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84화 (84/141)

#084화.

“가능하단 말입니까?”

비호의 물음에 여소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합산도문을 생각해 봐.”

곁에 있던 화룡이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러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비호가 손뼉을 쳤다.

“아!”

“바보.”

화룡의 핀잔에 비호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모르는 상천은 그저 여소정과 화룡, 비호만 번갈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가 설명할게요. 합산도문에는 두 개의 심법이 있어요. 하나는 기본공인 공심법(空心法)이에요. 토납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무공의 위력을 높여주는 데에는 큰 효과가 없어요. 어찌 보면 무공을 익히기 위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심법이죠.”

여소정의 말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익힌 규화공이 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심법은 도룡신공(挑龍神功)이에요. 신공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상승의 무공을 익히기 위한 심법이에요. 맹호도법이면 모르지만 합산도문의 독문 무공인 십이잔혼도를 펼치기에는 공심법으로는 무리가 있으니까요.”

“그럼 두 개의 심법을 모두 익힌다는 말이오?”

“맞아요. 뇌격대와 질풍대의 무인들 같은 경우에는 공심법과 맹호도법을 대성하고 도룡신공과 십이잔혼도를 익힌 무인들이죠.”

여소정의 말에 상천의 눈이 빛났다.

두 개의 심법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무엇이오?”

“공심법과 도룡신공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공심법은 철저하게 도룡신공의 기반이 되는 심법이에요. 물론 도룡신공만 익힐 수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찾아낸 방법이죠.”

“그렇다는 말은…….”

“그래요. 다른 심법을 익히고자 한다면 문주님께서 익힌 규화공보다 훨씬 더 뛰어난 심법을 익혀야 한다는 뜻이에요.”

“꼭 그래야만 하오?”

상천의 물음에 여소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비호가 말했던 것처럼 두 개의 심법을 익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하지만 월등히 위력에서 차이가 나는 두 개의 심법을 익히게 되면…….”

“월등히 강한 심법이 약한 심법을 다스리게 된다?”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거예요.”

“여 소저도 두 가지를 모두 익혔소?”

“그래요. 물론 도룡신공의 성취가 높지는 않지만요.”

여소정의 말에 상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규화공과 현기심법을 비교해 보자면 현기심법이 좀 더 뛰어나기는 하지만 월등히 차이가 난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도룡신공과 같은 상승의 무공을 구해 익히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상천의 궁극적인 목적은 규화공과 다른 심법을 융합해 규화공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었다.

상승의 심법을 구해 익힐 수 있다 하여도 그것은 자신의 목적과는 멀어지는 것이었다.

“하아…….”

상천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비호가 입을 열었다.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또 다른 심법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한 계기와 익히고자 하는 진짜 목적을.”

비호의 물음에 상천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난 단월검을 보완해 왔소. 처음 사부에게 배웠던 단월검은 말 그대로 가시만 남은 생선 같았소. 무투대회를 보면서 단월검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고, 그 때문에 보완을 해왔던 것이오.”

“그럼 계기는 한 가지군요. 규화공이 보완한 단월검을 따라가지 못했나요?”

여소정의 물음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한계가 느껴졌을 때 든 생각이 그것이었소. 다른 심법을 하나 더 익혀 규화공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발전시키기 위함이었소.”

상천의 말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속으로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무공 자체를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상천이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의 나이가 이제 고작 약관을 갓 넘기지 않았는가.

“여 소저의 말처럼 상승의 심법을 구해서 익힌다 칩시다. 그럼 그것은 내 목적과는 거리가 먼 일이오. 규화공은 철저히 기반을 닦아주는 무공이 되고, 결국 주된 심법은 그 상승의 심법이 될 것이니 말이오. 난 더 위력 있는 규화공을 만들고 싶소.”

상천의 말에 사람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무공의 위력을 높이는 한 가지 방법은 이미 여소정이 제시했다. 상승의 심법을 구해서 익힐 수 있고 없고를 떠나 그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규화공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닌 상승의 심법이 주가 되는 방법이다.

“도움이 못 되어서 미안하네요.”

“아니오. 괜찮소.”

여소정의 말에 상천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뚜렷한 방법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답답함은 조금 가신 듯했다.

그것만으로 일단은 만족하는 상천이었다.

상천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가 하고 있는 고민은 현기심법을 익힐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것을 고민하는 이유는 비슷한 수준의 심법 두 개를 익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 위험 부담을 감수할 수 있다면 익히는 것이고 감수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상천의 고민이 깊어져 갈 무렵.

여소정이 상천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밤에 수련을 하는군요.”

“시간이 이때밖에는 나질 않으니까.”

상천의 대답에 여소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답이 안 나왔나요?”

“답은 나왔소. 망설이고 있을 뿐이지.”

상천의 대답에 여소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순히 두 개의 심법을 익히고 합친다 해서 심법이 발전하는 건 아니에요. 검법, 도법 등과 달리 심법은 깨달음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죠.”

그녀의 말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규화공을 발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얻은 깨달음을 녹여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모르는 게 아니오.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도 하고. 하지만 난 급하오.”

