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89화 (89/141)

#089화.

상천이 백룡문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을 무렵.

사도련 회동을 위해 장우량과 장무진, 장세진이 합산도문을 떠났다. 그 세 사람 외에도 세 명의 호위가 따라붙었다.

그들이 합산도문을 출발하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장우량이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전 다른 곳 좀 들렀다 가도 되겠습니까? 사고 안 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딜 가려고?”

“아, 좀 들를 곳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괜찮겠죠? 어차피 회동에만 안 늦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장세진의 말에 장우량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곁에서 말을 몰던 장무진이 입을 열었다.

“장여진한테 가려는 건가?”

“허! 이젠 사람 마음속도 들여다보네?”

들켰음에도 장세진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번에 알아맞힌 장무진을 대단하다며 치켜세우고 있었다.

“안 돼.”

장우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장세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 안 됩니까?”

“사고 칠 게 뻔한데 어찌 허락할 수 있을까.”

그러자 장세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절대! 맹세코! 사고 안 칩니다. 그냥 얼굴만 좀 보고 오려고 그럽니다. 예?”

“…….”

장세진의 말에 장우량은 절대 안 믿는다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이를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인 장세진이 돌연 방향을 바꾸더니 일행과는 다른 길로 말을 몰았다.

“하하하!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장세진이 따라붙으려던 호위까지 떨쳐 낸 채 순식간에 멀어졌다.

“데려올까요?”

“놔둬. 머리가 있는 놈이면 큰 사고는 안 치겠지. 가자.”

“예.”

이미 사라져 버린 장세진을 뒤로하고 장우량은 나머지 일행과 함께 회합 장소로 부지런히 말을 몰았다.

백룡문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은남도문에 다녀와서 표정이 어둡던 장여진도 서서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고, 상천에게 심각한 이야기를 들었던 병목과 배동삼, 공혜도 큰 동요 없이 평소처럼 지내고 있었다.

사도련의 정기 회동이 약 이십 일 정도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백룡문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처음 보는 낯선 사내.

하지만 그의 등장에 동요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장여진 일행이었다.

화룡과 비호는 검을 뽑아 들고 사내의 앞을 막아섰고, 여소정은 도를 든 채 장여진의 앞에서 그녀를 보호하고 나섰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촉즉발의 상황에 백룡문의 문도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동삼아!”

“응?”

“다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형, 일하시는 분들한테 절대로 이쪽으로 오지 마시라고 하고.”

“알았어!”

상천의 말에 배동삼과 병목이 서둘러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문 근처에는 장여진 일행과 상천, 서기종, 녹엽, 낭호만 남아 있었다.

살벌한 분위기였지만 백룡문을 방문한 사내 장세진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오로지 여소정의 등 뒤에 있는 장여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오라버니를 만났는데 검부터 겨누는 게냐? 매정하구나.”

장세진의 말에 여소정이 사나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네놈이 뇌격대주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여소정의 험한 말에도 장세진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네놈들이었군. 저년을 빼돌린 게.”

장세진이 화룡과 비호를 보며 본색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두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멈춰라!”

비호가 장세진을 향해 더욱 검을 바짝 겨누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엄포에 동요할 장세진이 아니었다.

파박!

화룡과 비호가 동시에 지면을 박차며 장세진에게 검을 휘둘렀다.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

하지만 장세진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장세진은 분명 똑바로 앞을 향해 걸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를 향해 화룡과 비호는 정확하게 검을 찔렀다.

그런데 장세진은 멀쩡했다.

마치 두 사람이 일부러 그를 피해 검을 휘두른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사람의 공격을 장세진이 그냥 통과한 것 같았다.

마치 장세진이 유령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공격에 실패한 화룡과 비호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황해하는 화룡과 비호에게 장세진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한가락 하긴 하는 모양이다만, 주제도 모르고 까불다가는 먼저 간 신건 그 노인네를 만나게 될 거다. 그러니 얌전히 있는 게 좋아.”

하지만 장세진의 말을 듣지도 않고 화룡과 비호가 다시 검을 찔렀다.

멈춰 서 있던 장세진은 자신의 충고를 듣지 않는 두 사람에게 짜증이 난다는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검을 향해 몸을 돌렸다.

튕! 튕!

장세진이 자신을 향해 찔러 들어 오는 검을 향해 양손 검지를 가볍게 튕겼다.

가벼운 손짓일 뿐인데 화룡과 비호는 실 끊어진 연처럼 허공을 날아 바닥에 처박혔다.

“크흑!”

