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76화 (76/141)

#076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상천의 물음에 하신은 표정 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

하신이 그렇게 나오자 오히려 당황스러운 사람은 상천이었다.

하신의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에서는 전혀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천은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여전히 하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모르는 건가?’

상천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서기종이 앞으로 나섰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인부들에게서 이상한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십니까?”

서기종이 단도직입적으로 하신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하신의 반응은 똑같았다.

“인부들의 어떤 점이 이상하단 말씀입니까? 자세히 얘기해 주십시오.”

“네. 인부 중 일부가 마치 저희를 감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두 번 느낀 것도 아니고 한두 명이 느낀 것도 아닙니다.”

서기종의 말에 하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게까지 나오니 반월도문과는 정말로 연관이 없는 것 같았다.

잠시 말없이 서 있던 하신이 함께 온 호위무사들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러자 살짝 고개를 숙인 호위무사들이 그 자리에서 흩어졌다.

“아무래도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입니다. 저희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백룡문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는 것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반월도문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정보력에 기인한 내용과 최근 지원을 위해 조사한 내용이 더해진 것에 불과합니다. 그 외 다른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하신의 말은 진심인 듯 보였다.

서기종의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계속해서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렇게 서로 대화 없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자 흩어졌던 호위무사들이 돌아왔다.

“없습니다.”

“없어?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호위무사의 대답에 하신이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상천과 서기종 역시 조금 전보다 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칫 자신들이 없는 말을 지어내어 억지를 부린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부들을 전부 다 모아라. 지금 즉시!”

“알겠습니다.”

하신은 상천과 서기종을 추궁하지 않았다.

그들이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악의를 가지고 거짓을 말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월도문과 백룡문의 관계에서 그런 감정을 가질 일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약, 오해나 의혹이 있다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신의 명을 받은 호위무사들이 곧장 일하고 있던 인부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인부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모두 모인 겁니까?”

하신이 웅성거리고 있는 인부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인부들이 서로를 한 번씩 훑어보았다.

“음? 여가랑 홍가는 어디 갔나?”

“그러게? 아까 있던 것 같은데? 아닌가?”

“그랬어? 난 오늘 한 번도 못 봤는데. 오늘 일 안 나온 거 아니었나?”

인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러자 하신의 눈이 순간 빛났다.

“그 두 사람, 예전부터 함께 일하던 사람들입니까?”

하신이 인부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인부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명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여기 있는 우리야 예전부터 여기저기서 일하면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 여가나 홍가 같은 경우는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그 대답에 하신이 다시 한 번 호위무사들을 쳐다보았다.

“어디서 심은 놈들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군. 흔적을 찾아라. 인부로 위장하고 있는 동안에 흔적 없이 활동하기는 쉽지 않았을 게다.”

“알겠습니다.”

호위무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하신이 심각한 표정으로 상천에게 말했다.

“분명 저희는 아닙니다. 짐작 가는 바가 있으니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시지요. 짐작이 맞다면 심각한 사안입니다.”

하신의 말에 상천이 난색을 표했다.

접객실로 쓰고 있는 방 안에 장여진 일행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와 있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는 하신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합산도문 여식 때문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신의 말에 상천과 서기종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하신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반월도문의 정보력을 너무 낮게 보신 모양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그분을 정치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이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신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들어오십시오.”

“그러지요.”

상천의 대답에 하신이 웃으며 그와 함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문이 열리고 상천과 함께 낯선 사람이 들어오자 장여진 일행은 당황스러워했다.

밖에서 나눈 대화를 듣고 있던 터라 상천과 함께 들어온 사람이 반월도문에서도 제법 위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을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들어오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합산도문의 군사이시오.”

이어진 상천의 말에 장여진 일행은 더욱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인자나 다름없는 하신이기 때문이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반월도문의 군사를 맡고 있는 하신입니다.”

“장여진입니다.”

