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82화 (82/141)

#082화.

대다수의 지부장들이 이번 인선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의 인사에도 지부장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지금까지 군사의 역할을 해오던 갈위는 좀 쉬고 싶다며 낙향을 했소. 본인이 끝까지 만류를 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그가 떠나면서 추천을 한 이가 바로 여기 있는 신임 군사인 초운학이오.”

장우량의 말이 끝나고 초운학이 그에 덧붙여 말을 이었다.

“전임 군사이신 갈위 선배님은 저 어렸을 적 스승님과 동문수학을 하신 분입니다. 어렸을 때 자주 뵈었기 때문에 부족한 저를 추천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초운학의 말을 간단히 줄이자면 결국은 연줄에 의한 인사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그를 탐탁지 않아 하는 지부장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그때, 남녕지부장인 탁일경이 입을 열었다.

“문주님께서 먼저 우리 지부장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짚고 넘어가자 하시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군사께서는 저를 포함한 많은 지부장들에게 공언하신 것이 있으시지요?”

“예, 그렇습니다.”

탁일경의 물음에 초운학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럼 보여주시오, 합산도문이 정점에 설 수 있는 비책을.”

탁일경의 말에 다른 지부장들도 말없이 초운학만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기대 반 의구심 반의 시선을 느끼며 초운학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물려주시겠습니까?”

“그러지. 모두 나가 있어라!”

장우량의 명령에 지부장들의 뒤에 서 있던 시녀들이 모두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지부장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른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라는 생각이었다.

“이제 보여 드리겠습니다, 합산도문을 정점에 세울 수 있는 비책을.”

그렇게 말한 초운학이 장우량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부장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초운학의 시선에 자리에서 일어선 장우량이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것이다.

너무나 당황스런 상황에 그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연회장 한쪽 구석에 있는 쪽문이 열리더니 복면을 쓴 사람들이 들어왔다.

장우량의 뒤에 서 있던 장무진과 장세진이 복면을 쓴 사람들을 일렬로 나란히 세웠다.

“이들이 합산도문을 정점에 세울 비책입니다.”

초운학의 말에 지부장들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우량이 초운학에게 고개를 숙인 순간부터 지부장들은 도대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복면을 벗겨주시지요.”

“예.”

장무진이 짧게 대답하고는 장세진과 함께 서 있는 자들의 복면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복면이 벗겨지고 얼굴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지부장들의 얼굴 표정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복면 뒤에 감춰져 있던 얼굴은 바로 자신들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초운학의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지부장은 아무도 없었다. 가장 냉철하고 이성적인 탁일경조차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보며 초운학이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조금 전까지 잠깐 먹었던 음식과 한 잔의 술이 마지막으로 이승에서 먹고 마시는 음식과 술이라는 뜻입니다.”

지부장들은 초운학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시작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초운학의 명령에 장우량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고는 장무진과 장세진을 보며 고개를 한차례 끄덕였다.

잠시 후,

굳게 닫힌 연회장 문 사이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미약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비호와의 대화 이후 상천의 머릿속에는 중단전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상단전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비호도 상단전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사도련에서 최고라는 가백현도, 무림맹의 으뜸이라는 무당의 현청 도장도 그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상단전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다.

상천의 모든 생각은 오로지 중단전에만 쏠려 있었다.

중단전만 사용할 수 있다면 자신도 한 단계 발전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백룡문의 무공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 문도들에게 좀 더 뛰어난 무공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종삼과 했던 약속을 지키는 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정해졌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중단전이 답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고민은 날 더울 때 시작되어 선선해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비호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상천은 일단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다가 정 안 되면 그때 가서 묻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나 늦은 밤.

상천은 연무장에 앉아 장고를 거듭하고 있었다.

‘중단전… 중단전…….’

상천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단전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중단전은 그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그것에 대한 개념이 또렷하게 와 닿지 않고 있었다.

한참 고민을 하던 상천이 눈앞에 환영을 만들어내었다. 역시나 가부좌를 틀고 앉은 환영이 상천을 바라보는 듯했다.

‘진기를 돌려보자.’

상천이 환영의 하단전에 자리 잡고 있는 규화공의 진기를 움직였다.

정상적인 경로로 움직이는 진기를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던 상천이 돌연 다른 경로로 진기를 이끌었다.

‘명치 부근…….’

