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10화 (110/141)

#110화.

그의 입에서 유희라는 말이 나왔을 때 가릉과 장무진은 크게 놀랐다.

그 말은 본격적으로 적들과 싸우기 전에 합산도문에서 자신들끼리 나누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본성에서 웅크리고 있는 군마성주가 그것을 어찌 안단 말인가?

순간 가릉과 장무진의 머릿속에 십삼령이 떠올랐다.

다가오는 기척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히 움직일 수 있는 그들이라면 자신들을 감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툭!

그때 군마성주가 무언가를 그들 앞으로 던졌다.

그가 던진 것을 확인한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누군가의 잘린 손이었기 때문이다.

“초운학은 자신의 손을 내놓았다. 너희들은 무엇을 내놓겠느냐?”

“용서하십시오!”

군마성주의 물음에 가릉과 장무진은 재빨리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군마성주는 그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무엇을 내놓겠느냐 물었다.”

재차 이어진 물음에 가릉과 장무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말하지 않겠다? 좋다. 귀령대주.”

군마성주의 부름에 귀령대주가 자리에서 일어서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난 저 두 사람의 왼팔을 받아야겠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 말에 깜짝 놀란 가릉과 장무진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하지만 군마성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 앞으로 저 두 사람의 팔을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귀령대주가 감정이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을 빼 들었다.

“둘 다 일어나라.”

그의 명령에 머뭇거리던 가릉과 장무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의 얼굴은 새하얗게 상기되어 있었다.

휘릭!

가릉과 장무진이 일어서자 귀령대주가 들고 있던 검을 앞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크윽!”

“윽!”

두 사람의 왼팔은 바닥에 떨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가릉과 장무진의 입에서 짧고 굵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파팍!

지독한 통증을 이를 악물고 참으며 두 사람은 왼쪽 어깨 부근의 혈을 눌러 지혈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그러는 사이 귀령대주가 빠르게 핏기가 가셔가는 두 사람의 팔을 군마성주의 발치에 가져다 놓았다.

“너희에게 왼팔을 받은 것은 기회를 한 번 더 주고자 함이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릉이 고통을 참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한 달 주겠다. 한 달 안에 사도련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남은 팔다리를 모두 가져가겠다.”

“명심하겠습니다!”

가릉과 장무진은 고통을 참느라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가라. 꼴도 보기 싫으니.”

“예.”

가릉과 장무진이 대전을 나가자 군마성주가 귀령대주에게 말했다.

“이번 일에 대한 지휘권을 네게 주마. 깔끔하게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귀령대주도 대전을 나섰다. 홀로 남은 군마성주가 태사의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멸사폭참을 깨뜨린 검공이라……. 사령!”

그의 말에 사령이 대전에 나타났다.

“은밀히 백룡문에 대해 알아봐라. 백룡문주라는 자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소상히 알아보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사령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군마성주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

문도들을 모두 백룡문으로 다시 데려온 상천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안전한 것으로 따지면 계속 그곳에 남겨두는 것이 나을 수 있었지만 곁에 두는 편이 훨씬 더 마음은 편했다.

내 가족은 내가 지키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모두를 다시 백룡문으로 데려오기는 했지만 상천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비록 사도련 내에 얼마 없는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초인이 아닌 이상 수백 명의 적을 혼자 막아내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같았다.

그나마 적들을 상대로 힘을 낼 수 있는 비호와 화룡, 여소정 등이 있기 때문에 상천은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게다가 막천풍을 비롯한 스무 명가량의 여권문도들도 이번 싸움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 머물며 싸우겠다고 해주어 더욱 힘이 되었다.

그런 상천의 마음을 알기 때문인지 문도들은 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실력 향상이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수련밖에 없었다.

그마나 꾸준히 규화공을 수련하고 단월검과 백룡권을 연마하여 문도 대부분이 이류 무사 수준으로 올라서기는 했지만 적들에게는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았다.

특히나 배동삼은 이를 악물고 수련에 임했다.

문도들 중 무공에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는 그였기에 실력이 많이 늘어 있었다.

이류를 넘어 일류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배동삼은 상천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무공도 가르쳐 주고 좋은 곳에서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으니 더없이 고마웠고, 그런 상천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런 상천에게 보답하기 위해 배동삼은 무리다 싶을 정도로 수련에 매진했다.

배동삼은 지금 자신 앞에 놓인 벽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상천에게 짐이 되고 있지만 그 벽을 넘는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 벽을 넘기 위해 배동삼은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휘두르기만 한다고 해서 능사가 아닌데.”

