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09화 (109/141)

#109화.

나군천의 표정은 묘했다.

눈앞에 있는 장세진의 목 때문이다.

핏기가 하나도 없는 진짜 목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알고 있는 얼굴과 달랐다.

옹안 지부장이 보내온 이 목이 장세진의 목이란다.

어떻게 된 것일까?

나군천의 가슴속에 의문이 생겼다.

‘정말 유마환용술인가?’

눈앞에 있는 목이 진짜 장세진의 목이라면 일전에 하신이 가설로 내세웠던 유마환용술이 맞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가 군마성이라는 가설이 사실일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을 뜻했다.

궁철형이 살아 돌아왔다면 상대가 군마성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겠지만 그가 죽었기에 아직도 나군천은 적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장세진의 목이 맞다 치고, 누가?’

두 번째 궁금증.

과연 누가 장세진의 목을 쳤는가?

옹안지부 앞에 놓여 있었단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가장 가까운 지부가 옹안지부라는 뜻.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근처에 있는 문파 중 장세진의 목을 칠 수 있는 고수를 배출할 만한 문파는 없었다.

누굴까?

나군천의 머릿속에 강한 의문이 자리 잡았다.

귀령대가 합류했음에도 장세진은 돌아오지 않았다.

장무진은 그가 죽었음을 직감했다. 그가 떠날 때의 불안감이 현실이 된 것이다.

“빌어먹을!”

가릉은 대노했다.

언젠가는 그의 성격이 제 목을 조를 것이라 생각하고는 있었다.

쉽게 흥분하는 성격은 무인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 약점 때문에 죽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파악한 상천의 실력으로는 장세진의 멸사폭참을 깨뜨릴 수 없었다.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절대 아니라 확신할 수 있었다.

상천과 마주쳤을 때 놀라기는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무공이 일취월장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후하게 봐도 장세진이 우세였다.

“네가 망혼대까지 맡아줘야겠다.”

“알겠습니다.”

장무진이 동요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대로 반월도문 본산까지 진격한다. 유희는 없다.”

가릉의 말에 장무진과 귀령대가 진적 준비를 시작했다.

“멈추십시오.”

그때, 홀연 누군가가 나타났다.

복면을 한 사람이었는데, 처음 보는 모습에 가릉은 잔뜩 경계를 했다.

‘다가오는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가릉은 침을 삼켰다.

지척까지 다가오는데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눈앞에 나타난 자가 자신보다 강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때 돌연 복면인이 허리를 굽혔다.

“십삼령 중 삼령입니다.”

복면인의 말에 가릉은 여전히 경계심을 품고 물었다.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상대의 대답에 가릉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를 막는 것인가?”

“본성에서 성주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성주님의?”

성주의 전언이라는 말에 가릉이 살짝 놀랐다. 사도련과 관련된 일은 초운학과 자신들에게 일임했던 군마성주다.

그런데 지난번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두 번이나 관여하고 있다.

“말해보라.”

“지금 즉시 회군하고 장로님과 흑혈대주, 귀령대주는 본성으로 입성하시라는 명입니다.”

“본성으로? 우리 셋만 가는 건가?”

“이곳에서는 그렇습니다.”

“이곳에서는?”

“예. 초운학 사령관은 아마 지금쯤 본성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음…….”

삼령의 말에 가릉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일까?

비록 장세진이 죽기는 했지만 모든 일이 잘 풀려가고 있는 마당에 소환이라니.

“알겠다. 곧바로 입성하도록 하지.”

“예.”

짧게 대답한 삼령이 다시 홀연히 사라졌다.

“도통 알 수가 없군.”

가릉이 중얼거렸다.

***

상천은 백룡문이 아닌 문도들이 피신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가 돌아오자 모두가 달려 나와 그의 상태부터 살폈다.

미소 지으며 괜찮다는 상천의 말은 들리지 않는지 모두가 달라붙어 상천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기에 바빴다.

난처해하는 상천을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낭호였다.

“대체 문주님의 몸에 손을 대는 문도들이 어디 있느냐! 기강이 흐트러지면 엄벌에 처한다고 했을 텐데!”

낭호의 호통에 모두가 움찔하며 상천에게서 떨어졌다.

이곳으로 피신해 온 이후 낭호는 잘됐다며 틈만 나면 문도들을 데려다가 교육을 시켰다.

기본적으로 문파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교육했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내렸다.

상천이 없을 때에야 낭호가 무서우니 잘 따랐지만 막상 상천을 보니 그간 배웠던 것들이 모두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괜찮으십니까?”

문도들이 떨어지고 나서야 서기종이 다가가 물었다. 낭호가 문도들에게 기강을 잡고 있기 때문인지 그도 상천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에 상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십니까, 절정에 들었다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맞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괴물 같은 장세진과 싸워 이길 수는 없겠지요. 그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습니다.”

장세진이 죽었다는 말에 서기종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별다른 부상 없이 멀쩡히 돌아왔을 때부터 짐작하기는 했지만 직접 상천의 입으로 들으니 놀라운 정도가 더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서기종이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동안 그렇게 문파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 했던 상천이 스스로 절정의 경지에 올랐으니 문파를 일으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기뻐하는 서기종을 뒤로하고 상천이 막천풍과 장여진이 서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보십시오. 궁금한 것이 많을 겁니다.”

“예.”

