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05화 (105/141)

#105화.

은남도문의 대전 안.

가백현이 태사의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풍신현이 서 있었다.

그리고 태사의 아래쪽에는 열두 명의 장로가 도열해 서 있었다.

발제는 가백현이 직접 했다.

“다들 들어서 알고 있을 테지만 혹시나 하여 다시 한 번 얘기하겠다. 반월도문과 천중도문이 위험하다. 그 말은 적들의 힘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다는 뜻이겠지.”

가백현의 말에 장로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있겠지만 지금은 일단 가백현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비상시국이다. 그래서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대들의 의견을 좀 듣고 싶군.”

가백현이 장로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가장 먼저 오장로인 위도량(魏道良)이 입을 열었다. 생긴 것은 글 읽는 학자처럼 생겼지만 굉장히 호전적인 인물이었다.

“제 생각에는 저희가 공세로 나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공세?”

“예. 저들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감도 하늘을 찌를 듯하여 언제든지 사도련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을 겁니다. 게다가 저들의 힘은 각각 반월도문과 천중도문으로 나뉘어 있으니 그 틈을 타 저희가 합산도문으로 향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위도량은 이번 일이 벌어지고 난 후부터 항상 자신들이 방어적 자세를 취하는 것에 불만이 있는 자였다. 상대가 공세로 나온다면 자신들도 공세로 나가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장로 중에는 위도량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꽤 되었다.

“음…….”

충분히 가능성 있는 그의 말에 가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풍신현을 바라보았다.

“안 됩니다.”

풍신현이 단호하게 불가함을 이야기했다. 그에 위도량의 한쪽 눈썹이 움찔했다.

“우리 은남도문에서 합산도문까지는 빨라야 이십 일 거리입니다. 하지만 적은 그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출발한다면 저들도 곧장 회군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기마대가 있지 않소?”

위도량의 말에 몇몇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월도문이나 천중도문에는 없는, 오직 은남도문에만 있는 것이 바로 기마대였다.

최강 무력 부대라 할 수 있는 철혈전마대(鐵血戰馬隊)는 은남도문의 자랑이었다.

은남도문의 문도라면 철혈전마대 대원 개개인이 지닌 무력은 반월도문의 삼대무력부대나 천중도문의 백살대와는 급이 다르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기동력도 우수하니 가히 최강이라 자랑할 만했다.

“안 됩니다.”

“왜 안 된단 말이오?”

하지만 이번에도 풍신현은 단호했다. 그에 위도량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문주인 가백현 앞에서 무례라 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가백현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의견을 듣고자 했으니 조금 목소리가 커지더라도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도록 어느 정도는 용인하는 것이 그의 성격이었다.

“단순히 저들이 회군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양쪽에서 공격을 가해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철혈전마대의 무공이 최강을 논하고 그 기동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양쪽에서 밀려드는 공격을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젠장!”

위도량이 꼬리를 내렸다.

풍신현의 말은 전부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철혈전마대가 양쪽에서 공격을 받아 궤멸이라도 하게 된다면 은남도문이 받는 정신적 타격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철혈전마대도 무너졌는데 우리가?’라는 생각이 다른 문도에게도 퍼져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적들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양쪽에서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고 회군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굳이 철혈전마대를 공격하지 않아도 합산도문에 남아 있는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더 위험하겠지요.”

쐐기였다.

그의 말에 장로 중 아무도 합산도문을 공격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럼 일단은 귀주성과 광서성에 침입해 들어온 적들을 몰아내는 것이 우선이겠습니다.”

수석장로 고현(古玄)이 입을 열었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아직까지 정정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고현의 말에 풍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일단은 반월도문과 천중도문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난 다음에 힘을 합쳐 합산도문을 치는 것이 수순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세 문파가 힘을 합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려운 듯합니다.”

풍신현의 말에 고현이 날이 선 질문을 했다.

“그럼 왜 지금까지는 그리하지 않으셨소?”

직접적인 그의 질문에 장로들마저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가백현과 풍신현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솔직히 말씀드립니까?”

“그럼 거짓을 말하려 하시었소?”

고현의 되물음에 풍신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가 얼굴을 굳혔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적들이 그리 나온다 하여도 반월도문과 천중도문의 힘이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얘기하지.”

가백현이 풍신현의 말을 자르고 나섰다. 그러자 모든 장로들의 시선이 가백현에게로 쏠렸다.

“반월도문과 천중도문이 적들과 싸워 그 힘이 쇠하길 바랐다. 그렇게 되면 우리 은남도문이 진정한 사도련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과 야욕.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현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온전히 두 번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적들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릇된 판단을 내린 제 불찰입니다.”

