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93화 (93/141)

#093화.

신기하게도 현기심법의 진기는 중단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직 그 양이 적기는 했지만 분명 명치 부근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현기심법의 진기였다.

그러다 보니 상천은 신기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처음에 현기심법을 익히기로 하고 서기종에게 구결을 배웠을 때 왜 고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중단전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진기를 느끼면 느낄수록 그 허무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중단전에 현기심법의 진기가 쌓이기 시작하자 상천에게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힘겹게나마 상체를 일으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규화공과 현기심법이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체내에서 공존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규화공의 진기가 하단전에서 웅크리고 거의 움직이지 않은 것이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중단전에 쌓이고 있는 현기심법에 있었다.

현기심법이 중단전에 쌓여 출발하는 지점 자체가 달라지다 보니 진기가 흐르는 경로도 서기종에게 들었던 것과는 달랐다.

중단전에 진기를 쌓고 그것이 흐르는 경로를 가만히 살펴본 상천은 규화공의 진기가 흐르는 경로와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겹치는 부분에서도 흐르는 진기의 양 자체가 둘 다 적다 보니 크게 충돌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규화공과 현기심법이 서로 다른 경로로 움직이며 상천의 내상을 치유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보다 좀 더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상천이 몸을 일으켜 앉을 수 있는 수준으로 회복되자 모두가 뛸 듯이 기뻐했다.

더디기는 했지만 점차 회복되는 게 눈에 보인다는 점에서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무렵 짓고 있던 접객실이 완성되었기에 기쁨은 배가되었다.

백룡문에는 그렇게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 상천은 가부좌를 틀기는 어려웠지만 본격적으로 운기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방 밖으로 나가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중단전에 자리 잡은 현기심법의 진기는 금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규화공을 수련할 때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현기심법의 진기가 늘어나다 보니 상천은 얼른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검을 휘둘러 보고 싶었고, 그 위력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거나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천유보.

마음껏 진기를 사용하여 천유보를 밟고 싶었다.

그러면서 바람을 느끼고 싶었고, 그렇게 되면 움직이지 못해 느끼는 이 답답함을 순식간에 떨쳐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서 빨리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상천은 더욱더 현기심법의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한겨울이 되었다.

정월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날이 되었지만 상천은 아직까지 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했다.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다리에 힘을 주면 조금 구부러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할 수는 없었다.

다른 것은 전부 다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다리만은 아직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상천은 밖에서 운기를 하고 있었다.

현기심법의 진기는 제법 많이 늘어 있었다.

상천의 상태를 확인한 서기종이 놀랄 정도였다.

“삼단공 정도의 내력이네. 엄청난 속도야.”

서기종의 말을 듣고 상천 자신도 놀랐으니 서기종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아직도 그때의 놀람과 질투심 섞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낮 시간이기는 했지만 날이 춥다 보니 모두 수련을 중단하고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인부들도 남은 나무 쪼가리로 불을 지펴 그 앞에 모여 언 발과 손을 녹이고 있었다.

그렇게 추운데 상천은 대청마루에 앉아 있었다.

공혜와 배동삼이 몇 번이고 들어가자고 했지만 상천은 고집을 부렸다.

진기의 양이 늘면서 추위를 좀 덜 타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흐읍!”

상천이 차가운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러자 일순간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한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자 재빨리 현기심법의 진기가 체내를 돌며 체온을 보호해 주었다.

그 느낌에 상천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백룡문의 심법이 아닌 다른 문파의 심법이 자신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정작 규화공의 진기는 여전히 하단전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나마 규화공의 진기가 흐르는 게 느껴질 정도는 되었지만 이제는 최대한 집중하여 느끼려고 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아…….”

상천이 한숨을 쉬었다.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왔다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다시 눈을 감고 운기에 들어갔다.

얼마 동안 운기를 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눈을 감기 전에는 낮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어두워져 있었다.

운기를 마친 상천은 한결 개운해진 기분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아무나 불러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이상한 느낌이 왔다.

움찔!

정확히 하단전 부근.

확인해 보지 않아도 하단전에 웅크리고 있는 규화공의 진기가 움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천은 서둘러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운기에 들어갔다.

“아직도 하나?”

아까 데리러 나왔다가 상천이 운기하는 것을 보고 다시 들어갔던 배동삼이 밖으로 나왔다.

“형?”

가만히 앉아 있는 상천을 배동삼이 가만히 불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가 없자 종종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상천은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다.

“뭐야? 아직도 하는 거야?”

추운데도 아직도 운기를 하고 있는 상천을 보며 배동삼이 깜짝 놀랐다.

“저러다가 도인이 되든 얼음이 되든 둘 중 하나는 되겠네. 있다가 다시 나와야겠다. 으〜 춥다!”

