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04화 (104/141)

#104화.

차창!

가릉이 자신의 도와 맞대어 있는 궁철형의 도를 힘차게 밀었다.

“역시 장로라 이건가? 제법 하는군.”

가릉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하지만 궁철형은 그러지 못했다.

양쪽 다 이렇다 할 상처를 입고 있지는 않았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봐서는 나름대로 호각을 이루고 있는 듯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가릉은 여유가 넘쳤고 궁철형은 그러지 못했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였다.

‘잘못 생각했다. 힘을 분산시키면 안 되는 거였어. 뭉쳐도 힘든 것을 나누다니.’

궁철형이 속으로 생각했다.

엄밀히 따지면 그의 전략은 최선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라면 적의 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전략을 사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또 그것을 탓하여 잘못을 물을 수도 없었다.

반월도문의 삼대무력부대가 모두 나섰다.

그런데 누가 패배를 생각하랴?

궁철형이 아닌 그 누구라도 승리를 장담했을 것이 분명했다.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가릉이 도를 내리며 물었다. 궁철형은 인상을 찌푸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도를 들어 공세를 취할 뿐이었다.

“이렇게 여유가 없어서야.”

가릉이 다시 도를 들었다. 그러자 궁철형이 곧바로 공격해 들어왔다.

까강! 까강! 까강!

가릉의 도와 궁철형의 도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궁철형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고, 가릉은 그것을 여유롭게 막아갔다.

“본 성에는 도를 쓰는 사람이 딱 세 명 있다. 그게 누군지는 알겠지?”

심지어 말까지 한다.

어지간해서는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궁철형도 지금만큼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도법을 익혔지.”

까가가강!

궁철형은 속이 뒤집어지기 직전이었다.

자신의 공격은 계속해서 막히고 있었고, 가릉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언뜻언뜻 주변이 보일 때면 쓰러져 가는 반월도문의 무인들만 눈에 들어왔다.

그런 상황에서 궁철형의 속을 더욱 긁어놓으려는 듯 가릉이 말을 이어갔다.

“하나는 멸사폭참이고 다른 하나는 마령절도식이지. 그리고 그 두 개의 도법이 방금 펼쳐졌다.”

가릉의 말에 궁철형이 우뚝 멈춰 섰다.

들어본 적이 있는 무공.

궁철형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가릉의 입에서 나온 멸사폭참과 마령절도식은 군마성의 무공이다.

군사 하신으로부터 적들이 군마성일지도 모른다는 언질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로 다가오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마성…….”

궁철형의 중얼거림에 가릉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알았나? 난 이미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물론 거짓이었다.

상대가 자신들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지금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군마성에는 삼대도법이 있었지. 그리고 현재 군마성에는 도를 사용하는 사람이 딱 세 명 있고. 멸사폭참은 망혼대주가, 마령절도식은 흑혈대주가 익혔고, 남은 무적패도(無敵覇刀)는 누가 익혔을까?”

그렇게 말하는 가릉의 기도가 거세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하던 가릉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기운이 궁철형의 전신을 옥죄어왔다.

“지금부터 보여주지. 같은 도법으로는 절대 깰 수 없다고 일컬어지던 군마성 삼대도법 중 하나를.”

그렇게 말하며 가릉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궁철형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점점 더 거대해지는 가릉의 기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궁철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문주님! 군사! 적은… 적은… 말도 안 되게 강하오!’

이윽고 가릉이 펼친 무적패도가 궁철형의 전신을 난자했다.

***

상천의 부름을 받고 백룡문으로 온 서기종과 낭호, 녹엽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농담… 하는 거지?”

녹엽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상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거봐. 거짓말이니까 아무런 말도 못하지. 그치? 맞아! 세상에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 있어? 게다가 장우량이라고? 하하하!”

그렇게 말하는 녹엽이었지만 상천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가릉은 무투대회에 참가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나마 친분을 쌓은 것은 합산도문에 모이면서부터였지만 무투대회에서 자주 만난 탓에 익숙했다.

아니, 익숙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친근했다고 해야 옳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백을 하고 죽었을 때 언젠가는 꼭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만큼 그의 죽음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가릉이 살아 있단다.

그것도 장우량의 행세를 하면서.

뭐가 어떻게 된 것일까?

“죽은 것은 장우량이고, 가릉이 장우량의 행세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릉의 무위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서기종이 상천의 말을 정리했다.

“그렇습니다.”

“불가능한 일.”

상천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정리하던 낭호가 말했다.

“가릉이 장우량의 행세를 하려면 말 그대로 장우량이 죽어야 하지. 장우량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가릉이 죽였을까? 가릉이 죽였다면 언제, 어떻게?”

낭호의 말에 서기종이 고개를 저었다.

“합산도문이 이렇게 된 것을 생각해 보면 안에 공모자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네. 그가 장우량을 죽이고 가릉을 빼내주었을지도 모르지.”