풍신현이 자신의 과오를 순순히 인정하고 나섰다.

그렇게 되니 장로들도 더 이상 그를 몰아세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고현은 입을 열었다.

“그대는 우리 은남도문의 군사요. 그대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이 문파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명심하겠습니다.”

풍신현이 고개를 숙였다.

“자, 그럼 어떻게 반월도문과 천중도문을 구해낼지 구체적인 방안을 한번 생각해 봐야겠군.”

가백현이 앞의 상황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주제를 꺼내 들었다.

지금의 이 안건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문파의 주력을 잃은 반월도문이 가장 위험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쪽으로 철혈전마대와 광풍대(狂風隊), 염왕대(炎王隊)를 보내시지요.”

고현이 가장 먼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위도량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반월도문보다는 문주가 쓰러진 천중도문이 더 시급하지 않겠습니까? 천중도문 쪽은 적들이 들이닥치면 큰 혼란에 빠질 상황일 텐데.”

“그렇다고는 하지만 천중도문에도 장로들이 멀쩡히 살아 있고, 백살대를 제외한 다른 전력도 거의 온전히 보전되어 있지 않은가?”

고현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 외에도 장로들이 저마다 반월도문이 더 위험하다, 천중도문이 더 위험하다를 놓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가만히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보고 있던 가백현이 중얼거렸다.

“의견을 한데 모으는 것도 쉽지가 않군.”

“토론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풍신현의 말에 가백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장로들은 두 시진이 넘도록 갑론을박을 계속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렵지 않은 결론을 낼 수 있는 의제였지만 도대체 왜 이런 식의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하고 있는지 가백현은 알 수가 없었다.

용케 두 시진 동안 그들이 하는 것이 지켜보고 있던 가백현이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는지 입을 열었다.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나?”

그의 낮은 한마디에 장로들이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공손하게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난 왜 이런 논쟁을 계속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은…….”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연 고현의 말을 가백현이 손을 들어 끊었다.

“내 제안을 들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들 하시게. 어떤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현이 장로들을 대표해서 대답했다.

“어차피 천중도문의 경우에는 문주가 없더라도 장로들이 있어. 그런데 도움 요청이 들어왔다고 해서 우리가 문파 운영에 관여를 하게 되면 저쪽 기분 나쁘겠지. 그러니 위급 상황에 병력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는 선에서 끝내는 게 낫겠어. 그리고 반월도문은… 직접적인 요청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지금 당장 병력이 모자라는 만큼 인원을 보내주는 게 맞겠지. 나머지는 나 문주가 알아서 할 테니. 가용 인원 중 삼 할을 반월도문에 파견한다.”

가백현이 깔끔하게 현 상황을 정리해서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장로들이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딱히 토를 달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장로들도 그렇게 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이견이 없는 걸로 생각하고 그리 처리하도록 하지. 군사는 반월도문에 파견할 부대를 선별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풍신현이 고개를 숙였다.

“수석장로.”

“예, 문주님.”

“그 인원을 데리고 수석장로와 일장로가 함께 갔으면 좋겠는데.”

가백현의 말에 고현과 일장로 조운겸(趙雲謙)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부대만 파견하면 저쪽에서 우리 병력을 수하처럼 부릴 수 있단 말이지.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고 말이야. 나 문주가 워낙 우리한테 좋지 않은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나? 그러니 파견한 병력은 반월도문과 대등한 입장이라는 걸 피력해야지. 수석장로와 일장로라면 거기 가서도 기죽지 않고 할 말은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고현이 조운겸을 바라보았다. 비록 지금 자리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는 배짱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서 우리가 위라는 걸 잘 보여주고 와. 고개 빳빳이 들고 어깨 펴고. 조금 시건방지게 보여도 좋아. 우린 은남도문이다.”

가백현의 말에 고현과 조운겸이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는 절도있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그 모습을 가백현이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확실하게 기죽이는 데에는 철혈전마대만큼 좋은 게 없겠지? 철혈전마대는 무조건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풍신현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여유가 묻어나는 표정으로 있던 가백현이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에 장로들도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그의 말을 기다렸다.

“여차하면 다 쓸어버릴 수 있게 준비들 하고. 감히 사도련을 집어삼키려고 하다니. 난 절대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다. 그렇게 알고 있도록.”

언제나 여유롭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며 농담을 즐기는, 어찌 보면 가벼운 모습을 많이 보이는 가백현이었지만 무서울 땐 지옥의 야차만큼이나 무서운 사람이 그라는 것을 장로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은남도문이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자신들이 그를 문주로 받들고 있는 것이다.

“예!”

장로들이 힘을 실어 우렁차게 대답했다.

가백현의 눈이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