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02화 (102/141)

#102화.

꽈앙!

종무헌의 도에서 강력한 내력이 뿜어져 나왔다.

도법임에도 그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도룡십삼식의 초식들이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듯 끌어당겨 상대를 휘몰아쳤다.

스스스스스!

주변의 공기가 요동치며 나무들이 심하게 흔들렸고 나뭇잎이 비처럼 쏟아졌다.

“합!”

종무헌이 짧은 기합과 함께 도를 내리찍었다.

단조로운 공격.

하지만 그 속도와 위력은 상대로 하여금 섣불리 피하거나 막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상대는 재빨리 보법을 이용해 거리를 벌렸다.

당연한 행동이었지만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종무헌이 펼친 도룡강림(屠龍降臨)이라는 초식은 단조롭게 보인다 하여 피하며 간격을 좁히려 했다가는 더욱 낭패를 볼 수가 있었다.

도룡강림은 도룡십삼식 중 상대적으로 내력의 소모가 적은 초식이었다.

직접적으로 내력을 사용하기보다는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여 상대에게 압박을 가하는 성격이 강한 초식이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자칫 피하려 하거나 달려들어 도룡강림의 간격 안에 들어가게 되면 그에 휩쓸려 넝마가 될 수도 있었다.

상대는 그런 도룡강림의 초식을 보고 종무헌의 의도를 간파한 것이다.

상대가 뒤로 물러서자 종무헌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대가 교묘하게 자신의 공격들을 무위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가락 하는 모양이다만!’

그렇게 생각한 종무헌이 내력을 끌어올렸다.

종무헌은 이대로 계속해서 몰아치면 승부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상대는 기껏해야 대주나 단주 급일 뿐.

한 문파의 문주인 자신을 상대로 이 정도 버틴 것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쳐 줄 뿐이었다.

그때였다.

상대의 신들린 보법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종무헌은 눈이 어지러워졌다.

눈앞에 있는 상대는 빨랐다.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라 도저히 어떻게 움직일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리고 결국 종무헌은 상대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쒜에엑!

‘헛!’

쩡!

갑자기 왼쪽에서 검이 날아들었다.

종무헌은 헛바람을 들이켜며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냈다.

쒜에엑!

왼쪽에서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고 곧바로 오른쪽에서 다시 한 번 검이 날아들었다.

마치 종무헌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두 사람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어 공격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쩡!

이번에도 종무헌은 가까스로 검을 막아냈다.

말 그대로 감각적으로 움직여 막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눈이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를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빠르기는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공격이기는 했지만 상대의 공격은 말 그대로 모기가 맹수를 무는 것 같은 공격일 뿐이었다.

치명상을 입힐 정도의 공격이 아닌, 툭툭 건드리는 것 같은 가벼운 공격 일변도였다.

‘보이지 않는다면 사방을 점하면 될 일.’

종무헌은 보법과 도를 이용해 최대한 상대가 근접 거리로 들어오는 것을 견제하면서 서서히 내력을 끌어올렸다.

고오오오!

숲이 울기 시작했다.

마치 종무헌을 중심으로 주변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종무헌에게 백살대와 적의 싸움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의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이번 싸움의 향방을 가릴 중요한 기점이 될 터였다.

상대는 빠른 속도로 종무헌을 괴롭혔다.

하지만 여전히 위력적인 공격보다는 그저 종무헌이 온전히 움직이지 못하도록 견제하려는 의도가 강해 보였다.

상대의 입장에서도 종무헌을 제압해야 이 싸움뿐만 아니라 사도련을 집어삼키려는 이번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음이 분명함에도 제압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았다.

종무헌이 내력을 끌어올려 도룡십삼식의 마지막 초식인 도룡섬멸(屠龍殲滅)을 펼치려는 순간,

빠르게 움직이던 상대가 우뚝 멈춰 섰다.

‘뭐지?’

자신이 내력을 끌어올려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가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제대로 목표점을 포착하지 못하도록 더욱 움직여야 하는 것이 옳았다.

물론 종무헌이 준비하고 있는 도룡섬멸의 초식은 움직여도 움직이지 않아도 상관없는 범위의 공격 초식이기는 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쒜에엑!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종무헌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상대가 엄청난 속도로 쇄도해 들어왔다.

당황한 종무헌은 빠르게 도룡섬멸의 초식을 펼쳐 내려 했다.

하지만 허를 찌를 상대의 움직임이 더욱 빨랐다.

푸욱!

비호처럼 쇄도해 들어온 상대의 검이 종무헌의 왼쪽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크헉!”

종무헌이 비명과 함께 피를 토했다.

끌어올렸던 내력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몸 안에서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더욱 극심한 고통이 엄습했다.

여기저기서 병장기 소리와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와중에도 종무헌의 비명은 모두에게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문주님!”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잘 알려주듯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우광무가 종무헌의 신형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소리쳤다.

