 그들의 불리함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다.

철갑을 두른 말이라고는 하지만 내력이 실린 공격을 갑주 위에 정통으로 맞게 되면 상당한 충격을 받고 쓰러지게 된다.

굳이 말을 죽일 필요 없이 그렇게만 해도 기마병의 이점은 사라지게 된다.

적들은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처음부터 사람이 아닌 말을 공격했다.

결국 지금 현재 말 위에 있는 전마대원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살귀대주와 일기를 하기 전에 본 것이 마지막이니 지금은 한 명도 없을지 몰랐다.

살귀대주도 전마대주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죽어라.”

살귀대주의 가래가 끓는 것 같은 거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의 검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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