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넌 무공이 뭐라고 생각해?”
상천이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배동삼은 당황하여 말문이 막혔다.
“바꿔서 물어보자. 검법을 펼칠 때 넌 무슨 생각을 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검법을 펼치지?”
이어진 질문에 배동삼은 이번에도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천은 재촉하지 않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냥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배동삼의 대답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생각이고 중요한 생각이지. 하지만 그건 기본에 깔려 있어야 하는 생각이야.”
상천의 말에 배동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까 한 질문을 다시 해보자. 넌 무공이 뭐라고 생각해?”
“…….”
배동삼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그런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공을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내 몸으로 펼쳐 내는 것, 혹은 눈에 보이는 것?”
상천의 질문에 배동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상천이 생각하는 무공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지만 솔직히 배동삼은 무공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대충은 알겠지?”
“예.”
“그럼 무공은 뭘까?”
상천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배동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신적인 것?”
“근접했어.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아냐.”
상천의 말에 배동삼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도통 그가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공은 사람과 같아.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사람. 성격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선택을 하기도 하고 판단을 하기도 하지.”
상천의 말을 배동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공이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배동삼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천을 바라보았다.
“무공이라는 녀석은 신기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른 반응을 보여. 예를 들어볼까? 내가 잔뜩 화가 나면 무공이라는 녀석도 잔뜩 화를 내. 그런데 어떤 때는 내 화를 가라앉히려고도 하지. 상황에 따라서 내 화를 더욱 돋워야 할 때도 있을 거고 가라앉혀야 할 때도 있을 거야. 그렇지?”
“예.”
상천의 말에 배동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알아들을 것도 같았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공과 나 자신이 일체화가 되어야 한다는 거야. 일체화.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 그런 것과 비슷한 거야.”
그 말에 배동삼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풋이 알 것 같았던 것이 조금은 또렷해지는 느낌이다.
“그 일체화라는 건 말이지, 몸에 익숙해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야.”
그렇게 말한 상천이 배동삼에게 다가갔다.
마냥 동생으로만 생각했던 배동삼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상천만큼이나 커 있었다.
“일체화는 여기와 여기로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상천이 손가락으로 배동삼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켰다.
“내가 무공을 왜 익히는지, 무엇을 간절히 원해서 무공을 펼치려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 네 스스로 그 이유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네가 익히고 있는 무공도 너를 받아들이고 네게 맞춰줄 거야. 그 느낌을 알게 되면 넌 더 높은 곳에 올라 있을 거고.”
그렇게 말한 상천이 연무장을 내려갔다.
홀로 연무장 위에 남은 배동삼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닌 또렷한 눈빛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연무장을 내려오는 상천에게 배동삼에게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장여진이 다가갔다.
“너무 어려운 얘길 한 것 아닌가요?”
“어렵고 어렵지 않고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 아니겠소? 난 동삼이를 믿소.”
그렇게 말한 상천이 연무장 위에 서 있는 배동삼을 힐끗 바라보았다.
***
늦은 밤 자신의 처소에서 책장을 넘기는 군마성주의 표정에서 걱정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록 가릉과 장무진에게 가혹한 벌을 내리고 엄포를 놓기는 했지만 그는 그들을 믿었다.
실력 하나만큼은 군마성 내에서도 손꼽히는 자들이기에 사도련 정도는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알아봤느냐?”
여전히 책장을 넘기며 군마성주가 물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사령이 나타나며 고개를 숙였다.
“예.”
“읊어봐라.”
군마성주의 말에 사령이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가 장로의 말처럼 특별할 것 없는 문파입니다. 문주라는 자는 이십대 초반이고 얼마 전 기연을 얻어 절정에 오른 모양입니다.”
“그리고?”
“문파 인원도 얼마 되지 않으며 문도들은 고작 이류 수준입니다. 합산도문에 있던 장여진이 도망쳐 그곳에 몸을 의탁한 모양입니다. 문주 외에 주목할 만한 사람은 장여진과 함께 의탁한 것으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있습니다만 아직 절정에 이르지는 못한 수준입니다.”
“검법은?”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흠…….”
생각보다 많지 않은 정보에 군마성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보기에 그 백룡문주가 효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어렵습니다.”
사령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군마성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죽었다는 건 그자의 검이 신검(神劍)에 이르렀거나 그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구나. 물론 효가 흥분하여 스스로 자멸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겠지.”
군마성주의 중얼거림에 사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궁금하구나. 어떤 인물인지. 내가 직접 보러 다녀와야겠다.”
