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98화 (98/141)

#098화.

종무헌은 오늘도 자신의 처소에서 경건하게 도를 손질하고 있었다.

지난번 장우량과 그 자식들을 잡기 위한 회동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도를 손질해 온 그다.

그리고 이번 일이 있은 후,

그의 기도는 손질하는 도만큼이나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감히… 근본도 모를 잡배들이 천중도문을, 사도련을 집어삼키려 한단 말인가!’

“후우…….”

종무헌은 치솟는 분노를 작은 한숨과 함께 눈을 감은 채 겨우겨우 다스렸다.

단순히 다스리고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살기로 승화시켜 갈무리하고 있었다.

갈무리해 둔 살기는 곧 폭발시키게 될 것이다.

그땐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상대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이만큼 분노하고 살기를 일으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문주님! 큰일입니다! 적입니다!”

밖에서 군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겨 있던 종무헌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며 안광이 폭발했다.

왔다.

살기를 폭발시킬 때가.

집무실로 향하며 군사의 보고를 듣는 종무헌의 표정은 시종일관 차가웠다.

제대로 듣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그의 시선은 정면만 응시하며 걷고 있었다.

“…그래서 예상에 따르면 이틀 후 본산에 당도합니다.”

“인원이 마흔 명 정도 된다고?”

“일단 드러난 인원이 그렇습니다.”

“그게 전부겠지. 더 늘어봤자 쉰 명. 그 인원으로 감히 천중도문의 본산을 노려? 지부도 아니고?”

종무헌의 노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백살대를 준비시켜.”

“알겠습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종무헌의 말에 천중도문의 군사인 정사청(鄭思淸)은 깜짝 놀랐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위험합니다!”

정사청의 말에 종무헌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위험하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종무헌의 살벌한 기세에 정사청이 말을 더듬었다.

정사청은 속으로 그동안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그런 말을 한 자신의 입을 탓하고 있었다.

“감히 지금 사도련의 일익이자 천중도문의 문주인 내가 위험하다 하는 건가? 고작 그놈들 때문에?”

“죄송합니다.”

정사청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당장 백살대 준비시켜.”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종무헌이 자신의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식경 후.

종무헌을 위시한 백살대가 천중도문을 나섰다.

출진하는 그들의 살기가 천중도문 전체에 진한 여운을 남겼다.

***

광동성에 적이 출현했다는 소식은 은남도문과 반월도문에도 전달되었다.

하지만 보고된 인원이 많지 않고 종무헌과 백살대가 출진했다는 연락에 지원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 충돌의 결과를 바탕으로 적의 수준을 좀 더 명확하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무헌과 백살대가 이기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혹여 패한다면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었다. 자신들의 예상보다 적이 훨씬 더 강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군천과 가백현은 부디 종무헌과 백살대가 적에게 패하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나군천은 자신의 집무실에 홀로 앉아 중얼거렸다.

마흔 명 정도 되는 인원이 본산을 노리고 진군 중이라 했다.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는가?

천중도문이 그저 그런 중소 규모 문파도 아니고 본산에 있는 무인의 숫자만 천 명 이상이다.

그런데 고작 마흔 명이 나타났다.

‘그 정도 인원으로도 자신있다는 뜻이거나 드러나지 않은 인원이 더 있거나.’

나군천이 내린 결론이었다.

마흔 명으로도 충분할 정도의 무위를 갖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은 인원이 분명 더 있을 것이다.

일단 마흔 명만 드러내고 다른 쪽에서 은밀히 공격을 감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아니면 종무헌이 직접 나설 것이라는 걸 예상한 건가? 종무헌을 잡기 위한 계책일 수도…….’

그렇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능했다.

종무헌을 잡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인원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의심을 정사청이 하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테고…….’

나군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렇게 끌려가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으로 바뀌었고, 곧 분통으로 바뀌었다.

“미쳐 버리겠군.”

나군천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때, 하신이 집무실로 찾아왔다.

“문주님.”

“무슨 일인가?”

나군천은 이렇게 하신이 자신의 집무실을 찾을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웠다. 혹여나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금 이상합니다.”

하신의 말투가 다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당장 반월도문이나 종무헌에게 무슨 사단이 벌어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 나군천이 말을 이었다.

“이상?”

“예. 천중도문이 어떤 곳인데 고작 마흔의 인원을 가지고 겁도 없이 진격을 한단 말입니까? 마흔 명 개개인이 절정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어렵습니다.”

“그렇겠지. 그 뒤는 내가 한번 얘기해 볼까?”

하신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비슷하다는 것을 안 나군천이 방금 전까지 생각했던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떤가?”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겠지. 크게 다르지 않을 게야. 하지만 정사청이 그런 생각도 못했을 것 같은가? 겉으로 보기에는 약해 보이고 소심해 보이지만 안에 능구렁이가 앉아 있는 사람이 정사청이야.”

나군천의 말에 하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뭔가 아직도 꺼림칙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 여차 하면 광동성으로 지원을 보낼 채비는 해두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은남도문 쪽에서는 별말 없는가?”

“없습니다.”

하신의 대답에 나군천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가 가백현 그놈의 머릿속은 알 수가 없군. 남들은 다 전전긍긍해도 그놈만은 항상 여유로운 것 같단 말이지.”