심지어 비호의 손바닥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자신보다 강한 비호와 화룡을 장난감 다루듯 하는 장세진을 보며 장여진의 앞을 막아선 여소정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장세진은 여소정의 도가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년도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으니 도를 내리면 그냥 넘어가겠다. 그리고 난 얼굴 한 번 보러왔을 뿐인데 네놈들이 먼저 공격한 것이니 날 탓하지는 말고.”

장세진의 말에도 여소정은 도를 내리지 않았고, 화룡과 비호는 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보며 상천은 몸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압도적인 강함.

일전에 합산도문에서 연비산의 무공 시연을 보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단순 비교를 해보면 연비산도 장세진에게는 안 될 것 같았다.

“음?”

그때, 장세진의 시선이 서기종에게 닿았다.

상천의 뒤에 서 있는 서기종을 장세진은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재밌는 놈이군. 하하하!”

뜻 모를 말을 하고는 한바탕 크게 웃은 장세진이 다시 서기종에게 말했다.

“네놈은 나중에 또 보자. 하하하!”

장세진의 말에 서기종은 무슨 의미인지 몰라 잔뜩 인상만 찌푸렸다.

그런 서기종을 보며 피식 웃은 장세진이 장여진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에 여소정이 장여진을 뒤쪽으로 밀어내며 한 걸음 물러섰다.

팟!

“더 이상 다가가지 마시오.”

장세진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상천의 검이 그의 목 언저리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상천의 표정은 차가웠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목소리도 떨렸고 팔도 떨렸으며 장세진의 목에 닿은 검도 떨리고 있었다.

지금 상천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두려움이었지만 그것을 뚫고 나온 한줄기 용기가 그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 상천을 보며 장세진이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쥐어짜 낸 용기로군. 네놈의 그 무딘 검으로는 날 어쩌지 못한다. 그러니 괜한 객기 부리다가 비명횡사하지 말고 물러서라.”

장세진이 상천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상천은 검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사납게 그를 쏘아볼 뿐이었다.

그런 상천의 시선을 무시하고 장세진이 한 걸음 더 움직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천의 검은 그의 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아…….”

그에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깊은 한숨을 쉰 장세진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상천을 향해 손을 한 번 휘둘렀다.

닿지 않았다.

하지만 맞았다.

맞지 않는 말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맞은 상천은 피를 토하며 이 장 정도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크학!”

허공에 피를 뿜어낸 상천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다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엎어져 있다가 앉는 것까지가 한계였고, 그렇게 앉은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상천!”

깜짝 놀란 장여진이 그에게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두 걸음 정도 다가갔던 그녀가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장세진을 노려보았다.

잠시 그렇게 서 있던 장여진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이를 악문 채 서둘러 상천에게 다가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은 장세진은 몸을 돌려 그대로 백룡문을 벗어났다.

상천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피는 장여진의 머릿속에는 방금 전 장세진이 보낸 전음이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짧은 행복을 마음껏 즐겨두어라. 어차피 네년은 내 품에서 기쁨과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을 지르다가 죽게 될 테니. 그러니 몸 간수 잘하고 있거라. 그날이 기다려지는구나.]

화룡과 비호의 상처는 크지 않았다.

약간의 내상과 손바닥에 외상을 입기는 했지만, 며칠 치료만 잘하면 멀쩡해질 가벼운 상처였다.

하지만 문제는 상천이었다.

내상을 심하게 입고 정신을 잃은 상천은 호흡도 불규칙하고 기의 흐름 역시 원활하지 않았다.

창백한 안색으로 누워 있는 상천을 본 공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고, 장여진과 여소정은 그 옆에서 미안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흘의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상천은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안색은 창백했으며 진기의 흐름도 미약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약하게나마 이어지고 있는 규화공의 진기가 끊임없이 흐르며 상천의 내상을 보듬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양이 너무 미약해 상천의 내상을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승의 무공이 아닌 규화공의 효능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의원이 다녀갔지만 작은 마을의 의원이 손쓸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장여진 일행과 나머지 백룡문도들은 그저 상천이 얼른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천은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

사도련의 정기 회동 당일이 되었다.

회동 장소는 은남도문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형산(衡山)이었다.

그곳에 가백현과 나군천, 그리고 종무헌이 먼저 도착해 장우량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백현은 자신의 직속 수호대인 광풍무영대(狂風無影隊)의 일부를 데려왔고, 나군천 역시 제왕무적대의 일부를 데려왔다.

종무헌은 천중도문 최고 무력 부대라 할 수 있는 백살대(百殺隊)의 반절을 데리고 왔다.

회동 장소에는 두세 명 정도만 대동했고, 나머지는 주변 곳곳에 은신하도록 명해놓은 상태였다.

장우량과 장무진, 그리고 장세진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이 많은 숫자를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장우량 일행을 맞을 준비는 모두 끝났다.

세 사람은 살짝 긴장한 채 어서 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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