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부우웅!
스슥!
거칠게, 그리고 강한 위력을 뿜어내며 날아오는 도를 피하는 천유보는 극에 달했다.
쒜에엑!
그리고 단월검이 장세진의 도를 압박해 간다.
연이어 자신의 공격이 무위에 그치자 장세진은 점점 눈이 뒤집혀 갔다.
반면 상천은 점차 희열을 느끼며 더욱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꽈광!
또 한 번의 폭발.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담벼락이나 건물이 무너지지 않았다.
상천이 뿜어내는 검기와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폭발하여 뻗어나가는 기운을 자연스럽게 소멸시키고 있었다.
이는 상천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현상이었다.
스슥!
천유보가 바닥을 훑었다.
그리고 그동안 온갖 정성을 쏟아왔던 단월검의 정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신을 압박하는 태산 같은 상천의 기세에 장세진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
두 사람의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 다행히도 막천풍을 비롯한 여권문도들은 비호, 화룡과 함께 백룡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크게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도망치는 것밖에는 없었다.
막천풍은 아직까지도 상천의 수준이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정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걱정을 했다.
하지만 비호와 화룡은 도망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며 그를 데리고 다른 문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서기종과 녹엽, 낭호 등은 갑자기 비호와 화룡이 사람들을 데리고 들이닥치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큰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서기종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비호와 화룡은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무슨 일인가요?”
허름한 거처 안에 있던 장여진이 소란스러움을 느끼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를 따라 여소정도 밖으로 나왔다.
“아가씨.”
비호와 화룡이 장여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장여진의 모습을 본 막천풍이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리 구면 아닙니까?”
“아, 그러네요.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장여진의 물음에 막천풍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 문이 적에게 당해 겨우 목숨을 건져 백룡문에 신세를 좀 졌습니다.”
“그러시군요.”
막천풍의 말에 짧게 대답한 장여진이 비호와 화룡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비호와 화룡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막천풍이 말을 이었다.
“누군가 백룡문으로 장 소저를 찾아왔습니다.”
“네?”
장여진이 화들짝 놀랐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설마…….”
“예, 그자가 찾아왔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
장여진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자가 누굽니까?”
막천풍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지금 장여진의 상태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장세진입니다.”
대답은 여소정이 했다. 그녀 역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장세진? 합산도문의 뇌격대주?”
막천풍의 물음에 여소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막천풍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자는 장 소저의 오라비 되는 사람일 텐데 왜 백룡문주가 그와 싸워야 하오?”
막천풍의 물음에 장여진을 비롯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장세진을 상대로 상천이 싸우고 있다니.
몇 달 전 그의 한 수에 죽을 고비를 넘겼던 상천이다.
장여진이 비호와 화룡을 바라보았다.
의문과 질책을 담아.
“문주님께서 절정의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
상천이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니, 처음 듣는 말이다.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나요?”
장여진의 물음에 비호가 죄송하다는 듯 대답했다.
“저희도 너무 충격적이었던지라 말씀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문주님께서 직접 말하시기 전에 떠벌리고 다니는 것도 맞지 않는 듯하여…….”
비호의 말에 장여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상천이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면 장세진에게 이전처럼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상천만 남고 모두 이리로 피신한 건가요?”
“예. 문주님의 명이었습니다.”
비호의 말에 장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도대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군. 백룡문주가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리고 오라비가 동생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어째서…….”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하시지요.”
장여진이 침착하게 말했다.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천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더 컸기에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막천풍이 사람들과 함께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병목, 배동삼, 공혜 등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세진이 찾아왔고, 상천이 절정의 경지에 올랐고, 그와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
그들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
스슥!
쒜에에엑!
상천이 눈에 띄게 무뎌진 장세진의 도를 여유롭게 피하며 검을 뿌렸다.
장세진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옷은 곳곳이 찢겨 나가 있었다.
그나마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었는데, 그 마저도 이후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정신적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까닭이었다.
장세진은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온전한 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백룡문을 찾아올 때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했는데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천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으니 정신적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장세진이 고함을 지르며 도를 휘둘렀다.
처음부터 기세 좋게 뿌려대던 멸사폭참은 이제는 그저 발악이 섞인 단순한 휘두름에 지나지 않았다.
상천이 펼쳐 내는 단월검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장세진 스스로가 무너진 꼴이었다.
까가가가강!