상천이 서기종을 지나쳐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막천풍은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이곳에 와서 상천이 절정에 올랐다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살아 돌아 온 것을 눈으로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났다.

“입에 파리 들어가겠소.”

상천의 핀잔에 막천풍이 입을 닫았다. 그리고는 이내 민망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초봄인데 벌써 파리가 있을 리가 있나.”

“후후,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합시다.”

그의 실없는 농담에 상천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은가요?”

“괜찮소. 지내기에 불편하지는 않았소?”

“전혀요.”

장여진의 말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묘해지자 막천풍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아까 말했듯이 장세진은 죽었소.”

“그렇군요.”

“그리고 짐작했겠지만 그자는 장 소저의 오라버니가 아니었소.”

상천의 말에 장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우량이 가릉이었다는 이야기를 서기종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짐작하고 있었다.

진짜 장우량과 장무진, 장세진이 죽었을 것이란 사실을.

“괜찮소?”

“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장여진이 감정을 추스르려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축하해요. 절정에 올랐다니.”

“운이 좋았을 뿐이오.”

“운도 노력하는 자에게 다가오는 법이죠. 대단하네요. 절정의 경지라면 사도련 내에서도 많지 않을 텐데.”

장여진의 말에 상천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니 자신이 올라선 절정의 경지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와 닿았다.

상천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다.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던 상천이 말했다.

“모두들 백룡문으로 돌아가지요.”

상천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상천은 온 힘을 다해 그들을 지키겠다고 마음먹었다.

***

적이 회군했다.

그에 반월도문과 은남도문 지원군은 심히 당황했다.

이미 반격을 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적이 돌아갔다.

기껏 준비한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허무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도대체 적이 무슨 의도로 그냥 돌아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불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일단 적이 돌아갔기 때문에 지원군은 다시 은남도문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반월도문은 그간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결국 피해를 본 것은 반월도문이었다.

주력을 잃었고 귀주성에 있는 문파들은 초토화되었다.

나군천은 이를 갈았다.

***

어두운 대전 안.

가릉과 장무진, 귀령대주는 무릎을 꿇고 군마성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은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데 반해 귀령대주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한 식경 정도 그렇게 있었을까.

가벼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노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평범한 노인이었다.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인자한 노인처럼 생긴 그자가 바로 재기를 노리는 군마성의 군마성주였다.

인상과 달리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는 그에게서는 거대한 기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런, 계속 그러고들 있었는가? 다리 저릴 텐데. 의자를 가져와라. 편히 앉아야지.”

군마성주가 인심 좋은 할아버지처럼 말하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서둘러 의자 세 개를 가져와 대전 중앙을 기준으로 좌측에 나란히 놓았다.

“다들 앉지.”

군마성주의 말에 세 사람은 천천히 일어나 의자에 가 앉았다.

“그래, 효가 죽었다고?”

공효(孔曉). 죽은 장세진의 진짜 이름이다.

“예, 그렇습니다.”

“시체 확인은 했는가?”

“시체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정황상 죽은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대답을 하는 가릉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시체 확인도 못 했으면서 어찌 죽었다 확신하는가?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하지 말라고 평소 그리 일렀거늘.”

군마성주가 질책의 의미를 담아 가볍게 물었다.

“입성하기 전 미리 날랜 자를 시켜 알아보도록 지시를 내렸습니다. 반월도문의 옹안지부에 누군가가 공효의 목을 가져다 놓았다고 합니다.”

“음…….”

가릉의 대답에 군마성주가 길게 늘어진 하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게 누군가?”

“백룡문이라고 하는 곳의 문주입니다.”

“백룡문? 백룡문이라……. 그런 곳의 문주에게 효가 목숨을 잃었다고?”

“간 곳이 그곳이니 틀림없습니다.”

“허허! 귀주에는 반월도문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군마성주가 허탈하게 웃었다.

“필시 흥분을 하여 스스로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망혼대주는 평소…….”

“그렇다고는 하지만…….”

가릉의 말을 군마성주가 자르고 나섰다.

“멸사폭참이 고작 그런 문파의 무공에 당할 무공인가? 군마성 삼대도법은 오직 신검(神劍)만이 깨뜨릴 수 있다. 모르지 않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가릉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과거 멸사폭참과 마령절도식, 무적패도는 말 그대로 무적이었다. 검으로 일가를 이룬 남궁가의 검을 꺾었고, 화산의 검도 꺾었지. 승승장구하던 삼대도법을 꺾은 것은 무당의 검이었다. 그것도 겨우 반 초 차이로. 과연 그 문파의 검이 무당의 검에 필적한단 말인가?”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쾅!

군마성주가 가볍게 발 앞꿈치를 들었다가 내렸다.

살짝 내디딘 발걸음임에도 거대한 진동이 대전을 울렸다. 그에 실린 힘이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난 무당의 검보다 못한 무공에 멸사폭참이 꺾인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멸사폭참을 꺾은 그 검을 아직도 가볍게 여기고 있는 너희를 탓하고 있는 것이다!”

“…….”

군마성주의 일갈에 가릉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이번 일을 너희에게 모두 일임했다. 믿었기 때문에. 그런데! 유희? 너희들은 유희라는 말까지 써가며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중원이! 그렇게 여유를 부려도 될 정도로 만만한 곳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군마성주의 분노가 폭발했다.

가릉과 장무진은 노인의 말에 깜짝 놀라며 심하게 몸을 떨었다.

‘다 알고 있었던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