연무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배동삼을 향해 막천풍이 지나가듯 한마디 했다.

그것을 들었는지 배동삼이 검을 멈추고는 막천풍을 바라보았다.

“아, 들었나?”

들으라고 한 소리면서 능청을 떠는 막천풍을 보며 배동삼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보시기에 어디가 문젭니까?”

배동삼은 주저하지 않고 물었다. 그러자 오히려 난감한 쪽은 막천풍이었다.

백룡문 사람도 아닌데 함부로 조언을 하는 것은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동삼은 조언을 갈구하는 강한 눈빛을 계속해서 막천풍에게 쏘아 보내는 중이었다.

“난 다른 문파 사람이라 쉽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네.”

“사소한 것 한 가지라도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배동삼이 진지하게 조언을 청했다.

그러자 막천풍이 민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아니, 문주가 저리 강한데 왜 나한테…….”

난감해하던 막천풍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배동삼이 익히고 있는 무공은 모두 백룡문의 무공이고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상천이었다.

게다가 절정의 경지에 올라 깊이도 더해졌을 테니 그가 해주는 작은 조언 하나가 배동삼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동삼도 그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상천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선뜻 묻기가 어려웠다.

머뭇거리는 배동삼을 보며 막천풍은 대충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마음인지 눈치챘다.

그에 배동삼에게 다가간 막천풍이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짐이 된다 생각 말게. 문도가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도 문주에게는 큰 기쁨이지. 상천 문주가 많이 힘들 게야. 어린 나이에 문주로서 이것저것 신경 쓰려니 머리가 터지겠지. 그래도 묻는 걸 주저하지 말게나.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더 달라붙어서 물어야 돼. 자네가 성장하는 걸 보면서 잠시나마 힘든 걸 잊을 수 있을 테니.”

막천풍의 말에 배동삼은 스스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빨리 성장하는 것만이 상천의 짐을 덜어주는 길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은 상천에게 묻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오히려 상천에게 묻기를 주저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상천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일 수 있었다.

물론 상천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겠지만.

“문주만 문도들을 생각할 게 아니라 문도들도 문주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해. 그래야 문파가 잘 돌아가는 게야.”

그렇게 말한 막천풍은 한데 모여 수련하고 있는 여권문도들에게로 향했다.

배동삼이 슬쩍 고개를 돌려 서기종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천을 바라보았다.

상천과 배동삼이 연무장 위에 마주 보고 서 있다.

배동삼은 약간 긴장한 표정이었고, 상천은 느긋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펼쳐 봐.”

“알았어. 아니, 알겠습니다.”

평소처럼 상천에게 평대를 하던 배동삼이 얼른 말을 고쳤다. 혹여나 낭호가 듣지 않았을까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은 덤이었다.

그것을 보며 상천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평소처럼 편하게 하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앞으로 문파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갖춰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낭호에게 고마워해야겠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상천은 심호흡과 함께 검을 들어 올리는 배동삼을 바라보았다.

“다시.”

“예?”

아직 시작한 것도 없는데 다시를 외치는 상천을 보며 배동삼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검 다시 들어.”

상천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자 배동삼이 쭈뼛거리며 검을 내리더니 이내 다시 자세를 잡고 검을 들었다.

“다시.”

이번에도 상천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나왔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배동삼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에 상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몸이 딱딱하잖아. 검을 쥔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갔어.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면 제대로 검을 뿌릴 수 있겠어?”

상천의 말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배동삼이 가볍게 뛰며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심호흡과 함께 다시 검을 들었다.

조금 전보다는 확실히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검을 든 배동삼이 상천을 바라보았다.

“펼쳐 봐.”

상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배동삼이 그간 갈고닦은 단월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배동삼이 펼치는 단월검을 상천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아주 작은 허점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예리하게 배동삼의 움직임을 쫓았다.

잠시 후,

배동삼이 단월검을 모두 펼치고는 땀을 주르르 흘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막 봄이 시작되는 시기임에도 비지땀을 흘리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검법을 펼쳤는지 알 수 있었다.

“좋네.”

상천이 짧게 말했다. 하지만 배동삼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상천에게 가르침을 청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완벽에 가까워, 형(形)은.”

상천의 말에 배동삼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라는 뜻이 아닌 아직 멀었다는 뜻의 한숨이었다.

형은 완벽하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껍데기만 완벽하다는 뜻이다.

껍데기만 완벽해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배동삼은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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