상대가 깊숙이 찔렀던 검을 뽑으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적들이 순식간에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백살대원들은 그들을 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무너진 종무헌을 보며 암담해할 뿐이다.

출진한 백살대 쉰 명.

살아남은 인원 스무 명.

거기에 종무헌까지.

여러 가지로 손해만 보게 된 싸움이었다.

결과적으로 종무헌은 목숨을 건졌다.

그의 생명을 살린 데에는 남들과 다른 신체적 특징이 큰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장이 왼쪽에 있는 데 반해 종무헌은 심장이 오른쪽에 있는 우심자였던 것이다.

그 덕분에 깊은 자상을 입고 위독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목숨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들끓고 있는 진기를 다스리는 일이었다.

밖으로 분출되지 못하고 길이 막혀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진기가 오히려 가슴에 난 상처보다 더욱 위험할 수 있었다.

그 진기를 다스리려면 종무헌이 의식을 찾아야 하는데, 천중도문으로 돌아온 후 이틀이 지나도 아직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일문의 문주가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심각한 상황.

이런 상태에서 적들이 들이닥치기라도 한다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었다.

정사청의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 시각.

반월도문의 정예들은 적과 대치 중이었다.

귀주성 삼도(三都) 부근의 넓은 평야에 서로 마주 보고 진을 친 두 세력은 섣불리 서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적들은 공격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고 언제든 격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보라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반면 반월도문은 적에 대한 정보가 워낙 부족하여 쉽게 공격할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산이 있거나 숲이 우거진 곳이 아닌 평야 지대였기 때문에 기습을 하기에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고, 오로지 정면 대결만 남아 있는데 적들도 가만히 있으니 먼저 공격을 하기엔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출진의 총괄을 맡은 사람은 삼장로인 궁철형(宮哲亨)이었다.

무위가 뛰어나기는 했지만 사실 삼장로에 오를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았고, 과묵한 성격에 병법에 능해 삼장로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인물이다.

만약 하신이 아니었다면 군사로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궁철형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뒷짐을 진 채 적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이 맑아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적진 내의 움직임을 대략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여유롭군. 저들은 두려움이 없어.’

속으로 중얼거린 궁철형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저들을 붙잡아둘 것인지 아니면 공격을 감행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장로님.”

은갑대주인 남두강(南頭慷)이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본산에서 보내온 서찰이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

“본산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남두강이 궁철형에게 서찰을 건넸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든 궁철형은 천천히 서찰을 펼쳐 보았다.

“음…….”

내용은 간단했다.

종무헌의 패퇴.

하지만 그 간단한 내용이 가져다주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저들의 무력은 상상 이상이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궁철형이 남두강에게 말했다.

“다른 대주들에게도 전하게. 준비하라고.”

“알겠습니다.”

궁철형의 명에 남두강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대답했다.

‘저들의 무위가 강하다면 수세로 나가서는 안 된다. 맞부딪쳐야지. 그래야 승산이 있어.’

그렇게 생각한 궁철형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백이 넘는 반월도문의 무사들이 기세를 세우며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반월도문이 가진 힘의 핵심이 모두 모여 있었다.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이다.

‘이길 수 있다.’

궁철형은 그들의 힘을 믿기로 했다.

“저놈들, 이제 움직이려나 보네. 기다리다 미치는 줄 알았어.”

장세진이 반월도문의 진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절대 선공은 하지 말라는 장우량의 말에 일단 진을 치고 기다리기는 했지만 저들이 공격을 하지 않아 좀이 쑤시던 차다.

“저들이 움직입니다!”

장세진이 신이 나서 뒤쪽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자 한쪽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가릉과 장무진이 다가왔다.

가릉은 다시 장우량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군.”

장무진이 짧게 말했다. 그리고는 대기하고 있는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무기를 들어라!”

그렇게 소리는 쳤지만 사실 따로 준비를 할 것은 없었다. 이미 그들은 싸울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푸드득!

전서응 한 마리가 날아왔다.

가릉에게 날아간 전서응은 그의 팔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가릉은 전서응의 다리에 묶인 서찰을 풀어 읽었다.

“오호!”

짧은 서찰을 읽은 가릉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귀령대가 예상 밖의 성과를 얻은 모양이다. 종무헌이 무너졌다는군.”

장세진의 물음에 가릉이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에 장세진과 장무진은 당연한 결과라는 듯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맘에는 안 들지만 귀령대주야 장로 급 아닙니까? 무슨 고집인지 장로 자리 준다는 걸 마다하고 귀령대에 눌러앉아서는…….”

장세진의 말에 가릉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위도 무위지만 머리가 좋지. 이번에도 그랬을 거야. 가백현이나 나군천이면 몰라도 종무헌 정도면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쉽게 제압할 수 있지.”

“여웁니다, 여우. 귀령대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장세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반월도문의 진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저놈들은 무슨 준비를 이렇게 오래 하는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