장세진의 도에서 더 이상 도기가 발현되지 않자 상천도 검기를 거두었다.
연이어 부딪치는 쇳소리가 백룡문에 울려 퍼졌고, 장세진은 그저 뒷걸음질 치며 상천의 검을 받아내기에 바빴다.
턱!
연신 뒷걸음질을 치던 장세진의 등이 곳곳이 무너진 담벼락에 닿았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
장세진의 얼굴이 더 이상 구겨질 수 없을 만큼 구겨져 있었다.
“네놈……. 네놈…….”
장세진이 상천을 노려보며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그런 그를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상천은 말없이 그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네 덕이다.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상천이 중얼거렸다.
듬성듬성 찢어진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였다.
“크크크크크!”
장세진이 해괴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 모습에 상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너에게 고마운 마음은 조금도 없다. 넌 나와 사부의 꿈을 무너뜨리려는 장애물에 불과하니까.”
“크크크크!”
장세진은 여전히 광소를 내뱉을 뿐이었다.
그 웃음과 지금의 몰골이 더해져 진짜 실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죽어라.”
상천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때 장세진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으아아!”
갑자기 장세진이 죽기 살기로 상천에게 달려들었다.
파박!
상천이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뒤로 뛰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상천의 검은 허공만 갈랐다.
달려들던 장세진이 그가 뒤로 신형을 물리자 담을 넘어 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악!
착지한 상천은 지체하지 않고 다시 땅을 박차며 도망치는 장세진의 뒤를 쫓았다.
담벼락을 뛰어넘는 상천의 얼굴에서 자비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반월도문 옹안지부는 하루를 긴장 속에 보내고 있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보에 언제든 싸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옹안 지부장 정진목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특히나 적들과의 싸움에서 반월도문이 대패를 한 이후에는 밤을 새우는 날이 허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틈날 때마다 일각 정도씩 눈을 붙여야만 버틸 수 있었다.
“지부장님!”
밖에서 들려온 다급한 목소리에 방금 눈을 감았던 정진목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피로가 많이 쌓여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냐!”
“밖으로 나와보십시오!”
수하의 목소리에 정진목은 한쪽에 놔두었던 자신의 도를 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옹안지부 정문 쪽에는 지부에 속한 무인들이 모두 나와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이것 좀 보십시오.”
밖으로 나온 정진목에게 수하 한 명이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
수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두 눈을 부릅뜬 누군가의 목과 서찰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정진목은 서둘러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張世進之頭(장세진지두).
“장세진의 목? 이걸 누가 두고 갔느냐?”
“모르겠습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 나와 보니 놓여 있었습니다.”
처음 발견한 것으로 보이는 무인 한 명이 바로 대답했다.
그에 놓여 있는 목을 바라보며 정진목이 중얼거렸다.
“정녕 장세진의 목이란 말인가?”
그의 목소리에는 표정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장세진의 목을 옹안지부 앞에 가져다 둔 후 상천은 터벅터벅 길을 걷고 있었다.
옷에는 장세진의 피가 튀어 군데군데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후우…….”
상천이 한숨을 쉬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문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강한 무공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원하던 바가 이루어졌으니 기분이 좋았다.
거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걸어가던 상천이 우뚝 멈춰 서더니 검을 든 손을 내려다보았다.
미세하게 떨림이 전해지고 있었다.
장세진의 목을 치던 순간의 느낌이 아직도 손에 생생했다.
살인이 처음은 아니다.
분명 전에도 적들과 싸운 적이 있지 않는가?
하지만 그때는 살인을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때 상대한 적들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나타난 가릉도 분명 그들을 인형이라 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기분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사람을 죽였다.
목을 치던 순간 보았던 장세진의 표정과 그의 목이 잘려 나갈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했다.
하지만 상천의 마음이 심란한 것은 살인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살인을 했음에도 크게 심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심란한 것이다.
살인은 분명 범죄다.
하지만 무림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용인된다.
자신도 어느새 무림인이 된 것일까?
무공을 익히기는 했지만 크게 자신이 무림인이라는 자각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장세진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너무나 쉽게 했고, 또한 너무나 쉽게 그를 죽였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이제 진짜 무림인이 된 것일까?
눈앞에 목이 떨어지던 순간 징그럽게 일그러지며 변하던 장세진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져 더욱 심란했다.
상천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