장여진이 당황스러움을 최대한 감추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앉으십시오.”

상천이 하신에게 자리를 권하며 자신도 바닥에 앉았다.

“제가 들어와 당황하셨겠지만, 여러분께서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장여진 일행의 머릿속을 읽고 있기라도 하듯 하신이 먼저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상천에게도 했던 말이지만, 당사자들에게도 직접 얘기하는 것이 옳았다.

반월도문의 군사 되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믿어도 되기는 하겠지만 장여진 일행은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 내지 못했다.

“아까 짐작 가는 바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자세히 얘기해 주십시오.”

상천이 하신에게 말을 걸어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러자 하신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희 반월도문은 절대로 인부들 틈에 감시자를 섞지 않았습니다. 백룡문과 반월도문은 그 힘과 규모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함께 가는 동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주종 관계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신의 말에 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에 인부들 틈에 감시자를 섞어놓은 것은 합산도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하신이 장여진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장여진의 얼굴에서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비호가 나섰기 때문이었다.

“합산도문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합산도문이 어째서 그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약간 격앙된 어조.

비호의 목소리에 화룡과 여소정이 순간 움찔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하신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합산도문에 뭔가 일이 터졌다는 것은 저희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곳에 와 계시는 것도 그것 때문이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닙니까?”

하신의 물음에 비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권한은 장여진과 여소정에게 있다는 개인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비호가 장여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여소정이 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여소정의 대답에 하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의 일이라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대략적인 상황을 알고 있다는 것도 밝혔고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줄 생각이 없다는 의사도 밝혔다.

그렇다면 도움을 얻기 위해서라도 장여진 일행은 합산도문에서 벌어진 일을 속 시원히 털어놓는 편이 더 나을 수 있었다.

직접적인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장여진은 충격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하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여소정이라면 그런 판단을 충분히 내릴 수 있을 것이라 하신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전제하에 여소정이 그 이상 말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아직도 자신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정황을 파악한 하신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인부들 사이에 섞여 있던 감시자는 합산도문에서 심어놓았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백룡문을 감시하려는 의도라기 보다는 여러분을 감시하기 위함이겠지요.”

그렇게 말한 하신이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었다.

“그러나 감시 목표가 누가 되었든 간에 감히 귀주성에서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였다는 것은 반월도문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없을 것입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지요.”

확언하는 하신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

쾅!

장세진이 거칠게 장우량의 집무실 문을 열고 씩씩거리며 들어섰다.

그리고는 의자에 삐딱하게 앉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애초에 우리 애들을 심었어야 했는데!”

장세진의 말에 장우량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 좀 알아낸 것은 있나?”

“있긴, 개뿔! 기껏해야 거기에 몇 놈 있는지 정도뿐이구만! 도대체가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씩씩거리며 내뱉는 장세진의 말에 장우량이 피식 웃었다.

“우리 애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 같더냐?”

“아무렴! 그 약해빠진 살수 놈들보다야 낫겠지.”

장세진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애초에 그곳에 신경 쓰고 고집부려 사람 심은 건 너다. 쓸모없는 일에 우리 애들을 투입할 순 없어.”

“쓸모없는 일이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아니긴. 장여진 그년 감시하려고 사람 붙여놓은 걸 내가 모를 줄 아나?”

장우량의 말에 장세진은 입만 삐쭉 내밀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이상한 낌새를 저들이 눈치채면 안 되는 상황에서 그런 건 위험한 행동이다.”

“알겠수다! 어차피 나가리 된 거 앞으로 안 하면 되지.”

“준비는? 다 됐느냐?”

“거의 다 끝났습니다. 그깟 인형들 만드는 것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요.”

장세진의 호언장담에 장우량은 못 미더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란 말입니다!”

장세진이 다시 한 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다. 앞으로 석 달 후다. 석 달 후에 기반이 완성될 것이야.”

장우량이 서슬 퍼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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