“그럴 만도 합니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전력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는 곳은 은남도문이 유일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여유도 있고 자신감도 있을 겁니다.”

쾅!

하신의 말에 나군천이 화가 난 듯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빌어먹을! 이건 무슨 반월도문과 천중도문이 은남도문 방패막이나 해주는 꼴이 되지 않았는가!”

실제로 상황이 그러하니 나군천이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갔다.

“저쪽 결과가 나오면 곧장 보고하도록. 혹시나 선 조치가 필요하면 그렇게 해도 된다.”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하신이 허리를 굽혔다.

***

상천과 비호, 화룡은 백룡문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서기종이 찾아와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상천을 비롯한 세 사람은 하릴없이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상천은 연무장 위에서 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봄이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데 상천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검법 수련을 하는 것도 아닌 그저 검을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보는 비호와 화룡은 왜 그러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안 추우십니까?”

“괜찮소.”

비호의 물음에 짧게 대꾸한 상천은 계속 연무장 위에 서 있을 뿐이다.

[확실히 달라졌어. 그치?]

[그러게. 정신적으로도 뭔가 범접하기가 어려워.]

비호와 화룡은 계속 상천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상천이 두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음에도 비호와 화룡은 마치 들킨 사람들처럼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심심하지 않소?”

상천의 말에 비호와 화룡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분명 상천이 하는 말은 자신들이 하는 말과 같은 언어인데 요즘 들어 종종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었다.

“뭐, 심심하긴 합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비호의 물음에 상천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검을 살짝 흔들며 물었다.

“비무 한번 하시겠소?”

“비무?”

상천의 돌발 제안에 비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가 열양신단을 복용하고 내력이 증진되기는 했지만 아직 자신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 해봐. 절정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아냐.]

그때 화룡의 전음이 비호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안 그래도 지난번에 상천이 절정에 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 한번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진검으로 합니까?”

“기왕이면 진검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강하게 나오는 상천을 보며 비호가 재미있겠다는 듯 미소와 함께 연무장 위로 올랐다.

“안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열양신단을 복용한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런 것 같아 보였소.”

상천에게서는 여유가 보였다. 예전에 비호의 계획된 도발로 비무를 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런 것을 당사자인 비호가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확실히 달라지긴 하신 모양이군요. 과거와는 다릅니다.”

“그때보다 긴장이 덜 되는 건 사실이오.”

여유로운 상천의 대꾸에 비호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그를 보며 상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도전하는 입장이니 먼저 가겠소.”

“그런!”

비호가 뭐라 대꾸도 하기 전에 상천은 이미 천유보를 밟고 있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진기는 상천이 펼쳐 내는 천유보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운용되고 있었다.

‘다르다!’

자신이 보았던 천유보와 달랐다.

느낌? 위력? 분위기?

정확이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달랐다.

비호가 검을 휘둘렀다.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공격.

살심을 담았다면 살초가 되어 목숨을 취할 수도 있을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스슥.

상천의 발이 좀 더 어지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매끄럽게.

미끄러지듯 바닥을 훑는 천유보의 위력은 비호의 공격을 가뿐히 흘려 버렸다.

스릉!

상천의 검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번뜩였다.

느리지만 절묘한 수.

검을 회수하여 막기 힘든 찰나의 순간을 제대로 포착한 한 수였다.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속도였지만 비호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신형을 뒤로 물렸다.

상천이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뒤로 물러선다 함은 기세를 빼앗았다는 뜻.

가져온 기세를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 자신이 지금의 상천에게는 충만했다.

뒤로 물러선 비호 역시 기세를 빼앗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물러섬이었지만 이어지는 상천의 공격들은 쉽게 반격할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한 순간에 절묘한 공간을 찔러들어 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고, 공세를 취하지 못하다 보니 기세를 되찾기가 어려웠다.

느리지만 묵직한 노도와 같이 몰아치는 상천의 공격은 비호의 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비호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인 것만 같았다.

처음 상천을 만났을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발밑에 있었다.

아니, 장세진의 일격에 나가떨어질 때에도 그는 자신의 발밑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동수를 넘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다.

단순이 열양신단의 효능 때문이 아니었다.

무학의 진일보.

내력과 함께 무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깨달음이라고 했다.

언제 어떤 깨달음이 찾아든 것일까.

상천의 공세를 어렵사리 막아내는 비호는 당황스러움을 넘어 허탈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런 감정은 두 사람의 비무를 지켜보고 있는 화룡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호와 자신의 무위를 비교해 보자면 쉽게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짧은 순간 상천이 보여준 무위는 자신들을 뛰어넘고 있었다.

비호의 공격을 흘린 후 보여준 단 한 수.

그것으로 이번 비무의 결과는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저 순간에 저 공간을 저렇게 찌를 수 있을까.

화룡에게는 그 한 수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언뜻 쉬워 보이는 일격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뻗어내는 속도와 위력, 그리고 그 일격을 뻗기 위한 순간 포착과 공간 포착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래, 백번 양보하여 비슷한 속도와 위력으로 검을 뻗을 수 있다고 하자.

상천이 검을 찌를 순간과 공간을 포착하는 것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도 찾기 힘들었다.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애초에 비호가 그런 공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화룡의 눈빛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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