상천은 경로를 이탈한 진기를 명치 부근으로 이끌었다. 가야 할 길이 아닌 다를 길을 지나는 진기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던 진기들이 급기야 상천이 인도하는 길로 움직이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다시 환영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부들부들 떠는 환영을 보며 상천도 함께 이를 악물었다.

환영이 이럴 정도라면 실제 자신이 했을 때 성공할 확률이 극히 적다고 할 수 있지만 일단은 해보는 데까지는 해봐야 했다.

스르르.

하지만 진기가 채 명치 부근에 닿기도 전에 환영이 사라졌다. 상천은 또 한 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는 건가?’

상천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껏 무공 수련을 해오면서 가장 큰 벽에 부딪친 것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상천이 다시 환영을 불러냈다.

상천은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환영의 하단전에 규화공의 진기를 담았다.

‘일단 규화공의 진기를 모두 뽑아내자.’

상천이 진기를 느린 속도로 움직여 대주천의 경로를 따라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단전이 거의 비어가자 서둘러 현기심법의 진기를 하단전에 불러내었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상천은 규화공의 진기가 전부 하단전을 빠져나가고 약간의 시간차를 둔 뒤 현기심법의 진기를 움직였다.

처음에는 규화공의 진기와 같은 경로로 움직이던 현기심법의 진기가 천지혈(天地穴)을 기점으로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

잠시 원래의 경로대로 현기심법의 진기를 움직이던 상천은 진기가 자궁혈(紫宮穴)에 다다랐을 때 진기의 방향을 틀었다.

‘아래로!’

순탄하게 흘러가던 진기의 흐름을 급격히 아래로 꺾은 상천은 현기심법의 진기를 곧장 전중혈(癉中穴) 부근으로 인도했다.

전중혈에 도착한 진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경로를 이탈한 진기가 원래의 자리를 찾아 움직이려 했지만 상천은 억지로 진기를 전중혈에 붙잡아두었다.

환영이 또 한 번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주천의 경로로 돌고 있던 규화공의 진기가 빠르게 움직이며 전신을 보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현기심법의 진기는 한시라도 빨리 이 불편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듯 더욱 심하게 요동쳤다.

전중혈이 가장 불안하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규화공의 진기가 방향을 틀어 전중혈로 향했다. 아까 그렇게 유도를 할 때에는 심하게 거부하더니 이번에는 알아서 찾아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상천의 입장에서는 규화공의 진기가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다.

전중혈에 도착한 규화공의 진기가 요동치는 현기심법의 진기를 보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치 않는 손길인지 현기심법의 진기는 더욱 요동치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규화공의 진기는 이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많은 진기가 전중혈로 모여들어 현기심법의 진기를 감싸기 시작했다.

두 진기의 충돌 아닌 충돌에 환영은 더욱 심하게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처럼 금방 사라져 버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규화공의 진기가 현기심법의 진기를 완벽히 감쌌다. 쉽게 말해 규화공의 진기가 계란의 껍데기 역할을 하고, 그 안 현기심법의 진기가 계란 흰자와 노른자처럼 불안정한 상태로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규화공의 진기가 요동치는 현기심법의 진기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전중혈에 가해지는 부담은 훨씬 덜한 편이었다.

요동치는 현기심법의 진기를 감싸고 있는 규화공의 진기는 더욱더 단단하게 굳어갔다.

그 안에 갇힌 진기는 어떻게 해서든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아 보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날뛰던 현기심법의 진기가 점점 얌전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단단하게 굳어버린 규화공의 진기를 뚫지 못하다 보니 그냥 포기해 버린 듯했다.

이윽고 현기심법의 진기가 완전히 고요해지자 겉을 감싸고 있던 규화공의 진기에서 변화가 생겼다.

동그란 원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규화공의 진기 중 반절은 다시 기화(氣化)하여 하단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반절은 전중혈에 반원 모양의 그릇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안에 현기심법의 진기가 얌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된 건가?’

환영도 더 이상 몸을 떨지 않았다. 마치 운기를 하듯 편안하게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실제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환영을 통해 중단전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아…….”

상천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자신의 몸을 통해 해본 것이 아님에도 엄청난 심력이 소모된 까닭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데 실제로 자신이 한다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 벌써부터 한숨만 나왔다.

눈앞에 있는 환영을 지운 상천이 그대로 연무장 위에 드러누웠다.

시원한 바람이 연무장 주변을 돌며 상천의 머리를 식혀주는 듯했다.

그렇게 상천은 연무장에 누운 채 아침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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