“급할 게 뭐가 있나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그녀의 말에 상천이 고개를 저었다.

“혹여 내가 나이라도 많고 다른 문도들이 어리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소. 하지만 터울도 얼마 나지 않는데다가 앞으로 큰 싸움이 번질 수도 있다지 않소? 지금 이 상태로는 문도들을 제대로 지킬 수 없소. 내 한 몸도 어떨지 모르고.”

상천의 말에 여소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상천에게 문주님이라는 호칭만 했지 무인 대 무인으로서만 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상천은 한 명의 무인이 아닌, 적긴 하지만 문도를 이끄는 문주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역시 문주님이네요.”

“아가씨.”

그때 장여진이 나오며 말했다. 처음부터 다 듣고 있었는지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규화공을 지금 당장, 아니, 짧은 시간 안에 발전시킬 방법을 제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문도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드릴 수는 있어요.”

장여진의 말에 상천이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발전시킨 단월검을 규화공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던가요? 그건 단순히 내력의 양이 모자라기 때문일 수도 있고 깨달음이 부족할 수도 있어요. 맞지?”

“네.”

장여진의 물음에 여소정이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깨달음은 본인이 얻어야만 가능한 것이지만 내력의 양을 늘릴 수는 있어요.”

“아가씨, 설마…….”

장여진의 말에 여소정이 살짝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어차피 우린 이제 백룡문의 사람이야. 가져와.”

“아, 알겠습니다.”

여소정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소.”

“영물이니 영약이니 하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들어본 적 있소.”

상천의 말에 장여진이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영물의 몸에는 영단이라는 게 존재해요. 영물이 수백, 수천 년 동안 살아오면서 체내에 쌓인 특유의 기운이 작은 돌멩이처럼 뭉쳐 있는 거예요. 그리고 영약은…….”

장여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소정이 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한 알만 먹어도 내상을 치유하고 내력을 증진시키는 희대의 환단이죠. 바로 이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장여진이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환약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상자를 열자마자 향긋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건 합산도문에만 있는 열양신단(熱陽神丹)이라고 해요.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따졌을 때 소림의 대환단이나 무당의 자소단보다는 떨어지지만 충분히 그에 버금가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이걸 나에게 주겠다는 것이오?”

“그래요.”

장여진의 말에 상천은 냉큼 받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 충동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말했다.

“받아야 할 이유, 없소.”

상천의 대답에 장여진이 미소를 지었다.

과거 상천을 청운대에 데려가기 위해 나누었던 대화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군요.”

“무슨 뜻이오?”

장여진을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의 상황을 연관 짓지 못한 상천이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에게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직도 생생하네요. 당신에게 청운대에 들어오라고 권했던 그때가요.”

그녀의 말에 상천이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잊고 싶은 기억이기도 했고, 어찌 보면 그때의 일 때문에 지금이 있을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도 했다.

“이유는 충분해요. 이제 전 백룡문도이니 문파가 잘될 수 있는 일을 하는 건 문도로서 당연한 일이잖아요? 문파가 잘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에 문주님이 잘되는 것도 포함된다면 이 열양신단을 드리는 건 문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하하!”

장여진의 말에 상천이 크게 웃었다.

그때도 지금도 장여진의 말솜씨는 일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했는데 장 소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소.”

“그런가요?”

상천의 칭찬에 장여진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좋소. 받긴 하겠소. 언제 복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며 상천이 장여진으로부터 열양신단이 든 상자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여소정이 입을 열었다.

“혹여나 복용하실 때에는 저나 비호, 화룡이 있을 때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규화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여 열양신단의 기운을 규화공이 감당하지 못한다면 큰 화를 당하실 수도 있습니다.”

여소정의 말에 상천이 무슨 말이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나름 여러 가지 경험도 하고 배워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은 상천이었다.

“한 알의 영약을 복용한다고 해서 그냥 내력이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약은 그 자체로 거대한 기 덩어리라고 봐도 무방하지요. 규화공의 기운과 열양신단의 기운은 전혀 다른 기운입니다. 서로 다른 두 기운이 체내에서 만나면 충돌을 일으키게 마련이니 상대적으로 내력이 약한 무인들은 영약을 복용한 후에는 고수들의 도움을 받아 안정화를 시킵니다.”

여소정의 설명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복용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영약 복용도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럼 뭐가 또 있소?”

상천이 놀라 물었다.

“물론입니다. 서로 다른 두 기운이 체내에 공존하게 되면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여도 결국에 가서는 해가 되게 마련이지요. 꾸준한 운기를 통해 영약의 기운을 규화공의 기운에 전부 녹여내야만 합니다. 그냥 체내에 돌아다니는 영약의 기운은 무공을 펼칠 때에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

여소정의 말에 상천이 한숨을 쉬었다.

하나를 알게 되고 둘을 알게 되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열 가지 모르는 것이 또 나타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알겠소. 그리하리다.”

상천의 대답에 여소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늦었네요. 먼저 들어가야겠어요.”

“그렇게 하시오.”

상천의 말에 장여진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상천의 손에는 그녀가 건넨 열양신단이 계속해서 향긋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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