“직접… 가려 하십니까?”
사령이 놀란 듯 물었다.
과거 군마성으로 돌아온 이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 그가 직접 발걸음을 하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오랜만에 바람 좀 쐬어야겠다. 조용히 다녀올 것이니 발설치 말거라.”
“알겠습니다.”
사령의 대답에 군마성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서 책장을 넘겼다.
“가보아라.”
“예.”
사령이 사라졌다. 군마성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책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
적들이 물러난 지 열흘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월도문은 한숨만 쉬고 있었다.
정신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주 전력의 공백은 쉽게 채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군천은 속이 타들어갔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조급함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악재는 오히려 이럴 때 찾아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적들이 물어나고 보름이 다 되어가던 때에 다시 적들이 출몰했다는 보고를 들은 나군천은 욕을 내뱉었다.
은남도문에서 지원군이 오고는 있었지만 지금 상태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었다.
일단은 급한 대로 반월도문의 나머지 전력을 전선으로 보내기는 했지만 그들과 지부의 힘을 다 합친다 하여도 적들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
적들이 나타나 반월도문 무인들이 전선으로 향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정보력이 취약한 백룡문에게까지도 그 소식이 들어갈 정도였다.
상천은 급히 비호와 화룡을 불렀다.
“소식을 다들 들었을 거라 생각하오.”
“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비호가 물었다.
일전에는 본진에 합류하려는 적들을 맞아 좁은 협곡에서 싸운 것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드넓은 곳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 곳에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자칫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다.
“싸워야 하지 않겠소? 물러갔던 적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을 것이고, 반월도문은 지난번 싸움에서 주력을 잃었소.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야 하오.”
상천의 말에 비호와 화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괜한 걸 물었다는 생각에 비호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도균현(都勻縣) 부근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는데 도균현은 반월도문이 있는 귀양과는 지척이오. 만약 거기서 패한다면…….”
상천이 뒷말을 흐렸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번 싸움이 반월도문 입장에서는 총력전일 터. 그런데 패한다면 반월도문 본산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아니, 위험해진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자칫 멸문지화까지 당할 수 있었다.
그 말은 귀주성이 고스란히 적의 손에 넘어간다는 뜻.
상천에게 있어서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되었다.
적들의 손에 귀주성이 넘어간다면 백룡문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 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백룡문주, 들어가도 되겠는가?”
“들어오시오.”
막천풍의 목소리에 상천이 그를 안으로 들였다. 문이 열리며 그가 안으로 들어서는데 밖에 서 있는 여권문도들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무슨 일이오?”
“우린 떠나려 하네.”
그 말에 상천이 막천풍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권문을 그리 만든 놈들이 다시 나타났다는데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는가? 우린 곧장 여기를 떠나 반월도문 본진에 합류하려 하네.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해봐야지.”
“괜찮겠소? 죽을 수도 있는데.”
상천의 말에 막천풍이 편안해 보이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죽는 게 두려우면 무림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아니지. 두려워도 싸우는 게 무림인이지. 죽어도 상관없네.”
그 말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며칠만 기다렸다가 우리와 함께 갑시다.”
상천의 말에 막천풍이 고개를 저었다.
“성격이 급해서. 그럼 먼저 출발할 테니 따라오시게. 너무 늦지 않게 와야 할 거야. 나오지 말게나.”
그렇게 말한 막천풍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전장으로 향할 모든 준비를 마치고 도열해 서 있는 여권문도들을 잠시 동안 바라보던 막천풍이 짧게 말했다.
“가자!”
“예!”
막천풍의 말에 스무 명가량의 여권문도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그를 따라나서기 전에 상천이 있는 방을 향해 일제히 포권을 해 보였다.
그간 자신들을 벡룡문에서 지내게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였다.
게다가 지난번 상천이 배동삼에게 무공을 익히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했던 이야기는 비단 그에게 뿐만 아니라 여권문도들에게도 크게 와 닿았던 것이다.
그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 담겨 있는 포권이었다.
막천풍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싫지 않았음에도 정작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놈들아, 괜히 분위기 잡지 마라! 며칠 있으면 또 볼 거다! 그때 말로 해! 얼른 가자!”
그렇게 소리치며 막천풍이 먼저 백룡문을 나섰고, 곧장 여권문도들이 그 뒤를 따랐다.
안에서 그 소리를 모두 듣고 있던 상천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말했다.
‘며칠 있다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