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07화 (107/141)

#107화.

“장 소저가 여기 있다고?”

“다른 문도들과 피신해 있소.”

“허! 그래서 저런 자들이 여기에 있었군. 하지만 저 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적은 더 강하다고. 게다가 자네는 저들에게 짐이 될 뿐이고.”

막천풍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자 상천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짐이 되긴 누가 짐이 된다고 그러시오?”

“당연한 것 아닌가? 저들이 적들과 싸울 때 자네가 있으면 방해가 된단 말일세.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막천풍의 말에 상천이 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왜 저들이 저를 지켜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허! 답답한 사람을 봤나. 당연히 수준이 낮으니까 그런 것 아닌가?”

답답한 마음을 가득 담아 말하는 막천풍을 상천은 재밌다는 듯 바라보았다.

“화룡.”

“예, 문주님.”

상천의 부름에 여권문도들의 붕대를 갈아주던 화룡이 대답과 함께 다가왔다.

“내가 두 사람에게 짐이 되겠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 사람이 적들과 싸울 때 내가 함께 있으면 짐이 되느냐고 묻는 것이오.”

상천의 대답에 화룡은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짐이 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화룡의 대답에 상천이 막천풍을 바라보았고, 막천풍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화룡을 쳐다보다가 상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주 좋은 수하들을 들였군. 손님 앞에서 문주님 체면 세워줄 줄도 알고.”

“하하하!”

막천풍의 말에 상천이 크게 웃었다.

그런 상천을 보며 막천풍은 손가락으로 귓가를 뱅뱅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

반월도문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하기는 했지만 합산도문 쪽의 피해도 제법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큰 피해가 아닐 수 있었지만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손실을 입은 상태였다.

그래도 반월도문 본산을 친다면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진격하려 했지만 곳곳에서 중소문파들의 거센 저항을 받아 일단은 멈춰 선 상태였다.

귀주성 태강(台江) 쪽에 진을 치고 자리를 잡은 합산도문 세력은 광서성에서 천중도문을 흔들었던 귀령대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은 손실을 귀령대로 보충하여 진격을 하고자 함이었다.

“이것들은 왜 이리 느려? 언제 도착하는 거야!”

장세진이 어둠이 내려앉아 피워놓은 모닥불 앞에 앉아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안 그래도 죽은 망혼대원들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데 합류하기로 한 귀령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짜증이 솟구친 것이다.

“진득하게 기다려라.”

가릉이 그런 장세진에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장세진의 얼굴에는 여전히 짜증이 한가득했다.

“아! 몰라! 저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어딜 가려고 그러느냐?”

가릉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장세진을 보며 물었다.

“귀령대 놈들보다 일찍 올 테니까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말한 장세진이 홀로 전열을 이탈했다.

“어디 가는지 안 봐도 뻔하지.”

가릉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장무진이 죽어가는 모닥불에 나뭇가지 몇 개를 던져 넣으며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지난번에 들으니 백룡문주의 실력이 많이 는 것 같던데.”

“별일은 없을 거다. 아무리 실력이 늘었다고는 하나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

가릉의 말에 장무진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장무진이 슬쩍 장세진이 사라진 쪽을 한번 바라보았다.

막천풍과 여권문도들의 상처가 거의 다 아물었을 무렵.

반월도문 옹안 지부장이 백룡문을 찾아왔다.

그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는지 얼굴이 많이 삭아 있었다.

“여권문의 용단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백룡문을 찾은 옹안 지부장은 막천풍을 보고 포권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아니오. 여권문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었소.”

막천풍도 마주 포권을 하며 말했다.

“크게 패했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상천의 직접적인 질문에 옹안 지부장은 힘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내 기운을 차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현재 은남도문에서 지원이 와 있다고 합니다. 대대적인 반격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승산은… 있는 겁니까?”

상천의 물음에 옹안 지부장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승산이 있다고 해서 싸우고 승산이 없다고 해서 싸우지 않을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옹안 지부장의 대답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큰 싸움이 있을 겁니다. 보중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옹안 지부장은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고 막천풍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남은 여권문도는 자신을 포함해 스무 명 남짓.

이 인원 가지고 무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여권문도들을 데리고 안에 들어가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소.”

그때 상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막천풍은 그가 비호, 화룡과 따로 긴밀히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햇볕 뜨겁다! 다들 들어와!”

막천풍의 말에 여권문도들이 하나둘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비호와 화룡이 상천의 곁으로 다가왔다.

둘 다 긴장한 표정이었다.

쾅!

정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장세진이었다.

“장여진 나와!”

그가 소리쳤다. 잔뜩 성난 표정을 하고 있는 그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아니, 갑자기 무슨…….”