서기종의 말에 낭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불가능하지. 장우량이 다른 사람의 손에 먼저 죽었다면 시간적으로 오차가 생겨. 장우량이 먼저 죽었다는 걸 누가 알기라도 하면? 그리고 죽은 장우량을 어떻게 가릉이 갇혀 있는 감옥까지 옮길 거지?”

낭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추리일 뿐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가릉이 어떻게 장우량을 죽이고 그 행세를 했는지가 아니라 그가 적이라는 것이오.”

상천의 말에 서기종과 낭호가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었다.

“도대체 적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지금 난리가 아니야. 광서성에서는 종무헌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반월도문의 주력이 패퇴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뭐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녹엽의 말에 서기종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도련은 끝이라고 봐야 돼.”

“젠장. 무림맹은 뭐 하는 거야?”

서기종의 말에 녹엽이 무림맹을 욕했다. 상황이 심각함에도 수수방관하는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난 것이다.

“합산도문을 쥐도 새도 모르게 집어삼킬 정도로 용의주도한 놈들이라면 무림맹의 눈을 속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아마도 무림맹은 사도련 내의 일로 치부하고 있을 거야.”

서기종의 말에 녹엽이 ‘눈뜬장님이군’이라며 투덜거렸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지켜봐야 하니 답답하군.”

서기종이 중얼거렸다. 힘이 없으면 이렇게 멀뚱멀뚱 기다리다가 당하고 마는 것이다.

우당탕!

그때, 밖이 소란스러웠다.

네 사람은 서로를 한번 슬쩍 바라보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문주님!”

밖에 있던 비호와 화룡이 놀란 표정으로 정문과 상천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낯익은 사람이 피 칠을 한 채 사람들을 데리고 정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막 형!”

그는 다름 아닌 막천풍이었다.

막천풍뿐만 아니라 여권문도 스무 명 정도가 함께였다.

상천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날이 어두워지고 서기종과 녹엽, 낭호는 문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막천풍은 상천의 방에서 의식 불명 상태로 누워 있었고, 상천은 그의 수하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적의 급습이었습니까?”

“급습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 저희 문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상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필사적으로 저항을 했지만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워낙 강한 상대라 이 정도 인원도 겨우 몸을 빼냈습니다.”

“다른 문도들은…….”

상천의 물음에 여권문도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후……. 가서 쉬시오.”

상천의 말에 일어서서 고개를 숙인 여권문도가 밖으로 나갔다.

그가 밖으로 나가고 상천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막천풍을 바라보았다.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상천이 입을 열었다.

“막 형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어쩌다 이리되셨소?”

막천풍이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상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얼른 일어나시오. 그래야 적을 깨부수러 갈 것 아니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반월도문의 정예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진두지휘했던 장로 궁철형과 참호대주 담태수, 은갑대주 남두강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

천웅대주 마효찬은 오른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었다.

오른손으로 도를 다루는 무인으로서 오른손이 잘렸다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출진한 이백 명 중에서 살아 돌아온 인원은 서른 명 정도에 불과했다.

참담한 패배 속에 반월도문의 명운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종무헌은 의식 불명 상태였다.

숨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심장이 찔리는 것은 피했다고 하지만 워낙 상처가 깊었고, 도룡섬멸의 초식을 펼치지 못하고 멈추면서 들끓기 시작한 기혈이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무헌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천중도문은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또 한 번 적이 쳐들어온다면 더욱 큰 혼란이 생길 수 있었다.

장로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문주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굉장히 컸다.

고민을 거듭하던 정사청은 결국 은남도문에 도움을 청했다.

반월도문과 천중도문이 난리가 났음에도 은남도문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은남도문이 그러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한 가지는 지리적 요건 때문이었다.

합산도문이 있는 광동성은 은남도문이 있는 호남성과 반월도문이 있는 귀주성, 그리고 천중도문이 있는 광서성 모두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합산도문 쪽에서 바로 은남도문을 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자칫 세 문파의 합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합산도문 쪽에서 귀주성과 광서성의 중소 문파들을 먼저 정리한 것이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금 이 순간 반월도문과 천중도문이 고전하고 있는 것도 가용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중소 규모 문파들을 끌어다가 전투에 임한다 하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칼받이 용이기 때문에 논란이 생길 수도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고전하는 일은 없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비록 지금 당장은 형세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반월도문과 천중도문이라면 어느 정도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렇게 위기 극복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어느 정도 도움을 준다면 두 문파가 폭삭 주저앉는 것을 방지하면서 은남도문이 온전히 사도련 내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는 큰 착오였다.

적의 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황에서 내린 판단이었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은남도문마저도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 바로 반월도문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였다.

종무헌이 의식 불명이 되어 천중도문에서 도움 요청이 들어온 상태인데 거기에 반월도문의 대패 소식까지 들려오자 적의 힘에 대한 재정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가백현과 풍신현, 그리고 장로들은 긴급 회의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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