상천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배동삼이 서둘러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만약 배동삼이 상천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추워서인지 눈을 감고 있는 것만 확인한 채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상천은 현재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현기심법의 진기가 하단전이 아닌 중단전에 자리를 잡았고, 규화공의 진기와 흐르는 경로가 거의 겹치지 않아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내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던 규화공의 진기가 봇물 터지듯 하단전에서 흘러나와 현기심법의 진기를 마구잡이로 공격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상천은 어떻게 해서든 규화공의 진기를 안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진기는 더욱 날뛰기만 할 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던 현기심법의 진기가 규화공의 진기에 맞서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규화공의 진기를 다스리기도 버거운데 현기심법의 진기까지 날뛰기 시작하니 상천은 점점 버티기가 어려웠다.

둘 중 하나라도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큭!”

상천이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운기를 하는 중에 입을 열게 되면 탁기가 스며들고 집중력이 흐트러져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신음을 내뱉을 정도면 그가 느끼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두 진기가 온몸의 혈도와 혈을 헤집으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마치 터줏대감인 규화공의 진기와 새롭게 등장한 현기심법이 세력 다툼을 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두 진기가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통에 거의 다 나았던 내상이 다시 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천의 안색은 점점 창백해져 갔고, 느껴지는 추위와 지독한 통증에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바로 등 뒤 방 안에 사람들이 있음에도 부를 수가 없었다.

상천은 최대한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위해 이를 악물었지만 통증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져만 가고 있었다.

‘욱!’

다시 도진 내상 때문에 식도를 타고 피가 역류했다.

밖으로 뿜지 않으려고 최대한 참았지만 입가를 타고 흐르는 것까지는 막아내지 못했다.

‘차라리 날 죽여라!’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로 지금 상천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통증은 엄청났다.

점점 상천의 정신은 아득해져 가고 있었다.

날이 추우면 땀도 잘 나지 않고 이상하게 생리 현상이 자주 찾아오게 마련이다.

끼익!

방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사람은 비호였다.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그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상천을 보고 그에게 다가갔다.

“문주님, 추우시면 말씀을 하시지 왜……?”

상천에게 가까이 다가간 비호는 살짝 벌어져 있는 그의 입가를 따라 흘러내린 핏자국과 창백한 안색을 보고 무언가 사달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가씨! 큰일 났습니다!”

비호가 서둘러 안에 소리치고는 상천의 상태를 자세히 확인했다.

핏기 없이 새하얀 상천의 얼굴과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을 봤을 때 이 상태가 지속된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문주님, 들리십니까? 들리실 것이라 믿습니다! 절대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꽉 붙잡고 계셔야 합니다!”

비호의 외침은 상천에게 닿지 않았다.

이미 소리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의식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호의 다급한 목소리에 서기종과 녹엽, 낭호, 장여진 등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죠?”

“운기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신 듯합니다. 자칫 주화입마까지도…….”

비호의 말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못해도 한 식경 이상은 된 듯합니다. 상태도 심각한 것 같고. 의식을 붙잡고 계셔야 할 텐데…….”

비호의 말에 가장 놀란 사람은 배동삼이었다.

한 식경쯤 전에 상천을 데리러 밖에 나왔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상천의 상태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기에 얼핏 봐서는 운기를 하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배동삼은 자세히 보지 않고 슬쩍 보고 운기를 하고 있다 생각한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며 엄청난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손쓸 방법이 없나요?”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규화공과 현기심법이 체내에서 충돌을 일으킨 것 같은데 어느 하나라면 모를까 두 개의 기운을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비호의 말에 장여진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열양신단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심한 경우 사망입니다.”

비호의 말에 여소정이 장여진을 바라보았다. 열양신단을 복용한다 하여도 좋은 결과가 나타날지 모를 상황이기에 쉽게 결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열양신단이 무엇이오?”

서기종으로서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 상천이 장여진에게 그것을 받을 때 그 자리에는 여소정과 장여진, 상천만 있었고 받은 후에도 상천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산도문에서 도망쳐 올 때 신건 할아버지께서 챙겨주신 거예요. 영약이죠.”

“그럼 복용시켜야겠소.”

서기종의 말에 좌중이 그를 바라보았다.

“현기심법도 그렇고 내가 알기로 규화공 역시 그 성질 자체가 폭발적이거나 거칠지 않소. 지금은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는 있지만 영약의 기운이 들어간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 오히려 영약의 기운이 두 기운의 충돌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르오.”

서기종의 말에 비호가 장여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하지만 전 이미 그것을 일전에 문주님께 드렸어요. 어디에 있는지는 문주님만 알아요.”

또 하나의 난관이었다. 하지만 서기종은 지체하지 않았다.

“다들 방을 전부 뒤져 봐!”

서기종의 말에 모두가 상천이 기거하는 방으로 들어가 열양신단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배동삼이 작은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이거 맞습니까?”

“맞아요!”

장여진의 말에 배동삼에게서 상자를 빼앗듯 가져간 서기종이 얼른 그 안에서 열양신단을 꺼내 비호에게 건넸다.

서기종에게 열양신단을 건네받은 비호는 그것을 손으로 살짝 눌러 납작하게 한 다음, 조금 벌어져 있는 입을 통해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크게 벌어져 있는 것이 아닌데다가 일촉즉발의 상황이라 열양신단을 입에 넣는 것 자체가 어려웠지만 비호는 땀까지 흘려가며 결국 신단을 모두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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