“나오지 마시오!”

갑자기 밖에서 난 소리에 문을 열고 나오려던 막천풍은 상천의 고함에 얼른 다시 문을 닫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막천풍이 문을 닫고 안에 틀어박히며 중얼거렸다.

“장여진 어딨지?”

“여기 없다.”

상천이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장세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땐 무서워서 벌벌 떨던 놈이 제법 강단 있어졌군.”

장세진의 말에 상천은 굳게 입을 다문 채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뭐, 제법 성장은 한 모양이다만 그 정도 가지고 날 어쩔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버려라. 어차피 나중엔 죽을 목숨, 괜히 재촉하지 말고.”

장세진의 말에 상천이 비호를 바라보았다.

“미안한데 검 좀 바꿔줄 수 있겠소? 내 검은 너무 약해서.”

“여기 있습니다.”

상천과 검을 바꾼 비호가 화룡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자연스럽게 자신과 상천이 일대일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장세진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죽고 싶은 게로구나?”

“죽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상천의 대답에 장세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보아하니 진짜로 여기에 장여진은 없는 모양이군. 네놈 죽이고 저놈들 족쳐서 찾아내야겠다.”

장세진이 도를 쥐었다.

물러서 있는 비호와 화룡은 자신들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상천의 실력은 이미 눈으로 확인을 했다. 하지만 과연 저 괴물 같은 장세진을 상대로 상천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당장 자신들도 죽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건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상천이 장세진을 이 자리에서 쓰러뜨려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장세진은 신건이 죽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직접 신건과 싸웠던 인물.

그가 죽는다면 신건의 복수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과 같았다.

비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상천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장세진을 향해 말했다.

“장 소저는 내 여자다.”

진심일까, 아니면 단순히 장세진의 화를 돋우기 위함일까. 상천의 입에서 도발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뭐?”

장세진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그리고는 이를 바드득 갈더니 도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비호.]

[예.]

갑자기 들려온 상천의 전음에 비호가 서둘러 대답했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뒷문으로 빠져나가라고 전하시오. 건물과 함께 먼지가 되기 싫으면.]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도 함께 피하시오.]

[하지만…….]

자신들도 피하라는 상천의 전음에 비호는 그럴 수 없다고 하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자신들이 있으면 방해만 될 뿐이다.

[알겠습니다. 무사하십시오.]

[걱정 마시오.]

그 전음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상천에게서 전음이 오지 않았다.

상천과 나눈 대화를 화룡에게 간략히 전달한 비호는 그녀와 함께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왜 밖에 있다가 죽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나?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야.”

장세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상천은 아무런 말 없이 장세진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장세진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길게 말하지 말고 와라.”

상천이 계속해서 장세진을 도발했다.

그에 장세진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안 그래도 기분 더러운데 네놈한테 화풀이나 해야겠다. 네놈도 이 문파도 오늘 지도에서 지워주마.”

장세진이 진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시작부터 멸사폭참을 퍼부어댔다.

살벌한 도기(刀氣)가 마구 뿌려졌다.

남두강과 싸울 때에도 도기를 뿌려대지 않던 그다.

그런데 상천에게 도기라니.

상천을 인정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지금 장세진에게는 상대가 누구건 간에 분풀이를 할 곳이 필요할 뿐이었다.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발기발기 찢어놓을 것 같은 도기에 맞서 상천은 부드럽게 검을 휘둘렀다.

도기에 맞서는 검기(劍氣).

상천도 처음으로 검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검기가 실제로 구현되었고,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도기에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콰쾅!

후드드득!

도기와 검기가 충돌하며 사방으로 기운이 뻗어나갔고, 담벼락 곳곳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는 상천의 가슴도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쌓은 것인데.

종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결과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천은 이내 마음을 굳건히 다잡았다.

무너진 건물은 다시 세우면 될 일.

지금은 눈앞의 상대에 집중해야 했다.

쿠와앙!

장세진의 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기가 상천의 전신을 덮쳤다.

상천은 천유보를 극으로 펼치며 진기를 한껏 머금은 검을 흩뿌렸다.

꽈광!

또 한 번 도기와 검기가 허공에서 만나 폭발했다.

밀리지 않는다.

상천은 자신감이 붙었다.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녀갔던 옹안 지부장의 말이 떠올랐다.

“승산이 있다고 해서 싸우고 승산이 없다고 해서 싸우지 않을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말처럼 지금이 그랬다.

질 것 같고 죽을 것 같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상천은 이를 악물고 부딪쳤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상천의 검이 날카롭게 뻗어갔다.

검을 휘두르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의 발로.

군마성 삼대도법 중 하나라는 멸사폭참에 맞서 삼류 문파의 검공이 그 위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